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의 기준과 범위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 '영국이 섬이라는 사실이 상식 아니냐'는 글이 올라와 논란이 된 적이 있습니다. ‘영국이… 섬인 걸 모를 수도 잇어…..??’가 제목인 해당 게시글의 캡처본은 여러 커뮤니티에 퍼지며 논란이 가중되었죠. 이후 '영국이 섬나라인 걸 모르면 무식한 건가요?'라는 주제를 두고 모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에서 후속 논란이 이어졌습니다. '영국이 섬이라라는 사실을 모르는 건 무식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사실이 기본적인 상식이라고 말한 반면 '모를 수도 있지'라고 주장한 사람들은 '상식이 개인에 따라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상식이 아닐 수도 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이외에도 '사흘'을 '4일'로 알거나 '심심(甚深)한 사과'를 '지루한 사과'로 이해하거나 '지구력(持久力, endurance)이 부족하다'라는 말을 '지구력(地球力, gravity)'이 부족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이는 등 젊은 세대들의 상식, 즉 문해력에 관한 이슈들이 한동안 회자가 되었습니다. 이런 논란 때문인지 '상식=문해력'이란 등식까지 성립되었습니다. 저 같은 한자 세대는 정규 교과 과목으로 한자를 배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자와 친숙해져 한자로 대부분 이루어진 한글에 대한 어휘력과 문해력은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지금 세대는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MZ세대로의 세대교체가 진행되면서 한자에서 한글로, 문어체에서 구어체로의 전이가 한층 가속화되는 분위기입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라는 말은 대다수가 상식적으로 쓰는 말입니다. 하지만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가을은 하늘이 높고 바람은 시원하며 단풍은 운치가 있어 엉덩이가 들썩인다고. 오히려 책 읽기는 추운 겨울이 좋다'라고 말한 은유 작가의 글에 공감 한 표를 던지고 싶습니다. 한국처럼 고온다습하고 살인적인 여름의 무더위를 한 번이라도 제대로 겪었다면, 아니 온몸으로 버텨냈다면 가을이라는 계절이 성큼 다가와 우리에게 주는 자연의 선물을 의자에 앉아 한가롭게 책이나 읽으며 마냥 방치하고 싶진 않을 겁니다. 엉덩이가 절로 들썩인다는 표현이 가을이란 계절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고로 상식은 논리적이고 합리적이어야 하며, 실용적이고 역동적이어야 합니다.
얼마 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미국에서 가장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제목의 게시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호기심이 발동해 대체 누군가 싶어 클릭을 했습니다. 결국 낚시질에 당했지만 말이죠. ^^ 게시자는 미국은 한국과 달리 의무적인 고등교육을 실시하지 않아 학생들 간의 지식의 수준 편차가 대단히 크다고 말하면서 '미국에서 가장 상식적인 사람은 미국의 대통령도 영화주인공인 배트맨도 아닌 악당인 조커라는 답변을 달았습니다. 이유인즉슨 병원에서 마스크도 쓰고 손세정제도 사용한 사람이 조커였다는 것이죠. 반면 배트맨의 경우 이 시국(?)에 박쥐옷 입고 입만 내고 다닌다며 오히려 비상식적인 캐릭터라고 조롱거리라나 뭐래나...... 뭔가 틀린 말은 없는데도 왠지 조커가 상식적인 사람이라니 이건 좀 아닌 듯싶었죠. ^^;
얼마 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 간에 한바탕 소란이 있었습니다. 아파트가 역세권에 위치해 있고 주변에 공원이나 산책로가 없다 보니 단지 내 타원 모양의 중앙광장에는 항상 또래 아이들끼리 장난을 치며 큰 소리를 내지르며 뛰어노는 경우가 많았죠. 저도 어렸을 때 천둥벌거숭이였고, 두 자녀를 키웠던 부모로서 그 정도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도가 지나친 일이 자주 일어났습니다. 일부 천방지축 청개구리 같은 아해(?)들이 야구나 축구와 같은 과격한 운동을 중앙광장에서 한 것이죠. 산책을 하는 주민들 사이로 야구공을 던지거나 축구공을 아파트 출입구 벽면을 골대삼아 슛을 하는 이해 못 할 행태가 종종 목격되었습니다.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죠. 저도 몇 번이나 봤지만 혹시나 꼰대 어른이라는 소리를 들을까 봐 그냥 가던 길을 재촉했습니다.
