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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31. 2020

신혼부부, "이혼해야 살 수 있을 거 같아."

[마음의 주체] 현실을 마주한 30대 신혼부부의 마음

(30대 초반 신혼 여성의 시선으로 썼습니다.)

 

“뜻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안타깝지만 방법이 없어. 살면서 가장 축복받을 수 있는 순간이잖아. 다신 없을 그 시간을 포기할 순 없어.”

 

벌써 두 번째, 코로나-19 확산으로 결혼식을 또 미뤘다. 신혼집을 미리 구해놓은 까닭에 벌써 8개월째 동거만 하고 있다. 큰 싸움 한 번 없이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내려 애썼다. 결혼식 준비를 20개월째 하는 부부도 없을 거라며 서로 특별함을 나눴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재확산세를 보이자 결혼식을 한번 더 미뤘고, 대신 혼인신고만이라도 하기로 했다.

 

“이혼하자. 우리, 이혼해야 할 것 같아.”

 

남편의 입에서 이혼하자는 말이 나온 건 혼인신고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이었다. 나흘 전부터 매일 저녁을 전쟁같이 보내다 내린 결정인 듯했다. 거의 일 년 만에 걸려 온 전화 한 통이 화근이었다.

 

“코로나 안 걸리고 건강히 잘 지내시죠? 준비할 시간을 좀 드리려고 다소 일찍 연락드려요. 전세보증금을 지금(2억 원)보다 1억 원 올려주세요. 계약자 명의는 남편이나 다른 사람 명의로 바꿔주시고요. 협조 부탁드릴게요.”

 

협조? 이건 통보였다. 계약기한까지 아직 3달이나 남아있었다. 쏜살같이 날아와 폐부를 찔렀다. 베갯잇에서 접한 갑작스러운 통보에 남편은 거실로 나갔다. 문틈으로 법이 어쩌고 처벌이 어쩌고 하며 친구, 선배 등과 통화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날 아침에 보니 남편은 거실 소파에 누워있었다. 뜬 눈이었다. 잠을 거의 못 잔 듯했다. 토스트기에 빵을 넣고 포트에 물을 받으며 소파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남편~ 그냥 이사하고 싶어. 우리 집을 사서 가는 거면 더 좋고. 그럼 스트레스도 없을 거 같아서 아기도 더 잘 생길 것 같아. 이사해서 우리 아가도 낳고 더 행복하게 살자. 집주인이랑 사이가 안 좋으면 이것저것 더 신경 쓰일 것 같아. 이제 당신도 취업했으니까 대출 더 나올 거야. 그 돈으로 더 좋은 곳에서 살지 뭐.”

 

남편은 한숨을 두껍게 내뱉고는 화장실로 들어가 샤워기를 틀었다. 이날 퇴근 후부터 지친 몸을 이끌고 야간전투를 시작했다. 각자의 직장인 서울 마곡과 성남 판교를 기준으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이 가능한 지역은 샅샅이 뒤졌다. 인터넷으로, 전화로,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알아봤다. 형편에 맞는 집은커녕 아예 전셋집 자체를 찾기 어려웠다.

 

나흘째 되던 날 밤, 퇴근한 남편은 현관에 서서 울었다. 진정을 좀 한 뒤에는 노트를 꺼내 식탁에 앉았다. 물을 한 잔 내밀었다. 찰랑이는 물을 가만히 보던 남편은 나흘 전보다는 가늘어진 한숨과 함께 입을 뗐다.

 

“우리, 집을 사는 게 낫겠어.”

“뭐야, 싱겁게. 그게 방금처럼 서럽게 울 정도로 슬픈 일이야?”

“당신 이름으로 집을 사. 그러고 나서 내가 전세 임차인으로 들어가면 될 것 같아.”

 

부부 중 한 사람은 임대인이고, 다른 한 사람은 임차인이라니? 순간 표정이 일그러졌다. 남편은 노트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설명을 이어갔다.

 

“보수적으로 계산해보자. 내가 신용대출이 6천만 원 정도 나오더라고. 당신은 9천만 원 정도 나오잖아. 여기에 우리 전세보증금 2억 원 더하면 3억 5천만 원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 같아. 자기는 주택담보대출로 1억 5천만 원을 받아. 그리고 나는 전세자금 대출로 3억 원까지 나온다 하더라고. 그럼 우리 8억 원정도 하는 아파트를 살 수 있을 거 같아. 이게 가장 ‘윈-윈’ 하는 방법인 것 같다.”

 

남편의 계산대로라면 이자비용은 계산하지 않는다는 전제로 더 비싼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투기과열지구라면 최대 9억 원짜리 아파트도 살 수 있었다. 주담대 3억 원 + 전세보증금 2억 원 + 신용대출 1.5억 + 전세자금 대출 3억 원, 세금까지 커버할 수 있다.

