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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Oct 08. 2022

내 인생의 순애보(純愛譜)

#러브레터 #너는내운명 #소나기 #노트북 #별 #첫사랑 #소울메이트

내겐 듣기만 해도 마음 설레는 단어가 있다. 바로 '첫사랑'이다. 설렘으로 물든 나의 스무 살! 서툴고 순수해서 힘들었던, 그래서 더 뜨겁고 강렬했던 시간이었다. 펄떡이던 심장박동 소리가 유난히 컸던 그 때, 난 '너의 췌장(?)을 먹고 싶을 만큼' 서로의 안에서 함께 살아가고 싶었다. 생전 처음이니깐 어설펐고, 실수도 많았다. 스무 살의 내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로 가슴 아팠고, 힘들기도 했. 하지만 아프고 힘든 것 이상으로 사랑의 결실의 열매는 더 달콤하고 맛있었다.  내게 첫사랑의 기억은 '가슴 터질 것 같은', '너무나 뜨거웠던', 그래서 '평생 잊을 수 없는' 등의 형용사로 저장되어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첫사랑의 기억은 잊고 싶은 아픔 또는 흑역사일 수도 있다. 이뤄지지 않은 누군가에게는 짝사랑의 기억일 수도 있다. "남자는 첫사랑을 가슴에 품고 살고, 여자는 마지막 사랑을 기다리며 산다"라는 말처럼 남자들의 경우 대게 첫사랑의 기억을 평생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가끔 비가 와서 이유 없이 외롭거나 막연한 그리움이 밀려올 때면 첫사랑의 기억은 색바랜 좋은 추억으로 필터링되어 떠 오르기도 한다. 이루지 못한 아쉬움에 남은 회한의 감정까지 덧입혀져 미화된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여기에는 '추억 보정 효과'도 한몫한다. 과거에 경험한 것에 대해 추억에서 오는 감성을 더해 보다 좋게 평가하는 것이다. 정말 첫사랑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에 더 아름답게 편집되고, 기억으로 저장되는 것일까?



승민 옆에 잠든 서연에게 키스하는 장면! 기억의 습작을 함께 듣는 장면! 너무 좋아하는 장면이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첫사랑이었다'라는 카피로 국민 첫사랑이란 말을 유행시킨 영화 <건축학 개론>을 보면, 생기 넘치지만 풋풋하고 숫기 없는 스무 살의 건축학도 승민(이제훈)은 음대생 서연(수지)을 보고 한눈에 반하게 된다. 역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데 서툴어 고백도 제대로 못한 채 일상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고백을 준비하려고 서연의 집 앞에 기다리다 술이 잔뜩 취해 바람둥이 선배의 부축을 받으며 자취방으로 함께 들어가는 장면을 목도하게 된다.


표현할 수 없는 상실감과 절망감에 가슴 아파하며 결국 스스로 서연과의 거리를 두게 된다. 이 영화에서 백미와 같은 장면은 버스를 기다리다 승민의 어깨 위에 기대어 잠든 서연을 보며 몰래 키스를 하던 장면, 그리고 옥상에서 함께 '기억의 습작'이란 곡을 듣는 장면이다. 이뤄지지 않은 첫사랑의 아련함과 애틋함은 15년이 지난 훗날 재회를 통해 이뤄질까 기대도 해봤지만 결국 서로의 감정만 확인하고 영화는 그냥 끝이 난다. 어쩌면 그래서 첫사랑의 속성을 더 잘 그려낸 영화임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황순원의 단편 <소나기>는 내 어린 시절, 사랑에 대한 감정을 처음으로 싹트게 해 준 소설이었다. 형의 국어 교과서에 등재되어 있던 <소나기>를 몰래 훔쳐 읽으면서 난 평생 처음으로 설렘과 가슴 쿵쾅거림을 경험했다. 70년대 국민학교를 다녔던 나로서는 소년의 내성적이고, 감정 표현이 서툴렀던 모습에 그 당시 내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면서 소설에 몰입했던 것 같다. 마치 내가 소설의 주인공인 소년이 된 양 말이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 피해 수수밭 더미 속으로 몸을 숨기고, 둘이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서로에게 따뜻한 체온을 나눌 수 있게 한 것도 소나기였다. 아마 소나기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이 생긴 것도 이 때문이었을 것이다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의 모습은 어린 내게 어쩌면 19금 소설보다 더 은밀하고 야하게 느껴졌다. 징검다리에 앉아서 세수를 하고 있는 소녀의 목덜미가 하얗게 희었다는 장면, 그리고 개울가에서 만난 소년과 소녀가 산으로 놀러 가서 소나기를 맞게 되고, 둘이 수수밭 더미 속으로 몸을 숨기고, 웅크리고 앉아있으면서 서로 간에 따뜻한 체온을 나누는 장면이 특히 그랬다. 내가 지금까지 소나기만 내리면 생기는 아련한 향수와 그리움도 아마 이 때문이었던 것 같다.


