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선우 Sep 26. 2023

폭설

2023년 아르코문학창작기금 발표지원 선정 시


폭설 

 


두 개의 문이 열리고 모래시계가 뒤집힌다

닭이 크게 울었다

 

우울의 징조라고 잠깐 생각했다

산산이 부서진 흰 돌의 파편 같은

눈은 쉬지 않고 내린다

 

적막한 도로의 나무와 울타리

그 아래 자갈돌은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아무도 찾지 않는 그네를 선물처럼 두고 간 사람은

어디로 갔을까

보이는 모든 것들이 흔들리다가 희미해지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꽃잎은 벽을 타고 올라 흰 곰팡이처럼 천장을 덮고

식탁 아래 슬리퍼에서 발목이 지워지는게 보인다

 

뭔가 숨기고 있는 표정의 창문을 열면

예기치 않은 공포가 쏟아질까

 

가까이 보면 다 똑같은 얼굴 같아서

이제는 솔직해져야 하는데

 

흐린 눈빛 속에서 쏟아지는 모래알

몇 방울의 눈물로 착한 사람이 될까

 

집에 가야 할 시간인데

 

문과 문 사이

지겹도록 눈이 쌓인다

 

오류투성이 폭설

 

처음인 것처럼

같은 길을 걷는다

신발은 다 젖어 버렸다

 

마음은 문이라서 

파묻히려는 문이라서

 

닫아도 닫히지 않고

열어도 열리지 않는

 



[문장웹진_콤마]9월


이전 03화 안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