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친구들한테
항상 입버릇 처럼 하던 말이 있었어.
"만약 나중에 사회 나가서 니들이 돈 빌리러 오면
난 안 빌려줄 거야."
친구끼리 돈을 빌려준다는 건
관계가 깨지는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수없이 들어왔었기에...
"그 대신 밥을 사줄 거야.
정말 배고파서, 밥 사 먹을 돈도 없게 되면
그때 나를 찾아와"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돈을 빌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었던 거지.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사자가
나일거란건 완전히 배재한 말이었어.
"오늘 뭐 하냐? 누나는?"
꽉 막힌 퇴근길 도로 위에서 한숨을 푹푹 쉬며
창문을 연채로 애꿎은 담배만 펴대고 있는데
아빠 친구 준영이 삼촌한테서 전화가 온 거야.
"퇴근 중이지. 미진이야 집에 있겠지 뭐"
"아니 지금 뭐 하냐가 아니고, 오늘 뭐 하냐고 인마"
"아 왜! 뭐라도 하겠지 할 게 없을까 봐?"
그땐 왜 그렇게 항상 날이 서 있었는지
살짝만 다가와도 휘둘러 버리는 칼임에도
항상 시퍼렇게 날이 서있어서
내 옆에 있으면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친구들은 항상 내 옆에 있어줬어.
그땐 그게 고마운 줄 모르고
내 상처만 생각했던 것 같아.
이기적 이게도 말이지
"동방 갔다가 집에 가는 길인데, 치킨냄새 죽인다.
양반 후반 해서 맥주 때릴까?"
아빠야 급하게 결혼하는 바람에 취업해서 휴학을 한 상태였지만
친구는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었거든.
"치.. 킨?"
치킨이란 말에 살짝 화가 누그러들었어.
웃기지 않니? 치킨이 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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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 맛있겠다. 치킨 못 먹은 지 백 년 된 거 같으네! "
"... 월급 타면 한 마리 시켜 먹을까?"
"진짜? 오에! 그럼 난 매운 양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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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얼마 전에 엄마랑 티비를 보다가 치킨광고가 나왔는데
엄마가 치킨에서 눈을떼지 못하는 거야.
얼마나 안쓰럽고 미안하던지.
"양반후반 받고 매운 양념 한마리더..."
"깡패야? 강도야? 이 새끼이거.. 오케이 받고 맥주까지 콜!
아 언제 오는데? 니네 집으로 가있어?"
"어.. 집으로와.. 어? 야 전화 들어온다 집에서 보자"
핸드폰 진동에 살짝 액정을 보니
엄마한테서 전화가 오는 중이더라고.
"아저씨..."
"어 나 지금 가는 중이야"
"왜 안 와...? 깜깜해져 가는데?"
"금방 갈 거야. 그리고, 금방 준영이 갈 거야"
"준영이? 오! 왜?"
준영이가 집에 온다는 말에
엄마는 마치 신이 난 아이처럼
흥분해서 목소리가 살짝 올라갔어.
그랬을 거야...
사실 엄마는 아빠랑 신혼집을 구한 곳이
전혀 연고가 없는 곳이었어.
학교를 채 끝마치지 못하고
급하게 일을 구하는 바람에.
회사는 학교가 있는 지역으로,
그리고 신혼집은 학교 근처로 잡게 됐거든.
사람 좋아하고 노는 거 좋아하던 엄마가
아는 사람 없이 하루 종일 집에 갇혀서
아빠퇴근할 시간만 기다린다는 거
그거... 혹시 상상은 되니..?
"치킨 사준데!"
"오! 치킨! 음.. 매운 양념..
사달라고 하면 염치없겠지..."
"내가 미리 얘기했지~
얼마 전에 너 그거 먹고 싶다고 했잖아."
"진짜? 아구 잘했어요 아저씨~"
그렇게 준영이, 그리고 엄마랑 통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집 밑에 도착을 했어.
차에서 내리고 담배하나만 피고 올라가자 싶어서
담배를 꺼내 무는데
"아저씨 여기 금연이에요"
"아.. 죄송.. 할뻔했네. 뭐야 인마!"
금연이란 말에 입에 문 담배를 다시
담뱃갑에 넣으며 바라본 곳엔
재밌다고 웃고 있는 준영이 삼촌이 보였어.
"가는 거냐? 오는 거냐?"
