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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24. 2020

'행복주택'에 살면 정말 행복할 수 있을까?

[마음의 주체] 공공임대주택 vs 전세자금대출, 20대의 선택은?

(20대의 시선으로 썼습니다.)


20대 후반 사회초년생이다. 원룸 재계약 시기가 다가오니 문득 옛날 생각이 났다.




내가 다닌 대학교에는 '근로 장학생'이라는 제도가 있었다. 학교에서 비교적 쉬운 단순 업무를 재학생에게 맡기고 소정의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더울 때 더운데 있지 않고, 추울 때 추운데 있지 않을 수 있는 데다, 업무 시간을 개인적으로도 활용할 수 있어 공부하는 시간을 확보해야 하는 고학생(苦學生)에겐 제격이다. 근무 시간도 조정할 수 있고, 방학 동안에도 할 수 있어서 제법 인기가 있었다.


7차 학기를 마친 여름방학이었다. 교직원 한 사람이 인사를 대신해 이것저것 물어봤다. 아마도 친근감을 표시하려는 의도였겠지만, 불편한 질문들뿐이었다. 그것도 반말로. 꼰대 자식.


“막(마지막) 학기라고? 이제 졸업하겠네? 좋겠다~ 사회초년생.”

“저는 졸유(졸업 유예)하고 취준(취업 준비) 좀 더 하려고요.”

“아하, 맞아 맞아. 알바하며 사회경험 쌓는 것도 좋겠지만, 당장 굶지 않을 정도면 충분히 도전해보는 게 좋을 수도 있어. 그래야 나중에 후회도 덜하지.”

“알바 인생도 싫고, '실거(실업급여 거지)'로 살고 싶지도 않아서요.”

“하긴, 나중에 집도 사고, 결혼도 하려면 지금부터 착실히 준비하는 게 낫겠다.”

“나중에 집도 사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결혼도 하고 싶고, 집도 사고 싶고.”

“그래그래,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원하는 곳 취업할 수 있을 거야. 입사해서도 성실히 살면 결혼도, ‘내 집 마련’도 결국 다 된다. 너는 남들보다 성격도 좋고 성실하니 더 빨리 쟁취할 수 있을 거야. 청약통장은 갖고 있지?”


어른 사람과의 이런 대화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매번 참았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암송하며. 그런데 이날은 그냥 좀 더 짜증이 났다. 사무실에 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성격이 좋으니, 성실하니 나에 대해 판단을 하는가. 갑갑했다. 한숨과 함께 머리와 가슴을 거치지 않은 말이 생목에서 다이렉트로 터져 나왔다.


“하아,,, 사실 요즘은 그런 말씀이 위로가 안돼요. 비현실적으로 느껴지거든요. 어떤 집이든 한 채라도 살 수만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래 봤자 '휴거(휴먼시아 거지)', '빌거(빌라 거지)'겠지만. 에휴, 실거 피해도 거지는 거지네요. 그리고 요즘은 (집값이) 더 올랐다면서요. 이번 생애에 ‘내 집 마련’은 틀린 것 같다는 생각하고 있어요. 등록금도 갚아야 하니.”


싸늘해졌다. 교직원의 표정은 할많하않(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겠다)이었다. 언제나 그렇듯 대화의 분위기는 아랫사람이 좌우한다. 내가 교직원의 아랫사람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여하튼 내가 ‘네네’하면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이미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결혼도 해 가정을 꾸린 교직원은 ‘나를 위한 조언과 위로를 건네는 것’이라며 선한 의도를 내세울 것이다. 하지만 내게 그의 조언과 위로는, ‘20대 아르바이트생에게는 응당 이런 말을 필요하다’고 판단한 그의 오만으로 느껴쟜다. 그런데 이렇게 부정적 취지의 말이라도 하게 되면, “사회생활 능력이 없다.”는 낙제점을 받는다. 부족하다는 것도 아니고 없다고 한다. 우리 세대는 이미 굽신거리지 않는 한 의식주를 해결할 수 없는 세대로 낙점됐다.


의식주(衣食住) 중 가장 최후까지 지키려 하는 ‘주(住)’. 이 글자는 단순히 집을 뜻하지 않는다. 포털사이트는 한자 주(住)를 ‘살다. 머무르다. 존재하다.’, 의식주(衣食住)의 주(住)를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3요소 중 하나’ 정도로 설명한다. 종합해보면 ‘인간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살아가는 것’이 ‘주(住)’다. 앞뒤 문장이 맞지 않는 것 같다고? 단순하지 않다고 미리 밝히지 않았나. 선한 의도였다.


