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시보의 시작
교사 시보 들어가기 얼마 전쯤, 거의 마지막으로 방송합창단원들과 무대에 섰다.
초등학생 대상 합창 체험 교육 프로그램으로 정단원들이 여러 학교를 방문해서 몇 주간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동요들을 여러 성부로 나누어 가르치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로 여기에 참가한 모든 학교의 학생들을 필하모니에 초대해 합창단원들은 무대에서, 초등학생들은 객석에서, 지휘에 맞추어 다 함께 화음이 어우러지는 연주를 하는 프로젝트였다.
나는 정단원이 아니라 학교에 가서 미리 아이들을 만나지는 못했고, 합창단원들과만 연습 후 바로 무대에 섰는데 그 큰 객석이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독일에서 이렇게 많은 수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본 적이 없었다. 저학년 아이들은 앉은키가 얼마나 작은지 머리가 의자 등받이를 넘어서지 못해 머리 위에 등받이의 테두리가 다 보이고, 다리는 바닥에 닿지 않아 공중에 붕 떠서 흔들흔들하고 있어 신발이 다 보였다. 수도 없이 필하모니 무대에 섰지만 이렇게 작은 사람들이 객석에 꽉 찬 모습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고학년 아이들도 간혹 있었는데 모두 선생님들의 지도 하에 조용히 앉아있었다.
"Der Mond ist aufgegangen (달이 떠올랐어요)"라는 제목의 저녁 노래를 첫 곡으로 콘서트가 시작되었다. 이 곡은 아주 유명한 저녁기도 풍의 자장가로 달빛 아래 조용한 밤, 하루를 마무리하며 평화와 감사를 노래하는 동요다. 유명하기로 치면 우리나라의 '고향의 봄'이나 '반달' 정도로 어린이나 어른이나 모두 외우는 국민동요였다.
[여기서 동요를 들어보실 수 있습니다](유튜브 URL)
반주가 시작되자 그 수많은 아이들이 그동안 열심히 배운 노래를 잘 불러보려고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휘자를 쳐다보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시에 아름다운 선율, 거기에 더해진 아름답고 순수한 목소리... 콘서트홀의 조명은 무대에 더 강했지만 객석이 아름다운 아이들의 눈동자와 목소리로 더욱 반짝반짝 빛났다. 달이 떠오른 밤하늘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
나는 순간 함께 노래를 부르는 음악적 파트너가 아니라 아름다움에 홀린 관객이 되어 목이 메어버렸다.
객석에 꽉 찬 어린 학생들의 진심 어린 떼창을 들으며 앞으로 저렇게 예쁜 아이들을 가르치게 될 거라는 생각에,
'내가 애들을 좋아하니까 애들을 한두 명도 아니고 이렇게 떼로 주시려고 나에게 아이를 안 주시고 학교로 보내셨구나...'라는 갑작스런 깨달음에
감사와 감격이 벅차올라 마음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쏟아졌다.
얼굴은 금세 눈물이 범벅이 되었지만 행복해서 입꼬리가 내려가지 않았다. 환한 미소를 가득 품고 떨리는 목소리로 끝까지 함께 노래했다.
아름다운 음악 속에 갑자기 모든 것이 이해되고, 위로받는 순간이었다.
'앞으로는 저 아이들이 내 아이들이구나...'라는 생각을 그때 처음으로 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함께 고요한 눈빛으로 그 노래를 함께 부르는 선생님들께로 시선이 옮겨졌을 때, 그분들의 아우라에서 전해지는 사랑과 희생 앞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격으로 내 마음이 경건해졌다. 내 자리는 여기 무대가 아니고 저기인 것 같았다.
왜 내 삶이 이렇게 흘러왔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2017년 8월. 드디어 교사시보가 시작되었다.
이전 글에서 밝혔다시피 이 시기는 내 인생에서 난이도 최상급의 제일 힘들고 험난했던 시기이다.
(이전 글 참조하고 싶으신 분은 여기를 클릭해 주세요: [공부에 매달리기])
독일에서의 교사시보는 한국에는 없는 교원 양성 시스템이다.
대학교 때 교직이수로 제1차 국가 교원 시험을 마친 사람이 1년 반 동안 한 학교에 배정되어 멘토 선생님의 조언을 받아가면서 일주일에 7-10시간은 자율적으로 학급을 맡아 수업을 하고,
동시에 교육청에서 주도하는 '교직 전반 세미나', '음악과목 세미나', '종교과목 세미나'에 각각 3시간씩 참석한다.
