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사원 환영회

by 도리

회사는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던 것처럼 재밌고 유쾌한 곳은 아니었어.


뭔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 끊이질 않는 전화벨 소리. 어디선가는 화내는 목소리

그리고 싸우는 소리. 뭐랄까... 티비 여러 개, 다른 채널을 한 번에 틀어놓은 느낌이랄까?


각자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데 정작 나는 무슨 상황인지 어떤 장면인지 이게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분간이 안돼서 멍 때리고 있는... 그게 바로 신입사원 때 아빠의 모습이었단다.


"... 다 외웠냐?"


그렇게 죄 없는 모니터만 노려보며 멍 때리고 있는데 진한 커피 냄새와 함께 누군가가 아빠에게 말을 걸더라구

놀라서 발딱 일어나서 뒤를 돌아보니 과장님이었어.


"지, 지금 외우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되겠는데?"

"이번 주 안에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안에 외우라 했던 과장님 말이 생각나 솔직히 자신은 없지만 이번 주까지라고 말했어.

음... 이유는 없었어.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았거든.


"그래? 낄낄낄, 그럼 수고~"


살짝 비웃는 듯하달까?

알 수 없는 짧은 웃음을 남기고는 과장님은 커피를 마시면서 자리로 돌아가 앉으셨지.


'저양반은 인체의 절반이상이 물이 아니라 커피일 거야...'


과장님에게는 항상 커피 향이 났어.

아침부터 저녁까지 무슨 커피를 그리 많이 드시는지. 과장님 자리 근처에는 커피 향이 사라지지 않았지.

거기다 에너지 음료, 자양강장제 같은 드링크들... 생각해 보니 그때 도망갔어야 했어..


"오늘 시간 되는 사람?"


과장님이 모니터를 응시하며 마치 흘리는 말처럼 조용히 혼잣말하듯이 얘기하자, 아무도 못 들었는지 반응하는 사람이 없었어.


"야! 오늘 회식하자고. 못 오는 사람?"

역시나 아무 말 없었고 어쩔 줄 몰라 눈치 보고 있던 나는 과장님과 눈이 마주쳤어.

"왜 째려봐? 넌 시간 되냐?"

"네 됩니다"

"그래? 그럼 일 좀 해"


-

오늘 회식 일정

퇴근 후 6시 30분까지

회사 앞 ㅇㅇ보쌈집.

한 명도 빠짐없이 참가

-


갑자기 메신저에 공지가 떴고. 우리 부서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어.


"뭐예요? 회식? 갑자기? 말도 없이?"

"아~ 오늘 게임 이벤트 참가해야 하는데..."

"와이프가 늦게 들어오면 죽인다고 했단말이에요"

"뭐여? 이.. 내일 휴가계획서 올리면 되는가?"


별생각 없이 그냥 공지를 휙 내리고 하던 일 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오래 다닌 사람들은 한 마디씩 불만을 표출하고 있었어.


"나? 분명 얘기했다? 그렇지 도리야?"

"네? 넵!"


그때 생각했지. 아... 그래서 작게 얘기한 거구나,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구나.

그리고

이 사람 천재구나...


문뜩 든 생각에 주머니를 뒤적거려 지갑을 꺼냈지.

천 원짜리 두장과 언제 넣어놓은지 모르는 동전 몇 개, 그리고

언제 들어갔는지 모르는 담뱃잎들.


그 당시 아빠는 할아버지 건강이 안 좋아지기 전에 사주신 연식이 좀 오래된 중고차를 타고 다녔었어.

회사와 집이 거리가 멀어 항상 차로 출퇴근을 했었지.


'술은 못 마시겠네'


내가 가진돈으론 대리는커녕 대중교통으로 겨우 귀가할 수 있을 정도였어.

괜히 가서 술 먹네 안 먹네 하면서 미움받는 것보단 차라리 못 간다고 핑계 대서 안 가는 게 낫겠다 라는 정말 멍청한 생각을 했지.


"저.. 과장님"


과장님 옆자리로 가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과장님을 불렀어. 아무리 작게 말했다 하지만 그래도 들릴 정도의 크기로.

하지만 과장님은 못 들은 척하면서 한 손으론 커피 한 손으론 마우스를 만지며 열심히

게임을 하고 계셨어...


"저.. 과장님?"


조금 더 크게 과장님을 부르자 방금 전 게임하던 그 자세 그대로 빙그로 회전을 해서 아빠를 쳐다보는 거야. 여전히 눈을 반쯤 감은 실눈 뜬 상태로말이지


"뭐? 다 외웠냐?"

"그게 아니고"

"그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아니..."