아이들의 만행은 단지 내 공용 사우나에서도 이어졌습니다.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는 좁은 공용 목욕탕 안에서 아이들이 떼거지로 몰려와 장난을 치며 큰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심지어 온탕 냉탕을 수영장 삼아 풍덩 뛰어들기까지 했습니다. 고된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로를 풀러 온 대다수의 어른들의 심기를 꽤나 건드렸던 것이죠. 더 이해가 가지 않은 상황은 아이와 함께 온 아버지가 주위 시선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아이와 함께 냉탕 온탕을 오가며 물장난을 치는 장면이었습니다. 임계치에 다다른 의협심 강한 몇몇 어른들이 참다못해 훈계를 한 것이 논란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냐? 부모가 그렇게 가르치더냐"라는 훈계조의 말이었죠.
금쪽이를 키운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의 말만 듣고 "어디 겁나서 아이들을 광장에 내보내겠냐? 어른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냐"라며 아파트 커뮤니티에 불만 게시글을 올렸고 주민들 간에 '아이를 키운 어른으로서 조금만 참아도 되는데 말이 지나치다', '아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공공예절을 가르치지 못한 부모들의 잘못이 크다' 등의 찬반의견으로 나뉘어 한동안 갑론을박이 이어졌습니다. 훗날 서로 간의 감정이 격해져 분을 참지 못한 한 금쪽이 부모가 상습적으로 야단을 치는 어르신의 동호수와 외모 등을 묘사한 글을 게시판에 업로드하는 등 몰상식한 형태로 사건이 전개되었습니다. 물론 최근에는 상황이 종료되어 다행히 이전처럼 도가 지나친 아이들도, 어른들도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개인의 편향된 사견으로는 모든 사건의 원인은 공중예절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부모의 잘못이 가장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어른들의 전 근대적인 훈계 방식도 바뀌어야 하겠지요.
최근 논란이 된 <1박 2일>의 '한 봉지 7만 원 전통과자' 사건도, 학부모 갑질을 참지 못한 서초 교사 자살 사건도, 피할 수 있는 오송지하차도 참사 사고도 어찌 보면 상식적으로 절대 일어나면 안 되는 사건들입니다. "우리나라 민족성이 원래 금방 끓고 금방 식지 않습니까?",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입니다. 적당히 짖어대다가 알아서 조용할 겁니다.” 영화 <내부자>의 악당 이강희 논설주간이 말한 대사처럼 한국인의 빠른 삶의 속도만큼 상식적으로 잊지 말아야 할 사건들의 교훈들도 빠른 속도로 역사의 뒤안길로, 우리의 기억 속으로 사라지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사건의 원인을 밝히고 그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근본적인 재발 방지 대책과 방안의 수립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만 요즘처럼 SNS 문화가 보편화된 시대에는 제대로 된 진짜 지식이나 알짜 정보를 선별해 내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여과되지 않은, 피상적이고 자극적인 정보들이 대중들의 일시적인 관심을 끌기 위해 현란한 제목과 화려한 썸네일로 무차별적인 낚시질을 해대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과의 비교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정서상 개인의 올바른 생각이나 의견이 집주의가 내뿜는 광기에 물들어 선동당하는 경우가 절대 없어야 할 겁니다. 정보 홍수의 시대에 파묻혀 살아가는 우리 세대가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바로 여과되지 않은 정보들에 관한 올바른 취사선택이며 그것은 온전히 우리의 몫이 아닐까 다시 한번 생각합니다.
살다 보면 '상식'이라는 말처럼 흔하게 말하고 또 듣는 단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상식에 어긋나는 사람, 즉 자신의 의견과 충돌하는 사람을 보면 우리는 '비상식적인 사람' 또는 '몰상식한 사람'으로 간주해 비난을 합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넌 비상식적이야", "정말 몰상식하네"라는 말을 듣게 되면 이보다 더 치명적인 인신공격 언어는 없는 것이죠. 아마 이 날은 서로 간의 감정이 회복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닫게 될 겁니다. 직장 생활에서도 상식에 어긋나는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들과 조우할 때가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참기 힘든 상황은 몰상식한 상사와 함께 근무를 할 때입니다. 상사가 몰상식한 수준을 넘어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 유형이라면 지옥 또는 막장 드라마가 현실에서 재현되기도 합니다.
