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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땡비 Nov 25. 2023

골목(@아난)

#8. 골목


좁디좁은 집에 살짝 열어둔 철문 사이로 쨍하게 들어오는 빛이 유일하다. 수오는 내리쬐는 빛에 기대어 연필을 잡고 공부를 한다. 기필코 이 골목에서 벗어나겠다는 마음과 함께.

 

수오가 사는 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피란민들이 터를 잡은 곳이다. 가진 것이 없는 자들은 위로 더 위로 내몰려 공동묘지에 터를 잡았다. 수오 집의 벽이 옆집의 벽이기도 할 만큼 다닥다닥 모여 있는 가운데, 조금만 걷다보면 묘지들이 툭툭 튀어나오는 어지러운 동네였다.

 

문 하나로 집 밖과 안이 구분되는 단출하기 그지없는 수오의 집문 밖으로 갑자기 인기척이 느껴졌다. 철문으로 가까이 가자 엉망진창 머리에 길고양이 같은 여자아이가 어제 제사가 끝나고 집 앞에 내어둔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었다. 길년이었다.

 

동네에서 길년이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갓난 아기였을 때부터 길년의 엄마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지하철역에 길년을 눕혀두고 구걸했다. 취객과 노숙자들의 꼬릿한 냄새가 가득한 지하철 계단에서 천진난만하게 꼬물거리는 길년이를 보면 사람들의 지갑이 열릴 수밖에 없었다.

 

길년의 엄마는 길년이에게 젖이라도 물리기 위해 길 한복판에서 비닐봉지를 펼쳤다. 남들이 먹다 버린 음식이 뒤엉켜 엉망인 비닐봉지를 속이 훤히 보이게 열어두고 길에서 먹었다.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볼 때면 보지 못한 척 외면하거나 충격을 금치 못했다. 아이의 나이도 이름도 알지 못해 ‘길년이’로 어른들은 불렀다. 동네 어른들은 혀를 끌끌 차며 길년의 엄마를 욕했다. 모든 손가락질과 욕은 본 적 없는 길년의 아빠보다 눈 앞에 있는 길년 엄마의 몫이었다.

 

갓난 아기였던 길년이가 자라 골목을 걷게 될 때쯤 길년이네는 허름한 폐가 이곳저곳에 자리를 잡으며 살았다. 길년이는 귀신과 다름없는 몰골을 하고 낮에 텅 빈 동네를 돌아다니며 쓰레기나 객귀밥(대문 밖에 차려둔 제사 음식)을 찾아 헤맸다.

 

길년이 허겁지겁 객귀밥을 먹다 고개를 드니 하얀 빛 속에서 커다란 눈동자가 반짝여 깜짝 놀라고 말았다. 철문 뒤 어두운 방에서 한 줄기 빛을 받는 수오는 신성해보이기까지 했다. 길년이는 기침을 연거푸하며 먹은 것을 사방에 토했다. 아직도 아기와 다름없어 보이는 길년이를 보자 수오는 ‘안쓰럽다는 게 이런 거구나.’는 마음의 목소리가 절로 울려 퍼졌다. 들어와도 된다며 손짓하여 길년이를 집으로 불러 물을 먹여주었다.

 

다음 날부터 수오는 자신이 먹으려던 것들을 반씩 나눠 집 앞에 두기 시작했다. 우유 반 컵, 빵 반 덩어리 같은 것들이 집 앞에 놓이면 길년이는 숨어있다 나타나 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수오는 문 밖을 나섰다. 길년이의 손에 먹을 것을 쥐어주고 같이 골목 이 곳 저 곳을 놀러 다니기 시작했다. 갯가 아이들이 조개를 세고, 산세 아이들이 벌레를 잡으며 놀듯, 이 골목의 아이들은 무덤을 놀이터 삼아 넘어 다녔다. 걷다보면 묘비 하나 없는 무덤들이 툭툭 튀어나왔다. 둘은 토끼를 닮은 무덤을 토끼 무덤이라 정하며 누구의 무덤도 아니던 것에 이름을 붙이며 놀았다.

 

오늘은 길년이가 다부진 눈으로 수오를 이끌었다. 부처님 오신 날이라며 모두에게 열린 절로 향했다. ‘밥을 이렇게 공짜로 주다니!’ 비빔밥을 먹고 절 구석구석을 둘은 탐험했다. 보살님 한 분이 길년이를 말끔히 씻겨주고 옷 한 벌을 주었다. 씻고 보니 길년이는 새까만 머리카락에 맑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아이였다.

 

새롭게 태어난 듯 깨끗이 씻은 길년이를 보고 감탄하며 이름을 부르려는데 수오의 마음속에서 미안함이 올라왔다. ‘길년이’라는 이름이 수오에겐 늘 불만이었다. 길에서 태어나 ‘길년이’인건지 ‘길년이’라 길에서 사는 건지.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알 수 없었지만 모든 문제가 꼭 저 이름 탓 같았다. 길년이를 길년이라 부를수록 자신이 마치 길년이를 이 골목에 살게 하는 것 같아 수오의 마음이 불편했다.

 

“너는 앞으로 ‘송이’야. 눈송이를 닮았어.”