황순원의 단편 소설은 아름다웠고, 한편으로 시리도록 가슴 아팠다. 시대적 상황을 받아들이고 순응할 수밖에 없는 어린 소년, 소녀의 슬픈 운명 때문에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책을 읽은 후 난 한동안 <소나기>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했다. 너무나 순진했던 소년과 되바라진 소녀의 상반된 모습이 묘한 어울림을 느끼게 했고, 그 여운은 오랫동안 내게 남았다. 그 후로 소녀의 이미지는 내 첫사랑의 표상이 되어 버렸다. 내가 짝사랑하는, 목덜미가 흰 소녀가 내게 먼저 다가와 말을 걸어주는 상상을 하면서 말이다.


징검다리에 앉아서 세수를 하고 있는 소녀의 목덜미가 하얗게 희었다. 한참 세수를 하고 나던 소녀는 그냥 물속을 뻔히 쳐다본다. 소녀는 소년이 개울 둑에 앉아 있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날쌔게 물만 움켜 낸다. 그러나, 번번이 허탕이다. 그대로 재미있는 양, 자꾸 물만 움킨다. 어제처럼 개울을 건너는 사람이 있어야 길을 비킬 모양이다. 그러다가 소녀가 물속에서 무엇을 하나 집어낸다. 하얀 조약돌이었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팔짝팔짝 징검다리를 뛰어 건너간다. 다 건너가더니만 홱 이리로 돌아서며,

 ‘이 바보’ 하면서 조약들을 던진다. 소년은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소녀는 단발머리를 나부끼며 달린다..




사춘기가 무르익어가면서 난 여느 또래 남자아이들보다 감수성이 풍부해졌다. 시(詩)도 가끔 탐독하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이해인 수녀님의 '해바라기 연가'라는 시를 접한 후 나는 그 시에 완전히 마음을 뺏겨버리고 말았다. "내 생애가 한 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시작한다. 물론 하나님에 대한 수녀님의 마음을 시로 표현했지만 내겐 표면적으로 나타난 시의 문구가 너무나 마음에 들었던 것 같다. 그 이후부터 난 생애 첫사랑이 끝사랑이 되기를 바랐다. 여자에게 순결이 중요하듯 남자에게도 동정이 중요하다는 생각도 점차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난 순애보(純愛譜) 같은 사랑을 오랫동안 꿈꿔왔다.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 말이다. 지금 생각하면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지만 그 당시 나에게 순애보 같은 사랑을 하겠다는 다짐은 꽤나 진지하고 진심이었다. 그런데 '순애보(純愛譜)'를 검색해보니 국어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 내심 놀랐다. 국어사전에는 '순애보(殉愛譜)'란 뜻만 등재되어 있었다.


1. 박계주의 장편 소설인 순애보(殉愛譜)....

2.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유형의 이야기


호기심에 더 찾아보니 문맥상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는 '순애(殉愛)'란 뜻과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을 말하는 '순애(純愛)'란 뜻이 혼용되어 쓰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순애보(殉愛譜)’는 사랑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 이야기를 기록한 것, ‘순애보(純愛譜)’는 순수하고 깨끗한 사랑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 정도의 뜻을 의미한다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순애보는 영화의 소재로도 많이 쓰인다. 94년도에 개봉된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 "Run! Forest"라고 외치는 첫사랑 제니의 한 마디에 포레스트 검프는 그날 이후부터 뛰기 시작했고, 그 뜀박질로 인해 그는 변하고 성장하고 성공에 이르게 된다. 어릴 적 가난과 폭행으로 지쳐 있던, 커면서 영혼과 육체가 자유로운 제니와 달리 지능도 다른 아이들보다 낮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오로지 '평생 제니 바라기'인 그와의 엇갈리는 순애보 같은 사랑 때문에 이 영화만의 독특한 재미가 있는 건 사실이다. 유년의 첫사랑을 끝까지 간직하고 지켜내고 이뤄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였다.  



