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앞에 사과가 10개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이 사과를 먹는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10개의 사과 중 가장 탐스럽고 맛있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는 것이고요. 또 다른 한 가지는 가장 상처 나고 맛없어 보이는 사과부터 먹는 것입니다.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어 보이지만 첫 번째는 모든 사과를 맛있게 먹는 방법이고, 두 번째는 모든 사과를 맛없게 먹는 방법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과 한 상자를 구매했거나 선물을 받았을 때도 이런 고민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주부들의 입장에서 볼 때 상태가 안 좋은 것들부터 먹는 게 장기 보관에도 유리할 겁니다. 여러분은 어떤 유형인가요?
그런데 말입니다. 지인들과 반점에 갈 때 보통 메인 요리와 사이드 요리를 함께 시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흔히 짜장면 또는 짬뽕에 탕수육 한 개를 시켜서 나눠먹게 됩니다. 그런데 먹을 때 보면 탕수육을 먼저 집중적으로 공략하는 지인들을 흔히 목도하게 됩니다. 맛있는 짜장면 또는 짬뽕을 먹다가도 나도 모르게 탕수육에 손이 가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솔직하게 고백하면 저는 탕수육을 다 먹은 후 제 전유물인 짜장이나 짬뽕을 먹는 편입니다. 밉상이라고요. 인정합니다. (_ _)/
옷을 입다 보면 싸고 편한 옷은 자주 왠지 집에서 자주 입게 되는데 비싼 옷은 아껴 입으려다 자칫 유행에 뒤떨어져 제대로 입어보지도 못하고 버리게 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사실 저의 경험을 얘기하는 겁니다. 지금도 옷장 안에는 아껴 입으려고 한두 번만 입고 걸려있는 옷이 꽤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데도 왜 저는 이런 비합리적인 생활을 계속 반복하게 되는지 저도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전 사실 와인 애호가입니다. 와인 지식이 많은 건 아니고요. 그냥 마시는 걸 즐기는 애호가 유형입니다. 소주의 쓴맛을 좋아하기 때문에 와인도 보디감이 무겁고, 매우 헤비한 레드 와인을 좋아하는 편입니다. 와인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술이기도 하지만 와인만이 가진 특유의 향과 풍미, 적당한 도수와 부드러운 목 넘김, 그리고 은근하게 오르는 취기 때문에 와인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물론 와인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예전 직장 생활을 할 때 상사 한 분이 소믈리에 뺨칠 정도로 와인에 대한 지식과 애착이 강하셨는데 그분 때문에 저도 반강제로 와인 세계에 입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오묘한 술이 와인이더군요.
그 당시 와인 입문 만화인 <신의 물방울>이 종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어서 그런지 와인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매우 높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만화 속에는 닭살 돋는 수준을 넘어 허세가 가식으로 보일 정도의 미사여구로 각종 와인을 묘사하고 있어 와인 한 잔에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장면들이 세간의 이슈가 되기도 했습니다. 와인이 뭐길래 이런 만화까지 나오는가 싶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저도 어느새 와인의 세계에 심취하게 되었습니다. 과장하면 그렇게 마신 와인을 일렬종대로 운동장에 세우면 지구 한 바퀴를 돌아올 정도입니다. 럭셔리 차 한 대쯤은 샀겠죠. (농담입니다! ^^;)
와인은 예술, 문학과도 떼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희대의 천재 문학가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좋은 와인과 좋은 친구, 그리고 환대는 좋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또한 죽기 전에 "인생에 있어 나의 유일한 후회는 와인을 좀 더 많이 마시지 못한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죠. 아일랜드 출신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인 예이츠는 '음주가(A Drinking Sing)'라는 시에서 '와인은 입으로 오고 사랑은 눈으로 온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국의 독립선언서를 기초한 벤자민 프랭클린도 '와인은 신이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가 행복하길 원한다는 변치 않는 증거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쯤 되면 와인 한 잔쯤 해야 되겠습니다.
