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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Feb 02. 2024

미운 우리 아빠, child

미운 우리 새끼를 보다가

인기 예능 <미운 우리 새끼>를 보다 보면 고정 패널들에게서 나의 아빠의 모습이 계속 겹쳐 보인다. 


위트 있고, 많은 상황에서 긍정적이지만 책임감은 확실히 적은


나의 미운아빠새끼. 


아버지이자 누군가의 남편으로 40년을 살았지만 여전히 유치하고 키치한 감각을 좋아하고, 옷 잘 입는 것에 신경 쓰고, 유행을 따라 하고 싶어 하는 나의 아빠. 그리고 사실은 내가 잘 모르는 게 아닌가 싶은 한 남자. 



          

사실 언젠가부터 계속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빠도 사실 아빠가 되기 싫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 아빠는 스물아홉에 결혼을 했고, 1년 뒤 내가 태어났다. 아빠는 서른에 아빠가 되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훨씬 어렸을 때 결혼을 했고, 1년 후 집안의 가장이 된 것이다. 


그 당시엔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다들 적당한 나이라고 생각했다는 걸 안다. 


하지만 아무리 미화해드리고 싶어도, 아빠가 적절한 가장의 노릇을 했다고 말해드릴 수는 없다. 표면적으로는 결혼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계속 가장이고, 아마 죽을 때까지 가장이시겠지만 가장이었던 순간보다, 그냥 가장 흉내를 낸 시간이 더 길지 않았을까 하는 게 괘씸한 딸년인 나의 추측이다. 


일단 이건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지만, 아빠의 성향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빠의 육아 스킬이었다. 이걸 스킬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말이다. 그 스킬이란 게, 자신에게 절대 육아를 맡기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건 바로 아기 던지기. 


엄마가 부엌일을 하기 위해 아빠에게 나를 맡겨놓으면 안 울 때는 잘 보다가, 울면 나를 이불 위에 휙 집어던졌다고 한다. 엄마가 놀라서 왜 애를 던지냐고 하자, 어쩔 줄을 모르겠는데 그럼 어떻게 하냐고 도리어 화를 내는 아빠를 보고 엄마는 이를 꽉 깨물며 아빠에게 육아를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아빠는 결혼하던 시점에 백수였고(이것도 이야기하자면 긴데, 뭐 어쨌든 넘어가자), 돈을 벌지 않는다고 해서 남자가 집에서 가사를 분담하는 시대는 아니었다. 물론 예외적인 분들도 있었겠지만(제발 있었다고 말해줘요.) 나의 아빠는 그런 남자가 아니었으므로 집안일을 전혀 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서른 살의 아빠는 돈도 벌지 않았고, 집안일도 하지 않았고, 엄마가 나를 낳자 육아도 돕지 않았다. 이 모든 건 여자의 일이었으니까. 엄마가 밥 해야 해서 잠시 애 좀 보라고 한 사이에 내가 울자, 아빠가 나를 던졌던 일은 엄마에게도 큰 충격이었다고 한다. 몇 번 주의를 줬지만 처음엔 그나마 좀 미안해했지만 시간이 지나자 아빠의 태도는 한결같았다고 한다. '그럼 니가 애 보든가.' 




중고등학교 때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땐 솔직히 믿지 않았다. 유머 감각 있고,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분위기를 유쾌하게 만드는 나의 아버지가 그럴 사람 같지 않았다. 


하지만 30년이 넘게 아버지를 겪어보니 알겠다. 아빠가 나를 던졌다는 엄마의 말이 사실이었겠구나. 내가 본 나의 아빠는, 상황이 좋을 때만 좋은 사람이었다. 뭐랄까. 문제가 생기면 직면하는 것을 싫어했다. 문제해결능력이 있고 없고를 떠나 상황이 나쁘면 가장 먼저 외면하고 입을 다물고, 심한 경우 그 자리를 피하는 게 아버지의 성격이었다. 자신의 생활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걸 인정하기 싫어하는 성격이랄까. 항상 '좋은 일'만 있기를 바라는 게 아빠의 마음 같았다. 사람 일이란 게, 항상 그럴 수 있는 게 아닌데도. 


이불 위에 던졌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주의를 줘도 엄마가 집안일을 하기 위해 자리를 비웠다가 내 울음소리가 들려 방으로 들어올 때마다 아빠가 나를 던지는 것을 본 이후 엄마는 아빠에게 절대 나를 돌보라고 맡기지 않았다고 한다. 


내가 겪고 느낀 엄마 역시 모성애가 강하신 분은 아니었지만(비난하는 건 아니다. 모성애도 재산과 비슷해서 많이 있는 사람 있고, 적게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최근에야 겨우 알았다. 어머니가 모성애가 강하면 감사한 일이겠지만, 없거나 적다고 해서 그게 엄마의 잘못은 아니다. 수많은 사회적 요인으로 인해 모성애가 고갈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모성애의 힘이라기보다는 연약한 아이를 저 남자에게 맡기면 다치게 할 것 같다는 두려움에, 이를 꽉 깨물고 혼자 육아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독박육아와 가난한 살림, 교묘하고 집요하고 반복되는 시집살이에 모성애는 어느새 휘발되고 말았을 것이다. 

엄마의 모성애는, 그렇게 인내심으로 바뀌어 다 소진되었을 것이다. 아마 이 엉망진창이고, 용서하기 힘든 집구석을 뒤집어엎지 않고 꼬박꼬박 참느라 그렇게 매일매일을 살아내느라 모성애라는 감정은 인내심으로 전환되어 모조리 다 사용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당겨 썼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와 든 생각이지만 나라면 밥상을 엎어도 두세 번은 엎었을 할머니의 시집살이를, 엄마는 용케도 견뎠다. 그 스트레스를 나한테 풀었다는 부작용이 있긴 했지만.  

    



아버지는 집에 있을 때보다 <미운 우리 새끼>의 남자연예인들처럼, 남자어른들과 있을 때 행복하고 유쾌하고 재미있어 보였다. 아빠 친구들, 혹은 친척들이 모인 자리에서 남자친척들과 함께 밉지 않은 허세를 부리며 농담 따먹기를 하는 아빠의 모습은 집에서보다 훨씬 행복해 보였다. 


뭐랄까. 가벼워 보인달까. 유쾌해 보인달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아빠도 <미운우리새끼> 속 그들처럼 결혼 안 하고(혹은 이혼하고), 애 안 낳고(혹은 양육비를 보내는 대신 아내에게 맡기고), 그냥 결이 맞는 친구들과 티격태격 친목을 다지며 혼자 사셨으면 그게 아빠에게 더 맞는, 더 자기자신다운 삶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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