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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소 Aug 31. 2021

비스듬히 버티고 있는 벤치가 전합니다 "함께 견뎌보자"

사물이 전하는 말

* 2015년 말~2016년 초, 리스본 여행 당시 알파마 지구 비스듬한 언덕에서 보았던 벤치 입장에서 쓴 글.

사진이 어딘가 있을텐데 찾겠다는 의욕이 생기질 않아 글만 옮겨 둔다. 



  리스본 알파마 지구 어느 언덕 어느 골목. 내 위치란다. 나도 그 정도 쯤은 알고 있지.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을 두리번거리며 지나가. 내가 주로 보는 건 이 골목 사람들이 내다 거는 빨래의 가짓수나 종류 같은 것, 아이들이 숨바꼭질 하며 노는 것, 해가 골목에 널리고 밤이 그걸 또 거둬가는 것을 보는 것, 그런 것들이지. 특별할 게 없어.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지나가지 않는 걸 보니 너는 지금 내가 왜 이런 자세로 이런 위치에 자리 잡고 있어야 하는 건지 궁금한가 보구나. 


  음... 우선 내가 대답하기 전에 너에게 먼저 질문해볼게. 그렇게 물어보는 너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니? 너는 지금 왜 하필 거기에 그렇게 위치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넌 지금 어디로 가는 거야? 왜 이렇게 묻냐면, 사실은 나도 그걸 잘 모르기 때문이야. 모르겠어. 벤치,라고 함은 편히 앉아 지친 다리나 짐을 내려 놓고 걸음을 잠시 쉬어 가는 곳이잖아. 헌데 내 모습을 봐. 그런 기능으로만 보자면 난 아주 쓰잘데 없는 존재이지 뭐니. 나도 왜 내가 이런 모습으로 버티고 있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 왜 하필 나야? 왜 하필 이런 곳 인거지? 왜 하필, 왜? 


  기울어지는 쪽의 다리에 힘을 주고 반대쪽으로 힘을 분산시켜가며 쏟아지지 않기 위해 한사코 버티고 있는 것. 그게 내 전부야.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마찬가지. 나도 사랑받고 싶고 누군가의 체온을 느껴보고 싶고 도움이 되는 존재이고 싶어. 아무도 내게 오래 머물렀다 가는 사람은 없어. 함께 버텨야 하거든. 힘들거든. 사람들은 모르지. 모두가 잠들고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을 때---나는 똑바로 서서 걸어다녀 본단다. 때론 춤도 추지. 이 집 저 집 창문을 기웃거려 보기도 하고 누군가가 마시다가 버린 맥주병도 쥐어 보고 말야. 이렇게라도 버틸 수 있는 건 그 때문이지. 그런데 말야. 이런 말 해도 좋을 지 모르겠지만, 


  너도 한참을 기울어져 있구나. 나보다 더 쏟아질 것 같아 보이는 데 말야. 내 말 잘 들어봐. 미안한 말이지만, 사는 건 그저 이게 전부인 것 같아. 견디는 것. 버티는 것. 쏟아지는 나를 붙잡아 세워서 어떻게든 살아내야 하는 것. 누구나 제 뜻대로 안되는 게 있어. 내 몸인데도 내 의지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 네 마음인데도 네 뜻대로 되는 게 어디 있었니? 생각해보면, 내 것이라 할 만 한 건 거의 없는 것 같아. 우린 모두 갇힌 존재들이야.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언젠가 다시 만나자. 기다리고 있을 거야. 힘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다만 우리, 함께 견뎌보자.


2016. 1. 28



* 써두었던 글을 아카이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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