그런 유형의 상사들은 부하직원과의 교류나 공감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은 물론 자신의 성과에만 집착해 부하직원들의 공과를 가로채기도 하며 또한 자신의 이용 가치에 따라 부하직원들을 편향적으로 대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강약약강(강한 사람에게는 약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강함)' 유형이 많습니다. 이외에도 '윗사람에게는 무조건 yes'라고 말하는 상사', '일이 어긋날 때 책임을 회피하는 상사', '책임질 일은 애초에 하지도 않는 상사', '모든 과업을 부하 직원에게만 일임하고 해결책만 요구하는 상사', '승진에만 급급해 모든 일감을 가져와 부하직원들을 퇴근도 못하게 하는 상사', '인맥과 라인 관리만 하는 상사' 등이 바로 상식선에서 이해되지 않는 유형의 상사들입니다.
만약 상식이란 개념이 아예 없다면 직장생활은 원래 그런 것이니 하고 시키는 대로 하면 되겠지만 상식이 있는 이상 속이 환히 보이는 이런 상사들의 뻔한 작태들을 마냥 참고 감내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저 또한 이런 유형의 상사들을 만나 한동안 맘고생 한 적이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몰상식한 상사들 유형이 많았지만 요즘에는 시대가 바뀌어 그와 비슷한 유형의 신입사원들을 만나 되려 호되게 고생하는 중간관리자들의 어려움을 얼마 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낀세대들은 항상 어디에도 있고 늘 손해를 보는 경우가 많아 보기에도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상식이 얼마나 중요한지 현재의 인적성 검사가 도입되기 전에 '일반 상식' 과목은 한때 금융권이나 언론사, 대기업이나 공기업에서 입사 시험 과목으로 채택되어 치러진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현재까지도 상식을 입사 시험 과목으로 채택하고 있는 언론사와 공기업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참고로 여기에서 말하는 상식은 '시사상식'을 의미합니다. 예전에는 상식이라고 불리는 지식과 정보들을 획득하는 경로가 매우 제한적이었습니다. 학교나 책, TV나 신문 등과 같은 한정된 장소와 매체를 통해 주로 지식과 정보를 얻다 보니 상식에 대한 기준과 범위는 개인 간 큰 편차가 없었습니다. 획일적이고 규제 일변도의 이념 교육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을 했습니다. 그 당시는 상식이라고 말하면 보편적 지식과 인식을 의미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정보의 획득 경로가 다양해지고 개인 간 지식수준과 정보 품질에 격차가 커져 상식에 관한 인식이 예전과 그 결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상식이 뭐길래 이렇게까지 삶의 전반적인 영역에서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요? 과연 상식이란 게 존재하기는 하는 것일까요? 영어로 common sense라고 불리는 상식(常識)은 국어사전에 '사람들이 보통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하는 지식. 일반적 견문과 함께 이해력, 판단력, 사리 분별 따위가 포함된다.'라고 개념 정의가 나와 있습니다. 다시 말해 상식은 일상적으로 토론과 논쟁이 없어도 상호 거부감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판단할 수 있는 지식이나 인식의 기준을 의미합니다. 모든 판단 기준의 근거가 되는 것이죠. 보행자 우측통행이라든지, 노약자나 임산부 또는 장애인에게 빈자리를 양보한다든지, 공용목욕탕에서 타인에게 방해가 되지 않도록 행동한다든지, 어른을 보면 먼저 인사를 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 바로 상식선에서 지켜져야 하는 행동들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식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는 판단의 잣대가 되는 것으로 실용적이고 합리적이며 상호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죠. 만약 상식이 상호 간에 지켜지지 않는다면 인간관계는 파괴될 것이고, 더불어 사는 이 사회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에 빠지게 될 겁니다.
상식은 역사적으로 볼 때 사회적 동물인 인간이 오랜 기간 공동체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학습되고 관습화된 지식과 인식의 축적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연유로 상식은 사회 통념상 공동체 일원으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규칙이나 규약과 같은 명시적인 사회적 합의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삶의 가치나 관점과 같은 암묵적인 태도를 포함하는 불문율(不文律)과 같은 개념도 함께 내포하고 있습니다. 상식은 그 시대의 관습과 질서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이다"라고 말할 때 그 사람은 태도나 매너가 좋으며 준법정신이 철저한 상식 있는 사람이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타인을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란 뜻이죠.
