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아이

by 도리

그 일이 있은 후로 2주 정도 지났을까?

고모가 온 이후로 많은 변화가 생겼어.

변화라기보다는 좀 시끄러워졌다랄까?


"오빠! 아침은 먹어야지! 아침밥이 얼마나 중요한지 몰라?"


잠도 없는지 새벽 6시부터 일어나서 아침밥 먹으라고

깨우지 않나.


"아.. 30분만 더 자자.."

"그럼 나라도 먹게 밥 해주고 다시 자"


"..."


물론 고모가 밥을 챙겨주는 게 아니라 내가 챙겨야 하는

입장이었단 게 문제였긴 해...


우연인지 고모의 계획이었는지 모르겠다만

아빠 회사 근처에 학원을 등록한 고모는

아빠가 출근할 때 같이 차를 타고 나갔어.


"너 그거 뭐냐?"

"이거? 오빠가 밥 안 줘서 냉장고에 있는 거 비벼왔는데?

동생 밥도 안 챙겨주고... 엄마한테 다 이를 거야"


반찬그릇에 뭘 비벼왔는지 보조석에 앉아 열심히

퍼먹고 있는 고모를 보니


'그래... 이게 내 동생이었지...'


라는 생각과 함께 한편으론 문득 궁금해졌어.


"너 혹시 연애 같은 건 안 해?"

"후릅.. 연애? 그게 뭐임? 먹는 쩝쩝..거임?"


"너 좋다는 사람 없어?"

"나는 만인의 연인이지~ 한 사람에게만 사랑을 주기엔

다른 사람들이 너무 가여워서.."


"악! XX 미안해! 내가 미안해! 이 얘기 그만하자"


정말 쓸데없는 질문에 쓸데없는 답변이었어.

학원 근처에 고모를 내려주고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무는데 갑자기 고모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어.


"왜? 뭐 놓고 내렸어?"

"오빠 이거 봐라~ 스마일~"


/찰칵/


"야!"

"헤헤~ 아싸 두 개! 오늘도 야근? "


"그거 진짜 지워라? 야근? 아마도?"

"오키! 이따 봐~"


'아... 정신없어...'


늘 그렇게 고모를 내려주고 나서야 아빠의 하루가 시작됐어.

회사일은 크게 달라진 건 없었어. 정현이와 사차장 사건 이후로

대부업 직원이 회사로 찾아오는 일도 없어졌지. 물론 전화는

무시무시하게 많이 왔지만 말야.


/

"하~나 도리씨 전화 좀 받아요.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니까"

/


아빠도 알고 있지. 피한다고 누가 빚을 갚아줄 것도 아니고

있는 빚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란 걸. 하지만 뭔가 당장 해결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화를 받기가 두려웠던 것 같아.


어쩌면, 돈 갚으라고 소리 지르고

화를 내는 대부업 직원의 목소리가 겁이 났던 건지도 모르고 말야.


웃기지? 잘못은 내가 했는데 해결할 생각은 안 하고 무섭다고,

두렵다고 피하기만 하는 그때의 아빠 모습이 말야.


겁 많고 대책 없던 그 시절 아빠는 말야. 아직 아빠가 될 준비가

되지 않은 몸만 어른인, 어른 흉내만 내는 어린아이였던 것 같아.


"도리! 저번에 말했던 기능 구현 됐냐?"


정신없이 일하고 있는데 마케팅 팀장님이 찾아오셨어.

며칠 전에 요청한 기능이 구현이 잘 돼 가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신 거였지.


"아... 며칠 야근하면서 공부하고 여러 방법으로 시도해 보고

있는데..."

"있는데?"


"그게..."

"하아.. 안된다야? 어렵다야?"


"어렵... 습니다..."


고개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아빠를

물끄럼히 쳐다보던 팀장님은 뭔가 생각하는 것 같더니

아빠 어깨를 툭치며 말했어.


"... 담배하나 피자?"


죄짓고 끌려가는 죄수처럼 고개를 숙인 채 팀장님 뒤를 따랐지.

