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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an 25. 2024

행복에 대한 우리의 평행선

'아빠가 생각하는 여자의 행복'과 '여자가 느끼는 진짜 행복'

TV를 볼 때마다 아빠는 여자연예인들의 나이를 궁금해했다. 그러다가 내가 검색해서 나이를 알려주면 또다시질문을 이어가거나 당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지겹게 이야기하고는 했다. 


'쟤는 서른몇살인데 아직도 결혼을 안 했어?’

'하이고, 마흔 넘은 여자들은 그만 좀 나오게 해야 되는데.'

‘싹 다 아무하고라도 결혼시켜서 애 둘셋씩 낳게 해야 되는데.’


엄마나 내가 아빠랑 상관없는 사람이니 신경 쓰라고, 자기 앞가림 잘 하고 사는 사람들이고 아빠보다 돈 많이 버는 사람들이니 결혼을 하건 말건 아빠가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라고 아빠의 말을 저지하고, 듣기 싫기도 하지만 사고방식이 낡은 그런 말을, 그만하게 만들고 싶었지만 아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저런 애들 때문에 너네가 결혼을 안 하려고 하는 거야. 본보기로 쟤네들 자리 다 뺏고 다리몽둥이 분질러서 애 낳고 살림하게 해야 돼. 그래야 요즘 애들도 결혼하고 애 낳고 살지.”


이런 말 좀 그렇지만, 아빠가 무슨 자격으로? 


그리고 요즘 애들이 과연 그럴까?




그리고 언젠가부터 나는 걸핏하면 어느 정도 커리어를 쌓은 여자연예인의 나이를 물고 늘어지는 아빠가 지독하게 불편했다. 그녀들이 결혼해야 하고 애 낳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빠의 가치관도 불쾌했다. 


지금 활발하게 방송하는 30대, 40대 여자 방송인들은 20대에도 드문드문 활동을 하긴 했지만 뚜렷한 포지션이 아니라 떠돌이처럼 게스트로 잠시 나오는 정도의 역할이었다. 아마 밥벌이로는 택도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일이 하고 싶어도 아무도 써주지 않아 일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어코 이 바닥에 끈질기게 붙어서, 기어코 살아남아서,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십수년의 어려움을 견디고 견뎌서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냈을 것이다.


가끔 드라마에서 보면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딸의 행복을 바라면서 '좋은 짝을 만나게 해주려고' 하는 장면들이 나올 때가 있다. 그러면서 여주인공의 아버지는 중얼거린다. "우리 딸, 꼭 행복해져야 해."


나는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가슴이 답답하다. 


로맨스의 끝이 반드시 행복이 아니라는 건 어느 정도 연애를 해본 30-40대 성인이라면 대부분 알 것이다. 그런데도 드라마는 계속해서 '로맨스를 하면 행복해진다'를 공식처럼 세뇌시키려 한다는 생각이 든다. 로맨스든 뭐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면 행복하다. 그게 이성애 로맨스일 수도 있고, 그냥 1인 가구로 혼자 사는 것일 수도 있다. 다자연애인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쨌든 행복의 종류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단 한가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삶'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이다. 


나의 아빠는 어린 나에게 가끔 "아빠가 바라는 건 네가 행복한 것”밖에 없다고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전혀. 


아빠도 몰랐겠지만, 아빠가 바라는 건 나의 행복이 전혀 아니다.


‘아빠가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행복을 내가 행복이라고 믿길 바라는 것.'


그게 아빠가 바라는, ’나의 행복‘이다.


아빠가 생각하는 행복은 내가 생각하는 행복이 전혀 아니다. 아빠가 생각하는 여자의 행복은, 결혼해서 애 낳고 남편 뒷바라지하는 삶이다. 그래서 아빠는 엄마가 그럭저럭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다. 






나는 가끔 아빠가 진짜진짜 부럽다. 이렇게 눈치가 없을 수가 있을까. 행복한 여자는 얼굴에서 드러나는 표정이 다르다. 우리 흔히 얘기하듯, 연애 초반에 행복하면 얼굴에 행복한 티가 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예쁘고 안 예쁘고를 떠나, 젊고 나이 들고를 떠나, 행복이 흐르는 표정이 있다. 피부의 좋고 나쁨을 떠나, 화장을 하고 안 하고를 떠나 행복한 표정은 감출 수가 없다. 반대로 불행한 표정은 사회생활을 위해 감추는 게 상대적으로 쉽다. 밖에 나가 친구들에게 행복한 척을 하거나 아무렇지 않은 척을 하는 경우도 수없이 많다. 하지만 집 안에서까지 표정을 연기하는 사람은 없다. 


