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청하신 대출이 부결 되었습니다

by 도리

말없이 핸드폰만 보고 있는 아빠 모습이

엄마는 너무 신경이 쓰였나 봐


마치 길에서 쓰러진 사람에게 말을 걸듯이

다급하게 아빠를 흔들며 얘기 하더라


"아저씨? 아저씨 괜찮아? 무슨 문자길래?"


문자 내용을 여러 번 읽던 아빠는

결국 마음을 굳히고 물었어.


"우리.. 대출받을까..?"


"..."


아빠의 말에 엄마는 말을 잇지 못했어.

엄마는 알았던 걸까?


버티고 버티다 아빠의 입에서 나온 그 한마디가

마지막 발악 같은 비명이란 걸 말야.


"대출 한 100만 원 정도 받고 다음 달에 다 갚아버리자"


정말 간단했어. 백만 원 초반대 월급이긴 하지만

다음 달에 다 갚아버리면 이자걱정도 없고.


무엇보다 지금 막힌 숨통을 트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


"응! 조금만 빌려 쓰고 금방 갚아버리자!"


결국 그렇게 대출을 받기로 결정하고

그날밤은 약간의 한숨과, 어쩌면 좀 더 나아질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그렇게 흘러갔어.


다음날


8시 10분쯤 출근을 해서 대출업체 영업시작 시간인

9시까지 기다리는데 얼마나 시간이 더디게 흐르던지


50분, 그 짧은 시간 동안 흡연실을 몇 번이나 들락날락 거렸는지

속이 느글느글하면서 토할 것 같은 게 죽을 맛이더라고


"너 몇 분 전에 담배피지 않았냐?"


"집에 우환이 있어? 뭔 담배를 그렇게 많이 펴?"


"이? 뭐여... 담배 많다고 자랑하는겨?"


줄담배를 펴대는 나를 보며 회사 선배들이 건네는

농담 섞인 인사도 아빠귀엔 들리지 않았어.


계속 핸드폰을 켜서 몇 분 지나지 않은 시계만

계속 쳐다 볼 뿐이었지.


그렇게 기다리던 9시가 되었고.

아빠는 대출업체로 바로 전화를 걸었어.


수화기에선 잔잔한 통화연결음만 흘러나올 뿐

상담사와 연결이 되지가 않았지.


'너무 바로 전화했나? 조금 있다 했어야 했나?'

'너무 9시 땡치자마자 전화해서 그런가?'

'아니면 그냥 누군가 장난친 문자인가?'

'요즘 전화만 걸어도 개인정보 빠져나가는 문자가 있다던데...'

'혹시 사기이면...'


별에 별생각을 다하고 있을 때쯤

딸칵하고 누군가 전화를 받는 소리가 들렸어.


"감사합니다. 쉽고 빠른 대출 ㅇㅇㅇㅇㅇ 입니다."


"아.. 저.."


대출을 받아 보기는커녕,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 아빠였던지라

뭐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를 해야 할지 전혀 몰랐던 거야.


"돈 좀 빌리려고 하는데요"


"네 고객님. 필요하신 자금이 얼마나 되세요?"


"배.. 백만원정도요"


"네?"


백만 원 정도 필요하단 말에 상담사는 '내가 잘못 들었나?'라는 식으로 되묻고 있었어.


'너무 큰돈이라 안되나?' 싶어 크게 한숨을 내뱉고는 물었지.


"하아.. 안 되겠죠?"


"아.. 고객님 백만원은 어려우실 것 같아요"


제일 듣고 싶지 않았던 말. 모든 기대와 희망을 꺾는 말.

상담사는 그 말을 아빠에게 전하고 있었어.


안된단 말에 전화를 바로 끊어버리고 싶었지만.

정말 간절함에, 혹시 다른 방법이 있다고 얘기해주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다시 알아보니 가능할 것 같다고,

자기가 잘못 알았다고 정정해주지 않을까.


그렇게 아빠가 버리지 못했던 것은.

미련이었고 희망이었고 간절함이었어.


