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오늘 외식할까?

by 도리

"응.. 우리 오늘 외식할까?"


500이나 통장에 찍히자 그야말로 걱정거리가 싹 사라져 버렸어.


아빠가 필요했던 돈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돈이 생기니까

마치 부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더라고.


자리에 돌아와 제일 먼저 월세를 입금했어.


'아직 450이나 남았네'


월세를 입금하고도 450이나 남았단 생각에

이 돈으로 뭘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라


'라면도 사야 되고, 반찬거리도 있어야 하니까..'


마트, 엄마 임부복 살 옷가게.

아빠는 자리에 앉아서 무슨 엄청난 기획서를 쓰는 것처럼

빈종이에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사야 할 것 들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어.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컴퓨터 화면 모서리에 있는 시계를 보니

이미 6시가 지나고 있더라구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데 아무도 안 일어나는 거야.

슬그머니 짐을 챙겨서 일어나는데


"다시 앉아"


"네..."


"어디 형이 퇴근을 안 하는데 건방지게 먼저 가려고"


오전에 업데이트 친 내용이 잘못되는 바람에 하루 종일 전화만 붙잡느라

업무시간에 처리 못한 일 때문에 야근을 하게 된 경태형한테 딱 걸려버린 거지.


엉덩이를 의자에 대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서있지도 못하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안절부절하고 있으니까 거슬렸는지 책상을 꽝 치더라고.


"아! 거 새끼 진짜. 왜? 똥 마렵냐? 화장실을 가던가."


"형 그게 아니고..."


돈도 생겼겠다. 할 일도 많겠다. 집에다는 빨리 간다고 했는데

내가 해야 할 일이 남은 것도 아니고 의미 없이 붙잡혀 있는 게 정말 마음에 안 들었지만.


그렇다고 항의하거나 대들 수 있는 상황은 아니잖니? 살살 구슬렸지.


"저... 부탁이 있는데."


"뭔데? 집에 보내달란 거 빼고 얘기해봐 들어만 볼게"


"..."


김 과장을 비롯해 이 팀은 정말 사람 괴롭히는데 '도'가 텄다는 생각이 다시 들게 되더라.

아니 내가 생각하는 것을 어떻게 저렇게 다 알고 있으면서 그것도 모질라 역으로 공격하냔 말이야.


"할 애기 없지? 나 담배 피고 온다? 같이 갈려?"


경태형의 말에 검지와 중지 손가락을 쫙 피고 브이를 만들어 팔을 번쩍 들었어.


뭐 하는 거야? 라는 표정으로 뚱하게 쳐다보던 경태형은


"이 새끼가... 선배도 못 알아보고 이제 손가락에 담배까지 끼워달라고 하네... 미쳤냐?"


"두 갑! 집에 보내주시면 담배 두 갑 사다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담배 두 갑과 퇴근을 맞바꾸고 주차장으로 뛰어가 시동을 걸면서 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어.


"아저씨? 왜 이제 전화해?"


엄마는 언제나처럼 아빠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봐

통화 연결음이 얼마 울리지 않았는데 받은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신나고 밝아 보였지만

왠지 모를 쓸쓸함이 묻어났어.


"응 지금 끝났어. 외출해야 되는데 준비 됐어?"


"오! 외출. 기다려 후딱 준비할게!"


"아유~ 천천히 해 다치지 말고, 집 근처에 가면 전화할게"


엄마와의 전화를 끊고 담배를 물었어.

앞차들의 브레이크 등 때문에 온통 빨개진 교통 정체 속에서도 짜증은커녕

오히려 기분이 들뜨고 심지어 설레기까지 했던 것 같아.


정말 그런 기분이 얼마만 이었는지

항상 퇴근길이 무겁기만 했는데 말이지.


"또 차에서 담배 폈어! 나중에 다소한테 다 이를 거야!"


"아! 어. 일단 타 빨리 갈 곳 많아."


집밑에 도착해 엄마가 차문을 열었을 때. 아빠가 핀 담배 연기가

냉동실 문열었을때처럼 확 빠져나갔어.


아빠는 고개를 획 돌리며 약간의 기침을 하고는

눈을 흘기며 잔소리를 하는 엄마를 재촉하고 있었지.


그때 아빠는 엄마의 임신과는 상관없이.

차, 집, 식당에서도 엄마랑 같이 있을 때만 안 피면 된다라는 생각으로 흡연을 했었거든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얼마나 아빠가 배려가 없었는지. 그때 엄마가 얼마나 서운했고

얼마 속으로 참아왔는지... 참 엄마한테 잘해줬어야 했는데 말이지...


집을 떠난 우리는 제일 먼저 임부복 전용 쇼핑몰로 향했어.

건물에 한 층이 임산부들을 위한 매장들이 쫙 깔린 곳이었는데

장소 특성상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이 대부분이라 좀 어색했었던 것 같아.


"진짜? 진짜 사도 돼?"


"야~ 옷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 한 5개 골라봐"


"헤헤 5개? 너무 많은데?"


