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KA Chiangmai Thailand by UTMB
작년에는 히맨을 만날 일이 많았는데, 그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열심히 뛰지? 산을 뛴다고? 평지도 힘든데 산을 어떻게 뛰지? 난 절대 트레일러닝 안 해야지.” 하지만 올해부터는 히맨을 졸졸 따라다니며, 결국 트레일러닝에 완전히 빠져버렸다. 올해만 트레일러닝 대회를 3개, 로드러닝 대회를 1개나 나갔다니, 지금 생각해도 믿기지 않는다.
처음에는 그냥 헬스장에서 러닝머신을 겨우 타던 나였다. 그러다 5월부터 본격적으로 로드러닝을 시작했다. RCNB(네이버 블로거들의 러닝크루!)에도 들어가고, 태백트레일 13k도 덜컥 신청했다. 원래 토요일에는 로드러닝 대회 일정이 별로 없어서 자연스럽게 트레일러닝을 선택하게 되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선택이 앞으로의 취향이 정해졌다. 생각해 보면 트레일러닝 대회가 내 인생 첫 대회였다. (2019년에 몽골에서 5k 대회를 나간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그냥 편의점 가서 밥 먹고, 화장실 들르는 데만 1시간 넘게 걸렸으니 대회로 치기엔 민망하다).
태백트레일 13k를 접수한 후, 올해 또 어떤 대회를 나가볼까 고민하다가, UTNP 얼리버드 기간이 딱 떠올랐다. 주저하지 않고 2 peaks를 접수하고, 옆에 있던 앵부리, 아재니까지 꼬셨다. 그렇게 6월에 접수를 마치고, 남산 막달리기에 꾸준히 참여하며 거리에 대한 두려움을 줄여갔다. 올해 초만 해도 5k도 버거워했지만, 매주 남산에서 달리다 보니 5k는 기본이고, 때로는 10k도 뛸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다.
막달리기에서 만난 러너분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로드에서나 트레일에서 달리는 팁부터 해외 대회 경험까지, 정말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도이인타논에 나가면 cp마다 과일이 풍성하다, 스포츠마사지가 장난 아니다, 여기 정말 사진 맛집이다 등. 그들의 의도 없는 자랑에 스스로 넘어간 나는 어느새 20k를 접수하고, 치앙마이행 항공권을 구매했다.
울주트레일나인피크의 2 peaks 대회는 여러 이유로 DNF(Do Not Finished)를 했다. 앞으로는 어떤 일이 있어도 내 인생에 DNF는 없을 거라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그렇게 마음을 단단히 먹고 도이인타논 대회에 임했다.
24k 코스를 5시간 49분 동안 걷고 뛰었다. 솔직히 말하면 대부분의 시간 동안 너무 힘들었다. 하지만 힘든 순간에도 즐거움이 더 컸다. “내가 이렇게 멋진 곳을 달리고 있다니!”라는 감격에 벅차오르기도 했다. 처음부터 기록보다는 완주를 목표로 했기에, 속도보다는 주변 풍경과 달리는 순간을 즐기며 나아갔다.
하지만 중간부터 더위에 지쳤는지 배는 고팠지만 아무것도 먹을 수가 없었다. CP에서는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음료만 마신 채 지나쳤다. 피니시 라인에 가까워질수록 체력이 고갈되어 걷다 뛰다를 반복했지만, 포토그래퍼와 사진 찍어주는 지인이 보일 때만 잠깐씩 뛰며 겨우 체면치레를 했다.
결국 피니시 라인을 통과했을 때는 벅찬 감격이 몰려왔다. 피니쉬라인에서 기다리던 준무님을 만나자마자 "죽겠어요… 토할 것 같아요…"를 반복하며 잔디밭에 털썩 주저앉았다. 레이스팩에 포함된 150바트짜리 푸드 쿠폰이 아까워 수박과 누들을 사 먹었지만, 결국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숙소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다.
이번 대회를 통해 다시 한번 느꼈다. 달리기를 하며 내가 정했던 한계를 하나씩 깨부수고 있다는 사실을. 5k도 힘들어하던 내가 10k를 넘어 하프마라톤을 완주하고, 이제는 산을 뛰어다니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뛰는 것보다는 걷는 시간이 더 길긴 하지만 말이다.
무엇보다도 트레일러닝이 좋은 점은 내가 정말 사랑하는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다. 달리기를 통해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한 단계씩 성장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활동이 자연에 미치는 영향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풀이 밟혀 죽고, 나무들도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내가 좋아하는 활동을 어떻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지속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트레일러닝의 또 다른 매력은 사람들이다. 사소한 질문에도 열 배로 돌아오는 관심과 답변, 그리고 그 속에서 느껴지는 진심이 매번 감동적이다. 트레일러닝에서는 특히 이런 정을 느낄 수 있는 일이 많다.
주로에서 누군가 넘어지면 뒤따라오던 사람들이 멈춰서 치료해 주거나 메디컬을 불러주는 모습은 정말 흔한 풍경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와준 뒤에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자신의 길을 간다. 기록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이들의 모습이 얼마나 따뜻한지 모른다. 대회 규칙상 다른 사람을 도와줬을 때 기록에 어드밴티지가 주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러너들은 그런 어드밴티지를 기대하지 않고 순수한 마음으로 돕는다. 이런 배려와 정이 넘치는 트레일러닝 문화가 정말 좋다.
이번 호카 치앙마이 대회는 단순한 레이스가 아니라 나에게 더 큰 성장과 깨달음을 준 시간이었다.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두고, 내 한계를 넘으며 새로운 목표를 세우게 된 계기가 된 이 경험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이 열정을 이어가되, 자연과 사람을 배려하는 러너로서 성장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