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을 남김없이 담을 수 있는아름다운 꽃 길이 됩니다.- 신영복, 《처음처럼》, '속도는 가속으로 가속은 질주로 이어집니다' -
출처 : Pixabay
숨이 멎을 정도로 풍광이 아름다운 알프스 산의 구불구불한 도로를 차로 달리다 보면 산 중턱에 이런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고 합니다.
'Slow Now'
이 표지판을 본 운전자들은 그제야 속도를 늦추고, 고개를 좌우로 살피며 이전보다 느긋하게 알프스가 선물로 주는 천혜의 비경을 감상한다고 합니다. 속도만 줄여도 이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다시 눈앞에 펼쳐지는 것이죠. 저는 이것을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눈'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의 눈은 속도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삶의 속도를 늦추면 스스로 나태하다고, 경쟁에서 뒤처질까 초조함을 느끼곤 합니다. 속도가 경쟁의 척도였기 때문입니다. 빠르게 갈수록 속도가 주는 쾌감을 즐기고 자신도 모르게 중독된 것이죠.
하지만 속도를 늦추면 마음의 눈의 동공이 커지고, 시야가 넓어집니다. 이전에 안 보이던 많은 것들이 시야에 들어오고, 또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잠시 나무 그늘에 앉아 속도를 멈추면 모든 풍경이 정지하고, 마음의 눈은 보이지 않는 그 너머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자우룩이 돋은 들꽃, 청아한 새소리, 살갗에 닿는 바람, 파아란 하늘은 천국을 보여줍니다. 마음의 눈은 바쁘게 사느라 나의 뒤를 힘겹게 쫓아오는 나의 지친 영혼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멈추고 달려온 방향을 보면서 잠시 영혼이 뒤쫓아 오는 것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바쁘게 달리면서 미처 따라오지 못한 지친 영혼에 대한 기다림의 배려인 것이죠. 우리는 바쁘게 삶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삶은 바쁘게 가는 나의 뒤를 힘겹게 쫓아오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빨리 달릴수록 삶과 나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죠. 바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바쁜 상황 속에서는 현명한 선택과 판단을 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서 있는 말에는 채찍질을 하지 않습니다. 달리는 말에만 채찍질을 합니다.
길 가다 잠시 멈춰서 찍은 들꽃
제가 좋아하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는 시험, 연애, 취직 등 매일 반복되는 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 혜원(김태리)이 고향 집인 군위 미성리에 돌아와 자연에서 직접 키운 재료로 요리해 먹으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영화입니다. 임용고사에서 떨어진 후 미성리에 돌아온 혜원은 아무에게도 돌아온 사실을 알리지 않았죠. 하지만 오랜 고향 친구 은숙(진기주)은 어떻게 알았는지 혜원의 집으로 찾아 귀향 이유를 묻습니다. 혜원은 이렇게 대답하죠.
"나 배고파서 내려왔어. 진짜 배고파서."
배고파서 내려왔다는 혜원의 말은 진심이었습니다. 서울에서의 혜원의 삶은 속도를 쫓느라 언제나 바빴고, 허기를 때우기 위한 인스턴트 음식으로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것이죠. 이후 오랜 친구 재하(류준열), 그리고 은숙과 함께 그녀의 시골 생활이 시작됩니다. 솔직하게 시골 생활의 낭만 따윈 없었죠. 그곳에서 혜원이 할 수 있는 거라곤 쏟아지는 뙤약볕 아래서 땀을 흘리고, 고된 노동의 시간을 갈아 넣으며 작물이 자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뿐이었죠.
사나흘 즈음 있다가 서울로 돌아갈 것이라던 혜원은 직접 키운 농작물로 직접 요리를 해먹으며 1년 이상을 마을에 머무릅니다. 이 영화의 백미는 느긋한 시골생활의 소소한 요리의 즐거움을 주인공과 함께 느끼며 체감하는 것이죠. 특히 예전 엄마가 자신을 위해 정성스럽게 해주던 제철 음식을 머릿속에 떠올려 스스로 감각을 익혀가며 만드는 요리 과정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미각을 자극하고, 허기를 느끼게 합니다. 수제비, 식혜, 장떡과 막걸리, 배추전, 오이 콩국수, 시루떡, 떡볶이 등 친숙하고 토속적인 음식들의 향연은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합니다.
예능 프로 <1박 2일>의 한 장면
한 해가 끝나 다시 겨울이 돌아올 때쯤 혜원은 지친 도시 생활로 잃었던 생기를 되찾았고, 무척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시골에서의 느린 자급자족의 삶이 도시에서의 바쁨의 중독에 걸린 그녀를 치유한 것이죠. 그리고 그녀는 깨닫습니다. 그동안 엄마에게는 자연과 요리, 나에 대한 사랑이 그녀만의 작은 숲, 즉 리틀 포레스트였다는 것을. 이 영화는 사건의 기승전결이나 반전, 스펙터클한 영상미가 없어도 자연에서의 소박한 일상과 요리의 즐거움만으로도 충분히 우리들의 바쁘고 지친 일상을 위로해 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 영화였습니다. 이 영화는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잠시 쉬어가도, 조금 달라도, 서툴러도 괜찮아"라고.
영화 <리틀 포레스트> 스틸 컷
중요한 것은 출발점이나 목적지가 아니라 그 사이의 여정이다. - 데이비드 발다치 -
우리는 바쁘게 살지 않거나 일이 없으면 불안을 느끼고, 왠지 남에게 뒤처지는 것 같아 걱정을 합니다. 하루 종일 정신없이 바쁘게 일을 하다 늦게 퇴근하는 날은 뭔가 충실한 하루를 보냈다고 스스로 위안을 합니다. 하지만 삶의 고단함과 내면의 공허함에 심한 몸살을 앓습니다.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은 속도가 빠른 탑승 수단을 선택해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기만을 학수고대합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하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죠. 하지만 삶의 여정은 결코 되돌아올 수 없는 편도 티켓 여행입니다.
