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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r 10. 2023

인생은 아바타(Avatar)로 살아가는 것이다!

#임사체험 #근사체험 #사후세계 #죽음의 올바른 이해 #죽음은 영적 활동

한 날 유튜브 동영상 추천 알고리즘에 이끌려 동영상 한 편을 보게 되었습니다. 제가 평소 보는 동영상 종류가 어땠길래 이런 영상이 추천되었는지 처음엔 다소 의아했지만 '수많은 죽음을 연구하며 알게 된 사실'이란 제목이 호기심을 자극했는지 무심결에 클릭을 해서 보게 되었죠. 화면에 나온 분은 서울대 정현채 명예교수였습니다. 모교에서 의과대학을 졸업 후 30년간 내과 교수로 근무를 하다 암 진단 및 수술을 받아 2년 일찍 퇴직을 하셨고, 15년 전부터 죽음에 대한 강의를 하셨다고 합니다. 내용이 너무 인상적이라 잠시 요약해 드리겠습니다.


라이홀트 메스너라는 세계적인 등반가는 에베레스트 무산소 등반을 하다 추락한 사람들 중 생존한 사람들이 무슨 일을 경험했는지 조사해 《죽음의 지대》라는 책을 출간했다고 합니다. 책의 내용을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이 죽음을 맞는 익사자와 달리 산 정상에 올랐다 추락한 사람의 경우 추락 도중 마음을 완전히 비우고 떨어지는 순간 자신의 육체에서 분리되어 눈 덮인 설원으로 떨어진 자신을 바라본다는 겁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유체 이탈이란 걸 할 때 자신이 살아온 수십 년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는 것이죠.


라이홀트 메스너가 두 아들이 등반 사고로 죽음을 맞아 슬픔에 잠긴 어머니를 만났을 때였죠. 아들 둘이 높은 데서 떨어져 죽었으니깐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라고 울부짖는 어머니의 말에 라이홀트는 육체가 땅에 추락하기 전에 유체이탈이 되기 때문에 고통을 겪지 않는다고 말해 주었더니 그제서야 어머니는 울음을 그치고 안심을 했다는 에피소드가 책에 담겨 있습니다.


심장이 멎으면 바로 사망 판정을 하는 게 아니라 20~30분간 심폐 소생술을 합니다. 물론 다 살아나는 것은 아니지만 3차 진료기관인 대학 병원에서 심장이 멎은 경우보다 익사 사고나 교통사고 등 일상생활을 하다 갑자기 숨이 멎은 경우에 훨씬 살아날 가능성이 훨씬 높은데 그 확률이 10~25% 정도라고 합니다. 죽다 살아난 사람들 대부분은 '근사체험(近死體驗, Near Death Experience)'이란 것을 하게 되는 데 대표적인 것이 '어떤 빛을 본다', '죽은 가족을 만난다', '자신의 삶을 돌아본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본다', '아름다운 천사를 본다'라고 합니다.


** 근사체험은 임사체험(臨死體驗), 가사체험(假死體驗)이라고도 하며, ‘일시적인 죽음의 체험’ 또는 ‘사실상의 죽음의 체험’이라고도 부름


이 중에서 흥미로운 근사체험은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것, 즉 자신이 살아온 수십 년간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면서 그것을 본다고 합니다. 수십 년간 늘 착한 일만 하고 사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기가 가해자로 남에게 피해를 줬을 경우 그 피해자 입장에서 그 사건을 본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 어렸을 때 부모님 지갑에서 돈을 훔쳤을 때 나중에 아버지가 알고 느꼈을 그런 참담한 심정을 부모의 입장에서 본다는 겁니다.


출처 : 더사이언스플러스, Pixabay


미국에서는 근사체험에 관한 연구가 1960년대부터 시작되어 왔는데 안타까운 것은 아직 한국은 이와 관련해 연구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근사체험을 연구하고, 그와 관련된 지식을 사람들이 알게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만약 이러한 근사체험에 관한 내용을 잘 모른다면 죽음을 경험하는 많은 사람들이 굉장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며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죠. 정교수님 지인의 부친이 말기 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는데 이 분은 육이오 학도병으로 참전한 분이셨습니다.


