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도 사랑일까?

사랑은 남을 변하게 하는 것일까?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일까?

by 시골학교 선샌님

작년에는 교과 전담을 맡았고, 지금은 고학년 담임을 맡고 있다. 우리 반은 총 6명이다. 독감이 유행하는 날에 3명이서 수업한 적도 있다. 처음에는 적은 인원 수가 걱정이었지만 나름 사촌동생 놀아주고 공부시키는 마음으로 근무하다 보니 지금은 꽤 적응되었다.


우리 반 6명 학생들은 최소 4년 지기이다. 어린이집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도 있다. 소규모 학교에서 오랜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서로를 너무 잘 안다. 같이 있으면 내가 소외감이 들 정도로 6명이서 끈끈한 사이이다.


그중 수업 시간에 말을 잘 안 하는 아이가 있다. 이 적은 인원에서 한 명이라도 대답을 안 하면 속이 퍽퍽 막힌다. 그렇다고 큰 학교에서처럼 흐린 눈으로 모른 척하기도 미안한 분위기이다.


옆반 선생님께서는 이 아이의 작년 담임 선생님이셨다. 조언 차 방문해 그 아이에 대해 여쭤봤다. 선생님의 작년 목표도 그 친구가 수업 시간에 말하게 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목표를 이루지 못하셨다. 이유도 당최 모르겠다고 하셨다. 그 얘기를 들으니 더 오기가 생겼다.


'네가 수업시간에 또박또박 대답하게 만드리라!'


신규의 패기로 이것저것 시도해 봤지만, 예상보다 더 힘들었다. 우선 그 친구는 스스로를 고양이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다른 5명 친구도 그 친구는 귀엽고 새침한 고양이라고 이미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고양이를 키워서 그런지 '냥'하는 표정도 그렇고 사소한 행동도 정말 고양이 같긴 하다.)


내가 교과서 몇 페이지를 읽으라고 시킬 때면, 꿈뻑꿈뻑 날 쳐다본다. 그럼 누군가 대신 그 고양이를 대변해 준다.


"00이 원래 말 안 해요."

그런 감싸주는 듯, 체념한 듯한 대변 때문인지 그 친구는 더더욱 말을 안 하려고 한다.

다시 커다랗고 불쌍한 눈빛으로 꿈뻑꿈뻑 "녜예?..." 하며 버틴다. 오기가 생겨 한 마디 잔소리를 하고 어떻게든 대답을 시키려고 한 적이 있다.


"연습하면서 나아지는 것입니다. 지금이 연습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예요. 이런 기회 놓치면 나중에 힘들어지는 것은 00이에요."하고 대답할 때까지 나도 꿈뻑꿈뻑 기다리면


'쟤는 원래 그런 애인데...' 하며 걱정하는 듯한 눈빛,

'에휴...' 하며 그저 이 순간이 지나가길 바라는 눈빛,

"선생님, 그냥 지나가요!" 하는 반응을 보이니


내가 끝까지 단호하게 기다릴 수는 없는 상황에 놓였었다. 이 고양이를 감싸도는 분위기에서 호되게 혼내면 이 조그마한 교실에서 내가 악인으로 낙인찍힐 것 같은 긴장감도 느껴졌다.


우선 수업시간에는 한 걸음 물러서서 5명의 학생처럼 넘어가줬다. 그냥 그러려니. 그리고 1대 1로 불러 왜 대답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열띤 연설을 펼쳤다. 다시 함께하는 수업에서는 웬만하면 넘어가고, 수업이 끝나면 1대 1로 불러내어 성찰문을 쓰게 했다. 지금은 이 고양이가 대답은 잘한다. 고학년이 되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숙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물론 자기 생각을 발표하는 것은 아직 못 하지만 교과서를 읽거나 '네, 아니요,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 등의 간단한 대답은 잘하는 편이다.


하도 다양한 시도를 해서 무엇이 이 고양이가 대답을 하게 했는지는 알 수 없다. 이 아이를 바꾸고자 하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받아들이는 마음이었을까? 아니면 그냥 시간이 해결해 준 것일까?

가끔 또 장화 신은 고양이 표정으로 꿈뻑꿈뻑 대답을 안 할 때면 그냥 넘어가줘야 할지 다시 일대일 상담으로 초청해야 할지 모르겠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냥 '으이구'하고 봐주고 싶다가도 중학생 때가 걱정되어 스파르타 스피치 강습을 해주고 싶기도 하다. 그러다가 가끔 지칠 때면 흐린 눈으로 시간이 해결해 주길 바라기도 한다.


사랑은 모순적이다. 사람을 변화시키려는 마음이기도 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마음이기도 하다. 내 삶을 돌이켜보면, 날 바꾸려던 사랑들은 날 성장하게 했고, 날 있는 그대로 받아준 사랑들은 날 안심하게 했다. 선생님은 이 두 가지 사랑을 다 해낼 수 있을까? 두 가지 사랑을 모두 할 수 있는 것이 가능할까?


사랑도 가르침도 너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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