그리고 나머지 시간은 수업을 준비하거나 노련한 선생님들의 수업을 청강하고 세미나에서 내주는 과제를 해야 하는 실무 중심 연수 과정이다.
내가 배정받은 학교는 내가 사는 도시에서 가장 잘 사는 동네에 있는 초특급 엘리트 김나지움이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교사시보 연수를 수용할 수 있는 학교 중에서 과목 콤비네이션이 맞는 경우를 행정적으로 묶어 순환 배정받게 되는 것이다.
배정직후 출근 2주 전에 교장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어서 학교에 갔는데 귀티가 줄줄 흐르고 인텔리 같은 인상을 주는 아이들과 선생님들을 보고 괜스레 기가 죽었다. 선생님께선 교사시보 연수의 막바지에 치러질 제2차 국가 교원 시험을 보려면 고등학생 한 클래스, 중학생 한 클래스를 가르쳐야 한다고 11학년과 7학년에 배정해 주셨다. 독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나로서는 여기 아이들이 음악시간에, 그리고 종교시간에 뭘 배우는지 알 길이 없어서 "뭘 가르쳐야 하나요? 교과서가 있나요?" 하고 물었다. 그때 그 카리스마 넘치는 여 교장선생님의 눈빛과 정적을 잊을 수가 없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오는 메릴스트립이 패션에 패자도 모르는 앤 해써웨이를 바라보던 그 표정과 아주 흡사했던 것 같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어디서 이런 게 굴러들어 왔어?!... 뭘 가르치냐고?!...'
2초의 침묵과 정지동작에 날카로운 눈빛으로 날 응시하신 후 진정하신 교장 선생님은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시·도 교육청이 제시한 음악 교과 교육과정을 보세요. 정해진 교과서는 따로 없어요. 선생님이 교육 과정에 맞춰서 재량껏 자료를 만드시면 돼요. 멘토선생님들 연락처를 드릴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그리로 연락하세요."라고 하시며 다음 약속이 바쁘신 듯 나를 문 앞으로 배웅해 주셨다.
정해진 교과서가 없다는 것은 독일에서 교육받은 교사에겐 자유를 의미하지만, 나에게는 맨땅에 헤딩하기를 의미했다.
집에 가서 얼른 교육부 홈페이지에서 음악 교과 교육과정을 찾아보고, 독일에서 학교를 나온 독일친구들에게 중고등학교 때의 음악수업에 대해 물어보다가 내가 생각했던 음악수업과 너무 달라서 충격을 받았다. 내가 생각하던 음악수업은 약간의 이론과 음악사, 나머지는 합창, 노래, 악기합주등 신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는데, 독일의 고등학교 음악수업은 그런 게 아니었다. 가곡을 공부해도 그걸 부르는 게 중심이 아니라 화성적, 선율적, 리듬적으로 분석하고 시가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되었는지, 음악사적인 지식과 연결시켜 그 예술성을 평가하게 하는 토론식 수업이었다.
노래도 클래식 곡들만 있으면 참 좋으련만 동요, 팝송도 수업의 내용에 포함되었다. 선생님이라면 그런 레퍼토리를 두루두루 알아야 하는데 나는 팝송 문외한. 독일 유명 노래 문외한이었다. 악보는 금방 읽을 수 있지만 그 수많은 가사와 노래의 탄생 배경들은 언제 다 익힌담... 그들에겐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모두 새로운 것이었다. 맨땅에 헤딩의 연속이었다.
게다가 음악을 역사와 사회적 배경 속에, 다양한 문화적 배경 속에 탐구하는 것도 국정 커리큘럼에 포함되는데 이건 뭐 음악이 아니라 음악학, 미학, 사회학, 역사, 세계 각국의 음악이 다 조합된, 공부해도 공부해도 끝이 없는 방대한 과목이 되어버렸다.
음악으로 수능을 볼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음악을 수능과목 중 하나로 선택한 경우 과제가 가관이다. 음악사, 화성법, 대위법적 지식을 가지고 주어진 작품을 분석하고, 음악 비평문이나 작곡법 토론등 음악과 관련된 텍스트를 놓고 철학적 에세이를 써야 한다. 음악사도 고대 중세부터 시작해서 노트르담 학파 다성음악의 발전과정, 네우마 악보, 교회선법 분석등 수준이 높아도 너무 높았다. 내가 독일에서 음대 최고 연주자 과정으로 들어갔을 때 대학교 1학년 학생들이 내가 대학에서 배운 것들을 다 알고 있길래 놀라며, 여기가 좋은 학교라 그런가 보다 했는데, 이 아이들은 우리가 음대나 들어가야 배우는 어렵고 깊은 내용들을 '음악과목'을 선택했을 경우 김나지움에서 이미 다 배우는 것이었다.
