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동작에는 꽤나 근심이 가득했다. 두 고양이의 집사인 우리 엄마. 그래서 엄마는 더욱 진지하게 아기 고양이를 보고 계셨다.
나는 아기 고양이에게 가까이 가자니 뭔가 무서웠다. 그래서 멀찌감치 서서 엄마를 보고 있었다.
"엄마~ 고양이 살아있냐고요!"
"어. 살아있는 것 같은데, 야 곧 죽을 거 같다. 물이라도 줘야 하는 거 아니가?"
엄마의 말씀에 내 심장이 쾅쾅 뛰었다. 죽음과 아기 고양이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 작고 소중하기만 한 생명이 무더위에 버려진 채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말에 당장 집으로 데려가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일찍 아기 고양이를 동물병원에 데려가서 살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예전 인터넷에서 읽은 글이 떠올랐다.
‘길에 있는 아기 고양이를 멋대로 만지거나 데려와선 안됩니다. 어미 고양이가 인간의 냄새가 묻은 아기 고양이를 버릴 수도 있으며,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미 고양이가 사냥을 하러 간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오지랖으로 부모 자식을 생이별시키지 마세요.’
하지만 지금 나의 눈앞에 있는 아기 고양이는 적어도 며칠 동안 무더위에 버려진 것이 육안으로도 확실해 보였다. 그때 옆에 텃밭을 정리하시던 동네 할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아이고, 저 꼬냉이는 곧 죽겄다. 어미가 어디가삐고 저래 계속 누워있다카이.”
이 말씀에 나를 돌아보는 엄마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우리는 일단 아기 고양이를 살려보기로 하고, 근처 동물병원으로 아기 고양이를 데려갔다.
그렇게 나와 아기 고양이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병원을 다녀온 그 날, 아기 고양이는 작은 상자에 힘없이 누워있었다. 아기 고양이는 오랫동안 무더위에 물을 먹지 못해 탈수 증상도 있었지만, 며칠을 굶은 탓에 병원에서는 우선적으로 급히 이유식을 처방해주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였다. 이다음은 아기 고양이의 생에 대한 의지에 달려있었다.
나는 밥 먹는 시간을 빼고는 하루 종일 고양이를 보며 앉아있었다. 다행히 숨은 붙어있는데, 움직이질 않는다. 아기 고양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귀도 마른 잎처럼 말려있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다고 하니, 나는 답답하고 걱정되는 불안을 달래며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새벽같이 일어나 아기 고양이를 보러 갔다. 문을 열자 작은 상자 속에 그보다 더 작디작은 아기 고양이가 꼬물꼬물 움직이고 있었다.
‘세상에, 이렇게 작고 소중한 생명체가 있다니…’
어제까지 힘없이 누워있던 아기 고양이가 삐약삐약 소리를 내며 움직이고 있었다.
어제 하루 종일 걱정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나는 움직이며 살아있는 아이 고양이에게 ‘기쁨’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살아나 준 아기 고양이가 대견했다.
힘없이 누워있던 아이 고양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우는 모습은 감히 내가 관여할 수 없는 생명의 힘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