흡연실에 들어가자 뿌연 연기가 자욱한 게. 아직 담배를

피기 전임에도 이미 두세 가치는 핀 것처럼 어질어질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편하게 펴~"


팀장님은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이면서 고개 숙인 채

열중쉬어 자세로 담배를 등뒤로 가리고 피고 있는 아빠를

보며 말했지.


"하하핫"


분위기가 무겁다고 느껴서 그랬던 걸까? 뜬금없이 팀장님은

큰소리로 웃기 시작했어.


"아~ 나 경태 이 새끼... 지 결혼한다고 신입을 팔아먹어?

니가 걔 땜에 고생이 많다 그치?"

"아닙니다..."


"니가 못한다는 게 아니야. 신입 치고는 지금 충분히 잘하고 있어.

근데 나는 결과가 중요한 사람이야. 결과가 빨리빨리 나와야

팔아먹을 거 아니냐?"


맞는 말이었어. 며칠 연속으로 야근을 하는 건 내 사정이고,

팀장님 입장에선 위에다 보고도 다해놨는데 이렇다 할

결과가 나오질 않으니 많이 애가 타셨겠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니 더 죄송해서 아무 말 없이

애꿎은 담배만 빨아드렸지.


그런 아빠를 바라보던 팀장님은 또 뭔가 곰곰이 생각하는 듯

하더니 아빠에게 제안을 했어.


"니네 팀 과장 붙여주면 좀 나을려나? 김세찬이 요즘 뭐 하냐?

바쁜 거 있나?"


김세찬 개발 1팀 과장.

전에 있던 부장이 아빠 입사 바로 전에 퇴사하면서 부장역할까지

하고 있는 우리 팀 과장 이름이었어.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바빠 보이시긴 하던데"


맨날 게임만 하는 거 알면서 왜 그렇게 말했냐고?

얘들아... 그래도 사회인데 내 상관이


'맨날 게임만 하고 커피만 마시고

저 놀리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라고 어떻게 아빠입으로 얘기하니...


"바쁘긴 걔 일안하는 거 전 직원이 다 아는데. 개 아직도

원두커피 물처럼 마시고 그러냐? 피고 들어와 세찬이 붙여줄게"


팀장님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흡연실을 나가버렸어.

김과장을 나한테 붙여준다? 이게 어떻게 보면

한숨 돌릴 일이긴 하지만, 그때 아빠는 솔직히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어.


'너한테 못 맡기겠다.'


라고 들렸으니 말야. 단독 프로젝트라고 엄청 신경 쓰고 있었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는데 그 타이틀이 깨짐과 동시에

신뢰, 실력 그 외 모든 면에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생각에 한숨만 나왔지.


'하아.. 열심히 했는데...'


답답한 마음에 담배 한 대 더피고 들어갈까 하는 마음에

담배를 꺼내다가 다시 집어넣고는 사무실로 들어가니

아빠자리에 나란히 서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팀장님과

김과장이 보였지.


"도리! 일을 어떻게 했길래 나까지 투입시켜?"

"야~ 신입이 다 그렇지 왜 애 기를 죽이냐.

니가 많이 도와줘"


웃으며 대화하는 그들 사이에서 아빠도 억지웃음을

보일 수밖에 없었어.


"잘 부탁드립니다..."

"도리~ 이 짐덩어리. 맨날 야근하더니 야근하면서 논거 아냐?

지금까지 한 거 소스 정리해서 메신저로 보내봐"


인터넷 찾아가면서 공부하고 고민하고 대학 다닐 때 보던 책도

뒤져가면서 밤을 새 가면서 노력했는데. 결국 돌아오는 게

야근할 때 놀았냐는 말이니. 정말 억울했지만

변명을 할 상황도, 위치도 아니었기에 속으로만 삼켜버렸어.


"과장님 지금 보내드렸습니다."

"어~ 이따 확인할게."


그동안 작업했던 파일을 정리해서 압축한 뒤 메신저로 보냈는데

읽지를 않는 거야. 혹시 못 봤나 해서 보냈다고 얘기 했는데

열심히 게임 중이더라고...


"도리~ 도리도리~ 오늘도 야근하냐?"