나름 그런 이론들에 강한 편이었는데도 공부한 지 오래되어서 거의 다 잊어버렸고, 다시 찾아보니 참 어려웠다. 그런 것들을 독일어로 배워본 적도 없고, 어디서부터 어떻게 아이들 수준에 맞게 가르쳐야 할지도 몰랐다. 완전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온갖 책들과 교사용 지도서를 보며 연구하고, 이론을 설명해 놓은 비디오들을 여러 플랫폼에서 찾아서 보면서, 내가 알고 있는 한국어 전문 용어들을 독일어로 어떻게 표현하는지 관찰하며 열심히 받아 적었다.
그렇게 열심히 몇 날 며칠 밤을 새워 사태파악과 급한 불 끄기를 한 후 학교에서 아이들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리고 여러 가지 문화적 충격에 빠진다.
얘들은 복도에서 아는 선생님을 봐도 인사를 안 한다. 나 혼자 허공에 인사를 하기가 일쑤다. 우리나라 아이들이 새로운 선생님, 젊은 선생님을 좋아하고 관심을 받으려고 애교 부리는 강아지 같다면 얘네들은 '쟤가 누구지?' 하고 일단 관찰하고 경계하는 고양이 같았다. 교생실습에서 받았던 사랑과 관심집중과는 완전히 다른 문화였다. 젊은 선생님이라고 무조건 좋아하는 건 없다. 오히려 경험 많고 힘 있는 선생님을 좋아한다. 뭐를 해도 되고, 뭐는 하면 안 되는지 경계를 확실하게 그어주고, 하지 말라는 것을 했을 때는 그에 따른 조치를 취하고 일관되게 대응하는 교사를 좋아한다. 우리나라도 무서운 선생님이 은근 인기 있듯... 나도 그런 걸 좀 잘하고 싶은데, 뭐 경험이 있어야 규칙제공을 하든지 말든지 하지... 그리고 규칙을 어겨도 나는 우리나라 사람답게 정이 많아 '에이, 그래... 괜찮아... 한번 봐주지 뭐...' 그러다가 교사로서의 권위를 잃어버리고 무시당하기 십상이었다.
또 학습능력이 뛰어나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아이들이 가끔 잘난 척을 하고, 나에게 '선생님, 그거 알아요?' 하며 어려운 내용을 내가 알고 있는지 테스트를 할 때, 그런 태도는 공손하지 못하고 빨리 따라가고 있지 못하는 학생들에게 위화감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서, 그냥 '그건 다음에 할 거다. 지금은 아직 이해 못 한 아이들을 돌봐줘야 해.'라고 얘기하곤 했다. 그러면 "하핫! 저 선생님 이거 모르나 봐."라고 얘기하는 듯, 지네들끼리 쑥덕거리고 눈을 위아래로 훑고, 입을 비죽거리면서 나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학습능력이 빠른 아이들은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많고, 진도가 너무 느리면 지루해하기 때문에, 많이 칭찬해 주면서 "어머, 너희들 너무 대단하다~~! 너희들은 이거 다 아니까, 조오기 가서 다른 거 해." 하며 재미있는 추가과제 하나를 더 주면 간단히 해결되는 건데, 그땐 그런 기술이 없어서 그들의 미움을 폭삭 받았다.
그리고 내가 학교 다닐 당시엔 아파서 학교에 못 오시는 선생님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여기선 선생님도 좀 아프면 병가를 수시로 낸다. 그럼 서로 돌아가면서 수업 땜빵하기를 해줘야 하는데, 내가 가르치는 학급이 아닌 곳에 들어가면 정말 힘들다. 그땐 내 수업 하나 준비하기도 헉헉 거릴 땐데, 땜빵용 수업 레퍼토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내가 잘하는 노래를 함께 배워보는 걸 주로 했는데, 한 번은 내가 준비한 노래가 맘에 들지 않았던 어떤 9학년 학급에 들어갔다가 봉변을 당하고 말았다.
