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질게 있다는 건...

by 도리

"여~ 도리 술 잘 먹더만 오늘 저녁에 한잔 어떠냐?"

"하하.. 와이프가 일찍 안 들어오면 비밀번호 바꾼다고 해서요."


회식 이후로 아빠는 회사에서 유명인이 됐어.

술 잘 먹고 잘 논다고, 모든 부서에 소문이 나버린 거지.

마주치는 사람마다 오늘 어떠냐고, 저녁이나 먹자고.


"바빠서요."

"다음에 꼭 같이 가겠습니다."

"아.. 오늘은 제가.."


하지만 아빠는 갈 수가 없었어. 놀기가 싫었냐고?

아니. 솔직히 말하면 놀고 싶었어. 동료들과 술도 먹고,

같이 떠들고, 같이 웃으면서. 그렇게 어울리고 싶었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어.


아빠한텐 돈이 없었거든.

한 달 들어오는 월급이래 봐야 얼마 안 되는데.

월세, 공과금, 핸드폰비 내면 그것만으로 마이너스였거든.


엄마는 뭐 했냐고?


그러게? 그렇게 힘든데 엄마는 뭐 했을까?

같이 맞벌이라도 했으면 조금은 나았을 텐데.

사실 그때 엄마 뱃속에 네가 자라고 있었어.


아빠가 입사했을 때가 4개월이었나? 5개월이었나?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어. 출근준비하려고 일어났는데


언제 일어났는지 이미 싹 씻고서는

부푼 배를 안고 아침부터 어딜 가려는지

화장을 하고 있는 거야.


"어디가?"

"응! 집에만 있으니까 숨 막혀서 바람 좀 쐬고 올 거야"

"임산부가 어딜 싸돌아다녀! 집에나 있지!"


돈도 없으면서 어딜 또 나가려고 하나... 하는

답답한 마음과 미안한 마음에

또 마음에 없는 소릴 한 거지


"아닌데? 의사 선생님이 나 많이 움직이고 걸으라고 했는데?"

"에이씨!"


엄마의 천진난만한 말투와 행동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답답해져서 담배를 들고 보일러 실로 향했지.

보일러와 세탁기. 딱 두 개만 있음에도 성인 두 명 정도 들어가면 꽉 찰만한

보일러실. 다행히도 손바닥 두 개만 한 창문이 있어서

담배피기엔 딱이었던 공간이었거든.


"그대로 들어가면 다신 못 나올 줄 알아라. 문 잠가버릴 거다."


엄마의 비장한 목소리에 한번 흠칫 했지만. 또 가다 마는 건 뭔가 없어 보인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에 한 귀로 흘리며 보일러실로 들어갔어.


담배연기가 창문으로 빠져나가고. 한숨 같은 연기를 내뱉으면서

그 짧은 시간에도 참 생각할게 많아지더라고.


아니? 어쩌면 생각이 많았다기보다. 그냥 아무 생각도 안 났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아.

그거 아니? 너무 생각이 많으면.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아무 생각도 안 들고 심지어 지금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상황이 오는데. 그 시절 아빠는 항상 그 상태였던 것 같아.


핸드폰을 켜서 시계를 보니 출발해야 할 시간이 이미 지나서 급하게 담배를 끄고

문을 열려는데... 문이 안 열리는 거야. 밖에서 잠근 거지.


"아 뭐 하는 거야! 출근시간 지났어 빨리 가야 돼"

"사과해 안 열어줄 거야"

"아 좀! 장난치지 말고"

"아닌데? 장난 아닌데? 진짜 안 열어줄 건데?"

"출근시간 지났다고!"

"사과하라고"

"아 진짜!... 미안해요... 실례가 안 된다면 문 좀 열어주시겠어요...?"


그제야 흡족한 미소를 짓더니 문을 열어주더라.


"으이그~"

"아얏.. 개도리가 사람 때린다.. "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부리나케 회사로 출발했지.

늦게 출발한 날은 신호도, 차들도 왜 그렇게 안도와 주는지.

회사 주차장에 진입하니 출근시간 3분 남은 거야.


주차를 대충 하고 엘리베이터를 눌렀는데... 하아...

엘리베이터도 안 도와주더라. 한 층에서 너무 오래 잡고 있는 거야.


그냥 무작정 뛰어올라갔어. 지하 1층에서 4층, 그렇게 많이

올라가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일단 뛰고 본거지.