"아? 방금 왔다가. 맥주 산다고 정신없어서
깜빡하고 누나 마실걸 못 샀네? 음료수 좀 사려고"
같이 따라가려고 담뱃갑을 주머니에 넣으려 하는데
준영이가 손사래 치면서 마트 쪽으로 걸음을 돌리더라고
"피고 있어 금방 갔다 올게.
뭐 무거운 거 산다고 남자 둘이 가?"
그렇게 준영이는 점점 멀어졌고.
아빠는 착잡한마음으로 담배를 다시 물었지.
담배를 거의 다 피워갈 때쯤 되니까
봉지를 흔들면서 오는 준영이가 보였어.
"요즘은 마트도 원플러스 원 행사를 하네?
쟁여놓고 마셔~"
"적선하냐?"
"뭔 또 적선이야. 이런 건 횡재라고 하는 거지"
"줘 내가 들게"
얻어먹는 주제에 뭐라도 해야 될 것 같아서
준영이 손에 들린 봉투를 빼앗다시피 가져와 들었어.
"도리 아저씨~"
집문을 열었을떄 집에는 치킨냄새로 가득 차 있었어
그리고 언제나처럼 환하게 반겨주는 엄마도.
"내 치킨 다 눅눅해지겠네, 야! 알지?
치킨은 눅눅해지면 끝이야"
식탁도 없어 바닥에 펼쳐놓은 치킨이 있는 곳으로
뛰어가 앉는 준영이, 그리고 음료수와 맥주를 마실
컵을 가져오는 엄마.
여느 친구들과의 저녁식사 자리와 다를 것 없는 모습이었지만
자격지심 때문이었을까? 아빠한테는 그렇게 즐겁지 않았어.
아니 어쩌면 며칠 후 내야 될 공과금, 월세들을 어떻게 내야 할지
고민하는 처지에, 치킨 한 마리에 웃어버리면
내가 정말 거지 같을까 봐 그러지 말라고, 얌전히 좀 있으라고
나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는지 몰라.
"준영이가 사준 거니까 닭다리 준영이 줄게!"
"오! 이 귀한걸~ 감사합니다!"
엄마는 준영이에게 매운 양념치킨 닭다리는 내밀었고
준영이는 살짝 오버하면서 받아 들고는
살짝 고민하는 듯하더니 크게 한입 베어 물었어.
"야! 물! 물!"
맞아. 준영이 삼촌은 매운걸 못 먹어.
신라면도 맵다고 하는 사람이거든.
매워서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에
엄마는 뭐가 그렇게 웃긴지 박장대소를 하고 있었고.
아빠도 살짝 입가에 웃음이 가기 시작했어.
"와! 죽을뻔했네. 스읍.. 이거 음식이 아니라 살인무기야"
"지랄한다 뭐가 그렇게 맵다고"
퉁명스럽게 말을 내뱉자 엄마는 이번엔 닭날개를 하나 집어 들더니
아빠한테 내미는 거야
"아저씨도 도전?"
멈칫하며 엄마를 쳐다보고 있는데, 혼자 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준영이는 낄낄대며 나를 놀려대고 있었어.
"이야~ 임산부가 주는데 안 먹으면 진짜 사람 아니다.
지금 아기랑 해서 두 명이 주고 있는 거잖아? "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치킨을 입에 넣고 씹었을 때
확 올라오던 그 맛이 얼마나 맵던지.
눈물이 찔끔 날정도였어.
하지만, 이 정도론 어림없다는 표정을 애써 짓고 있었지.. 만
쉽지 않았어...
"뭐가 맵다고 그러냐? 먹을만하구.... 으악! 물!"
"거바 인마 맵다니까~ 야 맥주 마셔~"
맥주를 컵에 가득 따른 뒤 매워서 어쩔 줄 몰라하는 아빠에게
컵을 넘겼고, 아빠는 그걸 꿀꺽꿀꺽 원샷을 한 거지.
아니.. 하려고 했지..
- 푸악 -
혀가 얼얼한데 맥주의 탄산이 혀와 입안을 자극해
이건 도저히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거야.
그대로 뿜어 버렸지 뭐니.
이 모든 게 계산되어 있었다는 듯 준영이는
또 배를 잡고 굴러다니며 웃어대고 있었고
엄마도... 한패였어....