그런데 그때


"소액 대출은 취급하는 곳도 많지 않아서요. 혹시 백만 원 외에

더 필요하신 자금은 없으신 걸까요?


"얼마까지 되는데요?"


"최소 500 이상은 신청해 주셔야 심사 가능하세요"


지금이야 정부지원 대출이다 뭐다해서 몇십만 원도 대출이 가능하지만

그 당시 특히 금융권이 아닌 대출 모집인들이나 대부업 같은 경우에는

소액은 인건비도 안 나온다 해서 안 받아주는 경우가 허다했거든.


"500이요?"


"네 고객님 신청 도와드릴까요?"


500이란 말에 아빠는 양가감정이 들기 시작했어.


'500? 500이면.. 거지처럼 안 살 수 있어.'

'500이나 필요한 게 아니잖아. 어떻게 갚으려고'


그렇게 잠시 고민하다


"500으로 해주세요"


결국 대출금 500으로 신청하고 말았어.


'일단 월세부터 내고, 공과금도 내고, 집에 쌀이 떨어져 가니까

쌀도 좀 사고 라면도 좀 채워 놓을까?'


그리고...


'미진이 임부복도 좀 사야겠다...'


그때까지 엄마는 임산부라면 다 있는 임부복이 없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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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 임부복 안 이뻐 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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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아빠에게 말하며 마음을 숨기는 엄마였지만


길을 지날 때, 옷가게 앞을 지날 때 잠시 잠깐 멈추는

눈빛까지는 숨기지 못했던 것 같아.


"서류를 준비해 주셔야 하는데요. 02-xxxx-xxxx로 보내주시고요"


초본을 비롯해 대출상담사가 요구한 서류는

회사에서 바로 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어.


온라인으로 발급받아 준비할 수도 있었겠지만.

공인인증서도 그렇고, 무엇보다 회사사람들에게

대출받는단 걸 알리고 싶지 않았거든.


"저.. 과장님.."


모니터에 얼굴을 고정한 체 눈동자만 굴려서 아빠를 쳐다보는 김 과장은

왜 불렀는지 조차 궁금하지 않은지 그냥 쳐다만 보고 있더라고


"잠깐 외출 좀 가능하겠습니까?"

"가봐"


평소 아빠를 괴롭히고 장난치는데 전력을 다하는 김 과장이라

또 무슨 트집을 잡을까 솔직히 조금 걱정하면서 물어본 거였는데

생각보다 별 반응 없이 승낙해 준거야.


"어?"

"왜?"


"가도 됩니까?"

"가라니까?"


"... 갔다가 돌아와도 됩니까?"

"아이씨.. 갔다가 돌아오지 마. 그거 내가 할려고 했는데..."


사람은 안 변해.

역시 또 장난칠 타이밍을 재고 있었던 거야.

혼자 아쉬워하면서 끌끌 웃어대더니

언제 타왔는지 모를 커피를 입에 갖다대며 무심하게 한마디 하더라고


"갔다 와. 난 사이다"

"네.. 네?"

"부탁을 들어줬으면 선물 사 와야지 난 사이다"


그렇게 장난 같지 않은 장난을 뒤로하고 회사를 빠져나왔어.

동사무소, 세무서, 그리고 팩스를 받고 보낼 문방구까지.


담배 한 대 필 시간 없이 그리고 숨 돌릴 틈 없이

돌고 돌아 결국 대출상담사가 요구한 서류를 다 보냈어.


"다 보냈어요."

"네 확인해 보겠습니다."


전화를 하며 큰 거 하나 마무리 했단 생각에 담배를 입에 물었지.


"ㅇㅇ저축은행, ㅇㅇㅇㅇ 대부, ㅇㅇ캐피털에서 전화 가실 거예요."


대부란 말에 깜짝 놀라서 담배 연기가 사례가 걸렸지 뭐니.


"켁켁.. 대부요? 그거 나쁜 거 아니에요?"

"고객님께서 생각하시는 건 불법 사체 말씀하시는 것 같구요.

말씀드린 곳은 여신금융협회에 정식 등록된 대부업체입니다."


뭐가 다른 건지 솔직히 그때는 이해가 안 됐지만.