"애가 참 답답하네 뭐어!"


약간은 짜증 비슷하게, 뭔가 엄청 귀찮다는 듯이, 그러나 입술이 살짝살짝 들썩이는걸 봐 선


'아.. 이 인간이 지금 나 놀리는 거구나'


라는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과장의 행동은 아빠입장에선 유쾌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뭔가 티를 내 거나 화를 낸다거나 할 순 없었어. 아빠는 신입사원이니까.


"다름이 아니고, 오늘 회식 못 갈 것 같습니다."

"같습니다? 못 갈 것? 경태야~"


또 말꼬리를 잡더니 갑자기 의자를 뒤로 젖히며 드러눕듯이 누우면서 큰소리로 경태형을 부른 거지


"네!"


담배를 피고 온 건지 사무실로 들어오던 경태형은 과장님의 목소리에 뛰어오며 대답했어.


"애 지 환영회인데 지가 못 간단다~ 주인공 없이 우리끼리 술 먹으래~"

"아니 제가 그게 아니고.."

"야! 너 진짜 그랬어? 이 새끼 XX개념 없네? 회사가 놀이터냐? 회사가 장난이야? 너 따라 나와"


진짜 한대 칠 것처럼 화난 말투와 눈빛으로 나에게 막 퍼붓더니 밖으로 나가는 거야. 어떡해야 되나

과장님과 경태형을 번갈아보면서 갈등하고 있는데 과장님이 다시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머그컵을 입에

갖다 대며


"뭐 해? 니 사수가 부르잖아 가봐~ 경태야~ 울리진 마라~"


과장님을 뒤로하고 경태형이 나간 곳으로 따라 나갔지.

문득 생각이 든 게 혹시 과장님 앞이라 나에게 그렇게 화난척하고 나가면


'힘들지? 사회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야~'


하면서 위로해 주진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흡연실 문을 연순간.


"야! 너 미쳤냐? 이게 어디서 입사한 저 일주일도 안된 놈이'


그래... 그런 아름답고 밝은 이야기는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있는 일이더라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어.

그렇게 30분을 욕먹으며 서있었던 것 같아.


자기 신입 때 이야기, 신입이라면 어떻게 해야 되는가부터 지금까지 자기가 회사에서 어떻게 버텨왔는지에 대한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그런 이야기들...


과장님이 왜 울리지 말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더라. 아빠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이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마저 떨어뜨리면 진짜 회사생활 끝이다,

정말 나락으로 눈물과 함께 떨어진다 라는 생각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렇게 억지로 붙잡고 있었던 것 같아.


그렇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로 돌아왔고 시간은 5시 59분 퇴근시간 1분 남겨 놓은 상태였지. 더 이상 어쩔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


'회식 빠지는 건 글렀고 술이라도 먹지말자. 대리부를 돈... 없잖아...'

빠질 수가 없다면 술이라도 어떻게든 빼자. 이게 아빠의 전략이었어.

'어떻게 빼지? 바닥에 버릴까? 물컵에? 입에 물고 화장실로 뛰어?'


회식장소로 이동하면서 어떻게 하면 티 안 나게 술을 안 마실까 라는 생각을 하다가 문득 이런 내가 너무 비참하게 느껴지는 거야.


'하아.. 도리.. 진짜 몇 천 원 때문에 이렇게까지 해야 되는 거냐..."


단돈 몇천 원이 없어서 어떻게 하면 술을 안 먹을지 어떻게 하면 남들을 속일 수 있을지 고민을 하는 내가 너무 초라해 보였어.


남들은 첫 회식에서 어떻게 하면 부서사람들에 눈에 뜨일까? 어떻게 하면 자기를 어필할 수 있을까? 고민 할 때, 그래... 아빠는 어떻게 하면 돈 안 쓰고 무사히 집에 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던 거지.


어느덧 회식장소에 도착했고 밖에서 안을 살짝 들여다보니 이미 거의 다 와서 술을 마시고 있더라고.


'그래 천천히 들어가자, 어차피 술 안 마실 건데 조금 늦어도 뭐...'


라고 생각하며 담배에 불을 붙이고 그대로 쪼그려 앉아 고개를 숙인 채 숨을 깊게 들이마셨어.

다시 내뱉으려고 얼굴을 들어 올리는데 낯익은 바지를 입은 사람의 다리가 보이는 거야 그대로 고개를 위로 올라가며 쳐다봤더니


"너 안 들어가고 뭐 하냐?"

"켁켁켁 으허허 켁 우웩!"


내 옆자리 기현이 형이었어. 나이보다 약간 젊어 보이고 와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겠다 싶을 정도의 준수한 외모라 기억에 남는 사람이었거든.


