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들개로서의 삶을 말하다

#들개 #집개 #수염 #방향성 #재충전 #지천명 #통찰 #성찰

by 미스틱

금일은 퇴직 실업급여 1차 신청일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인해 비대면으로 신청을 했다. 처음엔 실업급여 신청이 만만할 줄 알았는데 막상 이것저것 하다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내가 28년간 낸 돈을 받는 게 이렇게 어려운 것인가? 퇴직 후 현실의 벽은 처음부터 높고, 험하게 느껴졌다.


28년간 직장생활 동안 매월 21일 자에 꼬박꼬박 입금되던 급여가 막상 들어오지 않아 심리적으로 불안한 상태였다. 하지만 다행히 어려운 과정을 극복하고 신청한 실업급여(?)가 늦게나마 소액이라도 급여통장에 꽂히는 것을 보면서 난 급여 상실의 아픔을 어느 정도는 실업급여로 대체할 수 있게 되었다.


퇴직 후 제일 하고 싶었던 수염 기르기 또한 예상과 달리 부작용이 적지 않았다. 기존의 깔끔하고 단정하던 나의 용모는 모 채널의 '나는 자연인이다'에 출연하는 주인공처럼 몰골이 초라하고 참담하기까지 했다. 풍성한 수염을 기르고 관리한다는 것은 단순하게 수염이 자라도록 방치하는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수염을 기른다는 것은 자기의 얼굴에 맞는 수염의 모양을 선택하고, 만들어야 하며, 수염 오일과 보충제를 쓰고, 올바를 스킨케어를 해야 하고, 주기적으로 바버샵에 가서 관리를 받아야 하는 등 추가적인 노력과 시간 등의 비용이 만만찮게 소요된다는 것을 불상사가 일어난 뒤에야 알아챌 수 있었다. 뭘 하든 세상은 결코 호락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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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직을 하면서 난 들개로 신분전환을 하게 되었다. 28년간 온실에서 길러진 화초처럼 융숭한 대접을 받다가 버려진 것이다. 물론 자발적 버려짐(?)이었다. 바쁘고 여유는 없었지만 집개로 살 때는 한 번도 생활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을 가진 적이 없었다. 외부의 비바람과 강풍을 피할 수 있는 거처가 제공되었고, 매일같이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안정적으로 제공되었다. 자식을 키우는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관심과 애정도 받았다.


반면 행색과 몰골이 초라한 들개들은 집에서 멀리 떨어져 주인의 따뜻한 돌봄을 받는 집개인 나를 부러움과 지루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난 그들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버려질지도 몰라.'라는 내면의 두려움이 커지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들개들의 자생력과 강인함, 그리고 자유로움이 부럽기도 했다. 어떤 들개는 심지어 당당하고, 멋지기까지 했다.


사실 인간에 의해 버려지고, 인간에 의해 죽음을 맞는 가엾은 생명인 들개는 처음부터 들개는 아니었지 않은가? 우리나에서 주인 없는 개는 환영을 받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개든 고양이든 도움을 주는 사람도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마음이 불편하고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집개를 키우는 한 들개는 항상 양산될 수 밖에는 없는데 말이다.


나도 들개가 된 지 어느새 한 달이 되었다. 당당하고 멋진 들개가 되리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지 않았다. 매월 꼬박꼬박 들어오던 급여가 막상 끊기고, 얼마 남지 않은 돈을 생활비, 사대보험, 교육비, 대출상환 등으로 지출해야 하다 보니 슬슬 걱정과 두려움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십오 년간 비용 걱정 없이 타던 회사 명의의 차량도 막상 반납하니 차도 새로 구입해야 했고, 그에 따른 비용도 적지 않게 써야 했다.


임원 연봉으로 유지되던 가계 생활비의 수준을 당장 줄이는 것도 쉽지 않은 문제였다. 이대로 계속 쓰다간 얼마 가지 않아 통장 잔액은 전문용어(?)로 엥꼬(えんこ)가 날 것 같았다. 실업급여를 받느라 노동 생산성과 효율성마저 밑바닥 상태이다 보니 이런저런 걱정과 근심 때문에 직장생활을 할 때와 같은 불면의 밤들이 또다시 이어지기 시작했다.




"퇴직을 하면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무조건 쉬어야 한다"라는 선배들의 수차례 조언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쉬는 것에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봐야 뭔가 희미하게 보이는 게 있을 거다"란 말도 쉽게 수긍할 수 없었다. 높게 도약하기 위해 몸을 더 웅크려야만 하는 것과는 다르지 않은가.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 시간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함으로써 앞으로 펼쳐질 험난한 미래에 대한 체력과 마인드셋을 갖추라는 조언은 아니었을까.


그동안 난 그저 남들과 같은 인생의 시간에 맞춰 늦지 않게 일을 시작했고, 운명처럼 그 일을 만나서 여태껏 지속해 왔을 뿐 아닌가.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소위 정답이라로 부르는 그들의 규칙들을 따라왔으며, 타인의 평가에 연연해 남들이 다져 놓을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성공이며, 그 길을 벗어나는 것이 위험하다고 믿으며 살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걸어왔던 길을 부정하거나 틀리다는 말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쩌면 정답을 벗어날 용기가 없었던 것이, 그리고 비굴해도 참고 다녔던 나의 태도가 지금까지의 내 삶을 일궈오게 된 원동력이었는지도 모른다. 인생은 주관식이기 때문에 정답이 없다. 집개든 들개든 본인만 행복하고, 잘 사면 그만인 것이다.


선배들이 말한 것처럼 지금 내가 삶의 방향을 잃은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방향을 잃을 때는 잠시 멈춰야 한다. 잠시 멈춰서 숨을 고르고 생각도 하면서 앞으로 나가기 위한 재충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지금처럼 인생 2막의 성장통을 겪다 보면 어느 순간 나만의 길을 다시 찾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조급해지지 말자고, 그리고 초조해지지 말자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어떤 길을 다시 선택하든 그 길은 계속 이어지고, 다른 길로 연결될 것이다.




공자는 오십 대를 일컬어 지천명(知천命)이라고 했다. 쉽게 말해 천명(天命)을 아는 나이라는 뜻이다. 명(命)을 생명(生命) 또는 운명(運命)이란 뜻으로 보면 자신이 어디서 왔고, 내가 누군지,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를 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의 한 시점에서 돌아보면 지금 내가 앓고 있는 퇴직의 성장통이 통찰력과 깨달음, 프레임을 확장하는 행복한 여정이었으면 좋겠다. 여태껏 채우고자 달려왔다면 이젠 비울 줄도 알아야 한다는 그간의 삶의 철학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올 한 해 부족하고 앞뒤 없는 제 글을 읽어주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 다가오는 임인년 새해는 항상 건강하시고, 뜻하는 모든 일들이 순조롭고, 가정도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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