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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ug 31. 2021

너와 나의 공기인형

고레에다 히로카즈 <공기인형>

* 2015년 9월에 써두었던 글. 고레에다 감독의 산문집 『걷는 듯 천천히』 출간 직후 즈음의.


고레에다 히로카즈 <공기인형>

  고레에다 히로카즈. 최근에 산문집이 나왔다. 올 연말엔 신작 <바닷마을 다이어리>도 개봉될 예정이다. 부산 영화제에서도 상영될 이 영화는 예매 시작 후 2분 30초 만에 매진되었다는 소식. 추석 연휴. 일상이 흐트러지고 시간 개념이 이상한 형태로 뒤틀리는 그 어느 하루. 그의 필모그래피를 뒤적이다 <공기인형>이 다시 보고 싶어졌다. 그러니까 이 글은, ‘나(너)’에 대한 이야기다.


마음   영화 <달콤한 인생>의 인트로. 바람이 흔들리는 건지,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건지를 묻는 제자에게 흔들리는 것은 단지 네 마음 뿐, 이라는 선(禪)의 일화를 차용했던 장면. 그리고, 영화 <공기인형>의 노조미(배두나 배우). “나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거짓말을 했습니다.”


무분별(無分別)   기억이 선명하다. 나는 어릴 적 파리를 맨손으로 때려잡았다. 공벌레도 손으로 굴리며 놀았고 가을이 되면 갈대 위에 앉아있던 잠자리도 잡을 줄 알았다. 친구 집 2층 옥상 난간에 올라가 폭이 15cm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곳을 겁도 없이 마구 걸어 다녔었다. 말 그대로 천방지축 삐삐처럼. 그런데, 지금. 파리는 '더러워서' 맨손으로 잡지 못하고, 공벌레, 잠자리는 '징그러워서' 만지지 못하고, 옥상 난간은 '무서워서' 올라가지 못한다. 저런 델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녔다니. 어릴 적의 나는 '무분별'의 상태이고, 지금의 나는 '분별'력이 있는 사람이다.


  노조미는 섹스 대용품 공기인형이다. 알다시피 인형은 '사물'의 일환으로 생물과는 달리 온기조차 없는 존재다. 그런 공기인형에게, 마음이 생겨버렸다. 그리하여, 분별력이 생겨버렸다. 참말과 거짓말을 '분별'하게 되었고, 차가운 가슴에 사랑이 들어차게 되었다. 모두가 마음을 가졌기 때문이다. 저 많은 인간들은 공기인형처럼 텅 빈 존재가 되어가는데, 공기인형의 텅 빈 몸 속으로는 사람도 잃어가는 따뜻한 마음이 생기게 되는 이 아이러니.


소통   무슨 유행어처럼 흔히들 소통 부재라고들 한다. 소통의 수단들은 널려있는데 정작 온기는 사라져간다. 모두들 기계들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모두들 점점 더 외로워진다. 소통의 수단들이 되려 인간을 소외시키고 있다. 그 속에서 우리가 살아간다. 다들, 외롭게. 영화 속 히데오는 까탈부리는 인간이 싫어서 말 잘 듣는(?) 공기인형과 대화를 하고, 밥을 먹고,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외출을 하고, 섹스를 한다.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는 쓰레기 가득찬 방 안에서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는다. 삶에게 외면 당하고 있다. 아닌가. 그가 삶을 배제시키는 것인가. 


인드라망(Indra-net)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고 있는 말 중에 불교(중관학) 용어에서 나온 것들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다). 인드라망도 그 중 하나다. 주렴의 구슬 하나하나가 세상을 모두 비추고 있다는 말.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한 존재가 다른 존재를 비추면서, 비춰지면서 살아가는 것. '나'가 있기 때문에 '너'가 있다. 고독하지만 연대하며 살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사람 사이. 즉, '인(人) - 간(間)'이다. 영화 속에 삽입된 시에서도 언급하지만 생명은 모두가 결핍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서로가 그 결핍을 채우며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살 때 비로소 세상이, 삶이 풍요로워진다. 잊지 말자. 알든 모르든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존재임을.


2015. 9. 29



* 써두었던 글을 아카이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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