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스마 특강

'개에게 카리스마를 보여주려다 손녀한테 혼나는 고길자 여사의 에피소드'

by 이진무

고길자 여사는 오늘도 소파에 푹 파묻혀

유튜브를 보고 있었다.

“호호호, 요즘 세상 참 재미있어.

손가락 하나로 온갖 걸 다 볼 수 있다니까.”

그녀의 눈은 스마트폰 화면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들이 사준 최신형 스마트폰을 받은 지 석 달.

이제 고길자 여사는 유튜브 중급 사용자가 되어 있었다.

“어머, 이건 또 뭐야?”

화면에는 귀여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

4살쯤 되어 보이는 금발 꼬마 여자아이가

자기 키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커다란 골든 리트리버 앞에 서 있었다.

꼬마는 작은 손을 허리에 얹고는 삿대질을 했다.

“Bad dog! Bad!”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거대한 골든 리트리버가 눈을 내리깔고

꼬리를 다리 사이에 집어넣은 채

꼼짝도 못 하는 게 아닌가!

“쿵쿵쿵!”

고길자 여사는 소파를 손바닥으로 두드리며 깔깔 웃었다.

“허허허! 저것 봐라, 저것 봐!

저 조그만 것이 저 큰 개를 호령하네!”

그녀는 영상을 세 번이나 돌려보며 웃다가,

문득 손녀 하영이 떠올랐다.

“어? 잠깐만…”

고길자 여사의 눈이 반짝였다.

“저 정도는… 우리 하영이도 할 수 있겠는데?”

아들 부부는 집에서 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름하여 '멍군이'.

어디서 주워 왔는지 족보도 알 수 없는 똥개였지만,

덩치 만큼은 제법 컸다.

“좋아! 오늘은 하영이한테 제대로 된 교육을 해줘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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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자 여사는 벌떡 일어나 아들 집으로 갔다.

똑똑똑!

“누구세요?”

며느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야, 나!”

문이 열리자 고길자 여사가 득달같이 안으로 들어왔다.

“어머니, 갑자기 웬일이세요?”

“하영이 좀 보러왔다.”

“어머, 잘됐네요. 저 잠깐 나갔다 오려고 했는데,

어머님이 하영이 봐 주시겠어요?”

“그래 알았다. 하영이 어딨어? 하영아!”

“네~ 할머니!”

네 살 하영이가 방에서 뛰어나왔다.

분홍색 원피스를 입은 꼬마는 할머니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오셨어여?”

“그래그래, 우리 강아지.

오늘은 이 할미가 너한테 아주 중요한 걸 가르쳐 줄 거야.”

“뭔데요?”

고길자 여사는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손녀를 내려다보았다.

“카리스마란다.”

“카리스마여?”

하영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뭐예요?”

“음…”

고길자 여사는 잠시 생각한 후에 말했다.

“왜, 사람이 칼을 들고 있으면 무서워서 꼼짝 못 하잖아?”

“네.”

“카리스마는 그거야.

칼을 들지 않았는데도 칼 든 것처럼 상대방을 무섭게 만드는 거지!”

“와…”

하영이의 눈이 커졌다.

“그럼 나도 무서운 사람이 될 수 있어요?”

“당연하지! 우리 하영이는 뭐든지 할 수 있어!”

고길자 여사는 손녀의 손을 꽉 잡고 거실로 향했다.

거실 한쪽 구석,

쿠션 위에서 낮잠을 자고 있던 멍군이가 눈을 떴다.

“끙…”

중형견 크기의 누렁이 잡종견 멍군이는

하품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자, 하영아. 저기 멍군이 보이지?”

“네.”

“오늘 네가 멍군이에게 카리스마를 보여줄 거야.”

“멍군이에게요?”

하영이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할머니, 근데 멍군이는 제 친구인데요…”

“친구라도 가끔은 호통을 쳐줘야 해! 그래야 말을 잘 듣는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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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자 여사는 하영이를 멍군이 앞에 똑바로 세워놓고 지시했다.

“자, 허리에 손을 얹고!”

하영이가 작은 손을 허리에 올렸다.

“그래, 잘했어. 이제 인상을 써봐. 무섭게!”

“이렇게요?”

하영이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무섭기보다는 귀여웠다.

“음, 좀 더 세게! 그리고 손가락으로 멍군이를 가리키면서 야단을 쳐봐!”

“야단을요?”

“그래!”

하영이는 떨리는 손가락으로 멍군이를 가리켰다.

“멍… 멍군아…”

“아니, 그게 무슨 야단이야! 더 세게!”

“멍군아! 나쁜 개!”

그런데 멍군이는 그저 혀를 쭉 내밀고 헥헥거리며 꼬리를 흔들 뿐이었다.

“끙끙!”

마치 ‘뭐 재미있는 쇼 하네?’하는 표정이었다.

“아이고, 이건 안 되겠네.”

고길자 여사는 한숨을 쉬며 하영이를 옆으로 물렸다.

“내가 직접 시범을 보여줄게. 잘 보거라!”

그녀는 소매를 걷어붙이고 멍군이 앞에 섰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허리에 손을 얹고. 인상을 잔뜩 쓴 다음—

“이 멍청한 녀석아!!!”

코끼리 소리 같은 고함이 터져 나왔다.

“따뜻한 곳에서 재워주고!”

손가락으로 멍군이를 콕콕 찔렀다.

“맛있는 거 갖다주고!”

또 찔렀다.

“산책도 시켜주면!”

한 번 더 찔렀다.

“말을 잘 들어야 할 거 아냐! 응?!”

그 순간이었다.

으르르르릉...

멍군이의 입에서 낮고 위협적인 소리가 흘러나왔다.

“어?”

고길자 여사의 움직임이 멈췄다.

멍군이는 이빨을 드러낸 채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평소의 순한 표정은 온데간데없었다.

눈빛마저 달라져 있었다.

으르르르르...

“억…”

고길자 여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저, 저기… 멍군아… 할미가 잘못했다…”

으르르르르릉!!!

멍군이가 꼬리를 뻣뻣하게 높게 세웠다.

“으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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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자 여사는 비명을 지르며

손녀를 낚아채서 안방으로 후다닥 도망쳤다.

쾅!

문을 닫는 소리가 요란했다.

안방에서 할머니와 손녀가

문에 등을 기댄 채 헥헥거리고 있었다.

고길자 여사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역시 요즘 개들은 버릇이 없어… 옛날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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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그때였다.

하영이가 할머니 앞에 섰다.

그리고 작은 손을 허리에 얹었다.

“어?”

고길자 여사가 고개를 들었다.

하영이는 인상을 쓰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손가락으로 할머니를 가리키며—

“이 할망구야!!!”

“뭐, 뭐?!”

고길자 여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개는 살살 달래야지!”

손가락질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소리치면 어떻게!”

콕콕!

“멍군이가 화났잖아!”

콕!

“할망구가 잘못한 거야!”

마지막 일침이었다.

고길자 여사는 입을 쩍 벌린 채 손녀를 바라보았다.


그날 이후 고길자 여사는 멍군이를 볼 때마다

조금 조심스러워졌다고 한다.

그리고 하영이 앞에서는 더욱 조심스러워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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