숨이 턱까지 차고 땀은 비 오듯이 흐르는 와중에 출근 도장을 찍으려고

지문을 딱 대는 순간


정확히 9:00으로 숫자가 바뀌는 거지.


"이야... 역시 요즘애들은 다르네?"

"시간 딱 맞춰서 온 겨? 그게 더 힘들것는디? 으이? 자 개 아녀?"

"왜 아니여 개여 술 물처럼 먹는 갸 있잖여"

"아~ 그래도 잘하는건 있는 갑네"


하필 내 뒤로 지나가던 직원들이 날보고는 한 마디씩 하는데.

진짜 쥐구멍으로 숨고 싶더라고


'하아 진짜. 괜히 장난을 쳐서는 이게 뭐야'


그때 경태형이 화장실 쪽에서 빠른 걸음으로 내 쪽으로 오더라고


"야야 도리야 내가 지금 시계가 없어서 그러는데 지금 몇 시냐?"

당황해서 주머니를 뒤지다가 핸드폰을 꺼낸다는 게 바닥에 떨궈 버린 거지.

"워워 천천히 해 천천히~"

"9시 2분이요."


잽싸게 핸드폰을 주워 일어나면서 시계를 보고는, 경태형에게 얘기해주고

다시 경태형을 바라봤는데 표정이 없었어. 진짜 눈은 반쯤 같은 상태에서

표정이 없더라고.


"근데 왜 이제와?"

"네?"

"너 출근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어? 이 새끼 이거. 야 따라와"


그 말을 남기고 경태형은 흡연실로 들어갔고. 난 말없이 따라갔지.

얼마나 있었나? 진짜 멘털이 탈탈 털릴정도로 잔소리를 듣고 나서야 풀려날 수 있었어.

자리에 돌아왔는데 과장님이 또 실눈을 뜬상태에서 날 노려보는 거야.


"출근을 너무 빨리 하는 거 아니냐?"

"9시.. 맞춰서 와서 지각은 아닙니다.."


억울했지. 지각도 아닌데 자꾸 뭐라고 하니까.


"그러니까.. 59초까지 맞췄어야지. 왜 9시 땡치자 마자 출근을 하고 그래?"

"아.."


"다음부터 조금 더 천천히와"

"아닙니다."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아닙니다."


"여기가 밖이야?"

"아닙니다."


"... 경태야 애 좀 데려가라"


그때 알았어. 9시까지 출근은 9시에 업무에 바로 투입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는 걸.

1분에도 수십 번씩 울렸다 끊어지는 전화, 사람들의 상담하는 목소리.


여기저기서 화내며 소리 지르는 소리. 그 당시 우리 회사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론칭했는데

반응이 너무 좋았던 거야. 그래서 디자이너, 영업사원, 개발자, 기획자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직원들이 상담전화를 받았어. CS직원만 전화를 받기에는 인력이 너무 모자랐으니까.


"자 전화가 오면 어떡한다?"

"일단 이름을 얘기하고, 어떤 것을 도와드릴지 물어보라고 하셨어요"


의자에 반쯤 누워서 날 교육하는 경태형은 아는 게 많고 똑똑한 사람이었어.

뭔가 말을 할 때 알기 쉽게 잘 설명해 주고, 이해를 못 하면 예를 들어 설명을 해주는 편이었거든.


"자 한번 연습해 보자 전화 온다 떼레레레"


여전히 누운 자세로 연습해 보잔 말에 일단 울리는 전화를 집어 들었어.


"감사합니다. 도리입니다. 무엇으..."

"감사합니다. 개발 1팀 윤경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갑자기 몸을 팍 일으켜 내 전화를 뺏더니 본인이 받더라고.


'뭐야? 연습해 보자더니. 중요한 데서 전화올 일 있나?'


이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전화를 마친 경태형이 갑자기 소리를 빽 지르는 거야


"와 나 겁나 개념 없네? 아직 교육도 안 끝났는데 전화받으면? 뭐라고 할 말은 있고?"

"아까.. 전화 온다고.. "


또 억울했지. 지가 받으래서 받았더니 욕을 먹고 있는 이 상황이 정말 어이가 없었어.

내가 어리다고 그러나? 놀리는 게 재밌나? 내가 진짜 병신으로 보이나?

별에 별 생각을 다했던 것 같아.


"야 이 미친놈아. 전화받는 ‘척’ 하라고 한 거지, 실탄도 안 줬는데 총 들고 전쟁터 나가냐?"


