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사람 중에 자기를 지칭하는 말이
'언니'인 사람이 있었다.
'언니가 보기엔 말이지~' 라며
늘 조언과 충고(?)를 서슴없이 해 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조금 치사하긴 하지만 따지고 들면
빠른 연생이라 나와 같은 나이였고
심지어 3월생이었다.
물론 중고등학교였으면 감히 까불 수 없는
한 학년 선배였지만
이 모임은 성인이 되어서 만난 사이였고
생일이 더 빠른 다른 3월생 친구와는
말을 트고 편하게 친구로 지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을 언니라고 불러주길 원했다.
우리는 그래도 수능 두 번 본 값을 쳐주자며
꼬박꼬박 그녀를 '언니'로 불렀고
그녀는 그 사실을 매우 만족스러워했다.
'언니'로 불리는 만큼 그녀는
같은 나이의 동생들에게
조언과 충고와 평가와 판단을 아끼지 않았으며
그녀의 얼굴을 보면 자동으로 떠오르는
유행어 '언니가~'를 앞세워
때로는 따끔한 질책과 꾸중까지 시전 하셨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게
함께 과제를 하거나
누군가는 해결해야 하는 골치 아픈 일이 생기면
계급장 다 떼고
우리는 모두 동일한 위치임을 강조했다.
뭘 하나 먹을 때도 따박따박 n분의 1을 강조했으며
자기가 맡은 리더 역할의 고충을 읊으며
은근슬쩍 잡다한 일에선 빠지기도 했다.
그녀는 결국 우리와 서서히 멀어졌다.
언니 '대접'만 받고 싶어 하던 그녀는
'언니'도 '친구'도 아닌 그냥 불편한 사람이 되었다.
소위 '나잇값'이란 게 있다.
숨만 쉬어도 먹는 게 나이라지만
나이를 먹었으면 그만큼의 값을 해야 한다.
특히나 자기 입으로 '언니가~', '오빠가~'를
달고 살 거라면 그보다 한 두 살이라도
더 많은 값어치를 해야 한다.
그런데 그 값어치는 연장자로서 누리는
꼰대질이 아니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가장 이상적인 윗사람의 모습은
입 닫고 지갑만 여는 것이라고.
조용히 있다가 돈만 내주고
1차에서 눈치껏 퇴장해 줄 것이 아니라면
자기 입으로 나잇값 올리며 연장자 노릇하는 건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일일 뿐이다.
나이를 떠나
한 사람을 어른으로, 자기보다 대접해 줄 사람으로
느끼게 되는 순간은
'언니', '오빠'라고 지칭하며
스스로를 높일 때가 아니라
배려있는 모습,
누군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모습,
연륜에서 느껴지는 지혜와 선구안이 번뜩일 때이다
나잇값의 판단은 늘 상대에게 있다.
어른으로 대우받고 싶다면
더더욱 상대방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한다.
어려울 땐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고
평소엔 든든히 뒤를 받쳐야 한다.
나이는 말로, 특히나 내 입으로 정하는 게 아니다.
남이 판단해 주는 게 진짜 내 나이인 것이다.
이것까지 할 자신이 있는 사람만이
'언니', '오빠'를 들먹일 수 있다.
많은 연예인들이 존경하는 인물로 유재석을 꼽는다.
최고의 MC이자, 온 국민을 웃게 만드는
국민 개그맨이기도 하지만
많은 연예인들이 그를 존경하는 이유는
언제나 겸손한 태도,
조언과 충고 대신 늘 묵묵히 들어주는
그의 모습 때문이라고 한다.
또한 후배들이 힘들 때
늘 손 내밀어 주는 그의 큰 배포 역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생의 롤모델로
꼽는 이유이다.
그의 열다섯 번의 연예 대상이란 경이로운 기록은
물론 그의 찰진 입담과 훌륭한 진행 솜씨에서
비롯된 것이겠지만
권위 의식 따윈 찾아볼 수 없는 겸손함과
늘 자자한 미담에서 보이는
제대로 된 나잇값도 한몫했으리라 본다.
그의 인성과 평판이야말로
오랜 시간 그를 연예계에서 버티게 해 준
원동력임은 그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란 바로 이런 것이다.
나이는 고스톱으로 딴 게 아니지 않은가.
나이다운 행동은 그 나이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비록 '언니가~', '오빠가~'로 예를 들긴 했지만
이러한 예는 '선배가~', '상사가~'의 상황에서도
역시 해당된다.
내 위치를 짚어주는 순간
상대방 역시 내가 그 위치에 걸맞은 사람임을
확인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으면 안 된다.
권위의식을 드러내며 내 문제에 성심성의껏
조언하는 꼰대보단
내 일에 관심 없는 철없는 연장자가
오히려 더 환영받는 세상이 되었음을
부정하지 말자.
p.s
이 글을 작가의 여동생이 싫어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