마지막 임종 때 육이오 때 전사한 자기 동료가 침대 옆에 와 있다며 굉장히 두려워하셨다고 하는데 만약 가족들이 이런 근사체험에 대한 내용을 미리 알았다면 그 친구분이 마중을 나오신 거니 두려워 말고 안심하라고 위안을 줬을 텐데 실상은 '아버지 정신 차리세요'라고 오히려 부친을 야단쳤던 것이죠. 이렇듯 임종하는 분들이 근사 체험을 할 때 정신 차리라고 하는 대신 격려와 위로를 준다면 훨씬 더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죽음과 관련한 근사체험은 매우 영적인 활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의과대학이나 간호대학에도 이런 내용을 전혀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임종을 맞는 분들을 제대로 안심시켜 드릴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장 안타깝습니다.


의학계에는 높은 '인용 지수(impact factor, 전 세계 학자들에게 얼마나 많이 인용되었는지 지수화함)'를 보이는 <란셋(Lancet)>이란 매우 권위 있는 학술지가 있습니다. 이 학술지에 논문이 게재되는 것만으로도 개인에게는 엄청난 영광인 것이죠. 그런데 2001년도에 근사체험에 관한 논문이 공식적으로 게재되어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마디로 근사 체험은 의학계에서도 공신력을 갖게 되었다는 걸 의미합니다.


네덜란드 정신과 의사인 핌 반 롬멜(Pim van Lommel) 박사는 근사체험의 공통적 특징을 10개 항목으로 정리하여 세계 3대 의학 학술지의 하나인 <란셋(The Lancet)>에 발표하였습니다. 1988년부터 1992년까지 10개 병원에서 심장과 호흡이 정지하고 동공반사가 없어 의사로부터 사망 판정을 받은 직후 심폐소생술로 다시 살아난 환자 344명을 대상으로 연구한 것이죠. 중요 내용은 죽었다는 사실 지각(50%), 긍정적인 감정(56%), 유체이탈(24%), 터널 통과(31%), 밝은 빛과의 교신(23%), 황홀하고 아름다운 색깔 관찰(23%), 천상의 풍경 관찰(29%), 죽은 사람과의 만남(32%), 자신의 생을 회고(13%),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함(8%) 등이었습니다. 물론 여전히 이런 내용에 비판적인 권위자들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


사후세계란 것이 여태껏 사람들이 전혀 모르던 분야이고, 또한 베일에 싸여왔기 때문에 두렵고 불안한 겁니다. 죽음 뒤에 무섭고 커다란 공룡이 입을 크게 벌리며 삼킬 것 같아서 두려운 것인데 막상 마음을 굳게 먹고 한 번만 직시하면 공룡은 온데간데없고 조그만 강아지 한 마리가 깨깽하고 꼬리를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변하다는 것이죠. 결국 두려움과 직면할 때는 회피하지 말고 직시를 해야 오히려 그 두려움을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만약 죽음이란 것이 생물학적으로 무기력한 사멸이 아니라 죽음을 넘어선 또 다른 차원으로의 영적인 존재의 이동임을 인식한다면 죽음은 더 이상 두려움의 벽이 아니라 새로운 영적인 존재의 관문이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죽음에 대해 두려움과 불안을 느끼지 않게 될 것이고, 오히려 죽음을 통해 심리적 안정을 찾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나아가 부모, 배우자, 자식 등 가까운 가족들의 죽음에도 아픔과 상처, 죄의식 등 부정적인 감정을 조금이라고 내려놓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사실을 접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황당하게 느끼고, 또 의구심을 갖게 될 겁니다. 하지만 이럴 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호의적인 회의론자가 되는 것이죠. 호의적인 것은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아무것이나 덥석 다 받아들이지 않고 끊임없이 확인하고 검증을 해가면서 그런 자세를 갖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부터 죽음에 대해서는 호의적 회의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동영상 내용 발췌)


