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을 던지고 싶지 않아 졌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동전의 양면을 이해한다는 의미 같다.
활발한 학생 뒤에는 부산스러움이 있고, 소심한 학생 뒤에는 섬세한 그림 실력이 있고, 똑똑한 학생 뒤에는 예민함이 있고, 느리게 배우는 학생 뒤에는 수더분함이 있다.
모든 것에는 동전의 양면이 있다는 것을 알고 난 이후로, 동전을 던지기 싫어졌다. 장점에 단점이 따라오면, 플러스 마이너스가 되고 그럼 어차피 0이 아닌가? 동전의 앞뒷면이 반복해서 뒤집히는 상황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도 0이다. 아무것도 안 하는 걸 선택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판단이 섰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한 학생을 좋아하면 분명 싫어지는 일이 생긴다. 그럴 바엔 그냥 안 좋아하는 게 감정적으로 평온하기도 하다. 거리를 두고 그저 그런 관계를 유지하면 좋았다 싫었다를 반복하는 피곤함은 덜어질 것이다. 해외 대학원에 도전하면 해외 경험도 쌓고 폭넓은 세상을 경험할 수 있지만 승진이 느려지고 국내 네트워킹에서 동떨어질 수 있다.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 또 이 옷을 사면 잠깐 설레고 기분이 좋지만 가격이 비싸고 언젠간 질려 버릴 것이다. 그렇다면 사도 그만, 안 사도 그만.
언젠가 시지프의 신화를 들은 적이 있다. 내가 마치 시지프와 같이 느껴졌다. 시지프 신화는 신이 벌을 내려 그에게 바위를 들고 언덕을 오르고 내려가는 무한의 반복 노동을 시킨다는 이야기이다. 궁금해졌다. 차라리 돌을 던져버리는 게 편하지 않을까? 일도 적당히, 인간관계도 적당히, 학생들을 향한 마음도 적당히. 책임도 진심도 최대한 덜어내면 이 오르락내리락 반복 노동의 고통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최근엔 동전을 던지지 않았다. 돌을 최대한 가볍게 짊어졌다. 뭘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뭘 느껴도 그만, 안 느껴도 그만. 감정도 에너지도 적당히. 초연한 상황을 유지하려고 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점점 공허해져가고 있다. 진자 운동의 폭을 좁히면 중용의 평온한 삶이 찾아올 것이라고 기대했었다. 그러나 지금 내 삶은 평온함은커녕 말라죽은 우엉처럼 점점 초췌하고 권태로워지고 있다.
안 되겠다. 다시 동전을 던져야겠다. 다시 돌을 담아 짊어져야겠다. 다시 큰 진폭을 만들어야겠다. 결국 누군가를 미워해도, 상처 입어도, 실패해도 뭐라도 해야겠다. 뭘 해야겠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