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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스틱 May 26. 2021

나는 첫사랑과 결혼했다

내 생애가 한번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해바라기 연가>

                        이해인 수녀

내 생애가 한 번 뿐이듯
나의 사랑도
하나입니다.

나의 임금이어
폭포처럼 쏟아져 오는 그리움에
목메어
죽을 것만 같은 열병을 앓습니다.

당신 아닌 누구도
치유할 수 없는 내 불치의 병은
사랑

이 가슴 안에서
올올히 뽑은 고운 실로
당신의 비단옷을 짜겠습니다.

빛나는 얼굴 눈부시어
고개 숙이면
속으로 타서 익는 까만 꽃씨
당신계 바치는 나의 언어들

이미 하나인 우리가
더욱 하나가 될 날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나의 임금이어
드릴 것은 상처 뿐이어도

어둠에 숨기지 않고
섬겨 살기 원이옵니다.



나는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시를 참 즐겨 읽었다. 아마 그 시절만의 독특한 감성 트렌드였던 것 같다. 그 당시 가장 인기 있던 시집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는 내용을 담은 도종완 시인의 『접시꽃 당신』이었다. 누구나 앞 소절 한 부분은 다 암기하면서 다녔던 것 같다.


나는 고등학교 시절 유난히 예민하고, 사색적이었던 것 같다. 세상의 모든 아픔과 슬픔, 외로움과 철학적 질문들이 내게만 유독 크게 다가왔었다. 그때 그 시절 읽었던 이해인 수녀의 <해바라기 연가>는 사랑을 갈구하는 내게 '첫사랑'이라는 아련한 그리움을 대변해주는 그런 시구였다. 내게 있어 생애가 한번뿐이듯 내 사랑도 하나라는 신념과 믿음이 내면에 만들어지던 시기였다.


단순하고 순진했던 소년에게 '첫사랑'이란 문구만큼 가슴 뛰게 하고, 마음 설레게 하는 단어는 없었다. 물론 고등학교 시절 나는 친한 친구들과 '사랑과 우정'사이의 경계선에 대한 진실을 찾는데 많은 얘기들을 나눴던 것 같다. 물론 그 당시에는 사랑보다는 우정이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대학교에 입학하고, 내 첫사랑인 아내를 만나기 전까지 유효한 생각이었다.



나는 성격적으로도 내성적이어서 부끄러움도 많았고, 여초 학과여서 나는 입학한 후 더더욱 여학생들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하는 것은 내게 있어 거의 불가능의 영역이었다. 고등학교 때 즐겨 입었던 체육복 패션을 그대로 고집한 채 나는 신입생(freshman) 생활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픈 얘기지만 그 당시 여학생들 사이에서 나는 '체육 특기생'으로 불렸다. 그 정도로 나는 패션 테러리스트(fashion terrorist)이기도 했다.


매일같이 데모와 최루탄으로 얼룩진 교내 교정을 보면서 나는 내심 대학생이 된 것을 후회하기도 했다. 그 당시는 운동권 선배들이 대부분 과학생회장이나 단대 회장직을 맡았다. 학생운동을 하지 않는 후배들은 비공식적으로 왕따를 시키는 문화도 은연중에 있었다. 그러던 내가 아내를 본격적으로 보게 된 것은 대학교에 입학하고, 학과 세미나실을 들어갔을 때였다.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환하게 빛을 뿜어내는 세미나실의 창문을 등지고 단발머리에 큰 흰색 셔츠를 입고 앉아 있는 한 여학생을 본 후 갑자기 가슴이 콩닥 뛰기 시작했다. 애써 외면한 채 세미나실의 한 모퉁이에 앉아 그 여학생을 흘낏 훔쳐보기 시작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칠까 조바심이 났다. 그렇게 내 마음속 한켠에 아내가 자리잡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과대표로 뽑혔다!


맵고 퀴퀴한 최루탄 냄새가 물씬했던 일학기도 어느새 끝나가고 있었다. 데모로 인한 휴강도 많았지만 나는 사실 일 학기 수업의 대부분을 친한 친구 한 명과 당구를 치면서 시간을 보냈다. 여자 친구보다도 더 가깝고 친밀감을 유지하면서 말이다. 후학기 과대표를 선출하던 날 나는 의도치 않게 여학생들의 절대적인 지지와 후원으로 과대표를 맡게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맡게 된 과대표의 첫 번째 미션은 바로 2박 3일의 여름방학 MT를 준비하는 것이었다.


우연의 일치일까? 10명의 남학생과 10명의 여학생이 MT 신청을 했다. 과동기 중 한 명의 아버지가 거제도 OO공사 지점장으로 근무를 하신 덕분에 순조롭게 우리들의 여름방학 MT의 목적지는 거제도로 정하게 되었다. 충무를 거쳐 거제도 장승포에 도착한 우리들은 동기 아버지 사택 이층으로 숙소를 정했고, 기대 반 설램반으로 저녁 MT 회식을 진행했다. 동기 아버지께서 협찬한 풍부한 회와 수산물이 더해지고, 바닷가 분위기라 무르익다 보니 취기는 여느 때보다도 빨리 달아올랐다.




