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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진 Jan 07. 2021

집사랑 놀아주는 건 피곤해

나 홀로 집에

고양이


"사랑~ 언니 돈 벌고 올게! 잘 놀고 있어~"

삐빅, 띠리릭!


에구, 힘들다, 힘들어. 드디어 언니가 밖으로 나갔어. 

오늘은 언니가 멋진 사냥꾼이 되도록 도와주는 나의 노력을 말해보려 해.

나는 아침마다 언니랑 사냥 놀이를 해. 오늘은 언니가 빨간 오징어를 가지고 와서 놀아달라고 했어. 그래서 아침부터 언니랑 놀아주느라 힘을 다 써버렸지 뭐야?


잔뜩 놀아주고 나니, 숨이 차고 힘들어서 침대에 벌러덩 누워버렸어. 

그래서 언니가 나갈 때 문 앞까지 나가지 않고,  채 꼬리로 살랑살랑 인사를 해주었.


언니는 항상 나갈 때마다 어딜 가는지 말해줘. 돈 벌고 올게, 쓰레기 버리고 올게, 밥 먹고 올게, 산책하고 올게, 등등. 


매번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나한테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 걸 보니, 언니는 날 아직도 아기 고양이라고 생각하나 봐. 난 이미 훌륭한 사냥꾼 고양이인데 말이야!

오히려 발톱도 없고 털도 없는데, 추운 겨울에 자꾸 밖에 나가는 언니가 더 걱정야.

이런 내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언니가 오늘은 어딜 가냐고? 언니는 내 친구 사월이가 말해줬었던 '돈'이라는 것을 사냥하러 가는 거야.

내 친구 사월이는 돈에 대해서 내게 이렇게 설명해줬었어.


"인간은 발톱도 약하고, 털도 없고, 다리도 두 개 밖에 없으니 '진짜 사냥'을 할 수 없지. 대신 '돈'을 사냥한다. 그 돈으로 밥도 먹고, 따뜻한 집에서 잠도 잘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우리한테도 맛있는 밥도 주고 간식도 줄 수 있는 거."


사월이가 나에게 돈에 대해서 알려줬을 때, 사실 잘 이해 안 됐어. 어떻게 돈이 밥으로 변신하는지 아리송했거든. 

하지만 언니가 돈을 사냥해야 나한테 맛있는 열빙어도 주고 닭고기도 줄 수 있다 말은 귀에 쏙 들어오더라.  


언니가 열심히 돈을 사냥해오는 것은 소중한 간식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나 언니가 훌륭하게 사냥을 할 수 있도록 아침마다 훈련을 해주고 있어.

"냐아아아!"

언니가 돈을 사냥하러 나가, 나는 슬슬 졸음이 찾아와. 한껏 크게 하품을 하고, 언니가 벗어놓고 간 잠옷에 다리를 쭉 뻗고 누우면 아주 기분이 좋아. 


언니는 항상 침대에 잠옷을 둘둘 던져놓고 가. 다른 인간이 오는 날에는 이불 안에 쏙 넣어두기도 하지만, 내가 항상 이불 밖으로 끄집어 내. 왜냐면 언니 냄새를 맡으면서 자면 좋은 꿈을 꾸거든.

아! 그리고 너희들만 알고 있어야 하는 걸 알려줄게. 언니는 출근할 때마다 집을 엉망으로 만들곤 해. 정말 엉망이야! 

그래 놓고 자꾸 나를 위해 그런 거라며 거짓말을 하지 뭐야? 


"사랑! 언니 올 때까지 놀이공원에서 놀고 있어~"

"애옹! 애오옹!"

"그지~? 사랑이도 이렇게 해두니까 좋지?"

"애오오옹!"

" 캣타워에도 올라가서 우다다하면서 놀고 있어요!"

이것 좀 봐. 나의 발톱을 시원하게 해주는 스크레쳐를 웃기게 혀두질 않나, 구석에서 의자 같은 걸 꺼내지 않나, 그리고 방안에 온갖 장난감을 여기저기 메달지 뭐야?


물론 언니가 방을 엉망으로 만들어 준 덕분에, 나 홀로 집을 지킬 때도 재밌게 사냥 놀이를 하면서 놀긴 해.

하지만 언니가 집에 돌아와서 집을 치우느라 내 밥은 늦게 주는 게 좀 맘에 안 들어.

내 밥을 먼저 주고 집을 치우면 참 좋을 텐데.


우리 언니는 완벽한 사냥꾼은 절대 아니야.

내가 물면 엄청 아파하고, 내가 뛰면 발끝도 못 쫓아오거든. 내가 '냐옹'하고 울면 깜짝 놀라서 날 쳐다보기도 하고, 나만큼 높은 곳에 올라가지도 못해. 언니한테 비밀이지만, 언니는 훌륭한 사냥꾼이 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아.

  

하지만 나는 언니를 좋아해. 내 응가랑 쉬야도 치워주고, 간식도 주고, 따뜻한 밥도 주니까. 그리고 내 콧잔등을 항상 쓰담 쓰담해주면서 날 기분 좋게 해 줘.

내 말은 못 알아듣지만, 요즘은 꼬리나 귀가 움직이는 걸 보고 꽤 알아맞히기도 해!

내가 아침마다 사냥 훈련을 시켜주는 보람이 있나 봐. 물론 계속 놀아달라고 하는 건 조금 피곤해도, 난 언니가 좋아.


이제 너무 졸리다. 그만 말하고 자야겠어.

언니가 오늘도 일찍 집에 돌아왔으면 좋겠어. 돌아올 때 열빙어를 한가득 가져오면 더 좋겠다. 


그리고 오늘도 나를 만질 때, 언니의 손이 차가우면 '으앙'하고 물어줄 거야. 날 만지려면 손이 따뜻해야 한다는 걸 몇 번을 물어야 알아듣나 몰라….


그럼 다들 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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