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컵라면

by 도리

하루 종일 전화를 100통 넘게 받았던 탓인지.

엄마의 전화에 아빠도 모르게 업무전화처럼 받고 말았어.


"감사합니다. 개발 1팀 도리입니다 무..."

"응? 뭐라고 아저씨?"


말을 채 끝까지 못 하고 오늘 하루가,

그리고 지금 이 상황이 짜증 나서


'하아... 염불하네 진짜...'


절로 한탄이 나왔지.


"아저씨? 여보세요?"

"어.."


"왜 힘이가 없어? 퇴근 안 해?"

"어.."


"안되는데? 나 배고픈데? 와서 밥 해줘야 되는데?"

"하아.. 그렇게 됐어.. 최대한 빨리 끝내고 갈게"


상황이 상황인지라 짜증이 올라와서였을까?

아빠가 느끼기에도 평소보다 말투가 좀

딱딱하다고 느꼈지만.


어떡하겠니. 아빠도 사람인 걸..


"점심 안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어!"


"뭐?"

"아까 잠깐 나갔다 왔거든"


순간 아침에 엄마의 화장하던 모습, 보일러실에 아빠를 가두던 모습들이

떠올라. 또 울컥해 버린 거지.


'맞아 그때부터 꼬였어 아오..'


그래도 화를 내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뱉었지.


"좀 쉬고 있어 금방 끝내고 갈게"

"웅! 힘내라 개도리!"


전화를 끊고 의자에 몸을 던지곤

뒤로 확 젖혀 버렸어.


가시지 않는 짜증에 머리가 아파

머리에 손을 갖다 댔지.


'하아.. 난 이렇게 힘든데 도대체 하루종일 뭘 한 거야?'


첫 직장이라, 첫 사회생활이라 모든 게 서툴고 힘들었던 그때

누구에게라도 나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싶고

잘하고 있다고 위로받고 싶은 그때.

버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던 그때


그냥 모든 게 다 힘들었던 것 같아.

그걸 쏟아낼 대상이

결국 가장 가까운 엄마였던 것 같고.


'지금 놀러 다닐 때냐고...'


와 얘기 하다 보니까 엄마가 너무 나쁜 사람 같다 그치?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한테 들은 얘기를 해볼까 하는데

한번 들어볼래?


새벽 6시 자고 있는 아빠를 깨우지 않으려고

엄마는 조심조심히 욕실로 향했어.


혹여 물소리에 깨지 않을까,

샴푸 놓는 소리에 놀라지 않을까.

물줄기 세기 하나에도 그렇게 신경 쓰이더래


'흠.. 7시... 9시 까지니깐.. 버스 타려면 8시 까진 나가야겠다~'


화장대에 앉아서 화장을 하는데 아빠가 부스럭거리면서 일어난 거지.


"어디가?"

"응! 집에만 있으니까 숨 막혀서 바람 좀 쐬고 올 거야"

"임산부가 어딜 싸돌아다녀! 집에나 있지!"


아빠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조금 서운했지만 어딜 가는지 얘기할 수가 없었데.

엄마는 사실 그날 면접이 잡혀있었거든.


임신해서 배도 나오기 시작하는데 일하러 간다 하면

아빠가 또 혼자 속상해할까 봐 숨기기로 한 거지.


어차피 일을 한다 해도 아빠 출근한 다음에 나가고

퇴근하기 전에 들어올 테니까 그냥 말을 안 하기로 마음먹었었나 봐.


"아닌데? 의사 선생님이 나 많이 움직이라고 했는데?"

"에이씨"


왜 화를 내는지 알 것 같아 엄마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더더욱 숨겨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데.


담배를 들고 보일러 실로 들어가는 아빠를 보면서

엄마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 맞다 복대!'


혹여나 복대를 차는 모습이 아빠한테 걸릴까 보일러 실 문을 잠궈 버린 거야.

부랴 부랴 복대를 차고서는 옷 메무세를 다시 만지고 있는데


"아 뭐 하는 거야! 출근시간 지났어 빨리 가야 돼!"


조금 급하게 움직였던 탓일까? 송글송글 맺힘 이마에 땀을

티 안 나게 훔치고는, 엄마는 보일러 실 앞으로 다가갔어.


"사과해 안 열어 줄 거야"

"아 좀! 장난 치치 말고"


문을 열어주자 아빠는 엄마의 머리를 콩 쥐어박았지.

물론 장난으로 때린 거라 아프진 않았데.


오히려. 혹시나 땀난 게 걸릴까 봐 그렇게 신경이 쓰였다더라고.


"아야... 개도리가 사람 때린다.."


그렇게 아빠는 집문을 쾅 닫고 출근을 했고,

엄마는 잠시동안 아빠가 나간 문을 쳐다보고 있었데.


'바빠도 인사는 좀 해주고 가지...'


하고 싶은 게 많을 어린 나이에 곧 아빠가 된다고

아등바등 사는 아빠가 그렇게 안쓰러 보였다나 봐.


'어머! 지금 몇 시야?'


부랴부랴 가방을 챙겨서 엄마는 집을 나섰어.