그렇게 또 흡연실로 끌려갔어.

넌 왜 개념이 없냐부터 시작해서, 기본도 모르냐, 생각은 있는 거냐, 대학은 어떻게 다녔냐.

내 인생을 되돌아볼 수 있는 주마등 같은 잔소리를 들어야만 했어.


"자 이제 진짜 한번 받아봐. 전화 온다 지금"

"감사합니다. 개발 1팀 도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1시간 동안 욕이란 욕은 다 먹어가면서 배운 탓에. 시작은 순조로웠지.


"네~ 저번에 구매했던 거 세금계산서 발행 요청 드리려고 전화드렸는데요?"

"계산서.. 세금.. 어.. 잠시만요"


태어나 처음 듣는 단어에 그만 또 어리버리해지고 만 거지. 최대한 불쌍해 보이는 눈으로 경태형을 쳐다봤어.


"뭐? 왜? 너 뭔데 그런 식으로 야려?"

"형.. 계산서 세금.. "

"네 선생님~ 세금계산서요? 잠시만요 부서 연결해 드릴게요"


내 전화를 뺏어서 고객과 통화 후에 전화기 번호를 몇 번 누르더니


"네 대리님. 세금계산서 요청 들어왔네요~ 네 끊을게요?"


'아.. 저게 전화 돌린다는 거구나..'


영화나 드라마에서 많이 봤지. '돌려주세요', '야~ 전화 돌려' 그걸 사용하는걸 실제로 본거야.

새로운 걸 본 초등학생처럼 우와.. 하는 표정으로 멍 때리고 있는데


"뭐 하냐? 전화 안 받고?"


다시 울리는 전화를 손으로 가리키며 다시 의자를 뒤로 젖혀 눕는 경태형이었지.


"네? 디자인 시안이 잘못 나온 것 같다고요?"

"디자인팀 송은수 대리"


"네 선생님. 아 수리일정이요?"

"관리부 AS팀"


내가 말하면 경태형은 귀찮다는 듯이 어디로 돌려야 할지 하나씩 알려주고 잇었어.

덕분에 전화받는 게 그렇게 어렵진 않았던 것 같아.

경태형 짜증은 계속 쌓여가는 걸 모른 채. 그렇게 안도하고 있었지.


"아~네! 프로그램 업데이트 관련 문의요? 담당자 연결해 드릴게요 잠시만요."


"악!! XX.. 자꾸 나만 쳐다보면 어떡하냐!"

"네..?"


"내가 자동응답기야? 왜 XX 나만 쳐다봐 왜? 그리고 프로그램업데이트? 담당자가 누군데?"

"그게.. 잘.."


"XX 너잖아. 네가 담당잔데 누굴 연결해. 우리가 담당부서인데. 업무파악하나도 안됏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화를 내니까 부끄럽기도 하고, 이게 이렇게 화낼 일인가 싶어 화도 나고,

무엇보다 다 아빠만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얼굴을 들 수가 없더라. 아무 생각도 안 나고 말이야.


"도리~ 도리도리~ 그전화 나돌려줘~ 내가 담당자 할게~"


마치 노래 부르듯이. 놀리는 것처럼 과장님이 자기한테 돌려달라고 하더라고.


"아~ 경태씨 그만 좀 해 애 울겠네. 담배나 하나 펴요?"


과장님한테 전화를 돌리고 수화기를 내리자 경태형하고 입사동기인 기현이형이 말리더라고.

기현이형 알지? 저번에 회식얘기할 때 말해줬던 그 잘생긴형. 참 사람좋고, 장난기도 많은

정말 사람 냄새나는 사람이었어. 근데 그 장난기 때문에 나중에 아빠랑 치고받고 싸우게 된단다?

궁금하지? 이 이야기도 나중에 제대로 한번 풀어보자.


어쨌든 기현이 형이 경태형을 데리고 나가자 과장님이 손을 까딱거리는 거야.

자기한테 와보라는 제스처를 취한 거지.


"네 과장님."

"내가 팁을 하나 줄까?"


그놈의 커피 질리지도 않는지. 실눈을 뜬상태로 커피잔을 입에 갖다 대며, 아빠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어.


"네!"

"뭐줄건데?"

"제가 드릴건 없고.. 칭.. 칭찬해드리겠습니다."


왜 저런 말을 했는지... 너무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막 터져 나온 것 같아. 웃기려 했다거나, 과장님이 편해서

한 장난은 아니었으니 말이지.