출처 : Pixabay


'세금과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미국 100달러 지폐의 주인공인 벤저민 프랭클린이 한 말입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삶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다는 말이죠. 세계보건기구는 죽음 '소생할 수 없는 삶의 영원한 종말'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의학적으로 죽음은 '심정지설'과 '뇌사설'의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심정지설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장기 중 하나인 심장의 활동이 정지되는 것이고, 뇌사설은 뇌간을 포함한 전뇌의 기능이 불가역적으로 소실된 상태, 즉 뇌 전체의 기능이 완전히 상실된 경우를 말합니다.


사망의 시기에 관해서는 전통적으로 심정지설이 지배적이나 최근 생명을 연장하는 의학 기술의 발달로 호흡과 심장박동이 지속 가능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죽음은 뇌사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뇌사 상태가 되면 기계의 도움이 없이 자발적인 호흡과 심장 박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식물인간은 대뇌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모든 인지 기능이 소실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 상태에서는 의식도 없고, 외부 환경과 자극에 대해 반응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식물인간은 임신도 가능하지만 원칙적으로 사망 상태가 아니라 장기기증을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저도 20대 초반에 근사체험을 한 경험이 있습니다. 밤길 왕복 이차선 도로에서 선배가 무리하게 화물 트럭을 추월하려고 속도를 내다가 빠앙 경적 소리를 내며 과속으로 달려오는 맞은편 화물차와 세게 충돌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중앙선 침범 충돌 사고가 그렇듯 선배는 무의식적으로 핸들을 좌측으로 꺾었고, 차가 좌측으로 빙그르르 돌면서 조수석에 앉아있던 제 쪽으로 화물차가 충돌을 한 것이죠. 충돌한 순간 저는 너무 놀라 눈을 힘껏 감았고, 순간적으로 '아, 이렇게 나도 죽는구나!'란 생각을 했습니다.


충돌한 순간 심장의 호흡이 멈췄고, 순식간에 내 머릿속에는 어릴 때부터 살아온 나의 전 생애가 파노라마 필름처럼 생생하게 지나갔습니다. '혹시 내가 죽은 건가?'라는 생각이 들 때쯤 멀리서 고함소리와 들려왔죠. 갑자기 호흡이 터졌고, 눈이 떠졌습니다. 살아난 것이죠.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남은 온 힘을 다해 조수석 문을 열었고, 가까스로 나와서 차를 보니 우측 부분이 거의 반파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날 이후 저는 나머지 인생은 덤이라고 생각하며, 죽음이란 단어를 항상 염두에 두고 삶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사건 후 저는 삶이 언제든지 끝날 수 있다는 생각에 죽음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읽기 시작했죠. 죽음과 관련된 많은 책들을 읽으면서 저는 웰다잉(well-dying)! 어떻게 하면 잘 죽을 것인가에 대한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게 잘 죽는다는 것은 곧 후회 없는 삶을 살다가 가는 것이란 생각이 들었죠. 그때부터 저는 'well-being for well-dying', 즉 좋은 죽음을 위한 좋은 삶의 여정을 가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죽음이 불시에 찾아왔을 때 언제든 눈을 감으며 '내 인생 후회 없었노라'라고 조용히 되뇌며 행복하게 죽고 싶은 게 제가 생각하는 웰다잉입니다.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 스틸 컷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어른들은 집에서 일상생활을 하다가 잠결에 조용히 죽음을 맞고 싶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가족들이 곁에서 임종을 지켜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른들은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힘들게 하고 싶지 않은 것이죠. 저도 이 말을 들으며 무척 공감을 했습니다. 하지만 부모들이 돌아가실 때 곁에서 임종을 봐야만 좋은 죽음이라는 세간의 인식이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금이라도 건강할 때 낯선 문화지만 생전 장례식을 열어서 미리 지인들과 "그간 고마웠고, 덕분에 행복했다"라는 인사말을 나누고, 행복한 시간을 가지는 게 오히려 낫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해왔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가장 원하지 않는 죽음은 집이 아니라 시설, 즉 요양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쓸쓸하고 존엄하지 못하게 맞는 죽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십 년 전에는 집에서 임종을 하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병원에서 임종을 맞는 비율이 20%도 채 되지 않았죠. 하지만 요즘은 사망환자의 15%, 암 환자의 8%만이 집에서 임종을 맞는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대다수가 병원이나 요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는 뜻이죠. 물론 시대가 바뀌어 맞벌이 가정이 많아지면서 집에서 노인을 돌볼 사람도 없고, 예전에 노화라고 치부하던 증세도 요즘은 알츠하이머, 파킨슨, 섬망 등 치매성 질병으로 분류해 입원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장소가 집에서 병원으로 바뀐 것이죠.