버스정류장 앞.


지금이야 핸드폰만 키면 언제 버스가 오는지,

어디서 무슨 버스를 타야 하는지,

어디서 내려야 하는지 다 알 수 있지만.


그때는 물어 물어 가야 하는

대 탐험의 시대였단다.


"이거 ㅇㅇ 동 가요?"

"안가유~"


"이거 ㅇㅇ 동 가나요.."

"아가씨 반대쪽에서 타야지"


그렇게 겨우겨우 버스에 올라서 주위를 둘러봤는데

마침 의자 하나가 비어있었던 거지.


자리에 앉아서 창문을 보는데 출근시간이라 그런지

거리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더래.


'헤에.. 저기에 나랑 도리도 있었었는데..'


그렇게 엄마는 아직도 그들 사이에서 연애하고 있는

엄마와 아빠를 보았었나 봐.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에 도착했고

그곳은 한 카드사 전화상담센터였데.


전화만 받는 거일테니까 임신한 거랑

크게 상관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거지.


다행히 대학 다닐 때 CS 알바 경험으로

면접은 무난하게 통과 됐고.

면접관도 굉장히 호의적이었다나 봐.


"우리 구내식당 밥 잘 나와요. 가끔 회덮밥이 나오는데

꼭, 두 번 먹어요~"

'헤에.. 맛있겠다..'


그렇게 면접 끝에 잠깐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면접관 한 명이 엄마 배를 지그시 보더니


"채용검진 해야 하는데 크게 문제없죠?"

"넵!... 네?"


호기롭게 '네'라고 대답했지만 하나 걸리는 게 있었던 거야.

X-ray. 임산부는 태아에 좋지 않단 이유로 X-ray 찍는걸

지양하거든.


엄마가 머뭇거리자 면접관은 '너 뭐 숨기고 있지?'라는 듯이

다시 물었데


"왜요? 문제 있어요?"

"저.. 제가 그게 사실.."


엄마의 조심스러운 모습에

면접관들의 시선은 엄마에게로 집중됏고

적막이 흘렀어.


이내 흘러나온 엄마의 목소리는 엄청 작았음에도

그적막을 깨기 충분했지.


"제가사실.. 임신을 해서.."


임신이란 단어에,

방금 전까지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사라지고


"아니 임신한 사람이 면접은 왜 봐요?"

"이거 업무방해 아니야?"

"아 좀 그러지 마요 임신하셨다잖아"

"지금 이 쓸데없는 면접에 쓴 시간 누가 보상할 거야."


엄마는 마치 죄인이 된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데.


"죄송합니다."


죄송하다는 말밖에는...


그렇게 돌아 나오는데 건물밖으로 발검음을 딱 내딛자

글썽거린 눈물에 사물이 번져 보이는 게

곧 떨어질 것 같았던 거지.


엄마는 호흡을 크게 들이 마시고는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소매로 휙 닦아 버렸어.


'흡! 괜찮아! 안 울어! 울면 도리랑 다소가 슬프니까!'


그렇게 홀로 생각하며 배를 내려다보고는 배를 쓰다듬는 엄마였지.


"다소야~ 오늘 힘들었지? 얼른 집에 가서 아빠 기다리자~"


- 꼬르륵 -


'배고프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자 엄마는 주위를 둘러봤어.


햄버거집, 국숫집, 백반집, 중국집.

어느 곳을 들어가더라도 허기를 채우기에 충분했지만.


주머니를 뒤져 나온 돈은 천 원짜리 지폐두장과 동전 몇 개뿐이었던 거지.

그나마도 버스비를 제하고 나면 천 원 정도밖에 없던 거였어.


'다소야...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자!'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는데 점심시간이 다돼서였을까?

여기저기서 그렇게 음식냄새가 나더래.


임신하면 먹고 싶은 게 그렇게 많다 잖니?


회사에서 쫓겨 날때 보다

면접관들이 면박을 줫을 때보다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속상하고 처량했다고 하더라.


쳐다보면 더 배고파 질것같아 고개를 숙이고 걸어가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을 때 편의점이 보이 더래.


'컵라면 하나.. 먹을 수 있을까?'


그대로 편의점에 들어가 라면을 고르기 시작했어.

뭘 먹을까? 어떤 게 맛있을까가 아닌


이 돈으로 뭘 먹을 수 있을까? 가격이 얼마 일까?

하며 가격을 확인한 거지.


계산을 하고 라면에 물을 받은 뒤

창밖이 보이는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 뚜껑을 열었는데

그 냄새가 그렇게 좋았더래.


'우아~ 다소야~ 맘마 먹자!'


지금은 라면을 끓이면 나트륨이다 뭐 다해서

국물을 안 먹는 엄마지만.


그날 엄마는 국물까지 다 마셔버렸다고 하더라.


'좋아! 밥 먹었으니까 집에 잘 갈 수 있어!

그치 다소야? 출동!'


그날 엄마와 아빠는 서로는 모르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치열하게 하루를 버티고 있었단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현실을 마주 하면서

도망 칠 곳이 없어,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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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안 먹었어?"

"맛있는 거 먹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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