이 중 3 나이의 아이들이 갑자기 경험 없는 초보 선생님이 와서 버버거리자 동심의 세계로 돌아가서 난장판을 벌이기로 결심한 거다. 갑자기 바닥에 드러누워서 수영을 하지 않나, 교실 안을 활보하며 잡기놀이를 하질 않나, 칠판에, 그리고 지네들끼리 젤리를 던지고 주고받질 않나, 지우개로 공놀이를 하지 않나, 내가 조용하라는 말은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아수라장이 되어 젤리와 지우개와 신발이 공중에 날아다니고 있었다. 울면서 교무실에 내려온 나에게 그 학급 담임선생님이 위로를 해주시며, 그 아이들을 엄하게 혼내시고, 나에게 사과를 하게 하시면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나에겐 '9학년'과 '땜빵수업'에 대한 트라우마가 생겨버렸다.
우리나라의 음악수업이 정서함양 중심의 교육, 객관식문제와 가창, 실기시험이 주를 이뤘다면 독일에서 가창평가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예전에는 그런 시험이 있었다는데 그 후로 노래에 트라우마가 생긴 사람들이 많아서 없어졌다고 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춤에 대해서는 망설임이 없는데 노래에 대해서는 굉장히 부끄럽고 수줍어한다. 혼자 앞에 나가 노래를 하게끔 시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금기였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한 명씩 나와서 춤추라고 하는 것과 비견할 만큼 개인의 수치심을 자극하는 정서적 폭력에 가까운 행위로 여겨졌다.
놀라운 것은 '춤', '무용'이 체육교과에 해당하지 않고 음악교과에 해당한다는 사실이다. 별로 흥이 없고, 수학여행 때 반장이 앞에 나와 춤춰야 했던 그 순간이 세상에서 제일 싫었던 내가 아이들에게 '춤'을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잘 알지도 못하는 왈츠, 폭스트롯, 라틴댄스, 표현주의 무용 등... 오 마이갓... 열심히 인터넷을 검색하고 유튜브 앞에서 혼자 춤을 배운다.
정말 산 넘어 산이다.
시험도 객관식이 아니다. 5학년에서 10학년까지는 주관식이 주를 이루고 객관식은 몇 개 보너스로 들어간 30분짜리 테스트형 시험을 본다. 채점이 오래 걸린다.
11학년과 12학년은 '음악기본코스' 선택 시 90분짜리, '음악심화코스' 선택 시 135분짜리 에세이형 논술시험을 본다.
엘리트학교에 음악 특성화학교라서 오케스트라 악기를 하나씩 다 연주한다. 똑똑한 데다 음악경험도 많으니, 애들이 한번 가르쳐주면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나보다 더 많이 알고 수려하게 글을 쓴다. 나는 다행히도 기본코스만 맡았는데 90분의 시험이 끝나면 적게는 4장에서 많게는 7장까지 빽빽이 손글씨로 적은 답안 20개가 내 손안에 들어온다.
시간에 쫓겨 갈겨쓴 손글씨를 크게 눈을 뜨고 몇 번을 봐가며 채점을 한다. 봐도 봐도 무슨 단어인지 모르겠는 게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럴 땐 악필인 남편에게 쪼르르 달려간다. 손으로 쓴 건지 발로 쓴 건지 도대체 알 수 없는 그 글씨들을 남편은 동무끼리 잘도 알아보고 읽는다. 암호해독이 끝나면 다시 채점을 한다. 그런 논술형 채점은 아이들의 사고력 향상에 좋을진 몰라도 선생님이 죽어난다. 한국의 OMR 지 객관식 시험이 그립다. 나의 무지와 경험부족으로 채점하는데 한 학생당 두세 시간이 걸린다. 게다가 문법체크도 하란다.
미쳐버린드아...
음악부장선생님께 면담을 요청했다. 문법체크를 정말 해야 되는지... 쉼표 잘못 넣은 것이나 대소문자 구별정도는 괜찮지만 모국어가 아닌데 내가 그 미묘한 실수들을 어떻게 다 첨삭할지 막막해서였다.
선생님은 일단 만나자마자 할만하냐고 물으시며 내 프로필을 보시고, 애들 가르쳐본 적이 있냐, 합창지휘는 해본 적 있냐 물어보셨다. 내가 고등학교 수업으로 너무 힘들어한다는 것을 교장선생님께 들으시고, 합창단을 맡겨 자신감을 주고 싶으셨던 것 같다. 사실 합창단에서 많이 노래는 했지만 지휘는 해본 적이 없었다. 새로 공부할게 끊임없이 나와서 위축되어 있던 나는 그 많이 해본 합창단도 무서웠다.