법은 상식과 관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에 모든 의사결정과 판단, 선택의 문제에서도 상식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의사결정과 선택의 문제에서도 상식선에서 생각하고 결정을 하면 된다는 말입니다. 상식은 또한 인간관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사람과 사람 간의 소통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관계의 기초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만약 기초석에 금이 가거나 기초석이 무너지면 관계도 따라 붕괴됩니다. 상식적인 선에서 대화가 이뤄지지 않고 신뢰가 깨진다면 관계는 회복 불능의 상태에 치닫게 된다는 말이죠. 상대방에 대한 몰상식한 언행과 말은 상호 간에 손해를 끼치기도 하지만 때론 목숨을 위태롭게 만들기도 합니다. 만약 상식이 무너져 보편적인 기능과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더 큰 혼란과 갈등에 빠지게 될 겁니다.
상식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비상식(非常識)과 몰상식(沒常識)이란 두 단어가 있습니다. '몰상식'은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와있는 반면 '비상식'은 고려대한국어대사전에 나와있는 것으로 볼 때 몰상식이 표준어이며 상식의 반대되는 개념인 것으로 판단됩니다. 반면 비상식의 경우 상식(常識)이 아니다(非)란 뜻이니 엄밀하게 말하면 몰상식과 달리 '상식 밖'이나 '상식을 벗어남'이란 뜻을 가진 긍정적 의미가 내포된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간에서는 비상식이란 말을 몰상식과 같은 의미선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요즘 사회에서는 상식이란 단어가 예전처럼 흔히 쓰이지만 절대적 기준으로 사용되고 있진 않은 것 같습니다. 상식이 더 이상 예전의 상식의 구실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죠.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상식이란 말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게 아이러니한 것 같습니다.
상식은 더 이상 상식이 아닌 경우가 많다. 상식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 작가, 볼테르 -
나무위키에서 상식은 '특정 사회에 속한 구성원이 반복적으로 문화와 지식을 습득하면 이를 기본 교양이라고 확신하게 되는 개념으로 전문적인 지식이 아닌 정상적인 사람들이 가지고 있거나 또는 가지고 있어야 할 일반적인 지식 ·이해력 · 판단력 · 사리분별 능력을 통칭하는 용례로 사용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정상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를 먼저 정해야 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관점이라고 볼 수 없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만인이 공통적으로 알고 있어야 할 지식이고 판단의 기준이지만 개인의 지식 ·이해력 · 판단력 · 사리분별 능력에 따라 다르게 이해하고 해석한다는 것이죠. 충분히 주관적일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논란이 생깁니다. 바로 상식의 기준과 범위입니다. 상식은 비전문적인 지식이라 하더라도 사람마다 배우고 접하고 기억하는 지식의 양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 사람이 살아온 삶의 환경, 문화, 인간관계, 교육 수준, 관심사, 태도와 관점, 생각, 성향과 기질, 종교, 연령, 인종, 시대 등에 따라 상식의 기준과 범위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죠. 상식이 보편적 가치 판단의 기준이 되기 위해서는 위에 언급한 모든 변수들이 일정 수준을 충족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못합니다. 결과적으로 상식이란 말은 어쩌면 비상식이란 의미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절대적이라고 믿는 것들,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을 경우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옳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것을 우리는 흔히 상식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살아오면서 만들어진 신념이나 가치관, 세계관이나 이데올로기를 '상식'이라는 말로 포장해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거나 상대방을 설득하려고 할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공통된 사회적 합의를 의미하는 보편적 상식이 아니라 개인의 신념이나 가치를 의미하는 개인적 상식인데 말이죠.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상식도 변화하고 진화를 거듭합니다. 왜냐하면 상식은 시대의 보편적 관점과 관습을 반영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만의 상식에 근거해 타인의 상식을 이해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몰상식' 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습관적으로 "상식적"이란 자주 사용한다면 정말 보편타당한 지식과 인식을 반영하고 있는지 확인한 후 사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게 바로 상식이니깐요.