5개가 너무 많다며 손사래 치면서도 자신이 메고 온 손바닥 만한 가방을 나한테 건네는

엄마의 모습은 상당히 모순적이었지만 마치 장난감가게에 데리고 온 아이처럼

설레 보이는 엄마의 모습은 지금도 눈에 선하단다.


"응? 웬 가방?"


"지금부터 이 구역은 내가 접수한다. 아저씨는 저기 가서 쉬고 있어.

내가 딱 다섯 바퀴만 돌고 올게~"


"어? 몇 바퀴?"


"기. 다. 려. 옷 하나에 한 바퀴... 다 디져써"


나름 비장하기까지 한 그 말을 남기고 엄마는 어디론가 사람들과 함께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선

벤치에 앉았지.


'으아~'


벤치 등받이에 어깨동무하듯이 양팔을 걸치고 앉아 살짝 기지개를 켜고는

주위를 둘러봤어.


혼자온 임산부들, 친구 줄 선물을 고르는지 두세 명씩 몰려다니는 여자들,

같이 온 부부들. 그렇게 사람구경을 하면서 매장도 구경할 겸

슬슬 걷고 있는데, 멀리 옷 여러 개를 두고서는 거울에 비춰보고 또 꼼꼼히 뒤집어가며

옷을 고르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더라.


저렇게 해맑게 웃는 걸 본 게 언제였더라.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지역으로 데리고 와서 애완동물처럼 집에 갇혀있으면서

내색 한번 안하고 돈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텐데도 오히려 날 위로하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하면서

답답한 게 숨쉬기가 힘들어질 때쯤


"아저씨!"


"컥!"


언제 왔는지 뒤에서 등을 툭치며 아빠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와 행동에

정말 숨이 멈출뻔했지 뭐니.


"와.. 너 내 이름으로 보험 들어놨지?"


"오... 그것까진 생각 못했는데 그런 방법도 있었네..?

이거랑 이거 중에 뭐가 더 이뻐?"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엄마의 손을 봤는데 색만 조금 다를 뿐 디자인은 비슷해 보이는

임부복 두 개를 들고 있었어


"응? 5개사라니까?"


"놉! 여기 디자인 별로. 그리고 대따 비싸. 저 돈주면 내가 만들어도 되겠어.

두 개 중에 뭐가 이뻐?"


"아니 5개사라고"


디자인이 별로라는 엄마의 말 뒤에 온, 비싸다는 말 그게 또 아빠를 발작하게 만들었는지 몰라.

그놈의 자존심, 그놈의 자격지심이 또 쓸데없는 피해자를 만들어 버린 거지.


"왜 이래?"


"아니 사준다고 5개사라고. 너까지 나 무시하냐? 돈 있으니까 사라고 좀. 사준다고."


아빠를 빤히 보던 엄마는. 아빠가 왜 소리 지르는지 알았던 걸까? 주먹을 살짝 쥐어서는

아빠 가슴을 툭 치고는 얘기했어.


"이그~ 여기에 내 스타일이 없다구~"


"찾아보라고. 5바퀴 돌겠다며? 한 바퀴도 안 돌고선 네가 어떻게 알아?"


아빠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자 엄마는 아빠 허리를 살짝 꼬집으면서 조용히 얘기했지.


"조용히해? 아저씨 너무시끄러?"


"아 몰라. 더 사던지. 나 못 나가니까"


화를 내며 벤치에 앉는 아빠를 보던 엄마는 뭔가 곰곰이 생각하더니 다시 입을 열었어.


"나머진 인터넷에서 살 거야. 누가 요즘 오프라인에서 사? 도리아저씨 바보래요~"


"진짜?"


"웅! 여기 디자인 대따 구리다니까?

여기서 5개 살돈이면 인터넷에서 10개다. 10개 사줘!"


아빠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거짓말인지 사실인지 모르지만

일단 얘기를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진정이 되더라.


그때서야 주위를 둘러보니 아빠 목소리가 도대체 얼마나 컸는지

주위사람들이 다 우리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엄마도 부끄러웠는지 들고 있던 옷 두개를 다시 갖다 두고는

아빠에게 총총총 다가와서 다시 가방을 뺏어 밖으로 나가는 엄마 뒤를

아빠는 말없이 쫓아가고 있었어.


그때 엄마가 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휙 돌더니

도끼눈을 뜨며 목소리를 깔고는


"못 나간다며? 난 또 여기서 사신다는 줄 알았지?"


"니..니가 가는데 내가 어떻게 안가. 너 나 없이 살 수 있어?"


"못살아! 그리고 소리 지르는 아저씨랑도 못살아!"


"응..."


엄마는 미안해서 고개를 숙이고 있는 아빠를 꼬옥 안아줬어.


"그러니까 또 그러면 안돼? 응?"


"응..."


쇼핑몰을 빠져나와서는 바로 마트로 출발했어.

마트에 들어서면서 호기롭게 카트를 뽑아 끌었지.


