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알고 지내던 친구 한 명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 그럴까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이 친구의 말버릇 때문인 듯 했다.
이 친구는 항상 내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그게 아니고~ "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런데 내용을 들어보면
나와는 다른 의견을 말할 때도 있지만
나와 비슷한 의견을 말할 때조차
항상 그 말을 붙였다.
그냥 말버릇이 그랬다.
같은 내용을 말하면서도
'그게 아니고~'를 붙여
자기 식대로 정리를 해서 말하는 것이
습관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나도 사람인지라
일단 부정하고 시작하는 그 말투가
몹시도 마음에 걸렸다.
'결국 우리는 같은 의견이야'라고 결론이 나도
이상하게 기분은 좋지 않았다.
내가 유난스러운가 싶었지만
함께 어울리던 친구들 모두
"그게 아니고~" 뒤에 늘 가르침을 주려는
그 말투에 하나 둘 마음이 떠난 상태였다.
결국 그 친구는 우리와 서서히 멀어져 갔다.
이렇게 겪고 보니 요즘 세대들이
'라떼는 말이야'가 시작되면
뒷 내용이 아무리 좋아도
일단 귀를 닫는 것도 이해가 간다.
현재를 이야기하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언제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회귀하는
그 분들의 첫 문장은
어쩐지 지금을 부정하는 것 같아
썩 기분이 좋지 않다.
결국 대화를 잘 하는 사람의 핵심은
공감 능력에 있다.
아무리 주옥같고 피와 살이 되는 내용을
말하고 있다고 해도
상대방의 말에 먼저 공감해 주지 못하면
그 이야기는 정말
주~옥 같은 이야기만 될 뿐이다.
결국 잘 들어주고
고개를 끄덕여주고
맞장구 쳐주는 것이
대화를 잘하는 첫 번째 방법이다.
얼마 전
'옥탑방의 문제아들'이란 프로그램에서
헐리우드 희대의 바람둥이
게리 쿠퍼의 세 마디에 대한 문제가 나왔다.
게리 쿠퍼는 여자를 유혹할 때
딱 세 마디면 된다고 했단다.
'설마'
'정말?'
'처음 듣는 말이야.'
정말 얼굴빨이 전혀 없었는지
합리적인 의심이 들긴 하지만
그 역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는 말주변이 없는 편이었지만
자기 얘기를 하는 대신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줌으로써
사람의 마음까지 얻어낸 것이다.
혹시 누군가와 대화하는 게 힘들다면
일단 무언가를 얘기하기 보단
잘 들어줘 보자.
고개 끄덕여주고
게리 쿠퍼 세 마디로 리액션 날려주고
'맞아. 맞아.'만 우선 해보자.
이야기를 마치고 일어날 때
상대방이 오늘 너무 좋은 대화를 나눴다며
고마웠다고 인사를 건넬지도 모른다.
의외로 말 잘하는 사람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을 찾기 힘들다.
서로 말하기 바쁜 요즘 세상에
잘 들어주는 사람이야말로
누구보다 귀한 존재이니
블루오션은 듣는 쪽이다.
이왕 대화 방법을 연구한다면
그쪽을 선택하길 바란다.
희대의 바람둥이까진 못 되어도
한 명의 기억속에
대화하고픈 상대로 남는 것은
꽤 가치가 있다.
나 역시 그런 사람이길 바라며
오늘도 고개를 끄덕여 본다.
p.s
'맞아. 맞아.'에서 핵심은
진심이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고
로봇같이 '맞아, 맞아.'를 뱉는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특히 여자친구에게 그랬다간..
어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