옷과 음식으로 단순화할 수 있는 ‘의(衣)’와 ‘식(食)’과는 달리 ‘주(住)’는 좀 더 복잡하다. 포털사이트 검색 결과로만 따져보면 사람이 존재한다면 ‘주(住)’도 존재해야 한다. 법적으로도 주소를 적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문서의 증거 능력이나 효력 여부를 판단하니 사회적으로도 ‘주(住)’의 중요성은 ‘의(衣)’와 ‘식(食)’의 그것을 압도하기도 한다. 하루 이틀 안 먹고 안 입어도, 집 안에만 있으면 크게 문제 되지 않은 경우도 있으니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주(住)’를 확보하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의(衣)’와 ‘식(食)’은 노동만 하면 확보할 가능성이 크다. 많은 회사들이 작업복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으니까. 주(住)는 좀 다르다. ‘숙식 제공’도 결국 내 월급에서 깎는 거다. 스스로 비용을 충당하지 않으면 ‘주(住)’를 확보하기 쉽지 않다.


이런 측면에서 부동산은 주식과도 성격을 달리한다. 주식은 안사면 그만이다. 비용이 추가로 들지 않는다. 하지만 부동산은, 특히 집은 없으면 돈이 든다. 주식은 행동을 해야 원금 손실 가능성이 생기지만, 집은 존재만으로도 비용이 발생한다. 세금이든, 임차료든, 이자비용이든 말이다. 결정적으로, 주식은 없어도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필수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집과 주식 중 어떤 게 더 투자 또는 투기의 대상인 것인가.




왜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복잡하게 말이 많았느냐고? 없으니까, 여전히 개뿔도 없으니까. 우리에겐 살 만한 집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집 자체가 없다. 고학생 시절에는 청약통장이라도 넣으라는 배부른 소리에 그저 짜증만 났다. 그것도 돈과 시간이 남아야 넣지.


물론, 최근에는 청약통장을 만들고, 매월 5만 원씩은 넣을 수 있는 형편이 됐다. 노력하다 보니 정말 취업까지는 가능하더라. 취업 3년 차. 이제 굳이 김밥천국에 가지 않아도, 한 달에 두 번 정도 밤에 치킨을 시켜먹을 정도가 됐다. 그런데 딱 그것뿐이다.  


그다음 스텝으로 말하던 결혼과 집은 도무지 와 닿지 않는다. 여전히 지옥고(반지하, 옥탑방, 고시원)를 전전하고, 학자금 대출 원금이 줄어드는 속도는 팀장에게 술자리 '라떼' 스토리를 듣는 시간만큼 느리다. 연애는 마이너스 통장으로, 허세만 앞세운 채 아슬아슬 이어가고 있다. 남들과 비슷하게는 보이고 싶으니까.


결혼은 하고 싶은데. 번듯한 집도 마련하고 싶은데. 그런데 이 둘 중에 뭐가 먼저일까? 아직 둘 다 경험이 없어서 모르겠지만, 주변 분위기를 봐선 집이 있으면 결혼은 상대적으로 쉬울 것 같다. 그렇다면 내 집 마련이 먼저다! 눈치챘는가, 맞다. 결혼은 사실상 포기다. 지금의 상황에선 10년을 모아도 빌라도 살 수 없으니까.


취업을 하면 삶의 선택이 더 풍요로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선택할 수 있는 게 더 없는 것 같다. 시키는 일을, 규정대로, 지침에 맞게 할 뿐이다. 취미도, 패션도, 심지어 내 입맛에 맞는 맛집을 고르는 기준도 SNS 등의 대세를 따를 뿐, 선택지는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아, 그래도 선택해야 하는 게 하나 남아 있긴 한 건가? 예전에 봤던 드라마의 대사가 떠올랐다. “살아있으면 뭐라도 해야 하니까.” 응, 해야지, 집 값 마련해야 하니까. ‘내 집 마련’이면 참 좋으련만. 그전에 선택해야 할 게 있다. 어떤 지주 또는 마름에게 집 값을 내느냐이다.

