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퍼케이션 하세요

by 이진무


“데퍼케이션 하세요!”

건강 용어인 줄 알고 동네에 전파한 고 여사.

알고 보니 그건 ‘똥 싸는 것’이었다?!

헬스장부터 병원 원장님까지 민망함 폭발!

고 여사의 좌충우돌 일상 코미디.




봄이 되니 고길자 여사는

편의점 구석 쿠션 의자에 축 늘어져 있었다.

겨울 내내 괴롭히던 무릎 통증도 이제 제법 나아져서,

요새는 동네를 한 바퀴씩 도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오늘도 산책을 마치고 돌아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문득 카운터 쪽을 보니,

알바생 미영이 손님이 앞에 있는데도

책에 얼굴을 박은 채 꼼짝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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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은 음료수 하나 들고 어색하게 서 있었다.

고 여사는 참다못해 코끼리 소리를 내뿜었다.

“야! 미영아아아! 뭐 하니?”

“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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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영은 책에서 고개를 번쩍 들더니,

눈앞의 손님을 발견하고는 화들짝 놀라 계산을 시작했다.

‘삐삐삐’ 소리와 함께 재빨리 계산을 마친 미영은

손님이 나가자마자 고 여사를 쏘아봤다.

“뭐예요? 갑자기 그렇게 크게 소리 지르면 어떡해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잖아요!”

“가게에 나왔으면 일을 해야지,

책만 보고 있으면 어떡하자는 거야?

여기가 도서관이야, 편의점이야?”

“에이, 조무사 시험이 얼마 안 남았다니까요. 좀 봐줘요.”

“도대체 뭘 보는 거야?”

고 여사는 슬금슬금 미영에게 다가가서 책을 훔쳐봤다.

표지에는 ‘기초간호학’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데퍼케이션(Defecation)이라는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한 단어가 눈에 띄었다.

그 옆에는 ‘소화 과정에서 ……

체외로 배출되는 생리적 과정이다.’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중간 부분을 미영이 형광펜으로

시뻘겋게 칠해놔서 잘 안 보였다.

하지만 고 여사는 보이는 부분만 읽고 생각했다.

‘아하! 체외로 배출? 그럼, 다이어트 용어구나!’

요새 텔레비전만 틀면

디톡스니 클렌징이니 하는 말이 끊임없이 나오지 않던가.



고 여사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물었다.

“미영아, 이거 어떻게 발음하니?”

“이거요? 데퍼케이션이요.”

“뭐라고? 다시 한번 천천히 말해봐.”

“데-퍼-케-이-션요. 그런데 사장님이 이걸 알아서 뭐 하게요?”

“뭐하긴? 나는 그냥 네가 제대로 알고 있는지 시험해 본 거야.”

미영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그러려니 하고 그냥 지나갔다.


그날부터 고 여사의 '데퍼케이션' 전도 활동이 시작됐다.

헬스장에 갔다가 러닝머신을 뛰던 아줌마들에게 말했다.

“아, 그거 알아요? 데퍼케이션이라고 있어요.

열심히 운동하면 체내의 불순물이

체외로 배출되는 생리적 과정이에요.

여러분도 데퍼케이션 할 수 있도록 열심히 운동하세요!”

아줌마들은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고 여사는 아는 척에 신이 나서 계속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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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손님이 이온음료를 사러 오면 말했다.

“운동하고 나서 데퍼케이션을 꼭 하세요. 그게 그렇게 좋데요.”

“…네? 뭐라고요”

손님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갔다.

미영은 옆에서 코웃음을 치면서도,

시험공부에 정신이 팔려서 고 여사를 그냥 내버려뒀다.


그러던 어느 날, 박 원장이 편의점에 들어왔다.

항상 말끔한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다니는 개인병원 원장님.

고 여사 눈엔 ‘있어 보이는’ 사람이었다.

고 여사는 박 원장을 보자마자 번쩍 일어났다.

고 원장에게 제대로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

박 원장이 그녀를 ‘편의점이나 하는 무식한 아줌마’라고

우습게 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원장님! 오랜만이에요.

근데 오늘 안색이 안 좋으신 것 같은데요?”

“아, 요새 조금 바빠서요. 환자가 많아서…”

“그럼 데퍼케이션 좀 하시지 그래요?”

박 원장의 얼굴이 미묘하게 굳었다.

“…데퍼케이션요?”

고 여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네! 체내의 불순물이 체외로 배출되는 생리적 과정이잖아요.

요새 건강 프로그램에도 많이 나오던데,

원장님은 의사신데 그것도 모르세요?”

박 원장은 잠시 침묵하더니,

얼굴이 살짝 붉어지며 말했다.

“아… 맞는 말이긴 한데,

그걸 대놓고 말씀하시기는 좀 그렇지 않나요?”

옆에서 미영이 안절부절못하며

고 여사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하지만 고 여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신이 나서 말을 이었다.

“왜요? 이건 매일 규칙적으로 하면 좋은 거예요!

물론 내키면 수시로 할 수도 있겠죠.”

“수… 수시로 한다고요?”

박 원장의 목소리가 이상하게 떨렸다.

“그럼요! 수시로 힘을 내서 한다면 운동도 되고 일석이조죠.

저도 요새 무릎이 나아서 매일 하고 있어요!”

박 원장은 눈을 깜빡이더니 이마를 짚었다.

“뭐… 자주 앉았다 일어났다 하면 다리 운동은 되겠죠.

그런데 너무 똥을 자주 싸면 좋지 않아요.

장에 수분이 부족해지거든요.”

“…예?”

고 여사의 얼굴이 굳었다.

박 원장이 결정타를 날렸다.

“데퍼케이션. 그거 똥 싸는 거 아닌가요?”

“…뭐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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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원장은 배를 잡고 웃으며 편의점을 나갔다.

고 여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미영을 돌아봤다.

“미… 미영아. 데퍼케이션이… 뭐라고?”

미영은 한숨을 푹 쉬더니

기초간호학 책을 펴서 고 여사 눈앞에 들이밀었다.

‘배변(Defecation)이란 소화 과정에서 형성된 대변이

직장을 거쳐 항문을 통해 체외로 배출되는 생리적 과정이다.’

아까는 형광펜에 가려져서 안 보이던 글자가

지금은 또렷하게 보였다.

고 여사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 그럼 내가 그동안…”

“네. 동네방네 ‘똥 싸세요’ 하고 다니신 거예요.”

“헬스장에서도…?”

“네.”

“편의점 손님들한테도…?”

“네.”

“심지어 박 원장님한테 ‘수시로 힘내서 똥 싸세요’라고…?”

“네에에에.”

고 여사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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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저녁, 고 여사는 집에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하루 종일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헬스장에도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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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길자 여사의 배꼽 빠지는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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