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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6. 2022

두발 자전거를 처음 타던 날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우리 집에는 조그마한 네발 자전거가 있었다. 두발 자전거에 두 개의 보조 바퀴가 달린 형태였는데, 뒤 쪽에는 상판처럼 생긴 것이 달려 있었다. 언니는 네 발 자전거를 타고 나는 상판에 올라서 언니 어깨를 잡고 신나게 질주했다. 우리 아파트 화단에는 분꽃이 유독 많았는데, 쭈그려 앉아서 분꽃 씨앗을 모았다. 모은 분꽃 씨앗을 손에 꼬옥 쥐고 있다가 언니가 자전거를 운전하면 그 뒤에 서서 분꽃 씨앗을 바닥에 뿌렸다. 어릴 때에는 아스팔트 바닥에 분꽃 씨앗을 뿌리면서도 그렇게 하면 어여쁜 분꽃이 여기저기서 자랄 거라고 믿었다.



그 후로 오랫동안 자전거를 탄 기억이 없다. 집에 있던 조그만 네 발 자전거를 타기에는 언니나 나나 몸집이 커져 버렸기 때문이다. 또 그 무렵에는 롤러블레이드(인라인 스케이트)가 유행이었기에 자전거를 찾지도 않았다. 어느 날 사촌네 집에 롤러블레이드가 있는 것을 보고 부모님이 청록색의 롤러블레이드를 사 주셨고, 언니와 나는 한참 동안 자전거 대신 롤러 블레이드를 타고 놀았다. 우리가 살던 아파트는 평지에 지어진 아파트가 아니었다. 언덕이 굉장히 많은 아파트여서 아빠가 롤러 블레이드를 탈 때에는 언덕길에서 탈 때 꼭 조심하라고 여러 번 신신당부했다. 그러나 언니와 나는 그 말은 새겨듣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아파트 옆 언덕배기 주차장에서 신나게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질주했던 기억이 난다. 언덕길을 질주하다가 오토바이나 차와 부딪혔다면 크게 사고가 났을 텐데, 운이 좋았다는 생각뿐이다. 그때만 해도 어른들이 아이들 노는 데에 보호 차원에서 따라 나가던 시절이 아니었다. 그래서 우리 말고도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아찔하게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자전거를 하나 사 왔다. 두 발 자전거였고, 접을 수 있는 접이식 자전거였다. 10살 즈음된 어린 내가 보기에 그 자전거는 마치 어른용 자전거처럼 위엄이 넘쳐 보였다. '과연 내가 저 자전거를 타는 날이 올까?'라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아빠가 접이식 자전거를 사 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아빠는 그 당시 테니스에 빠져 있어서 주말마다 대공원에 가서 아빠 친구와 테니스를 쳤다. 아빠는 테니스 치러 대공원에 가는 김에 가족 모두 대공원에 가서 놀고 오면 좋겠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아빠는 테니스 라켓과 접이식 자전거를 차 트렁크에 실었다.

그 무렵이 초가을 무렵이었는데, 그렇게 우리 가족은 매주 대공원에 놀러 갔다. 아빠는 아빠 친구와 테니스코트에서 테니스를 쳤다. 엄마는 나무로 만든 테이블이 달린 벤치에 앉아 뭔가를 끄적였으며, 언니와 나는 자전거 연습에 매진했다. 초등 고학년이었던 언니는 금세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저 멀리 휙휙 나아갔다. 뜀박질을 하며 언니를 따라가려 했지만, 머리를 흩날리며 쌩하고 멀리 가버린 뒤였다. 동생들은 언니가 하면 뭐든 따라 하고 싶은 법. 나는 엄마 팔을 잡아끌며 나도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싶다고 조르기에 이르렀다.



보조바퀴 달린 조그만 네발 자전거만 타던 내가 커다란 두발 자전거를 탄다니, 그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나는 자전거 안장에 올라타고 페달에 발을 올린 뒤, 엄마에게 뒤에서 꼭 잡아달라고 했다. 조금씩 페달을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두 발 자전거는 네 발 자전거와 달리 초반에 속도를 붙이지 않으면 옆으로 휘청하며 쓰러진다. 나는 겁이 나서 쉽사리 초반에 속도를 붙이지 못했고, 그렇게 옆으로 쓰러지기만 여러 번 했다. 매주 대공원을 찾을 때마다 엄마와 함께 두발 자전거 타기 연습을 했으나 몇 주 동안 성공하지 못하고 돌아왔다.



그날도 어김없이 대공원을 찾았다. 커다란 나무들이 울긋불긋하게 단풍이 들었던 풍경이 기억난다. 아마 11월 무렵이 아니었을까. 나는 그날도 두발자전거 타기에 도전했다. "엄마, 뒤에서 절대 절대로 놓으면 안 돼!" 나는 페달에 발을 올려놓고 힘차게 발을 굴렀다. 스타트가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휘청거리며 쓰러지지 않았으면 반은 성공이다. 엄마가 뒤에서 잡고 따라오고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 점점 발을 굴렸고,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두발 자전거 타기를 정복한 순간이었다! "엄마, 잡고 있지?" 허접한 실력에 차마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진 못하고 엄마에게 말을 건넸다. 엄마는 답이 없었다. 아마 나의 자전거 타기를 보고 안심하고 두 손을 놓았으리라. 그날은 테니스가 끝난 아빠한테 여러 번 자랑했다. "아빠, 나도 이제 두발 자전거 탈 수 있어!"



얼마 전 유튜브에서 <내가 키운다>라는 예능의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연예인 김나영님과 아들 신우의 두발자전거 타기 영상이었다. 그 영상을 보면서 내가 처음으로 두발자전거 탔던 날이 생각났다. 신우가 두발자전거 타기가 잘 안 된다고 엄마에게 짜증 내다가, 결국 엄마가 슬쩍 손을 놓고 혼자서 두발자전거를 타고 나아가던 모습까지. 엄마 김나영님은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이 아이가 이만큼이나 컸구나.'를 생각하며 뭉클했다고 한다. 함께 나온 패널들 역시 자녀의 첫 두발자전거 타던 날이 뭉클했다고 회고했다.

자전거를 타고 멀어져 가는 아이의 뒷모습에서 엄마 품을 떠나 살아갈 아이의 모습이 겹쳐지기 때문에 부모로서는 아이의 두발자전거 타기가 뭉클할 수밖에. 두발 자전거 타기에 열중한 몇 주 동안, 종종 짜증 내던 나와 달리 묵묵히 내 뒤에서 자전거 타기를 봐주던 엄마가 떠오른다. 내가 처음으로 두발자전거를 탄 날,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엄마도 분명 뭉클한 마음이 들었으리라. 



요즘 우리집 첫째는 네발자전거 타기에 빠져서 어찌나 앞으로 질주를 하는지 모른다. 멀어져가는 아이의 뒤통수를 바라보면 지나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누워서 모빌을 쳐다보던 아기였던 네가 자라서 자전거를 타는 날이 오다니. 내 인생 그 어떤 시간들보다 너를 키워내고 너와 함께 울고 웃던 시간들이 가장 소중했음을 자명하게 깨닫는 순간이다. 네가 두발자전거를 연습하는 날이 온다면, 나의 엄마가 그랬듯이 묵묵히 뒤에서 너를 지켜줄게. 힘차게 페달을 밟고 머리를 휘날리며 나에게서 멀어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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