#육룡이나르샤


요즘 꽤나 섹시하게 느껴지는 매혹적인 지주가 있다. 다가가기도 쉽고, 서비스도 좋은 데다, 한 번 만나면 10년 동안은 걱정 없단다. 행복주택 등 공공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정부다. 역세권 등 위치가 좋고 대부분 신축이다. 재계약 거부 등 임대인의 횡포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게 참, 조건이 까다롭다. 원칙적으론 현재의 내 월급으로 입주가 불가능하다. 월평균 소득이 세전 2,116,118원 이하여야 입주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청자가 미달인 곳에 한해 2,645,1276원 이하인 청년도 입주가 가능하다. 나는 250만 원이 조금 넘으니 일단 가능은 하겠지만, 2년 후면 월급이 인상되면 이마저도 자격이 안 돼 서둘러 선택해야 한다. 문제는 자동차다. 적어도 아반떼 급은 타고 싶은데, 자동차가액이 2,468만 원이 넘으면 입주할 수 없다. 평생 모닝만 타는 인생으로 살아야 한단 말인가.



이런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크게 느껴지는 진짜 문제는 ‘두려움’이다. 영원히 공공임대주택에 살아야 할 수도 있는데, 보증금 5,000만 원에 대한 이자비용과 월세 70만 원을 파파 할아버지가 됐을 때 어떻게 충당한단 말인가. 물론 주변보다는 저렴하긴 하지만, 나중에 나이 들어서까지 이 돈을 내면서 살 수 있을까? 70만 원씩 2% 이율 10년 만기 적금을 들면 거의 1억 원인데. 심지어 여기 살다가 나중에 LH 임대주택으로 옮겨야 하면 ‘엘사(LH 임대주택에 사는 사람)’가 돼 버린다. 차라리....


차라리 뭐? 뭐긴 뭐야 전세 대출을 받은 뒤 갚아 나가면 어떨까 싶은 거지. 국가가 아닌 은행이라는 마름을 선택하겠다 이거다. 월 70만 원이면, 2억 원에 대한 이자비용 3%를 내고도 20만 원이 남는 금액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2억 5,000만 원의 보증금에 전세 살면 어떨까? 단순 계산으로만 따지면 똑같이 10년을 살 경우 은행에 돈을 내면 2,500만 원 정도는 더 아낄 수 있다. 이 돈이면 아반떼가 아닌 소나타도 끌 수 있다.


심지어 운이 좀 좋으면 점점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갈 수도 있다. 꼰대 교직원이 말한 것처럼 ‘내 집 마련’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인에게 내가 사는 곳을 알려주기에도 쪽팔리지 않다. 행복주택에 사는 사람들은 왠지 행복하지 않은 것 같다는 시선 때문이다. 이러다 나중에 ‘행거’라는 말까지 생기면 어쩌나.


그렇다면 이 또한 선택권이 없는 건가. 이런 저런 말을 내가 만들지 않아도, 내가 쓰지 않아도, 그런 시선을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앉는 것조차 싫다. ‘휴거’, ‘빌거’, ‘엘사’ 또는 ‘행거’가 될 바에는 차라리 소나타를 택하겠다.


더구나 행복주택, 청년주택 등 임대주택들도 해마다 점점더 멀어저가는 분위기다. 에휴.


생각해보자.

소개팅 파트너가 “어디 살아요? 어떻게(뭐 타고) 오셨어요?”라는 물음에,

“강남이요. 강 아래에 살면 다 강남이죠 뭐.”라고 답한 뒤,


“우와~ 집 샀어요?”라고 더 물으면,

“행복주택 살아요. 10년 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어 좋아요. 차도 있어요. 모닝이지만. 열심히 저축해보려고요.”

또는

“빌라 전세 살아요. 청약 넣어보려고요. 아, 소나타 타고 왔어요.”라고 답하는 것 중 어떤 게 낫겠는가.


둘 다 아니라고? 그럼 로또, 아빠 찬스, 엄마 찬스, 도둑질 등을 이야기하랴.

내겐 더 이상의 선택권은 없다. 그나마, 그나마 나은 걸 알려달라!!


국가인가, 은행인가.

나라를 주인으로 모셔야 하는가, 업자의 배를 채워줘야 하는가.

공공임대주택이 낫겠는가, 전세자금대출이 낫겠는가.


이 와중에 전세 매물은 왜 없단 말인가. 반지하 똥꾸렁내 지겨워 죽겠다.


아,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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