"어차피 살다 죽을 거면 은하랑 살다 죽을래.", 2005년 9월 개봉한 영화 <너는 내 운명, You are my sunshine> 또한 한 남자의 순애보를 여과 없이 보여준 작품이다. 통장 5개, 젖소 한 마리로 목장을 꿈꾸는 시골 노총각 석중(황정민) 앞에 눈처럼 투명한 다방 레지 은하(전도연)가 나타나고, 그녀에게 온전히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이 둘의 사랑은 입김만 불어도 꺼지기 쉽고, 깨지기 쉬운 촛불과 유리잔 같았다. 집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하가 에이즈 감염으로 그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급기야 교도소에서 재회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이 둘의 운명적인 사랑을 꺾을 수 없었다.  


치매로 인해 모든 기억을 잃은 엘리의 곁을 지키고 있는 늙은 노아, 머릿속에 지우개가 있는 엘리의 손을 꼭 잡고 있다. 영화의 첫 장면에 노아가 했던 말이 있다. "한 사람을 지극히 사랑했으니 그거면 더할 나위 없이 족하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사랑이 뭔지를 깨닫게 해주는 영화 <노트북>이다. 이 영화에서 17세의 노아, 24세의 노아, 할아버지 노아 모두 같은 시간 속의 엘리를 너무도 사랑한다. 떠난 24세의 엘리를 붙잡은 것은 17세 노아의 편지였다.


우리 사이가 끝났다고 생각하니 잠이 안 왔어. 진실한 사랑을 했으니 씁쓸한 건 없어. 미래에 먼발치에서 서로의 새로운 인생을 보면 기쁨으로 미소 짓겠지. 그 여름, 나무 아래서 같이 보냈던 시간과 사랑하며 성숙했던 과거를 추억하면서. 최고의 사랑은 영혼을 일깨우고 더 많이 소망하게 하고 가슴엔 열정을 마음엔 평화를 주지. 난 네게서 그것을 얻었고, 나는 너에게 그걸 주고 싶었어.



영화의 여주인공인 히로코가 아침 산장 밖의 설원에서 죽은 그녀의 연인인 이츠키(남)를 그리워하며 "お元気ですか, 私は元気です!, 오갱키데스카, 아타시와 갱키데스!, (잘 지내나요, 저는 잘 지내요!)"라는 마지막 인사를 외치는 모습은 영화 <러브레터>를 보는 관객에게 잊을 수 없는 장면을 남겼다.


'후지이 이츠키'라는 동명의 남녀가 한 반에 있어 친구들에게 자연스럽게 놀림감이 되었지만 실상 이츠키(남)는 이츠키(여)를 진짜 짝사랑하고 있다. 가끔 화를 내거나 그녀를 괴롭히는 등 일상의 짓궂은 행동에도 그녀는 전혀 눈치를 못 챈다. 햇볕 가득한 하얀 커튼이 나풀거리는 창가에서 이츠키(남)가 사라지는 장면, 오이카와 시나에를 소개시켜 준다며 질투하던 장면, 이츠키(남)를 바라보다 눈이 마주치자 모른 체하는 장면 등은 이츠키(여) 또한 이츠키(남)를 좋아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인다.


서로의 애틋한 감정이 한 번도 제대로 전달되지 못해 영화를 보는 내내 답답했지만 너무나 섬세하게 그려내는 둘의 감정선은 거의 예술작품에 가까웠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관객들의  잊혀진 첫사랑의 추억을 떠올리고, 기억을 그리워하게 만들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알퐁스 도데의 <별>에서는 풋사과같이 수줍은 목동이 평소 꿈에 그리던 주인집 아가씨인 스테파네트를 직접 만나게 되면서 겪는 에피소드가 독자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일꾼을 대신해 식량을 배달한 아가씨가 소나기로 불어난 강물을 건너지 못하게 되자 산에서 밤을 보내는 게 익숙하지 않은 아가씨를 위해 밤새도록 곁을 지키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옆에 가까이 다가와 앉은 아가씨가 별똥별 하나를 보게 되고, '저게 뭐냐'라고 묻는 것을 계기로 밤하늘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된다. 한참 목동의 이야기를 듣던 아가씨는 그의 어깨를 머리에 기대고 잠들었고, 목동은 아가씨의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며 해가 뜰 때까지 그대로 있으며 목동은 생각했다. '밤하늘의 가장 밝은 별 하나가 집을 잃고 내려와 내 어깨에 잠들었노라'라고.