준영이와 엄마의 장난으로
화기애애한 상태에서 시작된 술자리
내가 떠난 학교 이야기들,
최근 티비에 나오는 연예인, 드라마이야기들
그리고 아빠 회사이야기들로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먹고 마셔댔던 것 같아.
"나도 그거 마실 줄 아는데..."
임산부여서 술을 먹지 못하는 엄마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말야.
그때 핸드폰에서 문자메시지 알람이 울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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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호 월세 입금 언제 됩니까?
나도 대출받아서 세 놓는거라
더 이상은 못 기다려요
다음 주까지 안되면 방 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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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주인에게 온 문자였어.
"아저씨 무슨 일이야?"
안 그러려고 했는데 아빠 표정에서 다 보였나 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엄마는 아빠에게 물었고
아빠는 한숨으로 대답했어.
"도리 다 죽었네. 너 원래 한숨 쉬던 놈 아니잖아"
"지랄한다.. 술이나 줘"
문자 이후로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 속에
술 넘기는 소리만이 집안을 채우고 있었지.
"야 도리야~ 담배나 하나피자"
"어? 너 담배 안 피잖아"
비흡연자인 준영이가 갑자기 담배를 피자며 날 일으켰고
문자 사건 이후로 가슴이 답답한 와중에
잘 됐다 싶어 준영이와 함께 집밖으로 향했지.
담뱃갑을 열어 담배를 확인하는데
3가치가 딱 보이는 거야.
"총알이 없네? 이거 담배이름 뭐냐?"
담배이름을 묻고는 마트로 뛰어갔다 오는 준영이 손에는
내가 피는 담배 2갑이 들려져 있었어.
"오다 주웠다. 너 해~"
"아 XX 진짜 왜 이러냐?"
"뭐? 안 받아?"
"아니 받긴 받는데..."
그렇게 받아 들은 담배 2갑.
고마운 일이지. 말하지 않아도 친구란 이유만으로,
오래 함께했단 사실 하나로
그렇게 챙겨주는 거.
"살만하냐? 너 없으니까 이번 과제 개판 났어"
그리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거.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 같아.
"야.. 준영아"
"왜?"
"나 50만 원만 빌려줄 수 있냐?"
"학생이 그렇게 큰돈이 어딨어?"
"그... 그렇지..?"
어렵게 꺼낸 말이었는데, 자존심 다 내려놓고
정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어본 거였는데
단숨에 거절 아닌 거절을 당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져 담배필 힘도 없이 그냥 물고만 있었지.
그런 날 조용히 바라보던 준영이는 살짝 잎을뗏어.
"나 네가 학교 다닐 때 했던 애기 아직 기억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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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나중에 사회 나가서 니들이 돈 빌리러 오면
난 안 빌려줄 거야."
"그 대신 밥을 사줄 거야.
정말 배고파서, 밥 사 먹을 돈도 없게 되면
그때 나를 찾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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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XX 하지마 뭣도 모르는 어린애가 세상 X나 만만하게 볼 수도 있는 거지"
"그 애기 멋있었다. 친구 잃을까 봐 돈은 못 빌려줘도
최대한 도와주겠다는 애기잖아?"
"그래.. 치킨사준걸로 됐다."
"뭘 사줘 나중에 갚아"
"미친놈이네 이거 진짜"
그렇게 얼마나 떠들었을까.
핸드폰을 꺼내 시계를 확인하던 준영이는
"근데 너 내일 출근 안 하냐?"
"하아.. 하지..."
"들어가 봐~ 난 그냥 갈게
누나한테는 집에서 전화 와서 먼저 갔다고 해줘~"
등을 돌려 자기 집으로 향하는 준영이게
소리쳤어.
"왜? 들어 갔다 가지?"
"니가 청소 시킬까봐"
그렇게 준영이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바라보다가 담배를 하나 더 입에 무는데
/띵동/
메시지 알림이 또 울리는 거지.
'하아... 진짜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그냥 보지 말자. 차라리 보지 말자.
어차피 좋은 내용 아닐 텐데 괜히 봐서 스트레스받지 말자.
라고 외면하다가 결국 핸드폰을 열었을 때.
네글자로 된 문자 한 통에 아빠는 핸드폰을 손에 꼭 쥔 채
주저앉아 머리를 푹 숙이고 말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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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시지 내용 -
계좌번호
발신자 : 주넴이 01x-xxxx-x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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