"뒤지고싶냐?"

"아닙니다"

"여기가 안이지 밖이냐고..."

"아닙니..."


-툭-


바짝 쫄아서 아닙니다만 연달아 외치고 있는데 아빠 에게 포스트잇 한뭉치를 던지는거야.

다행히 떨어뜨리지 않고 잘받고서는 이게뭐지? 라는 표정으로 과장님을 바라보는데

여전히 쏟아지는 전화벨소리를 뒤로하고 한손으론 커피, 한손으로는 마우스를 열심히 움직이며

게임을 하면서 지나가는 말처럼 들릴듯 말듯 하게 애기하는거지


"전화오잖아? 무슨일이냐고 묻잖아?

"네"


"적어. 일단 적고 애기해."

"뭐.. 뭐라고.."


"알아보고 전화드리겠습니다. 전화번호 남겨주세요"

"그 다음은요?"


계속 물어보자 또 실눈을 뜬상태로 나를 빤히 처다보더니 다시 모니터를 고개로 돌리며 애기하는거야.


"에이씨 죽엇네. 마을에서 또 언제가냐."

"..."


"그다음은 분리해야지. 비슷한 내용끼리."

"아. 그다음에 담당자 찾아가면 되겟네요?"


"그렇지. 근데 그전에 나한테 갖고와봐 일단 오늘 하루 다 적어서 갖고와봐 퇴근전에"

"아~ 넵!"


"포스트잇 숫자로 너 전화 몇개 받앗는지 파악되니까 열심히받아라"

"넵 감사합니다."


"그래서 줄건 칭찬박에 없다?"

"아닙니다"

"여기가 그럼 안이.. 하아.. 가봐"


그렇게 자리로 돌아가서 한 5통에 전화를 더받았고. 아빠는 열심히 적어나갓지.

어느센가 돌아온 경태형이 내모습을 보더니


"어? 와~ 과장님 애한테 팁알려준거에요?"


경태형의 말에 과장님은 뭔가 알수 없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 하더라구.

돌아와서도 잔소리 폭격을 할줄알았는데, 의외로 나긋한 목소리로 말을 걸더라?


"너 운좋은줄알아. 과장님이 착해서 빨리 알려준거지."

"아.. 네"

"이거 몰라서 전화만 주구장창 받다가 퇴사한애들 꽤된다?"

"감사합니다."

"그럼이제 나필요없지? 수고~"


그말만 남기고 경태형은 자기 자리로 돌아갔어. 그제서야 본인 업무를 시작하는것 같더라고.

틱틱대고, 좀 경우없고, 성질이 좀 불같은 면이 있지만 그래도 자기일은 똑부러지게 하는 사람

그게 아빠가 느낀 경태형의 이미지였어.


그런 형을 교육이란 명목으로 내가 붙잡아 논거잖아? 자기 할일은 계속 밀릴텐데말야.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지긴 하더라구


얼마나 더 전화를 받았을까?


정말 인간이 이렇게 까지 전화받을수 잇구나 싶을정도로. 점심시간, 아니? 점심먹는시간 10분뺴고

하루 일과시간내내 전화를 받앗더니 아빠가 적은 포스트잇은 100장이 조금 넘어갓어.

물론 길게 전화를 받은게 아니니까 그렇게 많앗던거였겟지만 말야.


"저.. 과장님..."


시계를 보니 5시 59분. 퇴근시간 전에 포스트잇을 가져오라던 과장님 말에 정확히 59분이되자마자

일어나서 과장님 자리로 갔어.

그리곤 포스트잇 더미를 건넷지. 퇴근시간이 너무 남은 상태에서 가져가면

아침에 9시딱되서 출근했을때 혼낫던것처럼

니가 뭔데 업무를 스스로 마감하냐고 할까봐 일부러 시간을 맞춘거였어.


"자 다들 퇴근준비 합시다?"


내가 포스트잇을 건네자 과장님은 시계를 살짝보더니 팀원들에게 퇴근준비하라고 애기했지.


"아까 가져오라고 하셔서..."

"어우씨 뭐야! 몇장이냐?"


"100장조금 넘습니다."


내가 건넨 포스트잇을 손가락으로 휘리릭 넘기면서 한번 쓱 훑어보더니. 가방을 걸쳐메면서 아빠한테

애기하는데 ... 아빠는 아직 잊지 못해. 그웃음 참는 모습을...