뭐 전문가가 아니라고 하는데 그 말을 그대로 믿는 방법 밖에 없었지.


"전화 오면 필요자금 얘기하시면 되구요. 다른데 진행하는 데 있냐고 물어보면

없다고 말씀하세요."


전화를 끊고 발길은 회사로 향하면서도 불안감은 멈추질 않았어.


'혹시 안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았거든



3월 말



아직은 차가운 바람과 많지 않은 걸음에도. 점포에 비춰진 아빠 모습은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 많이 지쳐 보이더라구...


"내 사이다는?"


어떻게 돌아왔는지도 모르게 도착한 사무실 입구.

담배를 피러 나가는 건지 사무실을 나오던 김 과장과 마주친 거지.


"아..."


"없네? 내 사이다?"


"그게..."


"됐어 들어가 봐~ 아~ 도리가 나 무시하네~"


약간은 비꼬는 듯, 장난치는 말을 남기고 김 과장은 흡연실로 들어갔어.

자리에 앉아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아빠 책상 전화가 울리는 거야


"감사합니다. 개발 1팀 도리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도리? 누가 찾는데?"


"도.. 돌려주세요!"


아빠의 큰소리에 옆에 있던 경태형이 깜짝 놀라 신경질적으로 아빠에게 얘기하더라.


"누굴? 네 모가지를?"


이건 대출업체다. 감으로 알았던 것 같아.

마치 알몸을 들킨 것처럼 너무 부끄럽고 치욕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돌려달란 말을 너무 크게 지르고 말았던 것 같아.


"도리고객님? 재직확인차 연락드렸습니다. 심사 후 연락드리겠습니다."


'뭐야.. 그럼 2번이나 더 받아야 된다는 거야?'


한 번도 누가 알아챌까 떨리고 힘든데, 2번이나 더 받아야 한단 사실에

가슴이 답답하면서도 돈 500을 빌려준다는데 이걸 못하겠냐란 생각에

마음을 다잡는 아빠였지.


"도리씨. 찾는 전화요."


두 번째 전화가 울렸고, 역시 대출업체에서 온전화였어.


누가 들을까 고개를 살짝 숙이고 살짝 작은 목소리로 통화를 하고 있는데

노란머리 그 녀석이 다가오고 있는 거야.


노란 머리 기억나니? 첫 회식 때 친구하기로 한 그 좌소주 우소주병

그 노란머리 말야.


전화를 받고 있는 아빠 자리로 오더니 빵 하나를 건네더라고.


"네.. 네 알겠습니다."


부랴부랴 전화를 끊고 빵을 받아 드는데 그 노란머리는 뭔가 수상하다는 눈빛으로

아빠를 쳐다보고 있었어.


"우리 팀 외근자가 사 왔는데 남아서.. 근데 너 카드 만드냐?"

"아니? 웬 카드?"


덤덤한 척 얘기하는 아빠가 많이 어색했던 걸까? 여전히 실눈을 뜨고 빤히 쳐다보던

그 친구는


"그럼 대출받냐?"

"대.. 대출은 무슨!"


어떻게 알았을까? 너무 놀라서 아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진 것 같아.


"아니 너 전화받는 모습도 그렇고 처음에 돌려준 사람이 내 옆 자리거든"


"근데?"


"ㅇㅇ 카드라고 하길래"


뭐,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 근거도 없고. 그냥 그때는 대출자체가 나쁘다고 생각했었어.

그래서 대출보다는 카드가 났다고 판단했던 거지.


"사실 와이프 몰래 카드 만드는 중이야."

"그래? 야 혜택 잘 확인했어? 포인트는? 너 차 끌고 다니잖아 주유 할인은? 아 그런 거 있으면

나한테엑! 악! 아야야야야야..."


그렇게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언제 나타났는지 노란머리네 팀장님이 노란머리 귀를 잡아당기고 있었지.


"요이..요이..단무지 새끼.. 요기 숨어 있었네. 업무시간이야! 자리로 안 가?"

