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갓 졸업하자마자
대기업에 철썩 붙은 친구가 있었다.
몇 달 후 친구를 만나
회사생활은 어떠냐고 물었더니
친구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내가 이깟 부속품처럼 살려고 그렇게 아등바등 공부하고 대학 갔나 싶어.진짜 공부한 보람이 없어. 내가 먼지처럼 느껴져."
이 친구뿐 아니라
대기업에 다니는 친구들은
유독 그 '부품론'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일 자체나 주변 사람보단
작아진 자신의 존재 가치가
더 힘들게 하는 듯했다.
그러나 다행히 친구는
불만만 토로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부속품을 벗어나기 위해 착실히 일했고,
실력을 인정받아 점점 더 큰 일을 맡았다.
그리고 서른 중반, 이제는 어엿한 과장님이 되었다.
최근 다시 만나 요즘 회사 생활은 어떠냐고 묻자,
"나도 이제 꼰댄가 봐. 요즘 신입사원들이 자기는 이런 하찮은 일 싫다고, 큰 프로젝트 주면 잘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데 옛날 생각나더라. 그래서 일을 줘 봤어. 근데 제대로 못 해. 그래 놓고 자기는 잡다한 일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못 했다고 변명하는데 우리 과장님이 이런 기분이었겠구나 싶더라. 실력도 없는데 까불었구나 싶었어."
올챙이 적을 스스로 돌아보는
개구리가 된 친구를 보며
나는 조용히 '짠'을 외쳤다.
실력이 깡패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그런데 깡패가 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다.
물론 타고난 어깨빵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부딪혀 봄직하다.
자신도 잘할 수 있다고 기회를 달라고 외쳤던
그 신입사원처럼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기회를 얻었으면
증명은 실력으로 해야 한다.
짜치는 일이 많아서,
어제 업무가 너무 늦게 끝나서,
몸이 안 좋아서,
같은 변명 말고
회사에서 밤을 새우더라도
그 일을 선배들만큼 해내는 모습으로
실력을 인증해야 한다.
물론 신입사원이 맡는 잡다구리 한 일들까지
완벽하게 말이다.
만약 그랬다면 그 신입사원의
회사생활은 다른 신입사원과는
조금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이것은 선택의 문제다.
그렇게까지 살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하면
어쩔 수 없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그 신입사원을 바라보는
선배들의 눈은 아마 전보다 더 매서워졌을 것이다.
아직 여물지 않은 실력에서
억지로 만들어 낸 기회는
잘 이겨낸 사람에게만 기회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된다.
주변의 실망감을 다시 신뢰감으로 만들려면
전보다 두 배, 세 배 이상의 노력이 필요하니 말이다.
그러니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
당신이 보잘것없다고 느끼는 그 하루하루가
생각보다 착실히 쌓여 당신의 실력을 만들고 있다.
물론 무작정 버티는 쪽보단
조금 더 애쓰는 쪽이 낫다.
시간 역시 실력을 만들어 주지만
하루하루를 쌓아가는 태도를
실력으로 보는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일을 대하는 태도는 평판이 되고
좋은 평판은 또다시 실력을 키울
명분이 되어 준다.
실력과 평판은
유재석과 김태호,
이서진과 나영석처럼
붙어 있을 때 시너지가 난다.
칼 뉴포트가 지은 '열정의 배신'이란 책을 보면
'열정'과 '실력'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열정을 따르고 사랑하는 일을 찾으라'라고
조언하지만
칼 뉴포트는 이 말에 심각한 결함이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은 나에게 딱 맞는 일이
어딘가에 있고 그 일을 찾기만 하면
그 일이 내가 바라던 일이라는 걸
단숨에 알아챌 수 있을 거라고 착각하지만
실제로 나에게 딱 맞는 그런 일을
찾는 사람은 드물다.
대부분의 성공한 사람들은 한 분야를 열심히 파서
누구도 무시 못 할 실력을 쌓은 사람들이며
이 실력으로 직업의 자율성을 얻었고
이렇게 만들어진 커리어는 사명감을 이끄는
나만의 직업이 되는 것이다.
결국 성공하려면
꾸준히 실력부터 쌓아야 한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이 되면
깔래야 깔 수가 없다.
작은 사고에도 다시는 TV에 얼굴을 못 내미는
연예인이 있는가 하면
엄청난 사고를 치고도 몇 년 뒤에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재기에 성공하는
연예인들이 있다.
이들 역시 실력이 받쳐줬을 때 가능한 얘기다.
대체 불가, 범접할 수 없는 실력을 갖춘 사람들에겐
어쩔 수 없이 사람들은 또 모여든다.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고
사람 보는 눈들이 없다고
하루 종일 세상을 원망하고 있는가.
안타깝지만 보는 눈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아직 다른 사람 눈에 보일 만큼의
실력이 완성되지 않을 것일지도 모른다.
인생 길게 보고
바로 앞의 작은 목표에 집중하자.
당신이 켜켜이 쌓아 올린 실력이
반드시 빛을 보는 날이 온다.
그때까지 우리는 날카롭게
실력이란 칼을 벼리며
일격의 순간을 준비해야 한다.
진짜 식상한 말이지만
기회는 준비된 사람만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 기회는
언제, 어디서, 어떻게 올지 모른다.
당장 내일일지, 1시간 뒤일지.
그러니 오늘도 일단 칼을 갈아 보자.
서걱서걱 날이 제대로 서도록.
p.s
물론 이렇게 벼린 칼은
"너 따위가 되겠어?"
"됐고, 넌 이미 망했으니깐 그냥 편하게 살아."
따위 말을 날리던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한방 먹일 수 있다.
실력이 빛을 보는 날,
깡패가 얼마나 무서운지
제대로 보여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