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 말고 아는 누님?
24년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온 나로서 덜컥 겁이 났다. 수많은 사람과 부비며 사는 법에 익숙해진 나였다. 빠른 유행, 사람, 아파트, 상점.. 이 거리를 숨 막히게 비집고 들어오는 것에 변태적인 즐거움을 느끼며 살아왔는데.
텅 빈 논밭에 뜬금없는 학교라... 난 그 공허함을 어디서 채울 것인가?
이 작은 세상에서 나는 지루함을 느끼진 않을까?
첫 출근 전 텅 빈 집, 식탁에 앉았다. 가족을 떠나 혼자 산 것도 이번에 처음이었다. 어색한 정적이 흘렀고 난 도저히 이 텅 빈 곳을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 몰라 빨리 잠자리에 들었다.
우려 부랴 첫 출근을 했다.
내 앞에 7명의 학생이 멀뚱멀뚱 날 올려다봤다.
뒷걸음질 쳤다.
그 넓은 교실에 하필 맨 앞줄 책상에 7명이 옹기종기 앉아 날 쳐다봤다. 뒤 책상들은 텅 비어있었다. 우리 사이는 너무 가까웠다. 내 미세하게 떨리는 숨결도, 긴장된 표정도,어제 먹은 돈가스의 냄새도 곧 알아챌 듯했다.
이상했다. 지옥의 출퇴근길 9호선도, 페스티벌의 인파도 꿋꿋이 전진하여 헤쳐 나가던 나였는데.
겨우 책상 1줄의, 무해한 호기심의 눈빛으로 내가 말하기를 기다리는 학생들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 했다.
결국 난 한 발자국 후퇴하여 그들과 나 사이에 교탁을 세워놓았다.
그리고 ‘큼큼..’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최대한 기본적인 것만 간단히 소개했다. 이름, 규칙, 취미 정도. 그리고 나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시간을 줬다. 이때다 싶어 들개처럼 달려들어 내게 질문을 퍼부었다. 그러나 내 대답은 같았다.
“선생님 남자친구 있어요?”
“비밀입니다.”
“선생님 MBTI 뭐예요?”
“비밀입니다.”
“선생님 언제부터 예뻤어요?”
“비밀입니다.”
그들의 모든 질문에 답했다가는 동네 아는 누님이 될 판이었다.
그렇게 쭈뼛쭈뼛, 우리 사이에 드넓은 교탁이든, 내 팔짱이든 무엇이든 끼워 넣은 채,
난 그렇게 학생들과의 거리두기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