세계적으로 유명한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은 '상식은 18세까지 습득한 편견의 집합체이다(Common sense is the collection of prejudices acquired by age eighteen)'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성인이 될 때까지 살아오면서 공공 교육이나 대중매체를 통해 단체 생활을 하면서 동일한 지식을 배우지만 각자가 처한 삶의 환경에서 다른 프레임과 각도로 보고 듣고 배우고 경험하면서 체득한 편견의 축적물이 상식이란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상식은 보편타당하고 공정한 생각이 아니라 각자가 가진 편견에 따라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들의 집합체이기 때문에 '상식적으로 판단한다면'이란 말은 어쩌면 자신만의 편향된 생각들을 여과 없이 내뱉는 말이라 상대방의 입장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낄 수 있을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상식이 없는 사람이네", "상식밖의 행동이야"라는 말은 서로 간에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매우 무례한 언어습관이며,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이란 말도 어쩌면 "제 개인의 편향된 시각으로 본다면"으로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결론적으로 나무위키에서 말한 상식의 기준과 범위는 제가 이해하는 상식선에서 볼 때 만인이 인식하는 공통되고 합의된 지식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입니다.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며, 개인의 생각과 가치에 따라 기준과 범위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이 제가 내린 결론입니다. 함께 더불어 사는 사회에서 나와 다른 이웃들의 입장이나 상황을 이해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각과 의견만을 주장하고 고집한다면 그건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일, 즉 몰상식한 일이 될 겁니다. 만약 자신의 상식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상대방에 대한 존중과 배려, 역지사지와 같은 행동을 통해 소통과 협력을 하고 합의에 이를 때 비로소 상식이란 말을 함께 쓸 수 있으며 상식에 대한 인식의 전환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겁니다.
격주간지인 <미래한국>에서 부산대 김정래교수는 "상식이 비상식적으로 쓰일 때"라는 칼럼에서 원만한 판단능력, 도덕적 인격을 갖춘 것을 의미하는 상식이 요즘에는 비상식적인 방향으로 전이되어 사회에 해악을 미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상식(common sense)은 개인 내적(intra-personal)의 의미와 개인 간(inter-personal)의 의미로 나뉘는데 전자는 원만한 판단 능력을 가진 사람, 나아가서는 도덕적으로 인격을 갖춘 사람을 의미하며, 후자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지식이나 신념 따위로 사람 간의 공감하는 능력 또는 영역, 사람들의 공적 관심사에 대한 공통의 견해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두 가지 모두 순기능을 한다고 주장합니다.
상식 형성의 조건으로는 도시가 발달되어 '시장'이 갖춰져야 하고, 상식이 전달되는 '매체'(과거에는 인쇄술, 요즘에는 SNS)가 있어야 하며, 그것을 공유하는 합리적인 개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상식이 비상식적인 것으로 전이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중에서도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에 몰입되어 습득한 피상적이고 감각적이기 일쑤여서 댓글달기처럼 토론을 좋아하는 것 같지만 그 실상을 파보면 심도 있는 대화와 사고가 아닌 욕설이나 감정을 자극하는 선동성 글이 대부분이어서 '상식의 전이'가 여기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또한 평범한 것을 수용하는 능력은 대부분 감성에 호소하게 되는데 이 점에서 상식은 감성에 기초한 대중의 심리에 기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에 대한 논란은 많지만) 감성은 가치 판단의 중요한 역할도 하지만 때론 포퓰리즘의 인식론적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대중의 지혜'가 아닌 '군중심리'를 자극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2008년 '광우병 파동'인데 개인의 지식과 가치는 무시되고 군중심리가 지배하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상식이란 기대치를 넘어서는 비상식적인 행동이 바로 성취의 여정이다.