"애들 레슨을 해본 적은 있지만 학급에서 가르쳐본 것은 한국에서 1개월 교생실습한 것 전부이고, 합창은 많이 해봤지만 지휘는 못해봤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렸다. 음악부장 선생님도 교장 선생님처럼 잠시 몸이 굳은 채 침묵을 하시며 눈길을 바닥으로 떨구셨다. 눈빛이 꼭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아이고, 너 어쩔라고 이런 걸 시작했니? 경험도 하나 없으면서... '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서 창피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험채점 중 문법체크에 도움이 필요하다는 나의 말에,
"근데 미안하지만 우리도 채점할 게 너무 많아서 시간에 쫓겨요... 이런 걸 다 도와줄 시간이 없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채점에서 언어교정은 빠뜨려서는 안 되니, 교육부에 외국인 교사를 위한 서포트나 혜택이 있나 알아보라고 하셨다.
오, 주여...!
아주 간단한 독일어 표현조차 써본 적이 없어서 벙어리같이 바보같이 느껴질 때가 허구한 날이었다. 예를 들어서 "의자를 책상에 올려라. 책상에 밀어라. 칠판에 있는 걸 받아 적어라. 앉아라, 밑줄을 쳐라, 조용히 해라." 그런 명령문들은 아주 사소하고 쉬운 것 같지만 학교에서나 쓰는 말이지 일상에서 쓰는 말들이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하면 되겠지...' 해서 말을 뱉었다 하면 원어민들이나 아는 작은 실수들이 남발되었다.
멘토선생님 중 한 분은 외국인이 하나도 없는 이 잘 사는 동네에 사셔서 독일말하는 외국인을 난생 처음 보셨는지, 내가 하는 말을 사사건건이 수정하시며 "너 독일 온 지 얼마 안 되었지? 정말 티가 난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그래도 이런 표현은 교사로서는 바르게 해야지."라며 나를 독일어 정말 못하는 갓 독일에 온 사람 취급하셨다. 내가 이래 봬도 어학원과 대학교에서는 외국인들 중에는 따봉이었는데... 속으로 '저기, 딴 동네 가보세요. 외국인들이 독일어 어떻게 하는지...'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남편과 살다 보니 편하게 아무렇게나 말하는 게 익숙했는데, 멘토선생님의 그 세심한 지적들이 반복될 때마다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거의 원어민 수준에 해당한다는 C2 시험도 우수한 성적으로 통과했는데, 그런 거 여기선 다 소용없었고, 언어사용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교사로서 기대되는 독일어의 수준은 외국인이라고 봐줄 것이 아니었다.
내가 독일어가 모국어가 아닌데 어떻게 완벽하게 하겠냐고, 그리고 이 학교 수준은 너무 높은 것 같다고 조심스레 말씀드리자, 그 미란다 프레슬리 같은 교장선생님은 "완벽해지도록 노력하세요. 하실 수 있어요."라고 나를 응원(?)해주셨다. ㅠ.ㅠ. 그리고 여기 김나지움 수준이 높은 게 아니라 독일 김나지움은 원래 이렇다고.
'ㅎㅎㅎ 몰라봐서 죄송합니다...'
내가 잘하는 것은 할 수 없고, 내가 못하는 것만 들이다 배워야 하는 현실이 너무 버거웠다.
하루하루 버티기 식으로 학교에 갔다 오면 한동안 소파에 시체처럼 누워있었다. 그러다 울었다. 감정표현에는 서툴지만 초예민한 안테나를 풀로 가동하며 살아가던 나는 그 당시 하루 종일 너무 많은 것을 느끼고, 상처받고 좌절하다가 집에만 오면 그렇게 눈물이 났다. 어떤 날은 멍하니 천장을 보다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조용히 눈물이 흘렀고, 어떤 날은 눌러놨던 게 터지듯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그렇다고 다 때려치우기엔 여태까지 공부한 게 너무 아깝고, 집을 대출받아 돈은 벌어야 되는데 다른 일로 어떻게 고정수입이 생길지도 막막했다. 진퇴양난이었다.
주 40시간 근무가 원칙인데 나는 자발적으로, 필연적으로 어쩔 수 없이 70-80시간을 일하고 있었다.
커피로 잠을 쫓으며 맨날 피곤한 상태로 버티다가, 다음날이면 또 좀비같이 출근을 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