"잘했네. 그럼 이제 해결책에 대해서 알아봐봐 메뉴얼 참고하고,

그룹웨어, 인트라넷, 게시판 이런거 다 확인해서"


"넵 언제까지 하면될까요?"


"언제까지?"


아빠말에 여전히 실눈뜬 상태에서 입만 환하게 웃으며 애기하더라


"내.일.까.지."


진짜 화가난건지 답답햇던건지 속상햇던건지 뭔지는 모르겟는데. 그냥 주저 앉을뻔했어.

이렇게 또 당하는구나 싶었던거지.


"그럼 수고? 아참참, 내일 출근하자마자 보고해~ 그리고 커피는 탕비실에서 타서마시고~"

"뭐야? 도리 야근해?"

"아 왜 자꾸 이팀은 애들을 괴롭혀. 그러니까 신입들이 못버티고 나가지."


신입들이 못버티고 나간다. 진짜 솔직히 아빠도 신입때 나가고싶은 마음이 들었던게 한두번이 아니야.

하지만 안나갓어. 음.. 안나갓다기보단 못나갓다고 해야겟구나.


지킬게 있고, 책임질게 있어지면 내가 쥐고있는걸 쉽게 놓을 수 없게 되거든.

이걸 놓게되면, 이마저도 없게되면 더 힘들어지진 않을까. 버틸수 없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때문에 말야.


그렇게 분해서 바들바들 떨고있는데 경태형이 어깨동무를 턱 올리는거야. 그러더니 어깨를 툭툭 쳐주더라.


"도리야.. 고생해라.. 내일보자"

"아니에요.. 조심히들어가세요"


물빠지듯이 직원들이 다나가고. 혼자 의자에 턱 앉아서 속으로 온갖 욕을 하고있는데 과장님이 헐레 벌떡 들어오는거야.


"야? 뭐해? 안가?"

"네? 야근하라고.."


"하~ 야 빨리가"

"네!"


신나서 집에가려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과장이 뚱 한 표정으로 아빠를 쳐다보는거야


"너어디가냐?"

"방금.. 가라고.."


"아니 탕비실가라고 커피마시러"

"아.."


"왜 열받냐?"

"아닙니다."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하아..."


"한숨쉬냐?"

"아닙니다."


"안이지 밖이냐고"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지. 왜 죄송한지 모르게 그냥 죄송하다고 말이 나와버렸어.

그런나를 보며 뭐가그리 재밋는지 과장님은 끌끌 거리며 웃으면서 다시 밖으로 걸음을 돌리더라고

얼마나 갓을까? 좀 멀리서 과장님의 목소리가 들렷왔어.


"도리야아!"

"네에!"


아빠도 같이 소리를 질럿지. 지금이라도 집에가라고 하진 않을까.

장난이었다고 신입사원들 한테만 하는 그런 전통같은거라고. 그런 기대를 했던것같아.


"커피는 믹스보다 원두가 맛잇다~ 많이마셔~ 나진짜 간다~ 끌끌끌.."


그런 기적은 없엇어.


"XX"


너무 화가나서 욕과 함께 손에 집히는걸 그냥 바닥으로 던져버렷어.


- 와장창 -


하필 그게 네 엄마가 첫 직장이라고, 회사에서 쓰라고 사준 유리컵이었던거야


'아.. 하필..'


바닥에 주저앉아 유리조각을 하나씩 들어내는데 왜 그렇게 서럽던지.

가슴에서 입으로 뭔가 튀어나올것처럼 꿈틀 거리면서 답답한게

썩 좋진 않더라고


'아야..'


깨진 유리조각에 비었을까? 따가운 느낌에 손가락을 봣을땐 피가 맺혀잇엇어.

똑똑 떨어지는 핏물을 따라 어느세 아빠 눈에서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


내가 왜 이런 취급을 받아야할까? 난 왜 이런상황에서도 그만둘 생각을 못하는걸까?

나도 친구들사이에선, 학교에선 잘 나갔었는데. 여기선 왜 이런 비참한 생활을

한마디도 못하고 겪고만 있어야하는걸까.


그런 생각들은 아빠를 더 슬프게 만들었어.

그때 아빠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어. 발신자를 보니 엄마였지.


'흐으..후우...'


옷 소매로 눈물을 닦고 숨을 한번 고른후 전화를 받았어.


"감사합니다 개발1팀 도리입니다. 무..."

"응? 뭐라고 아저씨?"



'하아... 염불하네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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