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랜차이즈 대신 코끼리 편의점"
고길자 여사에게는 아들 부부와 손녀가 있었다.
나이는 일흔이 가까웠지만, 기개만큼은 이십대였다.
아들 부부가 “엄마, 우리랑 같이 살아요” 하며 극진히 모시려 했지만,
“흥! 나더러 너희들 신세를 지라는 말이냐?”라며 13평 빌라로 훌쩍 나왔다.
동거인은 주인 닮아서 성격이 독한 고양이 ‘명석’ 한 마리 뿐이었다.
고 여사는 구멍가게를 하나 운영하고 있었다.
그 가게는 고 여사의 자랑이자 자존심이었다.
“이 가게로 아들 대학 보냈다고!
서울대는 아니지만 어쨌든 대학은 대학이야!”
그런데 세상이 변했다. 주변에 편의점이 우후죽순 생겨나더니,
옛날식 구멍가게는 완전히 구석기 시대 유물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아줌마, 여기 CU예요, GS예요?”
“둘 다 아니고 그냥 가게야.”
“아… 네…” (돌아서서 도망)
결국 고 여사는 결단을 내렸다. 전 재산을 털어 리모델링을 한 것이다.
내부는 편의점처럼 꾸미고 ‘코끼리 편의점’이란 간판을 달았다.
알바도 한 명 쓰고 둘이 번갈아 가게를 지키니,
프렌차이즈 편의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은 냉혹했다. 손님은 생각만큼 늘지 않았다.
주변에 편의점이 워낙 많이 생긴 탓이었다.
반경 500m 안에 편의점이 일곱 개나 되었다.
어느 한가한 오후, 고 여사는 책만 들여다보는 알바 미영을 보자 심술이 났다.
“야, 무슨 책이야?”
“기초 간호학이요. 조무사 시험 보려고요.”
“지금 근무 시간이잖아! 일 좀 해!”
“일이요? 청소 다 했고요, 진열도 다 했고요. 손님이 와야 일을 하죠.”
미영의 대답이 너무 당당해서 고 여사는 할 말을 잃었다. 틀린 말도 아니고…
“너! 요즘 마케팅이란 말도 못 들어봤냐?”
“마케팅요? 어떻게 하는 건데요?”
“요 앞에 나가서 춤도 추고, 짧은 치마 입고 왔다 갔다 해야지!”
미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사장님, 편의점 알바가 무슨 치어리더예요? 정 필요하시면 사장님이 하세요.”
순간 고 여사는 흠칫했다. 본능적으로 손이 자신의 허리로 향했다.
두툼한 살점이 한 움큼 와락 잡혔다.
다리를 내려다봤다. 절구통이었다. 아니, 절구통 두 개였다.
고 여사는 조용히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이 일어났다.
근처에 ‘박 원장 내과의원’이 개원한 것이다.
박 원장과 간호사들은 금세 코끼리 편의점의 단골이 되었다.
특히 박 원장은 하루에 세 번씩 와서 차와 커피, 과자를 사 갔다.
어느 날 박 원장이 커피를 사며 물었다.
“사장님, 여기 24시간 영업 안 해요?”
“왜요?”
“밤에 야식 먹고 싶을 때 길 건너까지 가야 하거든요. 귀찮아서요.”
고 여사가 박 원장을 빤히 쳐다봤다.
젊고 잘생긴 편이었다. 안경을 썼지만, 눈매가 선해 보였다.
의사 가운도 잘 어울렸다.
“아니, 밤늦게까지 병원에 있어요?”
“아, 저는 병원 위층에 살아요. 아직 솔로라서 딱히 집이 필요 없어서요.”
솔로. 그 순간 미영의 눈이 LED처럼 반짝였다.
하지만 고 여사는 단호했다.
“안 됩니다. 우리는 직원의 건강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편의점입니다!”
거짓말이었다. 진짜 이유는 야간 알바를 한 명 더 고용할 돈이 없어서였다.
그때 미영이 갑자기 소리쳤다.
“사장님! 제가 할게요! 제가 있잖아요. 우리 24시간 해요!”
“안 돼!”
“시급은 반만 받을게요!”
“No! 노동부 장관님도 야간 노동은 2급 발암물질이라고 하셨어!”
박 원장은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나갔다. 미영은 그의 뒷모습을 애타게 바라봤다.
그러나 미영은 그 후에도 계속 야간영업을 하자고 졸라댔다.
고 여사가 계속 거절하자, 반협박하기도 했다.
“아, 나 야간영업 안 하면 다 때려치울 거예요.”
고 여사는 계속 거절했다. 하지만 미영의 야간 영업 타령은 그 후로도 계속됐다.
모기가 쉬지 않고 앵앵거리는 것 같았고 귀에서 이명이 생길 지경이었다.
고 여사가 거의 항복하려고 한 순간,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길 건너 24시간 편의점에 강도가 들었다는 것이다.
새벽 3시, 복면을 쓴 강도가 들어와 싹 털어갔다고 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없었지만, 동네는 발칵 뒤집혔다.
고 여사는 그 소식을 듣자마자 미영에게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건너편 편의점에 강도가 들었대.
알바는 요기, 목 요쪽으로 칼이 날아왔는데 간신히 피했단다.”
거짓말이었다. 알바는 구석에 움츠리고 있어서 다치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고 여사는 제스처까지 하면서 미영 앞에서 떠들었다.
미영의 ‘24시간 영업 조르기’는 그날로 쏙 들어갔다.
그 후 박 원장이 올 때마다 고 여사는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우리는요, 직원의 안전과 건강을 위해 절대! 절대! 야간 노동은 하지 않습니다!”
미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만 잔뜩 내밀고 있었다.
고 여사는 그 모습을 보며 픽 웃었다.
“젊은것들이 뭘 알아. 안전이 최고야, 안전이!”
P.S. 그 후 박 원장은 매일 저녁 9시 55분에 편의점에 나타나 컵라면을 사 갔다고 한다.
미영이 퇴근하기 5분 전에. 우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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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자 여사의 배꼽 빠지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