"네. 그래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럼 난 삼선짬뽕~"

"네?"


"밥 먹어야 될 거 아냐? 밥 시킬 때 난 삼선짬뽕시켜 달라고"

"아... 네... 그런데 혹시 소스는 보셨나요?"


"야근할 때 볼 건데? 오늘 너무 바빴다야"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거 다 봤는데 바빴다니. 그리고

내가 준 소스 퇴근시간 때 까지도 열어보지도 않은

김 과장이 이해가 안되다가도


'실력이 너무 좋아서 잠깐만 봐도 다 되나?'


싶기도 한 게.


'이래서 김과장을 붙여줬나 보다.'


라고 생각했지. 물론 나의 오해였지만 말야.


'하아.. 왜 자꾸 프로그램이 뻗어 버릴까..'


일정 작업을 반복하면 자꾸 에러를 띄워버리며 강제 종료되는

프로그램 때문에.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코드를 며칠을

다시 짜고 돌려봐도 갈피조차 못 잡겠어서 김과장한테 물어볼까

싶어 과장님 자리로 고개를 돌렸어.


귀에 이어폰을 꽂은 채로 모니터를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는

김과장을 보니 뭔가 평소와 다른 진지한 모습에


'아... 프로는 다르구나'


싶어 잠시 감탄하다가 김과장을 불렀지.


"과장님?"

"..."


이어폰 때문인지 집중한 탓인지 김과장은 내가 부르는 소리를

못 들은 것 같았어. 그렇다고 큰소리로 다시 부르기에는

너무 예의 없는 것 같아서 몸을 일으켜 김과장자리로 갔지.


"과장... 님?"

"뭐야? 너도 이 드라마 좋아하냐?"


김과장 뒤에서 우연히 보게 된 김과장 모니터에는

큰 화면으로 열려있는 소스편집기 위로 동영상 플레이어가

실행 중이었어.


맞아. 김과장은 일을 하던 게 아니라 일하는 척하면서

드라마를 보고 있었던 거야.


"뭐냐? 너 나 감시하냐? 일 안 해?"

"아... 아! 프로그램이 자꾸 out of memory라는

시스템 에러를 띄우고 강제종료돼버리는데 혹시..."


내 말을 듣는 건지 마는 건지 눈을 모니터에 고정한 상태로

귀찮다는 듯이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퉁명스런 말투로

김과장은 말했어.


"혹시 뭐... 니가 생각하는 거 맞아. 한번 해봐"

"네? 뭘?"


"니가 생각하는 그 문제가 맞다고. 뭔가 고민하다

생각난 게 있어서 물어보러 온 걸 거 아냐 잘 짜봐"


"아니 그게 아니고..."

"하 답답하네?"


그제서야 동영상을 일시정지 시킨 뒤 귀에서 이어폰을 빼며

의자를 돌려 아빠를 보며 말했어.


"그게 아니면~ 이게 맞겠지? 뭐가 문젠데?"

"어떻게 해야 할지. 뭘 봐야 할지 감이 안 와서"


"그럼 감부터 찾으면 되겠네. 빨리 찾아와.

나도 먹게 두 개 가져와"


"... 좀 도와... 주세요..."


도와주세요... 지금생각하면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신입이라

충분히 모를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그땐 왜 그렇게 자존심이

상하던지. 목에서 나올 듯 말 듯 한 말을 어렵게 꺼낸 아빠는

온몸에서 피가 빠져나간 듯 축 처져 버렸어.


"도와줘? 뭐줄건데?"

"제가 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커피라도 타드릴까요?"


"남자가 타준 커피 안 마신다."


알려줄 생각이 있는지 없는지. 일도 안 하고 놀면서

물어보는 말엔 대답 안 하고 놀리기만 하는 김과장이

너무 미웠지만 아빠한테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김과장뿐이라고 생각했어. 그만큼 간절했고

믿고 싶었지.


"부탁드려요. 제발 도와주세요. 이것 때문에 계속 야근했는데

아무리 해도 해결이 안돼요."

"그래? 그러면 도와줘야지."


