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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Nov 18. 2020

넌 어디서 왔니?

내가 아기 고양이를 처음 만났을 때.


집사


 정말 더운 8월이다. 이렇게 더운 날은 가만히 누워만 있어도 더위가 가시질 않는다. 하지만 나는 엄마랑 함께 강아지 '사노'산책을 하러 가는 중이다.

 '으악. 이렇게 더운데 걷는 것만큼 끔찍한 일이 없을 거야.'


 앞서가는 사노는 더위라는 것이 크게 문제가 아니라는 듯 발랄하게 뛰어다니고, 나는 그 뒤를 느릿느릿 걸어갔다. 올해는 유독 덥다. 얼른 집에 가고 싶었다. 태양에 닿는 모든 것이 뜨거워지는 오늘의 날씨. 정말 이런 날에는 있던 약속도 취소해야 하는 날이다. 그런 날이 있지 않은가. 모든 게 마음에 안 들게 예민해지고 불쾌해지는 날씨. 오늘이 바로 딱 그런 날씨이다.


  "엄마! 언제 돌아가요? 더워서 쓰러지겠다."

 옆에서 같이 걷는 엄마의 얼굴도 익어가고 있다.

 "사노 좀 불러봐. 이제 진짜 가야겠다. 너무 더워서 더 못 가겠다."

 엄마의 말에 나는 부리나케 사노를 불렀다.

 "사노야! 사노!"

 이름을 잘 알아듣는 사노인지라, 멀리서 이름만 불러도 쫄래쫄래 뛰어오는데 오늘따라 오질 않는다. 뭔가를 계속 킁킁거리고 있다. 뭔가 또 이상한 것을 주워 먹으려고 그러는 건가. 엄마는 나보고 가서 데려오라는 시그널을 보낸다.

 "사노야! 집에 가자. 뭐보고 있는 거람..." 

 투털투털거리며 사노를 데리러 가는 발은 아스팔트에 쩍쩍 눌러붙었다. 덥다, 더워!



고양이


 나는 고양이다. 태어난지 열번의 밤만큼이 지났다. 그런데 어느날부터 엄마랑 언니 오빠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너무 배고프고 내 위에 있는 둥글고 뜨거운 태양때문에 온 몸이 너무 무겁다. 왜 나는 혼자 있게 되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 주변의 것이 선명하게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희뿌연 어둠 속에서 엄마랑 언니 오빠의 냄새를 기다리고 있지만, 일단 목이 너무 마르다.


 그렇게 한참을 혼자 누워있었다. 왔다 갔다 가는 큰 발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들리고, 가끔 나를 위에서 쳐다보며 웅웅, 알아듣지 못하는 소리를 내다가기도 했다.

 '엄마가 인간의 말은 꼭 배워야 한다고 했는데...'

 나는 그럴 틈도 없이 나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목이 너무 말랐다. 코끝을 스치는 바람조차 뜨거웠다.

 

나는 아무 힘도 나지 않아 천천히 얇아져가는 내 심장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그때였다. 축축하고 시원한 무언가가 내 몸에 닿았다.


 '엄마일까? 아니야. 이건 엄마 냄새가 아니야. 뭘까? 누구지?'


 고개를 들어 축축한 것의 정체를 확인하고 싶었다. 이것은 내 몸 구석구석을 킁킁거리며 휘젓기 시작했다. 엄마 냄새가 아니라서 불편하고 이상했다. 동시에 시원한 촉감이 뜨거운 내 몸에 닿으니 조금 편안해졌다. 그리고 곧 내 몸 위로 큰 그림자가 생겼다. 태양을 가려주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들려오는 서로 다른 소리들이 웅성거리는 소리. 날 보고 내는 소리일까. 나는 모든 것이 너무 궁금했지만, 지금 아무런 힘도 없는 나는 그저 가만히 눈을 감고 누워만 있다.

 

 그 순간, 어떤 물렁하면서도 단단한 것이 나를 들어 올렸다.


 나는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나는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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