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을 함께한 친구의 죽음을 묵도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때 문득 꽃이 보였다.
친구가 꽃을 유난히 사랑했던 사람이라서 그랬을까.
꽃은 분명 늘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이상하게 오늘에야 눈에 들어왔다.
조문객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그가 얼마나 좋은 사람이었는지.
세상이 얼마나 아까운 사람을 잃었는지.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그들의 눈에도 이 꽃이 보일까.
꽃은 더러운 길가에 피어있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오가는 사람들의 온갖 욕설을 들으며,
고작 한 줌의 햇살을 간절히 갈구하고 있었다.
친구가 얘기했던 적이 있었다.
갖가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옛 사찰을 함께 돌아보자고.
나는 웃으며 쓸데없는 일이라고 대답했었다.
발밑의 꽃보다 눈앞의 이상이 더 소중하다고, 당당하게 말했었다.
그때 친구는 절망적인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계곡을 거니는 메아리처럼 길고 긴 한숨을 토해냈다.
그것이 친구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그런데 지금, 꽃이 보인다.
친구의 환영이 나타나 이상은 멀리 있지 않다고 말하듯,
손가락을 곧게 펴고 꽃을 가리키는 것 같았다.
다시 보니 하늘 끝의 별과 눈앞의 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직도 의심과 두려움이 심장 한편에 남아있어서,
겉으로는 부정하고 싶지만,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었다.
나는 길가에 오래 서 있었다. 꽃처럼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아, 정말. 꽃이 이렇게 눈에 들어올 줄은 몰랐다.
한때는 쉼 없이 달릴 때가 있었습니다. 꿈을 말하면 세상이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았습니다. 가슴 속 이상을 향해 호탕하게 외치며 모든 걸 손에 넣을 수 있을 거라 믿던 시절이 있었죠.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것들을 돌아봐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늘 ‘조금만 더’하고 미뤄두었습니다. 그사이 소중한 사람들은 하나둘 내 곁을 떠나갔고, 문득 혼자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행복은 늘 가까이에 있다고 말하곤 합니다. 그 말이 틀리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정작 우리는 그 가까이를 보지 못합니다. 꽃이 눈에 들어오는 순간은 어쩌면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나버린 뒤인지도 모릅니다.
젊음의 패기는 원래 주변을 잘 보지 못하게 합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 바빠 놓치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게 잘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머뭇거리면 한참 뒤처지는 세상이니까요.
다만 마음이 메말라 버리지 않을 만큼 모든 것을 놓아버리지 않았으면 합니다. 비록 아주 작은 꽃 한 송이일지라도 가꾸며 살아가는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 작은 꽃이, 우리가 너무 늦기 전에 행복이 어디 있는지 알려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