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춥다.
어렸을 때는 눈이 왜 그렇게 좋았을까?
첫눈이 오는 날에는 유난히 빨리 일어났다. 우리 집 창문에는 멋진 뒷산이 있었는데, 새하얗게 덮인 숲의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을 만들길 바빴는데. 재작년까지도 눈이 좋았다. 눈사람을 만들고 스키장으로 가서 떡볶이를 먹을 생각에 설렜다.
그런데 작년부터 겨울이 슬슬 싫어지기 시작했다. 이제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기 시작한다. 벌써 학교와 차에서 눈을 쓸어내릴 생각에 끔찍하다. 상상만 해도 손끝이 시리다. 나도 이제 어른이 됐나 보다.
작년 우리 지역에 폭설이 왔다. 우리 학교는 외진 곳에 있다. 큰 도로처럼 관리가 잘 되는 편은 아니다. 눈이 오면 학교에 오는 길들이 막혀 휴교한 날들이 있었다. 작년에 폭설이 처음 찾아왔던 날, 그날은 출근하지 못했다. 학교 교문 앞에 눈이 쌓여 학교로 차가 진입하지 못했다. 여름에 푸르렀던 잔디밭도 두터운 눈 이불에 덮여버렸다. 그날은 아침 6시에 집을 나섰다. 1시간 반 넘게 도로에 꼼짝없이 갇혔있었다. 다행히 그날은 출근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받았고, 얼른 차를 돌려 근처 스타벅스로 빠져나와 라떼를 마셨다.
'그냥 집에 있을 걸. 추운 날 이게 뭐야.' 하며 입술이 삐죽 나왔었지만, 따뜻한 카페 라떼를 마시며 눈이 내려앉은 시골 풍경이 보니 마음이 금방 풀렸다. 밖은 전쟁이었지만 카페 안은 고요하고 따뜻했다. 역시 비눈은 안에서 볼 때 좋나 보다.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쌓인 눈이 녹지 않았다. 나는 게다가 초보운전자였다. 차 위로 10cm 넘게 쌓인 눈들을 다 털어내고 혹여나 미끄러져 사고가 날까 봐 벌벌 떨며 운전했다. 내가 왜 이 시골바닥에 와서 운전을 해야 되냐니, 학교는 또 왜 외딴 길에 있냐니 하며 궁시렁 궁시렁대며 출근했다. 학교에는 어른들의 사정을 전혀 모르는 아이들의 환호 소리로 가득했다.
"와아~~ 눈이다~~~!!"
그날은 출근 못 하신 선생님을 대신해 1학년을 맡았었다.
"선샌님, 눈싸움하러 가도 돼요?"
귀여운 털모자와 빵빵한 패딩으로 무장한 1학년 아이가 물어봤다. 1학년 담임선생님께서는 워낙 애들이 운동장에서 싸워 웬만하면 교실에 있게 하라고 하셨는데. 전교생이 운동장에서 꺄르륵 눈싸움을 하는 판에 우리 1학년 애들만 교실에 있게 하긴 미안했다. 친구랑 사이좋게 놀라고 신신당부하며 밖에서 노는 것을 허락해 줬다. 지퍼를 꼭 잠가주고 털모자를 꾹 눌러줬다. 장갑도 안 끼고 달려가려는 아이를 불러 장갑도 끼워줬다.
"선샌님도 같이 가요!"
"선생님은 추워요. 여러분끼리 재밌게 놀아요!"
선생님은 추웠다. 눈이라면... 벌써 지겨웠다. 교무실에서 따뜻한 커피를 내려 창문으로 아이들이 노는 광경을 지켜봤다. 새하얀 눈밭에 아이들이 보였다. 토끼 모자, 곰돌이 목도리 등 귀여운 겨울 아이템으로 무장한 채로, 친구들과 신나게 뛰어노는 모습을 보니 흐뭇한 미소가 나왔다. 교실 안은 따듯했고 커피 향은 고소했다. 눈 하나로 저리 행복해하는 아이들을 지켜보는 것은 꽤 즐거운 일이었다.
'그래도 아직 겨울이 마냥 싫진 않네.'
아이들이 곧 교실로 돌아왔다. 아이구, 분명 꽁꽁 싸매서 보냈는데. 장갑 한 짝을 잃어버렸다느니, 자크가 다시 안 잠긴다느니, 장갑이 꽉 낀 다니느니... 여러 이유로 처음과 다른 모습으로 하나둘씩 들어왔다. 장갑이 축축하다고 벗어 버린 손이 빨갰다. 따뜻한 커피잔으로 내 손을 데웠다. 맨손으로 눈사람을 만들고 온, 오통통하고 차가운 조그만 손을 따뜻하게 비벼 주웠다. 하나둘씩 "선샌님 저도요!"하고 얼음장 같은 손들을 내밀었다. 양손을 싹싹 비벼 따뜻하게 만들어 두 손을 포개어주었다.
"헤헤"
부끄러운지 그냥 추운 건지 볼이 벌~게진 채로 히죽 웃는 아이들이 에뻤다.
올해는 겨울이 안 왔으면 하지만 하얀 눈밭의 벌게진 볼은 좀 보고 싶긴 하다.
물론 따뜻한 교실 안에서. 향긋한 커피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