"야야 마저 펴~ 이거 술도 안 먹었는데 이러다 토하겠네"

"흐어억.. 들,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뭘 들어가 빨리 들어가 봐야 술 한잔 더 먹기밖에 더하냐? 담배 뭐 피냐? 나도 줘"


담배를 건네주고 더 혼나기 전에 빨리 들어가야겠단 생각으로 식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기현이 형이 뒤에서 친근 한 말투로 소리 지르더라고


"야? 하나 더 안 펴? 같이 들어 가자니까?"


저 사람도 친한척하면서 무슨 꼰대짓을 할지 모른단 생각에 그냥 무시하고 식당문을 열었어.


-딸랑-


왜 그런 적 있잖아. 갑자기 막 떠들다가 일순간 조용해지는 순간. 왜 하필 그 순간에 내가 문을 열었던 걸까.

너무도 큰 종소리는 우리 부서 사람들 눈을 내쪽으로 모으기에 충분 했고 나를 발견한 동료들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어


"뭐야? 신입이 제일 늦어!"

"야빨리와 너 때문에 지금 시작도 못하고 잇잖아"

"이 새끼 이거 빠져가지고 걷네? 안 뛰어?"

"야 오는 길에 냉장고에서 소주 두 병 갖고 와 시원한 걸로"


냉장고에서 소주두병을 꺼내서 테이블로 뛰어갔지. 숨을 고르며 사람들 하나씩 살펴보는데

회사에서와는 조금 다르게 밝게 웃고 있는 과장님을 발견했어.


'어? 저 사람 웃을 줄도 아네?'


라고 생각하는데 갑자기 나와 눈이 마주친 과장은 다시 반쯤 눈을 감은체 나를 노려보는 거야


'뭐야... 시그니처니?'


왜 또 저럴까 싶어서 혼자 속으로 궁시렁 거리며 빈자리에 앉는데 갑자기 과장님은 음료수컵에 소주를 따르기 시작했어.


'이야.. 술 겁나 잘 먹는가 보다'


나이도 나보다 많아야 10살 정도밖에 차이 안나 보이는데 술을 글라스로 마시려고 들다니. 진짜 굉장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나저나 술을 어떻게 빼나...'


하는 걱정을 하고 있는데 과장이 나에게 소주병을 줬어.


"신입 잔 한번 받아볼까?"


내쪽으로 내민 소주잔에 소주를 따르고 예의상 나도 따라달라 하려고 잔을 찾는데 갑자기 음산한 웃음소리가 들렸어


"낄낄낄.. 니 거 여깄잖아 "


과장이 가리킨 곳엔 아까 과장이 소주를 가득 따라놓은 음료수 컵이 보였어.


"후레자 삼배란 말 아냐? 늦게 온 놈은 세잔 마시란 참 좋은 관습이지. 근데 딱세잔만 주면 정 없어 보이잖아? 그래서 준비했어"

"아.. 아니 이렇게 까지 챙겨주실 필요는..."

"뭐야? 내가 주는 게 맘에 안 들어? 경태야!"


진짜 산 뒤집어 엎고 나가고 싶었어. 신입이라고 막대하고, 장난치고 무엇보다 싫었던 건 그놈의 '경태야' 였어.

과장이 준 컵을 손에 들고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결론을 내렸지


'그래 그냥 집에 걸어가자 2시간 정도 걸어가면 되겠지. 아 모르겠다!'


누군가 그러더라 포기하면 편하다고. 술을 안 먹어야겠다는 생각을 포기하니까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어.

나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큰소리로 쩌렁하게 내뱉었어


"사장니임!"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우리 회사사람들 뿐 아니라 가게 안에 잇던 모든 손님들이 내쪽을 쳐다보더라.


"야야 화내진 말고.."


내가 화낸다고 생각했는지 동료들은 나를 토닥이며 진정시키려고 했어. 그 손길과 말을 무시한 채 사장님을 바라보며 비장하게 말했지.


"여기 얼음물 한잔 아니 한통 갖다 주세요!"


그 말과 끝나기 무섭게 과장님 이준 음료수컵에 담긴 소주잔을 원샷하기 시작했고, 직원들은 엄청난 걸 본 사람처럼 눈이 동그래지기 시작했지.


-탕! 크아!' -


소주를 다 넘기고 음료수컵이 깨질 듯 상에 내려놓으며 시원한 소리를 내자 사람들의 박수가 이어졌어.


'아 XX 몰라! 이미 망한 거. 다들 집에 네발로 기어가 보자!'


아빠의 환영식은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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