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낯에는 좀 괜찮은데
저녁엔 좀 추운 것 같아
기침이 좀 심해지는가 하면
아무것도 안 하고
하루 종일 늘어지게
잠만 자는 날도 많아졌거든
요즘 어떠니?
바쁘다고 아침 거르지 말고
귀찮다고 대충입지 말고
너무 급하게 생각 말고
하나하나
순리대로 흘러가도록...
그래... 순리대로...
사실 말이 쉽지
그게 말처럼 되는 일이니?
아빠는 너무 많은 걸 바꾸려 했어.
결과는?
많은 게 바뀌었지...
아빠는
결혼식 3일 전에 최종 면접에 합격했었어.
일주일간의 신혼여행이 끝나자마자
회사를 다니게 된 거지.
이게 어떻게 보면 운이 정말 좋았던 건데.
일주일 만에 학생에서 사회인으로
그리고 한 가정의 가장으로
순식간에 명찰이 바뀌어버리니
모든 게 어리둥절했고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와
잘못된 선택들을 하곤 했지.
첫 월급.
기대하고 두려워하던 첫 월급날이었어.
기대되면 기대되지 왜 두렵냐고?
아빠가 출근 일 수가 많지 않았거든.
그래서 정상월급을 다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어.
월세가 50이고, 핸드폰비, 가스비, 전기세, 그리고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니?
생활비야 뭐 조금 덜 쓴다고 해도
그래도 백만원은 있었으면 했거든
"아저씨~ 한 달 고생했어. 첫 월급 축하해"
아빠는, 입금내역을 집에 올 때까지
한 번도 확인하지 않았어.
일부러 안 봤던 것 같아.
결과를 알 것 같아서
내가 봐버리면
더 이상 기대 조차 할 수 없는
현실과 절망만 남을까 봐
"얼마 들어왔어? 칠십? 백?"
기대에 찬 엄마의 눈빛에 못 이겨
핸드폰을 들여다봤지.
입금내역을 확인했는데
그냥 몸에 전기가 빠져나가는 기분이었어.
- 310,000원 -
'하아...'
한숨 쉬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더라.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건지.
엄마는 아빠의 등을 탁 치면서
조금은 오버스럽게 웃으며 위로해 주더라고
"힘내라 개도리!
괜찮아. 다음 달엔 다 나오겠지!"
"아따거.. 좀! 있어봐 담배 하나 피고 올게"
"힘내라 개도리!"
"아.. 시끄러워.."
-쾅-
그렇게 엄마의 응원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갔지.
입김이 나오던 걸로 기억되는 걸 보니
그해 3월의 밤은 아직 쌀쌀했던 것 같아.
주머니에서 구겨져 버린 담뱃갑을 꺼내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히는데 바람 때문에
잘 붙질 않는 거야
틱. 틱. 틱.
라이터에도 불이 붙질 않자
갑자기 울컥했던 것 같아.
"시X! ... 진짜...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그렇게 소리쳐 버리니 뭔가 후련해서였을까?
갑자기 눈에 눈물이 고이더라고
누가 볼까 봐 눈물을 소매로 휙 닦고는
다시 담배에 불을 붙였지.
'치이익'
소리를 내며 담배에 불이 붙었고,
연기가 피어나기 시작했어.
'하아...'
큰일이었어. 적어도 50은 돼야
방세라도 낼 텐데 말이지...
다른 공과금이야 한 달 정도 밀려도
크게 문제없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딸랑-
그때,
문자메시지가 오는 소리가 들렸고
핸드폰을 봤을 땐
대출안내 문자가 와있었어.
'그래도 대출은 아니지...'
핸드폰을 그대로 집어넣으려다가
문득 스치는 생각에 다시 손에 들고는
친구들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어.
아니 솔직히 단체 문자를 보낸 거지.
/ 50만원만 빌려줄 용자 구한다.
이자 없고 딱 한 달 쓰고 돌려준다.
이유는 묻지 않고
입금해 줄 진정한 친구 구한다. /
일부러 장난처럼 보냈어.
진심을 담아 보냈는데 거절당하면
아빠가 너무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아서.
진짜 솔직히 열명정도는 답장을 보낼 줄 알았어.
아빤 친구가 많았었거든.
아무 반응 없는 핸드폰을 붙잡고서는
'다들 노느라 바쁜가?'
1분 그리고 2분
그 짧은 몇 분이
마치, 몇 시간이 흐른 것처럼
더디게 느껴지고 가슴이 답답한 거야.
'한대만 더 필까?'
담배 한 대 더 필 동안만 기다려보자.
다 피기 전까진 올 거야.