나의 첫사랑, 순애보 스토리


오랜 나의 염원과 바람 덕분인지 마침내 나에게도 순애보 같은 첫사랑이 스무 살인 대학교 1학년 2학기 때부터 시작되었다. 첫사랑인 현재의 내 짝꿍을 만나게 된 것이다. "처음 손잡고, 처음 뽀뽀한 여성과 결혼하겠다."라고 다짐은 첫사랑과의 7년간의 장기 연애와 백년가약이란 결실로 마침내 이루게 되었다.


의도치 않게 2학기 과대표로 선출된 난 동기들과 함께 여름방학 MT를 책임지고 진행해야만 했다. 평소 체육복 차림으로 과수업에도 거의 참석하지 않았던 내가 과대표로 뽑힌 것은 정말 기이한 일이었다. 오죽하면 과 동기들은 내가 체육 특기생으로 특례 입학한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떠난 여름방학 MT는 공교롭게도 10명의 남학생과 10명의 여학생이 참여하게 되었다. 시작부터 묘한 감정이 들기 시작했다.


장소는 거제도였다. 동기 한 명의 아버지께서 거제도 공공기관 지점장으로 계셔서 그분의 사택 이층을 숙소로 쓰기로 한 것이다. 거제도 사택에 도착해보니 방파제 인근에 위치한 뷰 맛집이었다. 짐을 풀자마자 자연스럽게 술판이 벌어졌다. 동기 아버지께서 손수 사 오신 맛있는 회를 안주로 광란의 술자리가 이어졌다. 시끄럽고 분주한 시간이 지나 술기운이 오르자 술을 못 이기는 동기 남녀들이 한쌍씩 짝을 지어 몰래 나가기 시작했다.


좀 더 시간이 지나가 모든 동기들이 나가고 남은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난 과대표로 뒷정리(설거지)를 담당해야 했고, 한 명의 여학생은 짝이 없어 남은 상황이었다. 갑자기 그때부터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술도 먹었겠다 눈앞에 목덜미가 흰 여학생 한 명이 나와 함께 있으니 말이다. 근데 말이다. 그 여학생이 내 인생의 첫사랑이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솔직히 여 초과에 다니던 내가 학과 동기 여학생들을 제대로 보게 된 건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행사를 통해서였다. 평소 체육복만 입던 내가 슈트를 말끔히 빼입고 등장했으니 여학생 선배들과 동기들 사이에서 내 존재감이 한동안 회자가 되었다고 훗날 들었다. 179cm에 역삼각형 몸매, 중동 남성과 같은 강한 얼굴 인상도 한몫했던 것 같다. 그 무렵쯤 난 과세미나실에 잠시 들르게 되었다. 이때 처음으로 짝꿍을 자세히 보게 되었다.


봄 햇살이 가득 세미나실 창문을 투과해서 눈부신 날, 창문을 등지고 단발머리에 품이 큰 흰색 와이셔츠(?)를 입은 한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역광 때문에 그녀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순 없었다. 서먹하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해서 난 인사도 하지 않고 눈에 띠는 빈자리에 앉게 되었다. 잠시 고개를 돌려서 그 여학생을 보았는데 목덜미가 희었고 피부도 투명했으며 머릿결이 햇볕에 반사되어 찰랑거렸다. 갑자기 가슴이 쿵쾅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온 세상이 무채색인데 오직 그녀만 칼라로 보였다. 행여 눈이 마주칠까 얼른 다른 방향으로 눈을 돌렸다. <소나기>에 등장하는 소녀를 만난 느낌이었다.  




근데 그 여학생이 나와 단둘이만 남게 된 것이다. 쿵쾅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고 난 짝꿍과 아무 말없이 술판 뒷정리(설거지)를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가 끝나갈 때쯤 난 용기를 내서 짝꿍에게 방파제까지 산책 데이트를 신청했다. 아마 술기운 때문이었을 것이다. 시골 촌놈에다 내성적이고, 한 번도 여자와 눈도 마주치지 못한 내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운명, 아니 필연이었을 것이다. 방파제로 가는 동안 우린 마치 오래된 연인처럼 가까워져 있었다. 가위바위보 게임으로 업어주기도 하고, 손도 꼭 잡으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걸었다.


그렇게 방파제에 도착한 우리는 이런저런 자라온 얘기들을 여과 없이 꺼내기 시작했다. 밤바다를 홀로 밝히는 등대와 시원한 바닷바람이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켰다. 시간이 한참 흘렀던 것 같다. 짝꿍이 내 어깨에 기대어서 살포시 잠들어 있었다. 난 짝꿍이 깰까 봐 꼼짝도 하지 못했다. 잠시 후 짝꿍의 숨소리가 조용하게 들려왔다. 용기를 내서 고개를 짝꿍 쪽으로 살짝 돌렸다. 짝꿍의 자는 얼굴이 달빛에 비쳐 너무나 예뻐 보였다.


