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전부였던
들어가기 전에, 이 리뷰는 아주 옅은 농도로 쓰여질 예정이며 무작정 좋거나 아쉬운 점을 단순하게 나열할 예정. 분석적이고 전문적인 리뷰를 원한다면 매우 모자란 글일지도.
https://youtu.be/4-Jf3yMu-Qk?si=hmvZqmTrxogK6F14
오랜 시간 백현을 좋아했고, 큰 일이 아니라면 탈덕할 일은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최근에 이런 다짐을 번복했다. 백현은, 아니 엑소는 내가 지금까지 기획했던 모든 방향성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생각했지만 약 13년 정도의 시간이 흘러 ‘내가 가진 전부였던 아티스트'라는 과거형이 되어버렸다. 그저 아티스트이기만 할 수 없었던 것일까? 제대 이후 기사를 통해 전해 듣는 그의 결정에 ‘아티스트(아이돌) 백현'으로 내가 기대했던 모습은 없었다.
백현을 좋아했던 이유는 여러가지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여겼던 점은 ‘노래를 게을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줄곧 부르짖었던 아이돌이 가져야하는 본업에 대한 욕심이다. 무대 위에서 노래하고 춤을 춰야하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직업적 소명을 다하는 것. 백현은 그런 모습을 많이 보여줬던 아이돌이었다. 그래서 백현의 무대를 대하는 태도는 내가 일을 하면서 아티스트에게 바라는 태도가 됐다. (백현이 무대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자신이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것에 있어서 욕심이 있다는 뉘앙스를 많이 풍겼고 늘 평균 이상의 퀄리티를 보여줬기에...)
https://youtu.be/-EfjXQgE1e8?si=jpDkDTBlHksCkyBn
백현의 첫 솔로 앨범 ‘City Lights’는 내가 백현 팬이라는 것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앨범이었다. 타이틀곡 'UN Village’는 백현의 보컬 내구성을 단번에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 곡을 소화하기까지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기본기를 탄탄하게 다졌다는 것 증명하기도 하고, 다양한 곡을 불러보며 쌓아온 경험치를 가장 담백하게 보여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다.
수록곡까지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는 백현의 첫 솔로 앨범은 딱 적당했다. 퍼포먼스가 있는 곡이었지만, 세계관 캐릭터에 맞는 ‘빛'을 활용한 연출이 주를 이루는 뮤직비디오부터 사운드룸 영상과 라이브 세션 영상까지 모든 것이 적당히 완벽했다고 생각했다. 백현의 솔로 앨범 3개 중 가장 좋아하는 앨범을 뽑으라면 ‘City Lights’라고 단언할 수 있다. 앨범이 완벽하게 내취향이다.
https://youtu.be/Cd2gDjIUszY?si=q2KADhJYjAOpiGdl
1년 후 발매된 두 번째 미니 앨범 ‘Delight’ 앨범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Bungee’다. ‘UN Village’와 비슷하지만 조금 더 밝은 느낌의 곡으로 트랙에 깔리는 피아노 소리와 백현의 가성이 정말 잘어울리는 곡이다. 나는 이 곡이 계절을 타지 않아 매일 들어도 질리지 않는 곡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Bungee’가 백현에게는 미디엄 템포의 R&B 곡이 퍼스널 컬러일지도 모른다는 확신을 갖게하는 곡인만큼 타이틀곡 ‘Candy’ 보다 훨씬 많이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앨범의 킥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자켓 사진이다. 피지컬 앨범을 모두 구매해야겠다 마음 먹게할 정도로 좋았다. 앨범의 키비주얼인 팝한 느낌과 백현의 얼굴, 헤어 메이크업 스타일링까지 모든게 잘 맞아 떨어져 완벽했다. 곡도 곡이지만, 아이돌 솔로 앨범이기에 ‘소장(소비) 욕구’를 정확히 자극하는 매력적인 앨범이었다.
https://youtu.be/8M3WUaeIbOk?si=vBuSxnHeAwXaRj6N
엑소에서 이토록 R&B 장르를 잘하는 멤버가 나올거라고 예상한 사람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군백기를 앞두고 발매한 세 번째 미니 앨범 ‘Bambi’의 타이틀곡 ‘Bambi’는 다소 충격적이었다. 방송 활동을 예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렇게까지 어려운 곡을 타이틀곡으로 과감하게 선택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노래에 비해 퍼포먼스 그림이 조금 큰편이라고 느껴져 조금 아쉬웠다. 이 앨범에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곡은 ‘All I Got’ 이다.
이 앨범 덕분에 군백기를 기꺼이 기다렸고, 차기 앨범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던 나는 끝내 백현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지 않은 상태에 다달았다.
결국 자신의 본업에 대해 게으른 태도가 아님을 알 수 있는 것이 백현의 가장 큰 셀링 포인트가 아니었을까 싶다. 유독 이런 캐릭터였기 때문에 최근에 보여주는 모습들이 더 실망스러운 것이 아닐까. 막말로 음악이나 무대를 더 열심히하지 그 주위의 것들에 이렇게까지 집착할 필요가 있었냐는 말이다.
데뷔 했던 회사에서 나와 개인 회사를 설립하고, 다른 회사에 이적하고 이런 것들에 대한 실망감을 내비치는 것이 아니다. 직장인들이 이직하듯 아티스트 역시 회사를 옮길 수 있다 생각한다.
사실 아티스트를 둘러싼 잡음을 싫어한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지나가는 이야기처럼 흘러갈 수 있는 이슈들이었다면 모르겠지만 이런 상황이 시작된지 일 년 정도가 지났다. 내가 앨범을 기획하고 제작할 때 지대한 영향을 준 아티스트이기 때문에, ‘내가 가진 전부였던 아티스트’였기 떄문에 최근의 이슈를 그냥 두고 지나칠 수 없다. 많은 실망을 안겨줬다.
내가 뭐라고, 감히 아티스트에게 본업을 잘하는 모습만 보여주길 바라냐 하겠지만 엔터테인먼트 콘텐츠와 아이돌, 앨범과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이 모두는 일탈 또는 휴식, 위로다. 내가 행복하기 위해 즐기는 것들에서 이슈와 잡음을 덮어두고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낼 수 없다. 피곤하려고 즐기는 콘텐츠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는 그가 하는 모든 콘텐츠에 무조건적인 응원을 보내고, 또 영향 받아 나는 내 것을 기획하고 제작해왔다. 앞으로 내가 어떤 아티스트를 기준점으로 두고 일을 해야할지 한순간에 백지화가 된 느낌이다. 그의 다음 앨범을 기대할 수 없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