"아야야야.. 팀장님.. 선생님.. 아! 아파요 갈게요.. "


팀으로 돌아가는 노란머리 뒷모습을 보며 웃음이 터지는데 문득


'아.. 나도 웃을 줄 아는 놈이었구나.'


최근에 이일 저 일에 치여 웃을 여유조차 없이 살아온 내가 갑자기 안쓰러워지더라고.


- 띵동 -


그때 핸드폰에서 문자 알림 소리가 났어.

기대감과 불안감이 겹쳐 손을 덜덜 떨면서

문자를 열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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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사 심사 기준에 부합하여

부결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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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건 부결 문자였어.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꽝하는 충격.

진짜 말로만 들었지. 누가 처음 표현한 건지

딱 저 느낌이더라고.


'흐아...'


책상에 널어지듯이 엎어지며 엎드렸는데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참자.. 참자.. 다음 건 괜찮을 거야.

세 개 중에 하나는 되겠지.


그렇게 나 스스로를 위로하며 버티고 있을 때 두 번째 문자가 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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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대출 신청건은 심사결과

진행이 어렵습니다.

도움을 못 드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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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끌어 올라오는 느낌이랄까?

불안감, 답답함, 막막함, 눈물 이런 것들이 한대 섞여서

냄비 끌듯이 막 끌어 올르는 거야.


냄비 뚜껑만 날아가 버리면 그대로 안에 내용물이

다 흘러나올 것 처럼말야.


더 이상 기대는 사라지고


'이제 어떡하지? 어떡해야 하지?'


라는 답 없는 질문만이 남았을 때 다시 문자 알람이 울렸어.


'제발... 제발...'


승인만 난다면 내 영혼을 가져가도 좋다고. 승인만 나게 해달라고.

그렇게 눈을 꽉 감은채 기도하며 핸드폰을 열고

한쪽눈을 살짝 뜨면서 핸드폰을 바라봤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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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리고객님 금 5,000,000원

승인되었습니다.

대출금 입금 및 서류 관련하여

전화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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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기다리던 승인 문자가 와있었어.

대출 관련 서류 전화를 받고,

상환 일정에 대해서 설명을 듣고,

대출금 입금받을 계좌를 대출업체 직원에게 다시 확인해 주면서도


'혹시 이렇게까지 해놓고 입금을 안 해주면 어쩌지?'

마지막까지 불안한 마음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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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 알림

입금자 : ㅇㅇ 대부

입금금액 : 5,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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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금문자가 핸드폰에 떴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안심한 아빠는 의자에 축 늘어져버렸지.


그건 드디어 끝났다는 안도였고

이제 좀 나아지겠지라는 희망, 기대였어.


이 사실을 엄마에게 재빨리 알려주려 핸드폰과 담배를 들고

흡연실로 나가려는데


"너 일 안하냐? 하루 종일 뭐 하는데?"

"다.. 담배 한 대만 피고 와서 하겠습니다."


경태형이 뭔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살짝 짜증 섞인 말투로 얘기하는 거지.

미안한 마음이 들면서도 일단 지금 이 사실을, 돈이 생겼으니 걱정 말라는

이 애기를 엄마에게 꼭 해주고 싶었어.


흡연실로 도망치듯 나와서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


"아저씨?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마누라~"


"응? 어? 됐구나! 고생했어 도리 아저씨"


순간 생각이 들었어. 500을 받았다고 하면 네 엄마가 뭐라고 할까?

우리 필요한 건 100인데 왜 500을 받았냐고 화를 낼까?


아니 네 엄마는 화를 내기보단.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을 할 사람이라.

그래... 그럴 사람이라. 금액은 굳이 얘기하지 말자.


어차피 그냥 갚으면 되는 거잖아?라는 진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 같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뭔지 아니?


"응.. 우리 오늘 외식할까?"


언제든 갚아버리면 그만일 거라고 생각했다는 거.

그 돈이 내 돈인 줄로 착각했다는 거.


그런 안일한 생각들이


우리 인생을 통째로 바꿔 놓을지는 꿈에도 모른체

그렇게 첫 단추는 잘못 끼워져 가고 있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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