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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또랭 Apr 26. 2023

정리 덕질 들어보셨나요?

정리 덕후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나는 정리 덕후이다.

 정리를 그냥 ‘좋아한다’라고 표현하지 않는 이유는 정리를 향한 내 마음이 꽤나 진지하기 때문이다. 아이돌 오빠를 향한 팬심, 그 비스무리한 마음으로 나는 매일 남의 집 정리하는 영상을 보며 굿즈 대신 수납용품을 사들인다. 잘 때는 ‘우리 오빠’의 콘서트 영상 대신 정리 asmr을 들으며 잠든다.


 이쯤 되면 살짝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변명을 좀 하자면, 오와 열을 딱딱 맞추고 흐트러져 있는 물건을 보면 스트레스로 위산이 분비되는 그런 류의 사람은 아니다. 아이돌 오빠의 안무 영상을 보며 방에서 잠옷을  입고 따라 추는 귀여운 소녀(?) 같은 마음으로 나는 세계 곳곳의 정리 박사들의 영상을 찾아보고 우리 집 이곳저곳을 조금 들쑤실 뿐이다.


 나의 정리를 향한 이 열정은 한번쯤 겪는다는 시험 기간의 책상 정리로부터 시작된 것 같다. 바쁠 때 하는 정리의 쾌감은 생각보다 짜릿하다. 이걸 다 뒤집는 순간 나는 최소 1시간 동안 아무것도 못 할 것을 알면서도 ‘에라, 모르겠다’ 하며 서랍을 뒤집어엎을 때의 그 짜릿함, 재활용품 죄다 뒤져 크기가 맞는 상자를 찾아 서랍 칸 속에 이렇게 저렇게 배치하다가 아귀가 딱 맞아떨어졌을 때의 그 흥분감, 각각의 상자에 한 형태의 물건들이 쪼르르 놓여 있을 때의 그 아름다움은 나를 정리 덕후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문제는 내가 이렇게 피 같은 시험 기간을 희생해서 정리를 해 놔도 “이게 사람 방이니? 돼지 우리지?”라는 엄마의 잔소리가 일주일이면 터져 나왔다는 것이다. 나는 이것이 23년 동안 한 방을 쓴 여동생의 탓이라며 무척 억울해했고, 동생도 쌍방과실이라며 억울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돼지우리’의 범인을 밝히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23살, 우리 자매가 각각의 방을 갖게 된 순간 드디어 진실은 드러났다. 역시 ‘돼지’는 동생이었다. 확연히 다른 방 상태를 보고 동생과 엄마는 나를 ’ 정리인 ‘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간 오해를 벗어났다는 기쁨과 함께 이제 내 방을 내 맘대로 정리할 수 있겠단 생각에 뛸 듯이 기뻤다. 날마다 책장과 책상, 침대 밑 서랍장까지 오롯이 나의 물건들로 채우고, 정리하는데 정신이 팔렸다. 전 국민이 다 쓴다는 다이소 정리바구니를 산 것도 그쯤인 듯하다. 그렇게 나는 진정한 정리 덕후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내 방구석구석에 뭐가 몇 개 있는지 다 알 때쯤 나는 결혼이라는 큰 전환점을 맞게 되었다. 나는 결혼을 하면 블로그에 나오는 주부 9단 그녀들처럼 아무 서랍이나 열어도 네모 반듯하게 정리되어 있는 그런 집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도 꽤 있었다. 나는 ‘프로 정리러’니까. 근데 이게 방 하나 정리하는 것과 집 전체를 정리하는 것은 아예 다른 이야기였다. 겨우 라면 하나 끓일 줄 아는 사람에게 호텔 메인 셰프 자리를 맡김 셈이랄까. 정리에 살림의 개념이 더해지니, 머리가 아팠다. 설상가상 결혼하자마자 임신을 했고, 아이가 태어나니 이건 뭐, 매일매일이 ‘혼돈의 카오스 ’ 그 자체였다. 집은 좁은데 내가 통제 안 되는 남편의 물건에, 아이의 물건까지. 밟히고 치이고, 쑤셔 넣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정리‘에서 점점 멀어질 때쯤 ’ 유튜브‘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어떤 알고리즘으로 처음 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그동안 블로그로 보던 사진들로는 비교가 안 되는 영상미까지 갖춘 살림 브이로그들은 또 한 번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나는 시뻘건 눈으로 그 영상들을 정주행 하고 또 했다. ‘정리인’의 피가 꿈틀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이 하는 요리나 청소는 크게 눈에 안 들어왔는데,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거실과 조목조목 구역이 나뉜 싱크대 서랍장은 참으로 부러웠다. 나는 질투심과 부러움을 원동력으로 사부작사부작 다시 정리를 시작했다.


  사실 내가 ‘정리‘에 대한 마음이 좀 남다르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남편 덕분이다. 사실 그 전까진 다들 이 정도는 정리에 관심이 있는 줄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유튜브 쇼츠로 몇 시간째 정리하는 영상을 보고 있는 나를 보더니 남편이 대뜸 “너는 그게 진짜 재밌어? 어떻게 몇 년 동안 그걸 볼 수 있는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그때 뭔가 나의 이 ’ 정리‘에 대한 집착이 다른 사람 눈엔 신기해 보일 수 있음을 알게 됐다. 더불어 나는 이걸 몇 십 년 동안 보고, 해왔는데도, 전혀 질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살면서 좋아하는 게 별로 없는 줄 알았는데 나에게도 좋아해서 들고 파는 무언가가 있구나 싶어 기쁘기도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말한다. “너 그럼, 정리 안 되어 있는 거 보면 엄청 스트레스받겠다.”라고.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정리 때문에 스트레스받거나 우울해하지 않는다. 더러워지면 더러워지는 대로, 물건이 쌓이면 쌓이는 대로 하루종일 그곳에 놔둔다. 왜냐하면 밤마다 물건이 쌓일수록 정리할 게 많다며 입가에 미소를 띠고 콩닥거리는 마음으로 이방 저방을 뛰어다니는 나는야 정리 덕후니까.



대충 요런 짓들을 합니다. 전문가는 아니라 많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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