와인이 담긴 잔을 가볍게 흔든 다음 그대로 두면 와인이 마치 눈물처럼 아래로 흘러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와인의 눈물(Tears of wine)'이라고 부릅니다. 아마 와인이 가진 점성 때문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알코올 농도가 높거나 잔당이 많은 경우 점성이 높아 이런 현상이 잘 생긴다고 합니다. 와인의 세계는 정말 바다와 하늘만큼 넓고 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좋은 와인은 어쩌면 값비싼 브랜드 와인이 아니라 지금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마시는 값싼 와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저희 집에는 꽤 큰 빌트인 와인냉장고가 있습니다. 제가 와인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끔은 아주 가끔은 와인을 선물로 받기도 하고, 대부분은 제가 직접 구매를 해서 먹습니다. 와인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는 와인 대부분은 사실 가격대가 조금 나가는 와인들로 꽉 채워져 있습니다. 축하하거나 기념할 때 먹으려고 아껴둔 것이죠. 평소에는 그냥 만 원대 정도의 값싸고 가성비 좋은 테이블급 와인들을 마시는 편입니다. 그렇다 보니 와인냉장고의 보관된 와인들은 거의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자린고비의 마음처럼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뿌듯한 감정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의 발단이 생긴 게 얼마 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퇴직한 친한 상사들과 함께 밖에서 술을 한잔 먹다가 이차로 우리 집에 초대를 하게 된 것이죠. 서울에서 오셔서 그냥 보내드리기가 아쉬워서 그랬던 것 같습니다. 술 한잔 먹고 하이텐션이 된 상태에서 내심 평소 자랑하고 싶은 와인 냉장고를 개방하게 되었습니다. 가격도, 브랜드도 상관없이 꺼내서 먹기 시작한 거죠. 그렇게 두 세병을 무슨 맛인지도 모르게 마신 후 상사를 배웅하면서 가장 좋은 와인을 또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런 일이 한두 번 더 생기자 짝꿍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아니 우리는 평소 싼 와인만 먹는데 남들에게는 왜 좋은 와인만 주느냐"라고 말이죠.
가만히 듣다 보니 좋은 와인은 가장 사랑하는 짝꿍과 먹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질 못 했던 겁니다. "이제부터 나도 좋은 와인만 먹을 거다. 당장 와인냉장고에서 가장 좋은 와인을 꺼내오라"라는 짝꿍의 분노에 찬 명령에 몸이 즉각적으로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칫 짝꿍의 역린을 잘못 건드리면 현실 지옥(?)을 맛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너무 오래 보관한 탓인지 와인 스크루로 막상 따려고 하니 코르크 마개가 말라 부스러진 겁니다. 결국 부숴진 코르크를 억지로 병 속으로 밀어 넣은 후 거름망으로 거르고 디캔터(decanter)로 옮겨서 마시게 되었습니다. 아끼다 똥된 것이죠!!!
Image : Decanter StaffMay 2, 2018
우리 속담에 ‘죽 쒀서 개준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기껏 일을 도모했는데 엉뚱한 사람이 실리를 챙기는 현상을 말합니다. 애초의 목적에 어긋나게 된 것이죠. '아끼다 똥 된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물건을 너무 아끼기만 하다가 잃어버리거나 못 쓰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값싼 용어 탓인지 막 사용하긴 하지만 사실 이 속담에는 너무 큰 삶의 지혜들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손에 쥐여줘도 못 먹는 바보'가 되면 안 된다는 것이죠.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링 선생님이 "현재를 즐겨라. 제군들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야 해. 너희들을 삶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Carpe diem. Sieze the day boys. Make your lives extraordinary)"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행복의 가장 큰 조건이 현재를 즐기고,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 우리들의 삶의 특별한 경험들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죠.. 특히 오십 대에 아끼면 똥 된다는 말은 앞으로 남은 시간이 많지 않기에 더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혹시 20~30분들이 있다면 똑같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낄 때 아끼더라도 좋고 귀한 것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우선적으로 주어야 하고, 또한 비싼 옷들이 있다면 가급적 아끼지 말고 자주 사용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타인의 시선에 너무 얽매이지 말고 자신부터 챙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된 삶을 살면서 자신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면 그 삶을 지속하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 또한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끼면 똥 되니 기회가 될 때 자주 사용하세요"라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