드디어 진심이 닿았구나 라고 생각 한 것도 잠시. 다시 귀에

이어폰을 꽂더니 이젠 처다도 안 보고 한마디 하더라고


"인터넷 찾아봐~ 인터넷에 잘 나와있다. 집에 갈 때 메신저 보내

같이 가게 끌끌끌..."


'아.. 개XX 저 인간한테 기대를 한 내가 등신이지'


라고 생각하고는 자리에 돌아왔어.


이를 바득바득 갈면서 인터넷을 찾고 적용해 보고 또 찾아보고.

담배필 틈도 없이 두세 시간쯤 지났을까? 슬슬 뭔가 보이기

시작했어.


'어? 여기 왜 메모리 해제를 안 했지?'


코드를 보다 보니 반복해서 실행되는 함수에서 메모리를

사용했는데 계속 할당만 하고 해제를 안 한 거야.


음.. 다시 말하면


아빠가 너희들한테 자동으로 돈을 빌리는 기계를 만들어서

일정시간마다 돈을 빌리고 있는데 갚질 않은 거지


너희들은 계속 돈을 빌려 주다가 결국 잔액이 0원이 된 거고


'아! 이제 더 이상 못 빌려줘 나 파산이야!'


이런 상황이었던 거야.

소스를 수정하고 다시 실행시켰더니 더 이상 에러가 뜨지 않았어.


"돌아간다!"

"어씨 깜짝이야. 뭘 맨날 돌려? 전화도 돌리고 프로그램도 돌리고

니가 물레방아여?"


"에러가 사라졌습니다!"

"거봐 알려주는 대로 하니까 잘되지? 도리 한참 배워야겠네~"


드디어 에러를 잡았다는 생각에 신이 난 아빠는

도와준 건 하나도 없으면서 자기 덕에 된 거 마냥 얘기하는

김과장이 얄밉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았어.


"됐으면 가자?"

"벌써 퇴근합니까?"


"시계를 봐. 내일 퇴근할 거여?"


사무실 입구 쪽에 걸려있는 시계를 가리키는 김과장.

시간을 보니 어느덧 11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어.


'나쁜 놈 결국 하루 종일 놀다 퇴근하네.'


월급루팡. 요즘은 일제대로 안 하고 월급 받아가는 사람들을

그렇게 얘기하더라? 하루 같이 야근해 본 김과장은 월급루팡뿐

아니라 야근비까지 루팡짓을 하고 있었어.


"뭐야? 어디 감금돼있는 줄 알고 실종신고 하려고 했는데...

응? 좋은 일 있나 보네?"


"며칠 고생하던 게 오늘 해결됐거든"


집에 도착해서까지 아직 걷히지 않은 얼굴의 미소를

발견한 고모는 아빠를 장난스럽게 툭툭 치며 물었지.


"그럼 우리 이 기쁨을 치킨과 함께 나눠볼까?"

"지금이 몇 신데... 아니 그보다 이제 너 다이어트 안 하냐고!"


다음날.


출근길이 왜 그렇게 가볍고 신이 나던지.

드디어 해결했다고 자랑할 생각에 평소에 짜증을 담배로 풀며

운전하던 꽉 막힌 출근길도 그날은 아빠에게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


출근하자마자 팀장님이 출근했나 확인했는데 아직 출근을

안 하셨는지 자리가 비어있는 거야.


흡연실로 가서 담배를 한대 피고는 돌아와 자리에 앉는데

그때 사무실 문이 열리면서 팀장님이 출근하는 모습이 보였지.

바로 일어나 팀장님께 달려갔어.


"팀장님!"

"어! 왜? 뭐야? 왜?"


"말씀하신 부분 드디어 해결됐습니다."

"이야~ 그래? 잠깐 나 짐만 놓고 니 자리 가서 한번 보자"


자리로 돌아와 시연준비를 하는데 김과장이 빤히 쳐다보더니

내 뒤로 와서 서더라고.


"도리? 뭐 하냐?"

"아.. 어제 해결된 부분 팀장님 보여드리려고

시연 준비 중입니다."


"그래?"


셋팅이 끝날 때쯤 딱 맞춰서 팀장님이 아빠자리로 오셨어.