투명한 피부, 그 위에 난 솜털, 하얀 목덜미, 목을 자극하는 콧바람, 샴푸 냄새까지 나의 모든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시켰다. 결국 난 자제력을 잃고 짝꿍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훔치고 말았다. 눈을 뜬 짝꿍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숙소로 돌아가기 전 이렇게 말했다. "가지고 놀다 제발 제자리만 갖다 놓으라고." 이 말을 듣자 가슴이 답답했다. 절대 장난친 게 아닌데 억울하기까지 했다. 


여름방학이 시작되자 짝꿍을 만날 길이 없다보니 본격적인 가슴앓이가 시작되었다. 그당시 삐삐나 휴대폰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집전화번호도 모르니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난 용기를 내서 생애 처음 러브레터를 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몇 번이나 쓰고 찢기를 반복했고, 마침내 어설픈 러브레터가 완성되었다. 핵심 내용이 바로 이해인 수녀님의 <해바라기 연가>였다. 며칠밤을 뜬눈으로

보내면서 짝꿍의 답장을 기다렸다. 마침내 답장이 도착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편지봉투를 뜯었다. 자기도 나와 같은 감정이라면서, 그리고 보고 싶다는 말과 함께 집전화번호가 선명하게 손글씨로 쓰여 있었다. 남은 여름방학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짝꿍과 데이트를 즐겼다. 그렇게 짝꿍과의 19금 리얼 야생 버라이어티 첫사랑이 시작되었다. 내 생애 최고의 화양연화(花樣年華)였다.


영혼의 단짝, 소울 메이트(soul mate)


난 첫사랑이란 단어와 더불어 소울 메이트(soul mate)란 단어도 매우 좋아한다. 영혼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뜻이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소울 메이트(soul mate)라는 개념은 수천 년 동안 존재해왔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원래 인간은 네 개의 다리, 네 개의 팔, 그리고 얼굴이 둘 달린 머리를 가졌다고 한다. 그들은 앞뒤 구별 없이 잘 걸을 수 있었고, 힘과 기운이 아주 세서 자신을 지배하는 신들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한다.


신들은 무언가 조치가 필요했다. 제우스는 한 가지 묘안을 내놨다. 인간을 반으로 나눠버리자고. 그런 형벌을 내리면 인간의 힘은 약해지고, 자긍심이 꺾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인간은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줄 반쪽을 갈망하며 찾아다녔다고 한다. 이렇듯 소울 메이트를 찾아 다니는 행위는 온전한 자신을 만들어가는 여정이다.





내가 생각하는 순애보 같은 사랑은 어쩌면 시대에 역행하는 사고인지도 모른다. 신파, 판타지 소설, 아니 최루성 멜로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현실과의 괴리가 크기 때문이다. 이런 명확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왜 우린 이런 류의 촌스럽고 전형적인 순애보와 같은 사랑 이야기에 끌리는 걸까? 아마 순수하고 때 묻지 않은 진실된 사랑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고, 또한 영혼의 단짝을 만나고 싶어서일 것이다.


요즘 사랑은 한 여름의 로맨스처럼 너무 짧게 끝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별똥별처럼 잠깐 동안 영원성을 발하다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썸 타기와 어장관리', '연애 따로 결혼 따로', 심지어 '선섹후사"가 유행인 요즘 세대에게 나의 이런 순애보 같은 사랑 얘기는 어쩌면 바보 같은 생각이라고 놀림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요즘 세대는 우리 세대와 달리 자신의 개인적인 삶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삶의 속도도 빨라졌고 미래 또한 불확실성과 불투명성이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서로 맞지 않는 상대에게 억지로 맞춰가고 성장하는 것보다는 자신에게 맞는 이성을 만나길 기다리며, 연애로 감정 소모할 시간에 자기 계발이나 재테크에 힘쓰는 게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감정이란 것은 절제나 억제한다고 절대 감출 수 없다. 사랑이란 뇌로도, 심장으로, 오감으로도, 때론 기억과 추억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불시에 찾아올 수 있다. 사랑은 또한 역동적이다. 충동적으로 시작되어서 일상으로 스며든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는 것은 바로 가슴 저리는 연애에 대한 갈구, 그리고 영혼의 단짝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다만 진정한 사랑에는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게 바로 첫사랑에 대한 순애보를 지키는 것이고, 영혼의 단짝을 만나 결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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