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꺼풀무거운날 #인생 바닥 #상처 #아픔 #나의아저씨
억지로 산다. 날아가는 마음을 억지로 당겨와, 억지로 산다.
아내가 직장 상사, 아니 한때 자신의 대학 후배이자 아내의 대학 동기였던 도준영(김영)과의 불륜 사실을 알아버린 동훈(이선균)은 지하철 역사에서 절친인 겸덕스님(박해준)에게 "억지로 산다. 날아가는 마음을 억지로 당겨와. 억지로 산다"라는 문자 메세지를 보냅니다. "불쌍하다. 니 마음. 나 같으면 한번은 날려주겠네." 잠시 후 겸덕 스님에게 온 답장 내용은 한동안 제 뇌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제가 동훈의 입장이었다면 그렇게 담담한 톤의 문자 메세지를 절친에게 보내지는 않았을 겁니다.
흔히 직장 생활이 힘들어도 참고 감내하는 궁극적인 이유는 가족과 가정의 행복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을 지지하고 응원해도 모자랄 판에 사랑하는 아내마저 자신을 배신한 것을 알게 된 동훈의 퇴근 길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아마도 심연의 바닥이고 삶의 절망이고 현생 지옥과 같았을 겁니다. 천근만근의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리고 천근만근인 육신을 이끌며 아무 일 없이 태연한 척 일상생활을 하려고 애쓰는 그를 보면서 삶은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다 보면 뭘 해도 재미가 없고, 하고 싶은 일도 딱히 없어 무기력해지는 그런 날이 있습니다. 여태껏 열심히 살아왔다 생각하다가도 이뤄놓은 것도 딱히 없고, 지금 하고 있는 일들도 내가 원치 않는 삶이란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 바로 그런 날입니다. 항상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충실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왔는데도 갑자기 사춘기에 느낄 법한 질풍노도의 감정이 들기 시작하면 현생의 삶이 부질없고, 덧없고, 심지어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완벽주의와 모범답안처럼 사는 것은 어쩌면 너와 어울리지 않아", "이제는 약간 흐트러지고, 틈도 만들어야 해", "그냥 뻔뻔하게 살아도 돼. 그렇게 사는 거야"라는 뻔한 말조차도 전혀 위로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날은 겸덕 스님의 말처럼 "불쌍하다. 니 마음. 나 같으면 한번은 날려주겠네"라는 말이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만사 제쳐두고 최소한의 움직임과 에너지만 쓰면서 가장 편한 자세로 누워 아무 것도 안 하고 싶을 것 같습니다.
살다 보면 배움이든 일이든 삶이든 참고 견디며 억지로 해야 할 때가 생깁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늘 배워온 대로 의지력과 자기통제력을 십분 발휘해서 견디고 이겨내면 반드시 좋은 날이 올 것이라고 자신을 더욱 채근하며 담금질하곤 합니다. 시중에는 이런 사고를 정답이라고 부르며 종용하는 책들이 은근히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뭔가를 참으며 이겨내는 노력을 기울인다는 것이 과연 삶에 도움이 되는 걸까요?
실존주의 철학자 알베르 카뮈는 '행복이 무엇인지 계속 묻고 다닌다면 결코 행복할 수 없으며, 인생의 의미를 찾아 헤맨다면 결코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철학자 앨런 와즈 또한 '더 긍정적인 경험을 하려는 욕망 자체가 부정적인 경험인 반면 부정적인 경험을 받아들이는 것이 곧 긍정적인 경험이다'라는 어려운 말을 남겼죠. 기분을 끌어올리려고 하면 점점 더 불행해지는 이유는 뭔가를 바라는 행위는 무엇보다 그것을 갖지 못했음을 강조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경향을 '역효과의 법칙(Backfire effect)'이라고 부릅니다.
신념과 새로운 정보에 관한 심리적인 효과인 '역효과의 법칙'은 우리가 믿는 것에 모순되는 정보와 사실이 있더라고 우리의 신념은 바뀌지 않고 원래 믿고 있는 것을 강화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제시된 증거나 사실(fact)은 거부되거나 무시되는 경우가 많죠. 예를 들어, 부자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수록 실제로 돈을 얼마나 버는지와 무관하게 자신을 더 가난하고 하찮은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는 것도. 그리고 더 행복하고 사랑받기를 열망할수록 주변에 누가 있는지와 무관하게 더 외롭고 근심이 많아지는 것도 '역효과의 법칙' 때문인 것이죠.
'역효과의 법칙'에 따르면 부정적인 과정의 추구는 긍정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합니다. 체육관에서 운동을 하면서 고통을 참아내고 이겨내면 그 결과로서 건강과 활력을 얻는 것이죠. 그리고 사업의 실패를 성공의 어머니로 여기는 것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솔직하게 말해 상대방의 신뢰를 얻는 것도 이러한 효과라고 말합니다. 가치있는 것을 뭔가를 얻으려면 그에 수반되는 부정적인 경험을 추구해서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죠. 결국 성공과 행복은 문제를 맞닥뜨리고 해결함으로써 얻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역효과의 법칙은 나도 잘 알겠어! 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야. 만약 그랬다면 모두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라고 말씀 하실 수도 있을 겁니다. 아는 것과 실행하고 성취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죠. 살다 보면 그냥 버티고 견뎌내는 것조차 힘든 때가 있기 마련입니다. 쳇바퀴 돌듯 반복되고 숨막히는 일상의 지겨움 속에서 변화의 스위치를 켤 수 있는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아 보입니다.