"한번 보자! 돌려봐 빨리"


문제가 되었던 부분이 다행히 어제처럼 문제없이 잘 돌아갔고

팀장님은 박수를 치며 엄청 만족해하는 모습이었지.

그리곤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어.


"이야~ 역시 전문가는 다르네. 세찬이가 붙으니까 그렇게

안되던 게 하루 만에 된 거 아니야?"


"아유~ 제가 괜히 과장이겠습니까? 도리도 잘 따라오더라고요.

도리 어제 내가 알려준 대로 하니까 잘되지?"


그 칭찬과 격려가 아빠를 향한 게 아니었단 게 문제였지.

그동안 야근하면서 고생했던 그 모든 게 김과장한테 돌아가는

순간이었어.


"네..."


그 순간에도 아빠는 바보 같게도.


'아니에요 저 혼자 한 겁니다. 이거 내가 한 거예요.'


라고 말할 수 없었어.

말한다 해도 믿을까 하는 의심도 있었지만. 말한다고 뭐가 바뀔까?

그리고 어제 일들을 얘기해서 혹여라도 김과장하고 사이가

틀어지면 앞으로 회사는 어떻게 다니지? 다른 직원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등 여러 생각이 아빠 입을 막아버렸지.


"그래그래~ 고생했다. 앞으로도 도리 많이 가르쳐줘

조만간에 셋이 술 한잔 하자. 선후배 간에 보기 좋네!"


팀장님이 떠난 아빠자리엔 김과장과 아빠 둘만 남아있었어.

억울함을 담아 김과장을 노려봤지.


"뭘 봐? 일 안 해?"

"... 합니다..."


하지만 달라질 게 없었어. 아빠가 할 수 있는 게 없었거든.


'진짜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사람이 챙긴다더니...'


혼자 속으로 삼키는 수밖에는 말야.


그 후로도 계속되는 야근 행진에 김과장은 늘 함께 했어.

매일 영화나 드라마만 보면서 일도 안 하면서 말이지.


그러면서 공은 다 챙기는 김과장모습에 정말 속상하고

화가 났지만 이것도 지속되다 보니 어느새 적응이 되더라고.

그렇게 또 한 2주일 지낫을까?


'커피는 원두가 맛있다~'


출근 후 바로 탕비실로 가서 전에 김과장이 했던 말을

세뇌당한 사람마냥 중얼거리며

피곤에 절어 잘 떠지지 않는 눈으로 커피를 타고 있는데

장인어른께 전화가 왔어.


"도리니? 지금 미진이 배가 아프다 해서 병원 가는 중이야"

"네 아버지. 미진이는 좀 어때요?"


"아침을 안 먹어서 뭐 좀 먹고 가려고 하는데

20분째 고르질 못하네? 허허허... 내 딸이지만 참~"


"그런데 배가 왜.. 아직 예정일 좀 남았는데"

"별건 아닌 것 같고. 뭐 진료 보면 알겠지. 결과 나오면 전화 줄게

수고해라"


"감사합니다."


출산일이 한 달가량 남은 상태라. 아기가 나오려고 그러는 건

아닌 것 같고. 뭐 아빠가 애를 낳아봤어야 알지..


혹시 아기한테 무슨 일 있나? 아니면 엄마 건강에 문제가 있나?

여러 가지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어 머리가 복잡해

일이 손에 잘 잡히지가 않더라고.

그래서 모니터를 보며 멍하니 있는데


"도리? 오늘은 왜 불꽃코딩 안 하시나?"


손에 커피를 들고 자기 자리로 돌아가던 김과장이

또 장난을 치며 묻더라고.


"충전 중입니다."

"뭐여? 니가 마징가여? 끌끌끌"


웃기지도 않는 농담을 하며 혼자 웃으면서 자리에 앉는 김과장.

에라 모르겠다 일이나 하자 싶어 어제 받은 수정안을

검토하기 시작했어.


'하.. 또 갈아엎어... 이 정도면 기획자체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고..'