만약 상식이 현재 제 기능과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오히려 비상식이 상식의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전에는 아무런 비판이나 저항 없이 수용하던 사회적 관습과 상식들이 시대의 변화와 그에 따른 개인의 가치와 역량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새로운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보다 혁신적이고 가치지향적인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창의적 발상으로 새롭게 재조명함으로써 관점이 바뀌고, 관점이 바뀌면서 비상식이 상식으로 전이되고 있는 것이죠. 요즘은 기존에 관습적으로 하던 모든 생각과 행동들을 제로 베이스에서 의문을 던져 그 패턴을 바꿈으로써 비상식적인 성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었을 때에는 돈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늙어보니까… 정말 그렇더라(When I was young I thought that money was the most important thing in life; now that I am old I know that it is) - 《비상식적 성공법칙》 중에서 -
위대한 예술가 피카소는 "훌륭한 예술가는 베끼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상식 밖, 아니 상식을 넘는 비상식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서는 파괴적이고 혁신적인 발상보다는 기존의 것들을 약간 비틀어 재조명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창조적 모방, 창의적 모방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비상식적 성공법칙》의 저자이자 저명한 경영 컨설턴트인 간다 마사노리는 상식을 깨는 비상식적인 사고와 행동을 통해 비상식적 성공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의 책에서 저자는 '당신은 97퍼센트의 사람들인가요? 3퍼센트의 사람들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곧이어 이 말이 이해가 되기 시작합니다. 97퍼센트의 사람들은 비상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정성과 노력 없이 큰돈을 벌고자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3퍼센트의 사람들은 상식적인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정성과 시간 투자 없이 돈 버는 것을 의심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이처럼 우리들은 3퍼센트의 사람들처럼 상식적으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저자는 강조합니다. 저도 이 대목에서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저도 97 퍼센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이 책을 불과 37세에 로큰롤 음악을 들으며 단 열흘 만에 쓴, 두 번 다시는 쓸 수 없다고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책을 쓰고도 내용을 공개하고 싶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비상식적'이기 때문이죠. 사람들이 이전의 흔해빠진 성공 법칙을 그대로 믿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고 일갈합니다. 그는 목표를 이루고 싶다면 '종이에 적으면 반드시 실현된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합니다. '다시 한번 반복하겠다. 종이에 적으면 실현된다. 그렇다. 종이에 적으면 반드시 실현된다'라고 말이죠. 비상식적 성공법칙의 핵심은 바로 '목표를 종이에 적는 것'입니다.
저자는 성공한 사람들이 말하는 겸허와 인간관계의 중요성은 실제 성공과는 거리가 멀다고 말합니다. 그건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성공 스토리를 완성시키기 위해 삽입한 내용에 불과하다는 것이죠. 아직 성공을 거두지 못한 사람은 이런 얘기들을 무시하고 나아가야 한다고 충고합니다. '돈을 벌어야 한다'와 '돈이 전부가 아니다' 사이에서 마음이 진자처럼 왔다 갔다 한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마음이 한결같아야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죠. 그리고 악의 마음이라도 돈부터 벌어서 부자가 된 뒤에 궁극적 목표인 마음이 풍요로운 부자로 전환하는 것이 쉽다고 합니다. 악의 마음이란 남을 해하는 아니라 세속적인 욕구, 즉 성공해서 남에게 돋보이고 싶다거나 멋진 차나 좋은 집을 갖고 싶다거나 보란 듯이 성공하겠다는 식의 분노 같은 감정을 의미합니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노와 같은 악의 감정이라도 활용해 성공을 하라는 것입니다.
제가 인상 깊었던 내용은 '고자세로 영업하라'는 대목이었습니다. 고객 중 적극적 관심을 보이고 'yes'할 만한 사람들에게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지 'No'할 것 같은 사람에게는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지 말라고 합니다. 가망 없는 고객에게 시간과 노력을 낭비하느니 빨리 거절하고 가망성 있는 고객들에게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라는 말은 '선택과 집중', '한정된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뇌과학적 교훈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런 세일즈기법을 저자는 '임금님 세일즈'라고 명명했습니다.
저자는 돈을 죄악시해서는 절대 돈을 끌어들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돈 자체는 선악이 없기 때문이죠. 돈의 가치는 어떻게 쓰느냐에 달려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사장을 가르치는 사장으로 불리는 파이어폭스의 김승호 회장도 이와 비슷한 얘기를 합니다. 그의 저서 《돈의 속성》에는 돈은 인격체이며 감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처럼 소중히 대우해 주고 좋은 곳에 쓰면 더 큰돈으로 돌아온다고 말합니다.
요즘 신문기사나 유튜브를 보면 '사람들이 잘 못 알고 있는 상식!'이란 류의 글을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게시글이 많다는 것은 우리가 평소 알고 있는 상식이 그동안 얼마나 불완전한지, 얼마나 미흡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에 관한 정보조차도 어쩌면 과학적 인과관계를 통해 검증된 자료인지 한 번쯤은 의심해봐야 할 겁니다. 오늘의 결론입니다. '당신의 상식은 누군가의 비상식일 수 있습니다.' 상식이 상식이 되는 그날을 기대해 봅니다. 오늘따라 학창 시절 친구인 상식이가 생각납니다. 잘 지내고 있겠지요? 참고로 무식이도 잘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
두서없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_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