얼마 전 제가 요양원에 가서 사회봉사를 할 기회가 몇 차례 있었습니다. 제가 요양원에서 본 노인들의 삶은 그야말로 죽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비참한 삶이었죠. 특히 연하곤란(먹는 것을 삼키기 어려운)이 있는 일부 노인들의 경우 비위관으로 튜브를 삽입해 유동식을 소화기에 직접 주입하는 경관영양식 콧줄을 사용합니다. 그런데 이 콧줄을 한번 사용하면 그 이후의 삶은 침대에서 누워 식물인간처럼 아무것도 못 하고 생명만 연장하다 죽음을 맞는다는 것이죠. 대소변, 목욕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돌봄이 필요한 노인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돌봄 인력(요양보호사)들입니다. 대부분의 치매환자들이 밤에 잠을 자지 않고 돌아다니는 석양증후군 등을 앓고 있는데 잘못 돌아다니다가 다치거나 낙상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저녁을 먹고 나면 돌아다니지 못하도록 부득불 수면제를 비롯한 여러 가지 약물을 먹인다는 것입니다. 증세가 심할수록 복용량이 늘어나 심지어 다음날 오후까지 잠에 취해 있는 노인들도 간혹 있었습니다.


각종 재활치료가 체계적으로 운영되는 주야간 보호센터와 달리 요양원의 경우 좁은 공간에서 식사, 대소변, 실내 보행기 이동 등이 그들의 활동 반경의 전부였습니다. 물론 간혹 물리치료도 있지만 그 외 프로그램은 코로나 확신 이후 거의 운영되고 있지 않고 있었죠. 물론 앞으로 누구나 나이가 들어 돌볼 가족이 없다면 요양원에 갈 수 있습니다. 아니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요양원에 가야만 할 겁니다. 하지만 요양원에 근무하시는 돌봄 인력들에게 앞으로 늙으면 요양원에 들어올 거냐는 질문을 하니 전부 손을 저으며 질색을 하더군요.


식사, 칫솔질, 목욕, 대소변 기저귀, 외출 제한 등 요양원에 입소하는 순간 인간의 존엄은 온데간데없고, 성인으로서 아무런 선택과 결정을 못 하게 되며, 좁은 공간에서 감옥과 같은 삶을 살면서 자식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죽음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비루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물론 돌봄 인력들 대부분이 신의 성실하게 근무를 합니다. 하지만 누구나 돌봄 업무를 오래 하고, 안전이 최우선인 시설 환경에서 노인들을 돌보게 되면 존엄성 있게 계속 그분들을 모신다는 것은 쉽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더군요.