이렇게 만들라고 해서 만들면 이게 아니다 저렇게 하자

그래서 저렇게 하면 또 생각해 보니 이것도 아니다

아까 거에서 기능만 추가하자. 또 그대로 만들면

아니다 전면 수정하자. 이게 반복되니까 사람이 점점

지쳐가더라.


그렇게 오전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배고픔보다 잠이 간절해서 12시 떙치자마자 자리에 엎드려서

잠이 들어버렸지.


"야 너 전화 계속 울려"


누군가 아빠를 흔들며 하는 얘기에 놀라 후다닥 일어나 시계를 보니

오후 2시가 살짝 안 된 시간. 점심시간이 끝난 지 벌써 1시간이

지난 상태였지.

핸드폰을 보니 장인어른 부재중전화가 5통이나 와있는 거야.


"깨우지 말라니까 도리 언제 일어나나 보려고 했더니 끌끌끌"


아빠를 깨운 건 정현이었어. 김과장의 말을 들은 체도 안 하고

아빠에게 에너지음료를 넘겨주는 정현이.


"너 야근 너무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다 몸상해.

가장은 아프면 안 돼"

"어..? 어 고마워."


정현이에게 음료를 받아 들면서도 부재중이 자꾸 신경 쓰이더라고


'뭐지? 미진이한테 무슨 일 있나?'


라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고 일어서는데 문자가 한통 도착했어.


/

도리야 미진이 지금

애 낳으러 들어간다.

임신중독이라고

지금 수술해야 한다더라

/


"과장님!"


문자를 보자마자 아빠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김과장을 불렀어.


"아씨 깜짝이야. 이게 요즘 일부러 그러나? 자꾸 놀래키네. 왜?"

"잠깐 담배 한 대 피시겠습니까?"


그렇게 아빠는김과장을 데리고 흡연실로 향했어.


"그래서 언제 그만둘 건데?"

"네?"


담배에 불을 붙인 김과장은 아빠에게 언제 퇴사할 건지

묻고 있었어.


"일 힘들어서 퇴사하겠다고 나부른거 아냐?"

"그게 아니라."


"여기가 안이지 밖이야?"

"아닙니다."


"안이야?

"아니..."


"끌끌끌... 답답하네 뭔데?"

"아 사실 지금 와이프가 애 낳으러 수술실 들어간다고

연락받아서..."


"야이..."


출산얘기를 듣자마자 김과장은 아직 반도 피지 않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흡연실을 나가버렸어.


'하아.. 퇴근하고 가야겠지..?'


그렇게 체념하고 담배를 마저 피고 있는데 흡연실문이 열리더니

김과장이 소리치더라고


"야! 뭐 하냐? 퇴근해! 마누라 출산한다며? 담배필 시간이 있냐?"

"가... 감사합니다!"


"위에다 말해놨으니까 잘하고 와. 우리 출산휴가 5일이다?

까먹지 말고 제때 출근해"


출산휴가 5일. 제때 출근. 을 되뇌며 짐을 챙겨 주차장으로

향했어. 차에 타자마자 고모한테 전화했지.


"아씨! 동생 수업 중인데 왜?"

"야 니 언니 지금 니 조카 낳으러 들어갔데! 빨리 가자!"


"언니? 지금? 갑자기? 헐! 학원 앞으로와 내려갈게"


학원 앞에서 고모를 태우고 병원으로 가는 길.

우리 아기가 태어난다? 솔직히 말해서 실감이 안 났어.


그냥 모두 소꿉놀이 같았던 것 같아.

놀이가 끝나면 그냥 다 없었던 일이 되는, 전부 현실이 아닌.

다른 사람들 말처럼 설레거나, 감격하거나, 감동적이거나

그런 감정 없이 엄마가 걱정되니 빨리 가봐야겠다란 생각만

했던 것 같아.


그래서 과속도 하고 여기저기 껴들면서 난폭하게

운전을 했지. 그럴 때마다 옆에서 꺅꺅 거리며 비명을 지르던

고모가 얘기하더라.


"오빠? 왜 이렇게 위험하게 운전해? 아빠 된다니까 좋아?"


순간 멈칫했어. 그리곤 생각했지.


'내가... 아빠가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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