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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30. 2020

내 집 마련, 정말 ‘영끌’ 말곤 방법이 없을까?

[마음의 주체] 30대 후반, ‘무쓸모’ 청약통장.

(30대 후반의 시선으로 썼습니다.)


“김 대리 얼마 전에 아파트 당첨됐대요. 대출도 엄청 받아야 한다는데, 인센티브 잘 좀 챙겨주세요.”


KPI(핵심성과지표) 문건에만 머물러있던 임원의 시선이 회의테이블 가장 먼 곳으로 향했다. 임원의 반응에 팀장은 신이 난 듯 말을 이어갔다.


“김 대리가 전세살이에서 벗어나려고 집을 샀다지 뭐예요. 결혼하고 가장이 되더니 결단력과 리더십이 생겼나 봐요. 벌써부터 대출을 받았는지 회사에 뼈를 묻겠다지 뭐예요.”

“어디?”

“서울 ㅇㅇ구 쪽이라네요. 신특공으로 당첨됐대요.”

“아, 그래요? 맞벌이라면서 신혼부부 특별공급 자격이 됐어요?”

“네, 딱 턱걸이했답니다. 김 대리 집사람이 친정아버지 사업체에서 일해서 실수령액 대비 연봉이 적게 잡힌다더라고요.”


대출 어쩌고, 부모 찬스 저쩌고, 시세차익 어쩔 시구...

지난해 KPI를 기반으로 인센티브를 결정하는 자리였다. 한정된 금액을 공정하고 적절하게 배분해야 하는 까닭에 이제까진 대체로 깐깐하고 엄중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김 대리가 집 산 이야기 덕분에 부동산 관련 이야기꽃이 만개해 다소 부드럽게 진행됐다. 물론, 지들끼리만.


인센티브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KPI를 110%로 초과 달성한 덕분에 총 5개 등급 중 두 번째 등급을 받았다. 최고등급은 그룹 내 3%만, 두 번째 등급은 10%만 받았다고 하니, 일선 부서에서는 최고 수준의 평가를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김 대리도, 같은 등급이었다. KPI는 81% 달성했지만. 어쨌든 팀별 인센티브 총액은 그룹 내 최상위권이었다. 팀장은 자화자찬하며 김 대리에게 인근 횟집 예약을 지시했다. 회식 자리에서 팀장에게 덕분이라며 감사의 뜻을 전한 뒤 김 대리에게도 축하와 격려의 말을 전했다.


“축하해, 김 대리. 김 대리가 일도 열심히 하고 선배들에게도 잘한다는 칭찬이 자자해. 대출금 이자에 허리띠 졸라매고 살 텐데, 이번에 인센티브 덕분에 집에서도 면이 좀 살겠네.”

“이게 다 과장님께서 가르침 주신 덕분입니다. 올해는 과장님의 차장 승진을 위해 제 한 몸 불사 지르겠습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물론 인센티브가 정량평가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사회생활이 다 그렇지 뭐’라며 넘겨야 하는데, 자꾸 화가 났다. 그렇다고 딱히 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억지로 보이는 미소가 힘이 들 때면 ‘딱 이 한 잔만큼만 더 속상해 하자’고 생각하며 소주잔을 들이켰다.


회사는 다시 KPI 전쟁을 시작했다. KPI는 지난해보다 30% 늘어나 있었다. 회사의 생존 방식이자, 회사원의 숙명과도 같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년만큼만 노력하면 달성 가능한 수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따분하게만 느껴졌다. 의욕은 사라졌고 피로함과 근육통만 심해졌다.   


나도 최근에 집을 샀다면 최고 등급을 받았을까. 미워졌다. 나는 결단력도, 리더십도 없는 인간이었다. 여태껏 집을 사지 못한 나도 미웠고, 이제 막 30대에 들어섰는데 집을 산 김 대리도 미웠다.


정부가 원망스러웠다. 집값을 잡겠다는 발표는 그야말로 공염불에 불과했다. 두 아이는 쑥쑥 크고, 첫째는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는데, 여전히 빌라만 전전하고 있다. 빚을 더 내서라도, 전세로라도 아파트로 이사를 가야 하는데....


적어도 친구들과 비슷하거나 좀 더 나은 집에 살아야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가 생기지 않는다는 말을, 신혼 때부터 들어왔다. 결단력도, 리더십도 없던 탓에, 정부에 대한 믿음만 굳건한 덕분에 아이들의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아비가 되기 직전이다. 하긴, 집값을 잡겠다는 시점을 정확히 집진 않았으니....


휴대전화 속 은행 앱을 켰다. 잔액 총액은 4천만 원이었다. 그중 청약통장에만 910만 원이 입금돼 있었다. 내역을 눌러보니 91개월 동안 10만 원씩, 8년을 넘게 이체한 기록이 펼쳐졌다. 스크롤을 내려 보니 단 한 달도 빠짐이 없었다. 아직 1년 넘게 더 부어야 하는 목돈 마련 적금도 그랬다. 열심히 모아 아파트 분양받게 되면 계약금으로 쓰려던 것이었다. 성실하게 사는 거라고 믿었는데, 자격만 있을 뿐 점수는 형편없었다. 결국, 헛짓거리였다.


