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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Sep 16. 2021

이 기상과 이 몸으로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 민음사)를 읽고

“나이 먹으면 취향이 변하는 게 맞나 봐. 난 원래 운동하는 거 질색했는데.”

_『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김혼비, 민음사)    

      

  초등학생 시절을 생각하면 기억에 남는 거라곤 가을 운동회밖에 없다. 학교 생활이 그닥 재밌지도 않았고 무리지어 다니는 것에도 소질이 없었고 존재감 같은 건 제로에 가까워 내 짝과 앞뒤 친구 정도로 교실 내 인간관계는 한정되어 있었는데 그런 내가 부각되는 시절이 바로 운동회였던 것이다. 운동회 연습부터 당일까지 거의 한 달여의 기간이 1년 중 내가 가장 쌩쌩했던 시기였는데 달리기를 끝내주게 잘했던 나는 백 미터 달리기로 한 번, 이어 달리기로 한 번으로 반을 승리로 이끄는 주역이 될 수 있었다. 


  살면서 승부욕을 불태운 적이 별로 없었는데 당시에도 승부에 관한 집착보다는 작은 몸뚱이로 휙휙 달릴 때 공기를 가르던 그 순간의, 내 안의 무언가가 활짝 열려 이러다 날아갈 수도 있겠다 싶은 기분이 무척이나 자유롭게 느껴졌던 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고등학교 체력장 땐 철봉 오래 매달리기와 윗몸 일으키기를 월등하게 잘했는데 아마 내가 가지고 있던 일말의 승부욕이 있다면 그 때 다 불태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악착같이 했었다. 그리고, 몸을 쓰는 내 실력은 딱 거기까지였다.      


  맨 몸으로 하는 육상 종목은 그렇게나 펄펄 날던 사람이 공 앞에만 서면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졸아들었는데 피구는 심지어 제일 무서워하는 종목 중 하나였다. 아이러니 한 건 달리기 실력 때문에 그 좁은 사각 테두리 안에서 공 피해 도망가는 거 하나는 또 잘해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기 일쑤였는데 혼자 남아 나를 포위하고 있는 적(!)의 공과 마주하는 것이 그렇게 무서울 수가 없었다. 어쩌다 내게 공이 안겨들 때면(자발적으로는 절대 받지 않음) 던지는 족족 상대편이 사뿐하게 받아 나를 곧장 맞춰 죽이는 식이었다. 발야구는 차는 족족 파울만 났고, 볼링은 2년을 치고도 에버리지 두 자리수를 못 넘겨 재미없어서 관두었으며, 포켓볼 또한 아무리 해도 실력이 늘지 않았고, 테니스는 두 달 정도 포핸드forehand 자세만 연습하다가 관둔 이력이 있다. 그리고는 오랜 시간 운동이라고는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쌩쌩 달리던 기억도 저멀리 아스라하다. 


  공으로 하는 운동은 뭐든 나와 맞지 않는다고 단정했는데 몇 달 전부터 탁구를 배우기 시작했다. 나이 먹어가면서 체력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나와는 맞지 않다고 여겼던 구기 종목에 대한 징크스를 좀 깨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작가 김혼비가 내뿜는 축구에 대한 글들을 보고 있노라면 여자 축구를 직관해보고 싶다는 ‘뽐뿌’가 마구 밀려온다. 축구든 탁구든 삐걱이는 몸을 구장에 내어 놓고 싶다. 운동장 달리고 싶다.


2019. 11월



* 써두었던 글을 정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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