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리 Oct 21. 2022

당신의 잠든 어깨가 애처로웠던 날

우리는 진정 가족이었다.

맞벌이를 하며 두 아이 육아를 하는 일상은 '노빠꾸'다. 마치 후진도, 브레이크도 없는 차를 모는 것과 같다. 두 아이를 낳기 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도 없고(후진 불가), 매일 이어지는 일과에서 나와 남편은 충분한 수면과 휴식을 포기한 지 몇 년째이다.(브레이크 불가) 아이가 한 명일 때에는 남편과 나 둘 중 한 명이 아이를 돌보고, 한 명은 자유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이제는 언감생심이다. 터울 적은 두 아들을 돌보니, 아이 한 명 당 어른 한 명의 돌봄이 필요하다.



이제 이런 생활에도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다. 그리고 적응이 되는 사이에 아이들은 조금이나마 컸다. 작년만 해도 우리 집 둘째는 내가 출근 준비만 하면 빽빽 목놓아 울어댔다. 이제 아침이면 둘째는 형아와 함께 씩씩하게 직장 어린이집에 들어간다. 작년만 해도 첫째는 아기 티를 벗지 못했었는데, 올해는 확실히 어린이로 거듭났다. 행동도 말도 전보다 야무지다.



주말이라 하루 종일 우리 가족 네 명이 모두 붙어있는 날이면,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은 하루에 두 번이다. 낮잠과 밤잠. 우리는 모두 안방에 모여 잔다. 어른은 침대에서 아이들은 토퍼에서. 아이들을 재울 때는 네 명 모두 토퍼에 눕는다. 아이들은 잠들 때까지 엄마 아빠가 곁에 있길 원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토퍼에 누워 아이들을 재울 무렵이면, 아이들은 아직 잠들지 않았는데 슬금슬금 코 고는 소리가 들려온다. 남편은 아이들을 재우러 왔다가 아이들이 잠들기도 전에 잠들어버린 것이다. 그러면 우리 집 첫째는 킥킥 웃으며 나에게 속삭인다. "큭큭큭, 아빠 또 코 골아."



이런 걸 일거삼득이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을 재우러 들어간 김에 남편까지 세 명을 재우고 안방을 나선다. 안방을 나서기 전 잠든 아이들을 살피고 잠든 남편을 본다. 토퍼에서의 남편 자리는 첫째를 옆에 두고 맨 끝, 장롱 옆이다. 대자로 펼쳐져 잠든 첫째 옆에서 한껏 쭈그리고 코 골며 잠든 남편의 모습. 어느 날은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애처로웠다. 들숨에 올라가고, 날숨에 내려오는 그 쭈그린 어깨가 애처로웠다.



'얼마나 피곤했으면...'

회사에서 일하랴, 집에 오면 아이 돌보랴 쉴 틈 없이 흘러가는 남편의 시계를 그려 본다. 나의 시계 역시 회사에서 일하랴, 집에 오면 아이 돌보랴 쉴 틈 없이 흘러가기에, 남편의 시계는 어떻게 흘러가는지 도통 무심했던 건 아닐까.



당신의 어깨가 듬직하게 느껴질 무렵 결혼을 했고, 시간이 지나고 아이를 둘이나 낳은 후 요즈음 당신의 어깨가 애처롭다. 당신의 어깨가 애처롭던 그날, 우리는 진정 가족임을 느꼈다. 서로를 애처로워하는 마음 없이, 서로를 가엾어하는 마음 없이 우리의 일상을 꾸려갈 수 있을까.



사랑을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그 이면에 너무나도 많은 감정이 존재한다. 열정, 애착, 신뢰, 유대 그리고 애처로움까지. 어쩌면 배우자와 생을 함께한다는 것은 사랑이라는 단어로 표현되는 다양한 감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아닐까. 한 개의 감정만으로도 설명 가능했던 사랑을 열 개의 감정으로 채워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이전 16화 하루살이 아니고 겨우살이입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