생각해보니 친구들과 모이는 시간이 점점 줄고 있다. 아내가 끓여주는 된장찌개가 더 맛있다는 핑계를 대곤 했지만, 셋만 모여도 투자, 재테크 이야기를 하는 게 재미없었다. 이런 나를 답답해하는 친구들이 불편했다. 특히 학창 시절, 나보다 공부도 못했던 녀석들이 잘난 척하며 과시하는 게 꼴 보기 싫었다. 그래도 이따금 모임에 나가 술이 좀 들어가면 못 참고 한 마디씩 던지곤 했다.


“야 인마, 그래도 난 빚 거의 다 갚았어. 신혼 때 마이너스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빚을 다 갚을 정도로 착실하게 살았다고 내가.”

“전세 살면서 빚 없는 게 자랑이냐? 요즘 그건 죄야. 가정폭력과 같은 거라고, 가족들만 괴롭히는. 회사 다니는 동안 하루라도 빨리 대출받고 전세보증금 합쳐서 집부터 사라니까. 계속 오른다.”

“너넨 뉴스도 안보냐? 맨날 정부에서 떠들잖냐, 집 값 잡는다고. 세금 엄청 많이 때린대. 곧 급매물 쏟아져 나올 거다. 그 많은 세금을 버티면서까지 (부동산에) 미친 사람이 얼마나 되겠냐. 난 그때 똘똘한 놈으로 하나 고를 거야.”


쏟아져 나온 건 집값이 폭등한다는 ‘패닉-바잉’에 대한 기사들이었다. 아파트 분양가도 덩달아 올랐고, 청약 조건도 까다로워져 신축 아파트 분양은 저만치 더 멀어진 것 같았다. 이제는 ‘패닉-UP’, 전세 보증금도 가파르게 오른다는 기사들까지 터져 나왔다.


탄탈로스의 저주에 걸린 것 같았다. 목이 말라 물을 마시려 하니 물이 도망가고, 배가 고파 열매를 따먹으려 하니 열매가 달아나 영원히 기갈(飢渴)의 고통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그런데 이 또한 억울하지 않은가. 신을 테스트할 정도로 오만했던 탄탈로스와 달리, 나는 그저 착실하고 성실하게 살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신이 있다면 이런 내게도 뭔가 기회를 주지 않을까?


이것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신혼부부 특별공급은 자격이 안돼 아예 불가능했다. 지난해가 마지막 기회였다. 그렇다고 일반청약을 넣자니 가점을 거의 못 받아 현실성이 떨어졌다. 청약은 20대 후반과 50대를 위한 제도인 것 같았다. 30대 후반을 위한 제도는, 우리를 위한 아파트는 없는 것 같았다. 완전히 끼어있었다. 그렇다면 오직 하나, 그냥 사는 것 말고는 답이 없는 건가? 그럼 할 수 없이 주택담보대출에 신용대출까지, 요즘 애들 말로 영혼까지 끌어 모아야 한다. 정말 이렇게 해서라도 집을 사는 게 맞을까? 일단 부동산 거래를 제법 많이 했다는 친구와 저녁 약속을 잡았다.


다음 날 오후, 정기 인사 발표 메일이 도착했다. 주목받는 업무를 도맡진 않았지만,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나가던 다른 팀장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역시나 싶었다. 반면 며칠 전부터 고대하는 듯 몸가짐까지 가지런하던 우리 팀장의 이름은 없었다. 하긴, 인센티브 총액이 본인의 고과는 아니니까. 모르긴 몰라도 꽤나 억울할 것 같았다. 팀장은 아직 메일을 확인하기 전인지, 초조해하는 분위기여서 눈치 보고 있는데 무언가 입력하던 팀장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됐다, 됐어!!”


김 대리가 제일 먼저 팀장의 모니터 앞으로 뛰어갔다.

“우와~ 축하드립니다. 팀장님.”

“드디어 됐어. 진짜 오랜만에 당첨됐어. 이게 다 김 대리가 가점받는 방법을 가르쳐 준 덕분이야. 정말 부양가족 끌어 모으느라 힘들었다.”


사람들이 팀장의 모니터 앞으로 모였다.

“우와, 청약 당첨되는 거 처음 봤어요.”

“팀장님, 정말 축하드려요. 부러워요. 비결 좀 가르쳐 주세요.”


모니터에는 ‘당첨조회(10일간)’라는 제목 아래, 가로로 길게 한 줄이 빈칸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은 점점 더 모였고, 임원도 소식을 들었는지 독방 문을 열어젖혔다. 승진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다른 팀장은 어딘가에서 전화가 왔는지 휴대전화 아래쪽 수화기를 손으로 가린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저녁 약속을 잡은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오늘 저녁 가능한 거 맞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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