“왜? 눈이 뭐야?”

“엄청 추우면 깨끗하고 맑은 하얀 얼음 조각들이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되게 예쁘대. 그게 눈이야. 앞으로 나는 너를 ’송이‘라고 부를 거야.”

 

이후로도 길년이 아니 송이와 수오는 무덤 탐험을 다녔다. 그러다 부활절에는 성당에서, 크리스마스에는 교회에서, 기념일마다 종교를 바꿔가며 특별한 그 날만큼은 눈처럼 깨끗하게 씻고 배불리 먹으며 행복하게 보냈다. 

 

계절이 바뀌고 골목 이웃들이 떠나가도 둘은 온종일 함께 붙어다녔다. 수오는 송이와 바깥에서 놀다가 동네 골목으로 돌아오면 암울해졌다. 이 골목을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길년이는 반대였다. 처음 생긴 자신의 집. 나갔다가 이 골목에 들어오기만 해도 눈에 익은 이 느낌. 집에 왔다는 느낌이 좋아 벗어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겨울이 다가오자 수오는 송이가 걱정됐다. 새벽녘 들어오던 송이의 엄마가 집에 오는 날도 점점 줄었다. 수오는 아침마다 송이의 집으로 가서 그녀를 챙겼다.

 

악은 비겁하게 약자가 가장 어려울 때 비수를 꽂는다. 무덤가에 자리 잡은 이 마을에도 촘촘한 서열로 지역이 나뉘었다. 길년이가 살던 골목은 역시나 가장 높은 험지. 수오가 갈 때마다 집이 망가져있었다. 섬뜩한 철거 경고장, 새빨간 페인트로 할퀴듯 ‘철거’가 쓰여 있었다. 어느 날에는 쇠망치로 벽이 무너져 바람이 쌩쌩 들어왔다. 길년이 스스로도 자신의 이름이 무엇인지, 엄마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기에 수오는 어찌 도와야할지 몰랐다. 그저 매일 아침 그녀에게 아무런 일도 없기를 빌며 송이의 집으로 뛰어갔다.

 

역대급 추위라며 온 뉴스가 난리였던 날이다. 야밤에 구급차 사이렌 소리가 온 동네를 떠들썩하게 했다. 수오는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고 갑자기 박차고 나가 송이의 집으로 뛰어갔다. 골목이 좁아 소방차는 고사하고 키 큰 성인 남성도 장비를 들고 올라가기 힘든 골목이었다.

 

수오는 울면서 '제발!' 하는 마음으로 소방관들을 제치고 오르막길을 쉼 없이 뛰어갔다. 새빨간 철거 글자와 허물어진 벽과는 비교되지 않을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송이의 집이 커다란 불에 활활 삼켜졌다. 들어가려는 수오와 수오를 막으려는 어른들과 불을 끄려 애쓰는 소방관들, 혀를 끌끌 차며 지켜보는 사람들이 뒤엉켰다.

 

송이의 모습은 텁텁하게 쌓인 연탄재 같이 변해있었다. 추위를 견디지 못한 송이가 불을 켰고 따뜻함에 잠이 스르륵 들면서 불이 모든 걸 삼켜버린 것이었다.

 

송이의 엄마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수오는 송이가 좋아하던 유리 주스 병에 송이의 재를 모아 넣었다. 송이의 집 앞 골목에 작은 무덤을 만들고 그녀를 묻었다.

 

시간이 흘러 수오가 송이 엄마쯤의 나이가 되었다. 수오는 이를 악물고 마을을 탈출했다. 어른이 되면 기필코 송이의 무덤을 양지 바른 곳에 옮기리라 마음먹었다. 그러나 추운 겨울이면 항상 마을을 찾아왔다. 집과 묘지가 여전히 뒤엉켜있는 이 골목으로 와 송이의 무덤 앞에 꽃을 둔다. 하루 벌어먹고 살기 힘든 수오의 팍팍한 주머니 사정 때문에 올해도 옮기지 못했다. 올 때 마다 수오는 “너만 여기 두고 가서 미안해. 정말 미안해”라고 하얀 입김과 눈물을 쏟아낸다.

 

수오는 속으로 송이에게 말을 건넨다. 부산에는 눈이 내리지 않아서 어찌 보면 다행이다. 눈이라도 오는 날이면 마음이 아려 살아내기 힘들었을 거라고. 매일 눈이 팅팅 부어 못생겼을 거라며 웃기지 않은 농담을 송이에게 전하고 돌아선다.

 

골목길 속 누가 봐도 작은 무덤. 길년 아니 송이의 무덤이 집 앞에 버려진 연탄재와 수오의 꽃송이와 나뒹굴고 있다.









[#8. 골목]  

 - 아버지 못골 글 보러가기 : 깡깡이 마을에서 https://brunch.co.kr/@ddbee/41

 - 딸 흔희의 글 보러가기 : 골목의 주인 https://brunch.co.kr/@ddbee/42

 - 딸 아난의 글 보러가기 : 골목 https://brunch.co.kr/@ddbee/43


70대 아버지와 30대 두 딸이 모여 같은 주제의 글을 써내려가는 뉴스레터 땡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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