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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5. 2022

나의 어릴 적 테마파크, 외갓집

나의 외갓집은 시골집이다. 자그마한 마을에 길을 따라 듬성듬성 주택이 있고, 마당에는 커다란 감나무가 있는 집. 대문 옆에는 늘 흙먼지가 묻어있던 주황색 경운기가 있었다. 어릴 적 나는 그 경운기를 너무 타고 싶어 외할아버지가 논밭에 나갈 때면 꼭 태워달라고 졸랐다. 달달달 소리는 요란스러운데 소리와는 달리 천천히 가던 경운기는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도 재밌었다.



대문은 늘 열려있었다. 이웃들의 방문이 하루에도 몇 번씩 이어졌기 때문에. 이웃들이 오면 우리 엄마도 쓰지 않던 사투리를 쓰며 수다를 떠는데 그 모습이 퍽 어린 내게 퍽 재밌었다. 커다란 감나무에는 주렁주렁 감이 열리기도 했다. 그 감이 어찌나 탐스럽던지, 대봉 중에 대봉이었다. 외할아버지는 양 끝이 갈라진 기다란 장대로 감을 똑 따서 내게 주시곤 했다.



어린 나에게 외갓집은 테마파크였다. 요즘 테마파크에는 동물원도 있고, 놀이기구도 있고, 그곳에서 물놀이도 할 수 있다. 어린 시절 내게 외갓집이 딱 그러했다.



마당의 왼편에는 외양간이 있어 소들과 염소들이 있었고, 마당 대문 바로 옆에는 개집에 개들이 있었다. 마당의 오른편에는 닭장이 있어 아침마다 울어대는 닭소리에 아침잠에서 깨어나곤 했다.

계란후라이를 먹고 싶으면 닭장에서 닭이 품고 있던 달걀을 꺼내온다. 닭장에서 꺼낸 달걀에는 아직 온기가 가득했는데, 미안함을 무릅쓰고 가져온 달걀로 후라이를 하면 어찌나 맛있던지. 외갓집의 닭들은 신통한 닭들인지 자꾸 노른자가 두 개인 쌍란이 잦아 로또 맞는 기분이기도 했다.



염소와 닭들은 우리 가족이 방문하면 희생양이 되곤 했다. "신서방 왔으니 한 마리 잡아야지." 그 길로 닭장에 있던 닭은 백숙으로, 외양간에 있던 염소는 염소탕으로 밥상에 올려졌다. 나는 실시간으로 할머니가 터프하게 닭의 멱을 따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염소 멱도 땄을 텐데 내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염소까진 차마 내 눈으로 못 보겠어서 숨어있었지 않았나 싶다.



귀한 손님이 오면 씨암탉을 잡는다던데, 외할머니에게 간만에 내려온 첫째 딸 가족(우리가족)이 그러했다. 외할머니가 푹 삶아준 백숙의 배에는 줄줄이 알이 들어차 있었다. 손톱만 한 아주 작은 알부터 낳기 직전 크기의 알까지 줄줄이 들어찬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염소탕은 끓이면 그 특유의 염소 냄새가 온 집안을 가득 채웠다. 나는 그 냄새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 입에 대지 않았지만, 신서방인 우리 아빠는 늘 염소탕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외할아버지는 양봉도 하셨는데, 뒷마당의 꿀벌존에는 거대한 벌집과 꿀벌이 가득했다. 그곳은 외할아버지만 망사가 둘러진 모자를 쓰고 갈 수 있는 금기 구역이어서 어린 내가 가까이 가 본 적은 없다. 망사 모자를 쓴 외할아버지가 꿀이 가득 찬 벌집을 내밀며 "먹어봐라잉" 하시면, 나는 그 탐스런 벌집을 양손으로 쥐고 열심히 빨아먹었다. 벌집 사이로 주르륵 흐르는 황금빛 꿀. 그 꿀은 내 생에 가장 맛있는 꿀이었다.



마당에는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와 커다란 대야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풍덩 빠져서 놀기도 하고, 조그만 손 바가지로 이곳저곳 물을 뿌리며 놀았다. 더운 여름날에는 그곳에서 시원한 물로 등목을 하기도 했다. 외할아버지가 마당 한편에 자라고 있던 토란잎을 뜯어다주면 토란잎을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 토란잎에 구슬처럼 물방울이 흘러가는 모습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토란잎에 물방울을 굴리고 있노라면 금세 외할머니가 저녁 먹으러 들어오라고 나를 불렀다.



마당에는 넓은 평상이 있었다. 여름에는 해가 지면 그 평상에 옹기종기 모여 수박도 먹고 참외도 먹었다. 밤에 평상에 등을 대고 누우면 도시에서는 볼 수 없었던 별천지가 펼쳐졌다. 엄마는 손가락 끝으로 가리키며 별자리를 알려주기도 했다. 엄마의 손 끝을 따라가며 별자리 모양을 그리다가 이내 곧 놓치고 말았다. 어느 날은 아기 박쥐가 평상으로 날아들었다. 처마 밑에 거꾸로 매달려있어야 하는데, 아기여서 길을 잃은 모양이었다. 조그마한 아기 박쥐를 내 생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다. 엄마 잃은 아기 박쥐가 가엾으면서도 신기해서 계속 쳐다봤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세간 살림이 작아진 이후로 지금의 외갓집은 어릴 적 외갓집과는 많이 다르다. 동물원 같이 많았던 동물들이 많이 줄었고, 외할머니도 나이가 많이 드셔서 이제 신서방이 가도 동물 멱을 따지는 않으신다. 그래도 20년 넘게 지난 내 머릿속에 외갓집의 풍경이 이렇게 생생하게 그려지는 걸 보면, 그때 그 시절 나의 테마파크 외갓집은 여전히 내 마음속에 살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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