"오~ 카트 너 오랜만이다욧!"


매번 조그만 손바구니만 들다가 오랜만에 카트를 끌자

장난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엄마였지.


전자제품 코너 돌면서 구경도 하고

아기 상품 진열해 놓은 코너에서 이제 곧 우릴 찾아올 아기에 대해

상상도 해보고, 식품코너에서 그동안 먹고 싶었던 햄, 참치, 라면, 냉동식품 같은 것도

담아보고 회사에서 깨트려버린 물컵, 그리고 그동안 너무 갖고 싶었던 생활용품들...


생각 없이 담다 보니 어느새 카트 하나가 꽉 차 가더라


"우아~ 엄청 많다.

다 도리아저씨랑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라

뭘 뺄지 백번 고민해야겠는데?"


가끔 마트에 오면 빈바구니 들고 다니기 민망하고 창피해서 이것저것 집어 든 다음에

마지막에 필요한 것만 계산하곤 했었거든. 엄마는 이번엔 다 좋아하는 것들만 담았는데

뭘 빼야 하나 그걸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


"어? 도리아저씨 아직 안 뺏는데?"


다급한 엄마의 말을 뒤로하고 계산대로 향했어.


- 삑. 삑. 삑. -


짧은 비프음이 울릴 때마다 올라가는 가격들.

평소 같으면 불안해서 계속 쳐다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나지만

아무 걱정 없이 박스에 물건을 담기에만 여념이 없었어


왜냐고?


아빠에겐 오늘 대출받고 밀린 월세금만 낸 450만원이 있었거든.


"24만원입니다."


"와.. 도리아저씨?"


가격에 입이 떡 벌어져서 말을 잇지 못한 채 아빠만 쳐다보는 엄마에게

마치 과시라도 하듯이 체크카드를 넘기는 아빠였지.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불이요"


체크카드는... 할부가 안된단다. 아빠도 알고 있었지.

하지만 거기서 '체크카드인대요..."라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상할 것 같았던 거야.


결제가 끝나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 엄마는 영수증을 몇 번이고 계속 읽으면서

입을 다물지 못했어.


"와.. 24만원이면.. 한 달 월세 반가격이네..

우와.. 이걸 사람이 1시간 만에 쓸 수 있구나.. 우와..."


엄마와 영수증을 먼저 차에 태운 뒤 짐을 싣고는


'오늘 가오산다' 라는 생각에 아빠 스스로 뿌듯해하며 담배를 꺼내 물었지.

담배를 정말 맛있게 필터 바로 위까지 빨아들이고는 차에 올라탔어.


"아 맞다. 몸 털고 탓어야 했는데... 담배 냄새 많이 나지?"


담배냄새 많이 나서 아기한테 안 좋다며 좀 귀찮아도 한번 털고 타라고 하던 엄마가.

혹 화를 낼까 싶어서 먼저 선수 치는 아빠였지만.


엄마는 아직도 영수증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굳어있었어.


"우리 외식하자!"


"..."


"마누라?"


"어! 어? 아저씨 모라고?"


"외식하자. 파스타 좋아하지? 오늘 스테이크랑 파스타 먹을까?"


"에에?"


아빠는 그냥.. 연애할 때 엄마가 그렇게 좋아하던 파스타를 사주고 싶었을 뿐이었어.

그런데 엄마는 아빠의 외식하자는 말 한마디에 달덩이처럼 커지면서 놀라더라고.


"파스타 싫어? 전부터 좋아했잖아"


"..."


엄마는 아빠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갑자기 바로 앉아 정면을 응시하면서 곰곰이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뭔가 깨달았다는 듯 박수를 짝 치면서 웃는 거야


"알았다! 시댁에서 돈 빌렸구나? 백만원 얘기했더니 더 빌려줬어요?

그래서 우리 아저씨 신나서 이러는 거예요?"


이건 또 무슨 소린가 해서. 머리 콩 쥐어박고는


"엄니아버지가 빌려주실 돈이 어딨냐. 망한 지가 언젠데.

그런 거 아냐"


"아야.. 개도리가 또 사람 때린다"


머리를 감싸고는 다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이번엔 갑자기 목소리를 떨면서 얘기하는 거지


"그.. 그럼.. 우리 죽어?

마지막 만찬... 뭐 그런 거야..?"


뭔 말 같지도 않은 소릴 하나 싶어 그냥 웃음으로 대답하면서 운전을 하고 있는데


-띵동-


문자알람소리가 울리는 거야.

핸드폰을 열어보니 입출금 안내 문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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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은행] 출금완료

일시: 20xx/xx/xx xx:xx

가맹점: XXX마트

금액: 240,000원

잔액: 4,26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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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많이 남았네? 저녁 한 끼 정도 사 먹어도 400 이상 남겠어. '


그렇게 마트에서 신나게 쇼핑을 했음에도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밖에 줄지 않은

잔액을 보며 오히려 안심하며 우리는 저녁식사를 위해 식당으로 향하고 있었어.


바보 같게도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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