그렇게 담배가 타들어가는 동안
아빠의 마음도,
조금이나마 걸었던 기대도
모두 타버리고 재만 남게 되더라.
그때 전화가 왔어.
너무 반갑고 기쁜 마음에
누군지 확인도 안 하고 급하게 받은 전화에서는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어.
"여보세요? 누구냐?"
"... 아저씨 왜 안 와? 너구리 잡아?"
"하아.. 어.. 들어갈게.."
잠깐이라도 기대한 내가 너무 한심한 거야.
집에 들어가려는데 멀리 동네 마트가 보이는 거지.
얼마 전 엄마랑 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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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월급 타면 뭐 할 거야?"
"뭐 얼마나 나온다고"
"그래도! 첫 월급인데!"
"음.. 우리 외식할까? 고기 먹자"
"오! 고기! 고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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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망한 거...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는데...'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돌려 들어간 마트 안.
소고기, 돼지고기, 구이용, 수육용...
가격표를 확인하는데
고기종류는 왜 그렇게 많고 또 왜 그렇게 비싼 건지.
가격을 비교한다고 마트 안을 그렇게 빙빙 돌아
계산대에 앞에 섰을 때.
내 바구니에 들은 물건은.
닭 한 마리, 깐 마늘 작은 거 한 봉지,
마트에서 제일 싼 라면 5개짜리 한 봉지,
소주 2병, 그리고
"디 x하나 주세요"
담배 한 갑이었지.
"다녀왔어"
"개도리 왔다! 왜 이렇게 늦게... 아.. 닭 잡느라 오래 걸렸구나..
털은 내가 뽑으면 돼?"
문 열리는 소리에 도도도 뛰어 와서는 내손에 들린 닭을 보더니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띄우려는 엄마였어.
"고기.. 먹자고 했었잖아"
"아! 까먹고 있었네? 오! 털도 뽑혀있다요?"
"미안"
"응? 뭐가?"
"다음에 진짜 고기 사줄게"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에 엄마는 닭을 들어 보이며 말했어.
"아닌데? 애도 고기 맞는데? 애도 진짜 고긴데?"
다음에 진짜 사준다던 고기.
그때 약속했던 고기.
그 약속을 지키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게 될 줄은
모른 체 그런 약속을 했었던 것 같아.
푹 삶은 닭고기, 김치, 소주병과 소주잔
이게 아빠가 기억하는
첫 월급 기념상이었단다.
"아저씨 다리무거~"
닭다리를 넙적 살 부위까지 크게 뜯어
나에게 내미는 엄마를 보니 미안함과
이렇게 궁상맞게 있는 내 모습이 너무 한심하고 답답해서
아무것도 먹지 않았는데도
닭가슴살 급하게 먹다 얹힌 것처럼
가슴이 답답해 소주부터 입안으로 털어 넣었어.
"크으... 아냐 너 먹어"
다리를 다시 엄마에게 건네는 아빠를 뚱한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다리한쪽을 마저 뜯어내 아빠에게 들이밀어 보여주더라구.
"무슨 소리야 내껀 여기 있는데. 이건 너 안 줄 건데?"
그렇게 시작된 저녁식사.
남들은 월급날이라고 갈빗집, 양식집 같은 맛집에서
외식들 한다던데...
아이까지 임신한 와이프에게 결혼한 지 한 달도 안 된
새 신랑이 줄 수 있는 게 겨우 닭이라는 게...
그리고 새 신부가 행복해하는 이유가
고작 닭다리 하나라는 게...
너무 처량해 닭을 먹고 있는 건지
그냥 목으로 꾸겨 넣고 있는 건지 모르겠더라고
-따릉-
갑자기 울린 문자소리에 핸드폰을 켰을떄
미리 보기 화면에 비친 문자는
이미 무너져가는 아빠를
주저앉히기에 충분했어.
[ 201호 월세 납부일 안내. 안녕하....]
"하아.."
속으로 삼켜야 할 한숨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자
엄마는 또 걱정스런 말투로 물어왔어.
"아저씨... 왜 또..."
해줄 말도 없고 하고 싶은 말도 없어서
그냥 입을 다물고 핸드폰화면을 끄려는데
아까 온 대출문자가 보이는 거야
평상시라면 그냥 꺼버렸을 테지만
이게 아니면 방법이 없다고 생각해서였을까?
아빠의 손은 그 문자를 열고 있었어.
/ 김미영 팀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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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빠 모습이
엄마는 너무 신경이 쓰였나 봐
마치 길에서 쓰러진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다급하게 아빠를 흔들며 얘기 하더라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 무슨 문자길래?"
문자 내용을 여러 번 읽던 아빠는
결국 마음을 굳히고 물었어.
"우리.. 대출받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