속도를 좇는 삶은 여정을 순간으로 압축시켜 빠르게 지나가게 합니다. 속도가 빠를수록 바쁘다는 핑계로 삶의 소중한 영역들을 살피지 못하고 간과하게 되는 것이죠. 속도가 빠른 만큼 써야 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되고, 소진도 빨라져 결국 번아웃에 이르게 됩니다. 만약 계절의 변화를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면, 아이의 사소한 성장을 눈치채지 못한다면 그건 삶의 템포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늦었지만 그때라도 속도를 늦추고, 멈춰야 할 시점인 것이죠.
그런데 우리는 멈출 줄을 모릅니다. 은퇴 후 먹고 살 만큼의 연금소득이 나오는데도 집에만 있으며 왠지 눈치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뭔가 당장 새로운 일을 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되는 것처럼 마음이 조급해지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직장에서 노예로 살다 보니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쉬는 것도 용납이 안 되는 것이죠.
제가 아는 은퇴자 한 분은 자녀가 모두 출가해 가족을 이루고 있고, 재산이 어느 정도 있는데도 "놀면 뭐 하냐? 일을 해야 건강도 유지하지."라며 매일 최저임금이 나오는 아파트 경비 일자리를 구해서 출근을 하십니다. 팔순이 얼마 안 남았는데도 말이죠. 아마 몸이 아파서 병상에 누워야만 현재의 삶을 멈출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평생 꿀을 모으다 죽는 꿀벌처럼 평생 일만 하다가 죽는 것이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주변에 꽤 있는 것이죠.
공원 산책길에서 본 꽃과 세 마리의 반려견들
한 번쯤은 왜 바쁘게 사는지를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쁜 삶이 그냥 삶의 디폴트 값이 되었는지, 바쁘게 사는 것이 습관화되었는지, 그리고 바쁜 삶이 정답지라고 생각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 속에는 느림, 여유, 쉼, 낭만, 멋, 성찰, 행복 등과 같은 삶의 미학이 들어갈 틈이 전혀 없습니다. 바쁠수록 쉬어가는 망중한(忙中閑)의 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평생 동안 실체도 모르는 행복을 찾느라 힘겹게 이곳저곳을 기웃거립니다. 하지만 행복을 막상 발견해도 그것이 행복인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을 늘 가지려고 애쓰며 삽니다. 나이 든 부자는 젊음의 청춘을 부러워하지만 가난한 청춘은 나이 든 부자의 경제적 여유를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결혼한 사람은 미혼의 자유분방한 삶을 부러워하지만 미혼은 결혼한 사람의 안정된 삶을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아이는 뭐든 다 할 수 있는 성인을 부러워하지만 성인은 책임 없는 아이의 삶을 부러워할지 모릅니다.
이렇듯 우리는 가진 것보다는 갖지 못한 것을 부러워하고, 또 갖길 원합니다. 우리가 발견하지 못한 것은 행복이 아니라 어쩌면 행복을 발견하는 마음의 눈일지도 모릅니다. 알고 보면 성공은 실패의 옆방에 있고, 행복은 불행과 한 지붕 밑에 살고 있던 것이죠. 감사하는 마음의 눈으로 찾을 때 행복은 비로소 눈앞에 그 실체를 드러냅니다. "나 여기 있소!"하고 말이죠.
행복은 손을 잡고 산책하는 부부의 다정한 걸음 위에, 고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하는 샤워기 아래에, 보고 싶은 친구와 만나 마시는 차가운 맥주의 거품 속에, 아빠와 함께 놀며 까르르 웃는 아이의 눈웃음 밑에, 비 오는 날 지글지글 파전을 굽는 아내의 부침개 접시 위에, 햇볕이 따사로운 날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벤치에서 읽는 책갈피 사이에, 오늘은 뭐 먹었냐며 묻는 수화기 너머 엄마의 걱정하는 목소리 안에 살포시 내려앉아 있는지 모릅니다. "단지 나를 봐 달라며" 수줍게 말을 건네는 지도 모르죠.
'봄꽃도 한때', '화무십일홍 권불십년(花無十日紅 權不十年)'이란 속담이 있습니다. 계절이 도래하면 서로 다투어 화려한 꽃을 피우지만 금세 꽃잎은 떨어지고 시들어 사라집니다. 꽃의 아름다움도 인생의 화양연화(花樣年華)도 지나보면 매우 짧다는 뜻이죠. 무상(無常), 즉 속절없이 빠르게 변하는 삶의 여정을 온전하게 느끼고 즐기려면 정상에 먼저 오르려고 심(心)쓰기보다는 속도를 줄이거나 멈춰 서서 주변을 둘러볼 마음의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등산의 진정한 목적은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니라 등산의 과정에 있다는 생각을 요즘 자주 합니다. 정상이란 게 오르면 잠시 올랐다는 성취감을 느끼지만 등산의 과정을 즐기면 나무와 꽃이 뿜는 향기도,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도, 이름 모를 꽃과 산야초가 주는 아름다움도, 바람의 숨결도 온전히 느끼며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삶의 속도를 줄이고 잠시 멈춰 서서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면 좋겠습니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려면 그대 손바닥 안에 무한을 쥐고 순간 속에서 영원을 잡으라. -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 <순결의 전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