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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7. 2022

그 시절, 흔치 않던 워킹맘의 딸

우리 엄마는 그 시절 흔치 않던 워킹맘이었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무렵 한 학급에는 40명 정도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맞벌이부부의 자녀는 다섯 명 정도 되었으려나. 맞벌이부부가 절반 가량은 되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시대였다. 아빠는 밖에서 일을 하고, 엄마는 가정을 챙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초등학교에 갈 무렵, 또래 관계가 형성되면서 우리집이 다른 집들과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엄마는 매일 일하러 나가는데 친구들 엄마는 집에 있다는 것이다. 엄마가 전업주부인 친구들이 무척 부러웠다. 아직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나이에 나는 워킹맘의 딸로 홀로서기를 해야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였다. 1학년은 오전 동안 학교에서 생활하다 점심 무렵 하교를 한다. 하교를 하려고 하는데 어찌나 비가 많이 오던지. 비가 억수로 쏟아져 대낮인데도 어두컴컴했다.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나는 오갈 데가 없이 꽁꽁 발이 묶였다. 나와 함께 발이 묶인 친구들이 있었는데, 하나둘씩 엄마가 우산을 가지고 와서 데리고 갔다. 엄마들이 친구들을 데리고 가고 학교 문 앞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그 때는 휴대폰도 없었기에 엄마한테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도 할 수 없었다. 세차게 내리는 빗발이 약해지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나는 그 때 깨달았다. 나는 엄마가 전업주부인 친구들과는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처럼 선선한 가을 바람이 부는 무렵이면 체육대회가 열렸다. 친구들 모두 체육대회를 앞두고 들떠 있는 무렵, 체육대회가 별로 기다려지지 않았다. 체육대회 때는 친구들의 엄마들이 학교에 왔다. 엄마들은 엄마들끼리 모여 삼삼오오 수다도 떨고, 돗자리를 펴고 아이를 불러 간식을 챙겨주기도 했다. 체육대회날 당연히 우리 엄마는 오지 못했고, 나는 친구 손을 잡고 친구 엄마가 주는 간식을 얻어 먹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황량해진 운동장에서 친구들이 엄마 손을 잡고 집으로 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혼자서 집으로 향했다.

딱 한 번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휴가를 내고 체육대회에 온 적이 있다. 엄마는 그 간의 내 설움이 사라질 만큼 한아름 간식과 치킨을 들고 왔다. 그 날 만큼은 나도 친구들한테 우리 엄마도 왔다고 자랑도 하고, 괜히 멀리서 "엄마!"하고 크게 불러도 봤다. 그 날의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걸 보면, 내 유년 시절 중 가장 행복한 날이었던 것 같다.



워킹맘의 딸로 사는 것이 마냥 나쁜 것만은 아니었다. 나도 친구들도 부모님의 손을 덜 탈 무렵만큼 크자, 워킹맘의 딸로 살아가는 것이 좋아졌다. 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자 엄마는 회사에 소속되어 있다가 개인 사업을 꾸렸다. 엄마는 새로 시작한 일을 좋아했다. 나는 학교 다니랴 학원 다니랴 정신없이 바빴다. 엄마가 전업주부인 친구들은 청소년이 되자 엄마의 적극적인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친구들은 엄마의 학업에의 생활에의 관심을 부담스러워했고, 잔소리 많은 엄마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에 비해 엄마와 나는 각개전투로 바빴기 때문에 서로 부딪힐 일이 없었다. 나는 그저 엄마가 새로 시작한 일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보고 응원했고, 엄마 역시 나의 학업과 생활을 한 발치 떨어져서 바라보며 응원했다.



엄마는 그렇게 지금도 워킹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다. 엄마는 항상 가슴 속에 사직서를 품고 다니는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이가 들어서도 내 일이 있어야 해. 내 일이 있어야 활력 있게 살 수 있어." 엄마는 나에게 해 준 말을 스스로에게 하며 워킹맘으로, 워킹할머니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엄마에게는 일이 단순히 돈벌이는 아닌 것 같다. 엄마에게 일은 돈벌이의 역할도 하지만 생활패턴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추며 삶을 활력 있게 해주는 역할도 하는 것이다.



워킹맘의 딸이 자라서 워킹맘으로 정신없이 살고 있다. 유년시절 기억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나를 가장 필요로 할 때 곁에서 든든하게 챙겨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청소년기 기억을 떠올리면, '아이들이 내 품에서 멀어질 무렵부터는 아이들과 적정거리를 유지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갈팡질팡하는 마음은 워킹맘 생활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워킹맘을 지나 워킹할머니가 된 엄마처럼, 일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워킹맘으로서의 기나긴 세월을 버티게 한다. 나에게 일은 무엇인가. 일은 내게 돈벌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 스스로에게 물음을 던져 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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