또, 조정대상지역이면 10억 원짜리 아파트도 가능성은 있었다. 주담대 3억 원 + 나머지 6.5억 원이니 방법은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비규제 지역이면 심지어 21억 원.


그런데 주담대랑 전세자금 대출을 동시에 받는 게 가능하긴 한가? 생전 처음 듣는 소리로 느껴졌다.

 

“부부가 무슨 ‘윈-윈’을 따져. 그리고 고작 생각한 방법이 그 정도냐? ‘영끌(대출을 영혼까지 끌어모으는 것)’하자는 거 아냐. 어떻게 주담대랑 전세자금 대출을 동시에 받냐? 남남도 아니고.”

 

지적한답시고 팔을 휘저을 때마다 물 잔의 물이 파르르 떨렸다. 아슬아슬했지만 흐르진 않았다. 표면장력 덕분이었다. 아직 끈끈해 보였다.

 

“그거야. 남남. 법적으로만, 문서상으로만. 아무래도 그게 가장 나은 방법 같아. 이렇게 계속 오르면 우리 죽을 때까지 집 못 살 수도 있어.

“잠깐만 멈춰봐.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그보다는 우리 신혼부부 특별공급 이런 거라도 해보는 게 낫지 않아? 아직 기회가 있는데도 이혼까지 하면서 그러고 싶진 않아.”

“신특공은 총 혼인기간이 7년 이내면 할 수 있대. 중간에 이혼해도 가능하다고. 다 확인해보고 하는 얘기야. 나중에 아이가 생기거나, 우리가 좀 더 여유가 생기면 그때 다시 혼인신고하면 돼. 솔직히 우리 지금 아이도 안 생기잖아. 지금처럼 아이가 생기지 않으면, 우린 7년 내 3자녀(신특공 최고 가점) 절대 못 만들어. 그리고 나, 힘들어. 난임 병원에서 다른 여자들 동영상 보면서 억지로 노력하는 것도 너무 싫어. 우리 둘 만의 사랑으로 아이를 만드는 건데, 나는 왜 다른 여자들을 보며 아이를 만들어야 해.”

 

고개를 숙인 남편에게서 한 방울의 물이 물 잔에 떨어졌다. 물이 넘쳐 물 잔 밑부분을 둘려 쳤다. 고작 한 방울에 넘치고, 길게 흘러내렸다.

 

내 잘못 같았다. 남편 닮은 아이를 낳고 싶었는데 잘 안됐다. 그래서 찾은 난임 병원이었다. 내 욕심이 남편을 힘들게 했고, 그리고 왠지 모르게 이 모든 상황이 다 나 때문인 것 같았다. 1억 원이면 사실 대출을 더 받으면 될 문제였는데 그냥 이 집이 싫어졌다. 결국 마음이 문제였다. 억울하고 속이 상했다.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말을 그리 당당하게 하는 집주인과 그 어떤 거래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도 이혼까지 해야 할 문제인가.

 

“남편, 이럴 때일수록 우리 더 마음을 굳건히 해야 해. 대출금이 너무 많아지잖아. 더 힘들어질 것 같아.”

“지금 아니면 우린 영원히 집을 못 살 수도 있다니까. 요즘 금리도 낮아서 충분히 충당할 수 있겠더라. 저축하는 셈 치면 되잖아. 청약 당첨 가능성은 신특공 기회 말고는 아예 없다고 보는 게 맞아. 부양가족이 없잖아. 그런데 지금 서두르면 우리도 계약기간 끝나기 전에 집 살 수 있어. 더구나 우린 부모 잘 만나서, 지금까지 빚 없이 살았고, 전세 보증금으로 2억 원이나 갖고 있잖아. ‘합의이혼’ 방식으로 하면 2달도 안 걸린다고 하니까….”

“잠깐잠깐, 좀 더 방법을 찾아보며 생각해보자. 일주일, 아니 사흘 만이라도. 일단 자기 좋아하는 예능프로그램 곧 시작하니까 그거 보면서 진정 좀 하자. 내가 자기 좋아하는 치킨 시켜줄게.”

 

남편의 손을 끌어 소파에 앉았다. 코로나-19 때문에 결혼식도 못했는데, 혼인신고 일주일 만에 이혼이라니. 신의 장난에 놀아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TV를 켜고 채널을 돌리다 뉴스 채널에서 멈췄다. 우리나라 부동산 정책 책임자가 쏜 화살이 다시 또 폐부를 파고들었다. 침착하게 설명하는 앵커의 말이 차라리 더 잔인했다.


“다주택자 매물 30대가 ‘영끌’로 받아 안타깝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불을 지른 사람은 누구이고, 불을 꺼야 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구경은 누가 하고 있는가.

나의 일인가. 남의 일인가.


어깨가 들썩였고, 눈물이 넘쳤다. 남편도 나도 서로 얼굴도 마주하지 못한 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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