술을 먹으면서도 설거지 당번을 정했는데 마침 어리숙한 내가 당첨이 되었다. 사실 과대표라서 동기들이 나를 억지로 맡긴 것으로 기억이 난다. 취기가 오르고 젊은 기운이 넘쳐서인지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자연스럽게 남녀 동기들이 짝을 이루면서 인근 등대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9쌍이 나갔고, 자연스럽게 나와 아내만 남게 되었다. 왜 아내만 남게 되었는지 지금도 아내는 대답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그때 나는 아내와 함께 설거지를 끝낸 후 무엇을 할지 몰라서 머릿속이 하얘졌다. 술 때문인지 나는 갑자기 용기를 내서 등대로 가자고 데이트를 신청했다.


등대로 이동하는 길에 우리는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서로 업어주는 게임을 했다. 술이 취해서인지 몰라도 왜 업어주기 게임을 했는지도 지금은 잘 모른다. 물론 85kg의 거구이다 보니 이겨도 아내에게 제대로 업혀보지도 못한 채 나만 계속 아내를 업고 멀리 보이는 등대로 걸어갔다. 많이 취했는지 가는 도중 헛간에서 소변도 보고, 그리고 아무 일 없는 듯 정신없이 아내와 대화를 이어가면서 우리는 그렇게 등대를 향해 손을 꼭 잡고 걸었다. 멀리 동기의 울음소리(?)도 이따금씩 들려왔다.


아내는 바다를 좋아했다. 그렇게 시원한 바닷바람과 파도소리를 온몸으로 느끼며 그렇게 방파제에 앉은 채 내게 기대서 잠이 들었다. 혹시 쓰러질까 봐 나는 뒤로 가서 아내를 안아주었다. 난생처음으로 이성의 부드러운 숨소리와 솜털 가득한 얼굴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게 되었다. 가슴이 또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머릿속은 온갖 나쁘고 부정적인 생각들 뿐이었다.  나는 결국 유혹을 참지 못하고 아내의 뺨에 가볍게 입술을 갖대 대었다. 정말 부드럽고 매끄러웠다.


멀리서 동기들이 부르는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아내를 얼른 깨웠고, 우리 둘은 사택으로 돌아와 서로의 곁에서 곤히 잠이 들었다. 아침 일찍 깨어나서 방안을 둘러보니 혼숙의 여파 탓인지 방안의 모습은 정말 가관이었다. 남녀가 뒤엉켜 얽히고설킨 상태로 누워 있었고, 방은 전일 먹은 술 냄새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동기들을 모두 깨워서 서둘러 다음 목적지인 몽돌해변으로 이동을 재촉했다.



몽돌해변에 도착한 우리들은 숙소에 짐을 풀고, 각자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자 우리들은 몽돌해변 바닷가에 임시 캠프파이어장을 만들어 모닥불을 피웠고, 준비한 막걸리와 강냉이 안주를 각자 위치에 맞게 세팅을 했다. 취기가 또 오르자 통기타 소리에 맞춰 당시 유행하던 포크송과 민중가요들을 단체로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 옆에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앉아 있었지만 전일 아내와 보낸 야릇한 기억 때문인지 나의 모든 생각과 관심은 아내뿐이었다.


막걸리와 강냉이로 시작된 술판은 늦은 시간까지 계속되었다. MT 기간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술이 취한 동기들 중에 꺼이꺼이 서럽게 우는 동기들이 하나둘씩 나오기 시작했다. 아마 내가 모르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았던 것 같다. 남자든 여자든 그렇게 슬프게 우는 것을 지금까지도 보지 못한 것 같다. 모닥불도 꺼져가고, 술도 없어질 시점에 하나 둘 연애 놀음에 지쳤는지 숙소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의도치 않게 나와 아내만 그 자리에 남게 되었다.


밤이어서 파도소리가 크게 들렸고, 몽글몽글 예쁜 몽돌들이 또르르 파도에 쓸리면서 굴러가는 소리가 또렷하게 내 귓가에 들렸다.



사실 전일 내가 몰래 했던 행동을 고백하고 아내에게 깊은 사과를 했다. 아내는 전혀 기억을 못 한다고 괜찮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삼류 로맨스 소설처럼 들리지만 그 당시 나는 정말 진지했다. 궁서체였다. 기억이 안 난다는 아내의 말에 어디서 용기를 냈는지 나는 갑자기 바닷가로 달려가 바닷물을 입에 넣고 입가심을 한 후 다시 자리로 돌아와 아내에게 뽀뽀를 했다. 아마 달큰한 막걸리로 인한 입냄새가 무척이나 신경이 쓰였던 것 같았다. 생애 첫 키스의 추억은 밤 깊은 몽돌해변에서 만들어졌다. 달콤한 뽀뽀가 식기도 전에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 서로 마주 보면서 잠이 들었다. 밤새도록 몸을 들썩였다.


