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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Oct 25. 2022

그 시절의 네일아트, 봉숭아꽃 물들이기

어릴 적 나는 멋내기를 좋아하는 어린이였다. 초등학생 때 소원은 친구들처럼 귀를 뚫는 것이었다. 친구들 귀에 달랑달랑 달린 귀걸이가 무척 예뻐 보였다. 엄마한테 '나도 귀를 뚫고 싶다.'라고 선언했고, 엄마는 귀 뚫는 것이 얼마나 아픈 지 아냐며, 어린것이 예쁜 생살을 왜 뚫으려 하냐며 나를 말렸다. 결국 나는 20살이 되어서야 귀를 뚫을 수 있었다. 우리 집에는 미혼의 큰고모가 같이 살고 있었다. 큰고모는 세련된 멋쟁이었는데, 화장대에는 없는 것이 없었다. 그때의 나에게 가장 가슴 설레는 곳이었다. 미술시간에 보던 팔레트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조그마한 가위도 있었고, 붓처럼 생긴 것도 있었다. 고모가 집에 없는 시간에 몰래 고모처럼 얼굴에 찍어 발라보기도 했다. 얼른 어른이 돼서 나의 화장대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멋'에 관심이 많던 어린 나에게 여름마다 설레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봉숭아꽃 물들이기. 동네에 봉숭아꽃이 피면 엄마와 함께 따왔다. 봉숭아꽃을 따온 밤이면 이제 봉숭아꽃 네일아트의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엄마는 절구통에 넣고 봉숭아꽃을 빻았다. 이내 빨간 꽃물이 나올 즈음, 거실에 꽃내음이 가득 찼다. 엄마는 빻은 봉숭아꽃을 티스푼으로 떠서 고사리 같은 내 손톱에 얹어줬다. 그리곤 손가락에 랩을 씌우고, 하얀 실로 칭칭 감아 묶는다. 그렇게 열 번을 반복하여 열 손가락 모두 랩 붕대가 씌워진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림. 기다림 뿐이다. 때는 여름이어서 랩으로 씌운 손가락에 금세 습기가 차고 답답했다. 그래도 예뻐질 손가락을 상상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잠을 청한다. 아침 햇살에 눈을 뜨면, 열 개 중 두 개 정도는 손가락에서 없어져 있다. 뒤척이며 잠을 자는 사이에 꼭 몇 개는 벗겨져 있더라. 이부자리를 뒤져보면, 벗겨진 랩 붕대는 배게 부근에 있거나, 이불 밑에 숨어 있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봉숭아꽃 랩 붕대를 푸는 시간. 가장 설레는 순간이다. 아침잠이 많은 나는 이 날 만큼은 꼭두새벽 같이 일어났다. 하나하나 랩을 풀어가면 발갛게 물든 손톱이 나온다. 뽀얀 선홍빛이다. 큰고모의 화장대에서 몰래 발랐던 쨍한 색상의 매니큐어와는 다른 결의 아름다움이다. 매니큐어가 화려한 도시녀라면, 봉숭아 꽃물은 단아한 미인이다. 열 개의 손가락 중 여덟 개는 선홍빛으로 물이 잘 들었고, 자다가 벗겨진 두 개는 연한 주황빛이다.



매니큐어를 바르고 며칠 지나면 군데군데 흠집이 나고 벗겨져 흉한 모양새가 된다. 그 흉함이 눈에 거슬려서 아세톤을 찾아서 지워버리고 만다. 그러나 봉숭아 꽃물은 헤어짐조차 아름답다. 봉숭아 꽃물의 선홍빛은 손톱이 자라남에 따라 점점 위로 올라가고, 꽉 찼던 선홍빛은 초승달처럼 얇아진다. 봉숭아 꽃물이 첫눈 올 때까지 남아 있으면 사랑이 이뤄진다는 시적인 말이 있다. 내 손톱 위의 꽃물이 초승달처럼 얇아질 무렵이면, 스산한 초겨울 바람이 불었던 기억이 난다.



마지막으로 봉숭아꽃 물들이기를 해 본 적이 언제였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어린이 티를 아직 벗지 못한 초등학생 무렵이 아니었을까. 요즘의 초등학생들도 봉숭아꽃 물들이기를 하려나. 내가 어렸을 때는 여름이면 봉숭아꽃 물들이고 오는 친구들이 꽤나 많았다.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숏폼이 대세인 요즘의 세태와는 거리가 멀다. 봉숭아를 따서, 그것을 빻고, 밤새 기다리고, 헤어짐 조차 기나긴 봉숭아꽃 물들이기는 단연 아날로그 감성이다. 그럼에도 봉숭아 꽃물의 선홍빛을 기다리며 잠들고, 봉숭아 꽃물과 헤어지는 그 과정이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년 여름엔 우리 아이들에게도 봉숭아 꽃물을 들여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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