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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06. 2023

모든 욕구 위의 종교(@아난)

#5. 튀르키예에 대하여

튀르키예에 도착하자마자 7살 조카가 ‘히잡’을 궁금해한다. 옛날에 튀르키예에서는 여자가 재산처럼 여겨져서 재산을 보호하는 것과 비슷하게 여자에게 히잡을 입혔다고 했다. 우리나라 양반 규수처럼 귀족인 걸 드러내는 표시라고도 했다. 그러자 조카가 ‘히잡을 안 쓰면 막 사는 여자인 건가’해서 온 가족들이 당황했다. 자유를 위해 히잡을 벗어 던지려는 여성들이 결코 막 사는 여성들은 아니기에 설명을 덧붙였다. 이곳의 전통문화였고 존중해야겠지만 여성의 자유도 중요하기 때문에 요새는 히잡을 벗고 쓰는 것도 개인의 자유라는 이야기로 마쳤다. 바깥에 5분만 서 있어도 사람이 익는 더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까만 색으로 덮은 히잡은 충격적이었다. 또 생각보다 다양한 패션의 히잡이 있었다. 머리통만 가리는 히잡 밑으로 나이키 티셔츠가 살짝 보이는 젊은 여성이 있었다. 히잡 위에 툭 걸친 선글라스의 그녀를 보며 술탄의 시대와 현재의 자본주의가 섞인 요상한 느낌이 들었다.


숙소 앞 큰 확성기가 있었는데 야밤에 도착했을 때는 무슨 용도인지 알 수 없었다. 새벽 4시에 그 쓰임새가 드러났다. 절에서 나오는 염불 소리 같이 기도를 방송하는 확성기였다. 확성기와 가까운 창가 방과 꽤 먼 안쪽방 어디에서든 잘 들리도록 설계된 큰 소리를 내는 스피커였다. 가족들은 모두 우리나라 같으면 “@#@!#$! 마! 잠 좀 자자!”라고 야밤에 외치는 사람이 있을 텐데 튀르키예에는 없는 게 신기하다고 했다. 이스탄불에도 카파도키아에도 우리가 방문했던 모든 숙소 인근에 스피커가 있었다. 하루에 4번 새벽 4시, 오후, 저녁, 밤에 기도 소리가 났다. 관광지, 시골 어디에나 있는 스피커를 만나면 ’여기에도 있구나!‘하며 잠은 글렀다고 웃었다.



유창한 한국어로 여행 내내 놀라게 한 튀르키예인 가이드 ‘알리메’에게 튀르키예의 종교에 관해 물어보았다. 튀르키예 인구 97%가 무슬림이지만 국교는 없다고 한다. 종교를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지만 대부분 태어나면서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모태종교로 무슬림이 된다. 다른 무슬림 국가보다 자유로워 지금은 히잡 착용도 자유다. 그러나 그녀의 할머니 세대에서는 정부 성향에 따라 히잡 착용이 금지되어 히잡을 쓰는 것만으로도 비난을 받고 심지어 고문을 받을 정도로 종교적 이유에서 갈등이 많았다고 한다. 맥주도 모두 몰래 숨어서 마실만큼 엄격하다. 대통령도 맥주를 마시는 사진이 찍혀 지지율이 급락할 정도로 민감하다. 대통령 후보의 종교 관련 공약이 승패를 결정짓기도 한다고 하여 ‘종교가 이 정도라니!’ 다른 세계 같았다.


아시아와 유럽의 중간에 위치하며 전쟁이 끊이지 않았기에 카파도키아에는 1300개가 넘는 지하도시가 있다. 무른 돌들로 구성된 지대의 특성이 있어 사람들이 손으로 혹은 곡괭이 같은 도구로 팠다. 일상을 포기하고 지하도시를 만들어서라도 종교에 대한 자신들의 신념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는 지하도시 중 가장 큰 ‘데린쿠유’를 방문했다. 춥고 어둡고 좁은 이곳에서 예배당, 학교, 가축우리 등을 만들어 많을 때는 수만 명이 백 년이 넘게 살았다고 한다. 지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나면 곧바로 올라갈 수 있도록 산 중턱에는 동굴 도시가 있었다. 가파른 암석지대 위에 돌을 파서 수녀원과 주방을 아파트처럼 만들었다. 기독교, 무슬림 모두 튀르키예 땅에서 서로 치열하게 고지전을 하는 와중에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고자 성지를 만들어왔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강력한 믿음이 개인들을 묶고 수천 년이 이어지는 공동체를 만든다는 것이 놀라웠다.


지하도시를 나오며 엄마는 ’차라리 만주 벌판에서 독립운동하면서 자폭을 하지 지하도시에서는 갑갑해서 못 살겠다‘고 했다. 햇살과 바람을 내가 원할 때 맞고 가릴 수 있는 자유. 내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 수 있는 자유. 계곡에서 물장구치며 가족들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자유. 내게는 당연했던 자유가 이곳에서는 이방인이기에 허락되었던 것이었다. “괜찮으세요? 행복하세요?”라고 물어보고 싶었다. 그렇지만 내가 말한 자유를 경험해본 적 없고 지금 주어진 생활이 당연한 튀르키예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조차 나의 오만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이들의 관점에서 내게는 당연한 유교적 질서들이 답답할 수도 있다. 이래서 여행이 필요하다. 내게는 당연한 것에 대한 의구심을 가질 기회는 저절로 일상에서 찾아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올 여름 내게 그 어느 여행보다 강력했던 생경함과 의구심이 남아있다. 일상에서도 내게 드리워진 히잡은 무엇인지 끈질기게 질문을 던져봐야겠다.





[#5. 튀르키예에 대하여]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내가 만난 튀르키예 https://brunch.co.kr/@ddbee/33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환대 https://brunch.co.kr/@ddbee/30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모든 욕구 위의 종교 https://brunch.co.kr/@ddbee/32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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