날이 밝았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거제도의 2박 3일 MT가 모두 끝났고, 우리들은 다시 대구행 버스로 몸을 실었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괜히 동기들의 눈치를 보면서 아내의 옆자리를 지켰다. 대구에 돌아온 후 우리들은 각자 집으로 향했고, 아내와 난 아무런 기약도 없이 헤어졌다. 그렇게 생애 가장 긴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아내와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나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귀신에 홀린 듯 멍하니 방안에만 앉아 있었다. 누우면 생각나고, 눈을 감으면 아내가 떠올랐다. 거제도에서 있었던 기억이 하루종인 나의 모든 생각을 지배했고,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앓이란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상사병 같은 가슴앓이를 일주일 정도 하고 나니 살아있는 시체 같은 느낌이 들었다. 집전화도 모르고 집주소만 알고 있던 나는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편지를 쓰기 시작했다. 밤새도록 쓰고 찢기를 반복했다. 결국 보낸 손편지의 내용은 이해인 수녀의 <해바라기 연가>였다. 내 진심을 전달할 수 있는 가장 강렬한 메시지였기 때문이다.




며칠 지나지 않아 아내의 답장 편지가 도착했다. 그녀도 나처럼 많이 보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날아갈 듯이 좋았다. 몇 번을 다시 읽기를 반복했다. 상대방이 나와 같은 감정상태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은 정말로 행복한 순간이었다. 편지를 통해 전화 번호를 확인하고, 나는 전화를 걸어 내일 당장 만나자고 말을 건넸다. 그해 남은 여름방학기간은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와 만나서 데이트를 했다. 첫사랑의 감정은 여름방학처럼 깊어만 갔다.


내 생애가 한번뿐이듯 내 사랑도 하나입니다.


장교로 군대를 가기 전까지 4년 동안 나는 아내와 같은 수업을 들으면서 뜨거운 사랑을 나눴다. 남들이 평생 만나서 보내는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 보냈다. 그렇게 연애를 하다가 난 28살에 첫사랑과 결혼을 했다. 올해로 아내와 만난 지 33년이 되었다. 지겨울 만도 한데 우리 둘은 여전히 33년 전의 좋아했던 순수한 연애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아마 사랑 때문에 겪었던 아픔과 행복의 추억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에 서로 간에 가지는 감정의 온도가 여전히 식지 않는 것은 아닐까?


나는 '100년 지기'라는 밴드를 만들어 아내와 보내는 모든 여정의 순간을 사진과 스토리로 남겨서 아내와 공유한다. 처음에는 데이트하면서 사진을 찍으면 "뭘 그런 걸 다 찍어?"라고 묻던 시크한 경상도 아줌마인 아내도 어느새 밴드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었다.


연애감정을 오랫동안 가지게 하는 원천은 나의 마인드셋이다. 내 마음속에는 '발전기'가 있다. 바로 연애 발전기이다. 이 발전기를 계속해서 가동하면 연애감정이 생긴다. 연애 발전기의 연료는 바로 추억이다. 추억을 많이 만들수록 발전기는 끊임없이 돌릴 수 있다. 훗날 감정이 사라질 때쯤 연애 발전기를 가동하면 된다. 연애감정이 새록새록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휴무 때 절대 잠을 자지 않는다. 내가 가진 모든 시간을 온전히 아내와 데이트를 하면서 보낸다. 시간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요즘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가끔 나는 술을 한잔 하면서 아내에게 묻는 말이 있다. "대학교 때가 좋아, 아니면 요즘이 좋아?" 아내는 망설임 없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나도 만약 다시 사랑을 하겠냐고 물으면 "두 번 다시 사랑 안 해"라고 외치고 싶다. 말이 좋아 사랑이지. 사랑만큼 감정을 소모시키고, 심신을 지치게 하고 또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사랑은 딱 한 번만 하면 되는 것 같다. 그것도 첫사랑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 것 같다.


바쁘고 정신이 없겠지만 오늘 퇴근길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먼저 데이트 신청을 하면 어떨까? 아니면 아내가 좋아하는 회를 포장해 귀가한 후 일찍 애들을 재우고 둘이 베란다에서 와인 한잔 하는 것은 어떨까? 아니면 커피숍에 들러 커피 두 잔을 포장해 인근 공원에서 조용하게 커피 데이트를 하는 것을 어떨까? 이렇게 추억은 눈처럼 소복소복 쌓이고, 훗날 연애 발전기를 돌릴 수 있는 연료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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