엄마는 매일 미세하게 불행했다. 지독한 불행은 아니었지만 미세하게 끊임없이 불행했다. 나는 거의 매일 보았다. 아빠가 생각하는 행복한 삶을 사느라 불행한 엄마의 얼굴을. 


직업을 빼앗기고, (육아에 발목을 잡혔다, 는 것을 은유적으로 표현하자면) 다리몽둥이 분질러져서 사회경제적 기회를 박탈당하고 집에서 애나 키우며 남편 뒤치닥거리나 하면서 돈을 펑펑 쓸 수도 없어 집구석에만 있는 삶. 그게 아빠가 엄마에게 준 '행복'이었다. 물론 '그 행복을 받은' 엄마는 전혀 행복하지 않았지만. 돈이나 많이 버시지도 못했지만 그나마도 허구헌날 다툼이라도 있는 날엔 다음달 생활비를 주네 마네 협박하는 걸 나는 종종 보곤 했다. 그리고, 생활비 문제로 썩어 문드러진 엄마의 속마음은 엄마 얼굴로 다 드러났다. 


‘아, 집에서 남편 기다리는 이게 여자의 행복이지.’하길 바라는 게 아빠가 상상하는 ’여자의 꽤 괜찮은 삶‘이지만 나는 이 삶이 전혀, 하나도, 행복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아빠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시겠지만, 아빠는 생활비 명목으로 엄마의 목줄을 쥐고 흔들었다. 누군가 자신의 목줄을 쥐고 흔드는 사람이 있는 삶을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은 없다. 그것도 가장 가까운 사람이 자신의 목줄을 잡고 흔든다면. 





앞서도 말했지만 행복의 종류는 수없이 많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핵심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삶'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삶'이라는 부분에서 아빠는 어느정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지는 삶'을 가지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내 생각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나마 우리 가족 중에 가족 권력의 정점(가족 내에서도 정치가 있고, 당연히 그 안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우리 가족 중에선 아빠가 가장 큰 권력자였다)에 서서 모든 것을 통제했던 아빠마저도 '원하는 걸 가지지 못했다'고 주장하면, 나도 드릴 말씀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만들어서 사회적으로 가장 많은 베네핏을 누리신 것은 당신이라는 걸, 당신이 아무리 부정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20대 중반에, 집에서 결혼해야 한다고 못을 박아버리니 어쩔 없이 떠밀리듯 결상황 속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게 30년 넘게 이어지는 중이었다. 


1980년대, 가부장적이고 경제능력이 있다 없다 하는 남자의 아내로서 사는 베네핏? 그게 뭔데요. 매달 (남편이) 생활비 (줄까 안 줄까) 걱정하는 베네핏?


벗어나고 싶었어도 여자 혼자 살아갈 직업이나 구체적 방법이 뚜렷하지 않던 시기 엄마는 어쩔 없이 아내의 위치라도 붙잡고 있을 밖에 없었지만 자신이 가진 삶을 결코 행복으로 받아들인 적은 없었다 




살면서 어떤 여자도 행복하게 해준 적이 없으면서 이제 겨우 행복을 찾은 사람들을 보며 직업을 뺏고 애 낳고 살림 시켜야 한다는 아빠가 불쾌했다. 


그녀들의 삶은, 엄마가 갖지 못한 '완벽히 자립한 여성의 삶'이었다. 그리고 내가 줄 수만 있다면 엄마에게 주고 싶지만 결코 줄 수 없는 삶이기도 했다. 


그래서 TV에 나오던 30대, 40대 여자 방송인들이 멋있어서 못 견디겠는 나와, 20대에 결혼도 안 하고 애도 안 낳고 자기 일 하면서 사는 그녀들이 못마땅한 아빠가 느끼는 여자의 행복은 같을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원하는 행복한 여자'가 되어줄 수 없다. 그냥 알아서 행복해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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