저는 나이가 들면 존엄한 환경에서 살아가고, 존엄하게 죽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의학 기술의 발달과 건강에 대한 관심의 증가로 우리들은 평균 기대여명이 100세 이상을 넘어가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질병 없이 살아가는 건강수명 이후의 삶이 100세까지 이어진다면 그것은 어떤 재앙보다 두렵고 무서운 것이죠. 특히 앞으로 집에서 돌볼 사람이 없고, 요양원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화된다면 앞에서 말한 노후의 존엄한 삶은 누리기 힘들 것입니다. 초고령화 시대에 접어든 지금 무엇보다 복지국가란 말이 무색하지 않도록 국가 차원에서 보다 현실적이고 실질적인 요양 대책을 수립해 시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Pixabay


저는 앞으로 누구나 근사체험에 대한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죽음이란 막연한 두려운 존재를 정면으로 대면하고, 죽음이란 실체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죽음에 대해서 더 이상 두려움과 불안감을 갖지 않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기 때문이죠. 죽음을 연습하는 또 다른 장점은 바로 자신의 삶의 여정을 되돌아보고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교훈을 얻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지혜와 지식을 배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절실하게 깨닫는 것이죠. 불필요한 삶의 요소들을 걸러내면 순수한 삶의 여정만 남게 됩니다.


그리고 노인들의 삶을 올바르게 이해하고 제대로 돌보기 위해서는 누구나 의무적으로 요양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모시는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모시기를 꺼려 하고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요? 만약 나이 드신 부모들의 삶을 올바로 이해하고, 제대로 모시는 방법을 알고 모신다면 그렇게 힘든 일은 아니란 생각이 듭니다. 요양원에 보내는 것보다는 가급적 주간 보호센터에 맡겨서 저녁만이라도 부모님들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이 낳아주시고 길러주신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예전 속담에 효자 효녀 집안에서 효자 효녀가 난다는 말을 상기하면 좋겠습니다.


미국의 심리학자 케네스 링(Kenneth Ring)은 30년 이상 대학에서 근사체험에 대한 강의를 하면서 실제로 근사체험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강의를 듣는 것만으로도 학생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변화했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라는 뜻을 가진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란 말이 있습니다. 개선 행진을 벌이던 고대 로마 장군 뒤에서 노예가 외치던 말이죠. 인생의 가장 화려한 순간에도 항상 죽음이란 인간의 유한성을 기억하며 겸손해지라는 뜻입니다.


만약 죽음이 나이 든 쓸모없는 육신으로부터 벗어나 다음 세상으로 옮겨가는 것이라면, 그리고 꿈 없는 잠이라면 죽음은 어쩌면 병들어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노인들에게는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여태껏 우리들은 죽음에 대해 말하길 꺼려 하고 도외시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이제부터라도 죽음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남은 삶을 보다 충실하게 살아가려는 태도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니체는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란 책에서 영원회귀 사상을 언급하면서 인간의 삶이 무한히 반복되는 덧없는 삶이라도 허무주의에 빠지지 말고 현재라는 선물에 충실함으로써 주어진 어떤 운명이라도 사랑을 하자고 주장했습니다. 바로 그 유명한 아모르파티(amor fati), 즉 운명애(運命愛) 사상입니다. 오늘은 <유퀴즈>에 출연해 삶과 죽음에 대해 깊은 화두를 던지신 월호 스님의 말을 끝으로 긴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인간의 불행의 근원은 행복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행복을 추구하지 말고 안심(安心)을 추구하면 불행을 느끼지 않습니다. 무엇을 집착하거나 추구하면 반대의 감정이 들기 마련이죠. 또 삶에 너무 애착하지도 슬퍼하지도 말고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하고 마음 편안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불교에선 속세에 있는 심신을 '아바타(Avarta)'라고 부릅니다. 산스크리트어로 '분신', '화신'을 말합니다. 아바타를 관찰하는 진짜 '나'가 있습니다. 내가 아바타라는 것을 확신하면 내가 병들어도 '아바타가 병들었구나', 화가 나도 그건 내가 아니라 '아바타가 화를 내는구나'라고 진짜 '나'와 '아바타'를 분리해서 관찰해야 합니다. 죽음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은 삶은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사고(四苦)'의 과정이며, 죽음으로써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죠. 아바타를 이해하면 생로병사의 걱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해탈에 이를 수 있게 됩니다. - TV 프로그램 <유퀴즈>에 출연한 월호 스님의 말씀 중에서 -



La Vita è Bella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 O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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