사회 생활을 할 때 시련과 어려움을 맞닥뜨리더라도 묵묵하게 끝까지 참고 버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존버 정신'이 한때 유행하던 적이 있습니다. '존나 버틴다'라는 뜻의 '존버'는 원래 주식이나 가상화폐 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주식 떡락장에서 위안과 기다림 또는 버팀을 표현할 때 쓰던 용어입니다. 자신이 대면하는 시련과 역경을 극복할 별다른 뽀족한 수가 없으면 '존버'만이 정답이고 유일한 대안이라는 뜻일 겁니다.
<알쓸신잡> 김영하 작가는 "시련을 이겨내고 강해지는 사람은 드뭅니다.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을 녹슬게 만든다"라고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으면서 저는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여태껏 시련과 역경은 견디고 극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기 때문이죠. 하지만 주변을 살펴보면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고 극복하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오히려 시련과 역경으로 심신이 피폐해지고 황폐화된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시련과 역경이 왔을 때 무조건 참고 견디게 되면 쉽게 지치고 우울해져 마음의 탈진과 번아웃 증세가 찾아옵니다. 심지어 돌이킬 수 없는 상처와 고통을 남길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련과 역경이 왔을 때 견디고 버티며 극복하라고 말씀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냥 잠시 근심과 걱정을 허공 속에 날려버리고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쉬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고민하고 애쓰기보다 그냥 쉬는 게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열심히 살아가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조금이라도 쉬거나 여유를 가지면 더 노력하지 않는 자신에게 죄책감을 느끼기도 하며, 경쟁 세상에서 도태된 루저가 되어가는 듯한 생각도 듭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해야만 뭔가를 이룰 수 있고, 또 그런 삶이 정말 값진 삶일까요? 살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필사적으로 노력하지 않아도 충분히 값진 인생을 사는 사람들이 주변에 꽤 많기 때문입니다.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건 노력의 투입 여부나 성취 결과와 관계없이 자신이 충분히 가치있고,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믿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타인과 끝없이 비교하고, 타인의 시선과 기준에 맞춰 자신을 평가하고 채찍질하는 삶을 계속 살아간다면 그건 엄청 피곤한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 노력하지 않아도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어야만 삶의 진정한 즐거움과 여유를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가치가 있다고 느끼는 사람은 억지로 뭔가를 성취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가지는 사람입니다. 그는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하지도 또 참지도 않습니다. 흐르는 물처럼 순리대로 일을 대하고 처리합니다. 위적이고 작위적인 모든 노력은 쉽게 감정을 소모시켜 지치게 만들기 때문이죠. 자신을 가치있게 대하는 것처럼 타인의 가치를 인정하며 관대하게 대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이기 위한 노력에 치중하기보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보상이 따라오기도 합니다. 인
스스로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또한 타인의 충고도 잘 수용하며, 타인의 도움도 적절하게 요청함으로써 인간관계도 저절로 좋아집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타인의 힘을 빌려 현명하게 활용하기도 합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한층 깊어지고 성숙해집니다. 지금까지 노력과 성취라는 생각의 흐름을 버린다면 스스로 채근하거나 타인과의 경쟁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삶의 여유가 생겨 더 생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동훈 : 망했어.... 이번 생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모르겠다. 그냥.... 나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겸덕 :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이뤄놓은 것 하나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아니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아들)에게 말해봐라. 널 위해서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아니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동훈 : 다들 그렇게들 살아.
겸덕 : 그럼 지석이(아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그래. 그 소리에는 눈에 불나지? 지석이에게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하냐? 너부터 제발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저의 인생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는 동훈의 '이생망 넋두리'에 겸덕 스님이 그런 이상한 논리로 자기를 합리화하지 말고 먼저 자신부터 챙기고 행복하라는 진심어린 충고를 하는 명장면이 나옵니다. 대사 한 마디 한 마디가 뼈를 때렸죠. 가장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자신을 희생하고 있으며, 그래서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럴 때 자기 하나만 희생하면 모든 문제는 해결될 것이란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삶의 선택과 결과는 항상 새드 엔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끝이 아무리 해피 엔딩으로 끝나도 과정이 불행하다면 삶의 여정은 그리 만족스럽지 않은 것이죠. 겸덕 스님의 말처럼 인생은 자신부터 행복해야 여유도 생기고, 타인의 행복도 챙길 수 있는 여유도 생기는 것이죠.
삶의 여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의 가치를 깨닫고 자신을 소중하게 대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것이 어쩌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쉬우면서도 지혜롭게 삶을 살아가는 가장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 제 자신을 보다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삶의 여정에 이기적 행복의 기쁨을 덧입히고 있습니다. 최근 완수했던 오.나.대 챌린지도 그런 차원이었죠. 여러분도 저처럼 다소 이기적인 행복을 느껴보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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